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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다섯 번째 방〉 인디토크 기록: 나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

indiespace_가람 2024. 6. 18. 12:28

나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

〈다섯 번째 방〉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6월 9일(일)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전찬영 감독, 출연자 김효정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기록입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안전이 보장되고 나의 생활이 보장되는 곳.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방은 당연하지만은 않다. 여성, 엄마, 아내, 상담사. 그 자리에 효정은 오랫동안 존재하지 못했다. 효정은 이제 자신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간다. 그 여정을 딸의 시선과 함께 따라가며 응원해 본다.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진명현 대표(이하 진명현): 안녕하세요. 오늘 〈다섯 번째 방〉 인디토크 진행을 맡은 모더레이터 진명현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셨던 주인공들인 전찬영 감독님과 김효정 님을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서울 나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행사인데 가장 먼저 찾아주신 관객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전찬영 감독(이하 전찬영): 안녕하세요. 〈다섯 번째 방〉 감독 전찬영이라고 합니다. 시간 내서 영화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오늘 릴레이 마지막 날인데 마지막까지 파이팅 해보겠습니다.

출연자 김효정(이하 김효정): 안녕하세요. 김효정입니다. 저는 덕분에 서울에 이렇게 와서 지내보네요. 영화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진명현: 6월 5일에 〈다섯 번째 방〉을 개봉하고 릴레이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 중이신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합니다. 저는 영화를 먼저 집에서 노트북으로 한번 보고 오늘 스크린으로 다시 봤는데요. 큰 화면으로 보니까 더 속속들이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족의 이야기에 제가 깊이 들어갔다 나온 느낌도 들고 다른 분들도 보시면서 자신의 가족 생각을 안 하실 수가 없었을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드리자면 저는 35살까지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고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모두 집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꽤 긴 시간 고생을 많이 하셨던 기억이 있고 아빠들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옷을 참 많이 벗고 있었는데 모든 집의 아버지들은 왜 저렇게 옷을 벗으시는 걸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웃음) 영화를 만든 이후에 시간이 많이 지났을 것 같은데 작품이 완성된 후에 두 분의 근황부터 먼저 여쭤보겠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전찬영: 첫 장편이자 처음으로 개봉하는 영화라서 설레는 마음이 컸었는데요. 막상 개봉하고 나니까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더라고요. 하지만 관객들을 만나고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 잠깐의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늘 감동하고 매일 일기를 쓰면서 뭐가 좋았는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면 좋을지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김효정: 저는 일단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계속 독립을 쫓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 영화처럼 저는 이 다섯 번째 방을 계속 찾아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진명현: 한 가지 더 여쭤보자면 저희가 마지막에 독립을 시작하는 시점의 이야기들을 봤잖아요. 그 이후에는 어떠신가요? 삶이 많이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효정: 생각지도 못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으니까 혼란스러운 시간이 처음에 있었어요. 저는 힘들어서 이걸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과연 어떤 게 독립인지 고민했고 이제는 무엇이 독립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주체가 되어서 살아간 지 1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그것에 감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만의 방법들이 생겨날 거라는 기대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진명현: 독립생활 1년 차신데 어떤 게 가장 즐거우신가요?

김효정: 일단 저를 위해 쓰는 시간이 좋아요. 차를 한잔 마시더라도 온전히 차 마시는 시간을 가지고 저 자신을 위해 밥을 먹고 운동을 다니고 병원에 다니는 시간이 좋습니다. 늘 바빠서 병원 가는 시간을 내기도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건강을 챙기고 저에게 맞는 것들을 해나가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진명현: 좋으시다니까 너무 다행입니다. 사실 다큐라는 게 어떤 지점에서 삶의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이 있어서 후일담이 궁금해지기 마련이거든요. 효정 님이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흐름 상 효정 님께 반려동물이 생기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후속편을 감독님이 찍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웃음) 그러면 이렇게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와 목소리, 얼굴들을 장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은 사실 대단한 결심이잖아요.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셨는지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찬영: 사실은 이전에 아빠에 대한 단편 다큐멘터리를 두 편 정도 제작을 했고 장편에 대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배와 제작사 등의 권유로 기획서를 썼다가 선정이 되어서 그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고민했어요.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조금 지친 상태였는데요. 엄마가 자주 얘기하는 입버릇이 나를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였어요. 어느 날 그 얘기를 생각해 보니 정말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가족들한테도 희생하고 밖에서도 내담자들을 돌보는 만큼 엄마의 인생에서는 돌봄이 큰 화둔데 정작 엄마는 그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었구나. 자신도 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카메라를 들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진명현: 효정 님은 처음에 감독님께 제안받으시고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바로 수락을 하셨나요?

김효정: 저는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딸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이제 성인이 되니까 딸이 나에게 귀를 기울인다는 소리가 되게 반가웠어요. 그래서 그냥 얘기하는 거 해보지, 뭐 이렇게 했어요. 그러다 중간부터는 가정에서 반대도 하고 이런 것까지 다 찍나 했지만 감독님이 많은 설득을 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카메라로 뭔가를 찍는다기보다는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딸의 모습에서 신뢰를 느꼈고 저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진명현: 완성본을 보고서는 어떤 생각이 처음에 드셨나요?

김효정: 너무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으니 얼마나 담길까 불안하기도 했고 가족들의 상처나 바깥에서 보는 시각들에 대한 걱정도 있었어요. 저 자신은 힘든 상황이었지만 각자의 시각에서 봤을 때 많은 오해가 생길까 봐 두려웠는데 감독님을 신뢰하니까 알아서 만들어 보라고 했어요. 이제는 저의 과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현재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는 과거에 지나간 시간 속의 장면들로 여겨졌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무언가 시작할 기회들을 감독님이 주지 않았나. 염려도 했지만 그런 믿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진명현: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하고 출연자분들이 관객분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에 나오시면 많이 떠시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익숙하고 능숙한 모습이 경험이 많은 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정 안에서도 밖에서도 빛이 나는 이런 매력이 잘 보이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후속편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버지의 경우도 정말 훌륭한 캐릭터세요. 어머니만큼 논리적인 분은 아니신데 이상하게 영화적이고 문학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귀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영화를 만들기에 이보다 더 좋은 캐릭터가 없습니다. 아마 그래서 감독님이 처음 단편 작업을 하실 때 아버지를 향해 카메라를 드시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중후반부에 아버지가 모니터링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내가 악당 또는 악역이구나 이렇게 할 때 사실은 정수를 꿰뚫고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완성본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어떤 피드백을 주셨는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전찬영: 저도 염려가 돼서 첫 상영을 하고 조심스럽게 아빠에게 물었던 기억이 있어요. 같이 주꾸미를 먹으면서 아빠 혹시 상처받았어? 라고 물었는데 괜찮다며 유쾌하게 넘기시고, 구체적이거나 감정적인 피드백은 잘 안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빠는 이 영화를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사랑과 지지라고 생각하고요. 처음에 상영하고 모더레이터 분이 자기소개를 시키셨는데 자기소개는 안 하고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관객들에게 해명하시더라고요. 관객분들이 신경이 쓰이셨나 봐요. 그래도 아무래도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저를 이해해 주려고 하는 부분들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진명현: 사실 영화에서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가 두 분이 트럭을 타고 생선을 잡으러 갔다 돌아오는 해 질 녘의 장면들인데 계속 엄마보다 나를 더 안 좋아해도 되지만 나도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그 마음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왜 효정 님이 반하셨는지 대충 추측이 가기도 하고. 이게 실례가 되는 질문이 아니라면 두 분 관계는 어떠세요? 

김효정: 지금은 떨어져 있다가 가끔 제가 상담을 하러 가면 보기는 하는데요. 매 순간 거리를 두라고 얘기를 많이 했었고요. 근데 제가 없어도 늘 화초에 열심히 물을 주고 있고 제가 올라가는 계단을 계속 쓸고 있어요. 그리고 계속 뒤에서 그냥 바라보고 있어요. 저는 그것도 부담스러워서 제발 내가 왔을 때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달라, 그게 나를 위하는 거다. 나는 아직도 당신의 폭력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 너무 모르니까 제가 그런 얘기들을 했어요. 그래서 내가 왔을 때는 창고 같은 곳에 가면 안 되냐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알아서 안 보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 저에게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을 마주할 때 저는 아이 엄마로서 남편은 아이 아빠로서 우리가 또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진명현: 모든 가족이 마찬가지지만 가족은 참 복합적이고 인간은 입체적이어서 단칼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집에서 별별 일이 다 있으니까 어머니께 이혼하라고 했지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모르는 부부 사이에 뭔가가 늘 있기 때문에 저는 항상 제삼자라는 생각이 들고 어쩌면 감독님이 들었던 이 카메라도 제삼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근거리에 위치한 카메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족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매우 많지만 이 정도로 근접해서 가족의 내밀한 마음과 목소리를 담은 작품은 드물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촬영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도 궁금합니다.

전찬영: 총 제작 기간이 5년 정도 걸렸는데요. 촬영은 2~3년 정도 하고 오프닝 장면을 가장 마지막에 찍었어요. 그래서 오프닝 얼굴이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이긴 하는데 오프닝 장면을 2022년도에 찍고 그때쯤 마무리가 됐었죠.

진명현: 그러면 찍은 분량은 어느 정도였나요?

전찬영: 용량이 30테라짜리 정도? 8테라짜리가 여러 개 있었습니다. 회차로는 거의 한 100회차에 가까웠던 회차였어요. 이게 가족의 일이다 보니까 촬영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 있잖아요. 저도 가족들을 항상 보러 가니까 그 동안 가족들을 괴롭히는 촬영 시간이 있었습니다.

진명현: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일반 독립 극영화의 경우 20회차에서 30회차거든요. 한 서너 배 정도의 촬영 분량인 거예요. 사실은 촬영도 촬영이지만 다큐멘터리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편집의 과정일 텐데 이 부분에서도 감독님이 많은 부분을 덜어내셨을 것 같습니다. 조금 아까운 순간들도 있으신가요?

전찬영: 사실 저는 제 얘기를 하고 싶었고 영화에서 제가 주인공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엄마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라는 판단을 했어요. 영화 후반부에 원래는 저에 대한 이야기 시퀀스가 되게 길었거든요. 20분 정도 되는 분량으로 제 얘기를 하고 가족들을 만나러 다니는 장면이 있었는데 엄마가 독립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가장 큰 주제가 잡히고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뒤에는 저의 장면들을 과감하게 다 잘라냈습니다. 저는 단지 영화 속 내레이터로 등장해서 엄마의 감정을 끌어주는 역할로만 서브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그런 부분들을 덜어낸 게 마지막까지 신경 쓰였는데 영화를 보니까 잘 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명현: 그러면 효정 님은 영화 보고 나서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으시다면 어떤 건지도 여쭤보고 싶어요.

김효정: 보면서 계속 바뀌었는데요. 평화로운 장면이 일단 좋았었고요. 트럭에서 우리 딸이 평화롭게 가는 저 장면이 없었으면 너무 암울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어제 또 오랜만에 영화를 봤었는데, 보면서 저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들을 내뱉기 시작한 게 저는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 저를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서요. 이렇게 내가 놓아야겠구나, 힘든 것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진명현: 촬영했는데 안 들어가서 아쉽게 느껴지는 장면들도 있으세요?

전찬영: 그런데 제가 촬영을 ‘레디 액션’하거나 ‘이제 찍을게’ 이렇게 한 적이 거의 없고 엄마가 뭘 하고 있으면 제가 갑자기 찍거나 하루 종일 찍는 식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나오는 배우로서는 촬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인식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나온 부분들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워낙 집의 일상이다 보니까 작은 카메라나 소형화된 장비들을 많이 사용해서 엄마는 뭘 찍고 있는지, 이게 어떻게 영화가 되는 건지에 대한 인식이 촬영 중에는 많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명현: 신기한 게 동일한 카메라 장비를 쓰셨을 텐데 어머니는 너무 자연스럽게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카메라 앞에서 관찰 예능처럼 뭔가를 하려고 하시는 게 두 분의 극명한 캐릭터 대비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두 분에게 디렉션이 달랐나요?

전찬영: 아버지는 촬영을 귀찮아하셔서 인터뷰도 담배 같은 거나 정확한 보수가 있어야 앉아 있으셨어요. 또 사진을 굉장히 좋아해서 그걸 빌미로 촬영하다 보니 그렇게 명확한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진명현: 가장 분량이 적은 것은 남동생 진호 님인 것 같아요. 진호 님은 촬영 중에 어떤 반응을 보였었고 영화를 보셨는지, 영화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전찬영: 남동생이 연락을 잘 안 받아가지고. (웃음) 아직 영화를 본 적은 없고요. 사실 동생들 장면은 제가 거의 다 제거했고요. 제거를 해도 사실 엄마가 주인공이다 보니 이야기를 정리하는 데 큰 무리가 없긴 했어요. 저는 동생들 장면 중 쓰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동의를 원활하게 받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어쨌든 저는 영화 내려라 이런 거 하지 마라, 이렇게 시위만 안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동생도 나름의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객: 제가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솔직하고 리얼한 다큐멘터리는 처음인 것 같아요. 저는 어머니 나이대인데 제가 자랄 때 아버지의 폭력성도 그렇고 너무 비슷한 일들이 있었어요. 저는 그걸 치부라고 생각해서 드러내는 걸 두려워했었는데 이걸 이렇게 과감하게 드러내고 유쾌하게 풀어내신 것도 신기합니다. 제가 질문하고 싶은 건 보통 픽션이나 드라마라면 아빠와 화해하고 이해하는 걸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등 해피엔딩을 제시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그런 시도조차 전혀 없는 게 궁금했습니다. 특히나 어머니가 심리 상담을 하시는 분인데 지금은 절대적으로 공간은 독립하셨지만, 심리적으로 가정과 완전히 독립하실 수는 없을 거잖아요. 그런데 남편을 봤을 때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머니 입장에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감독님이 아버지가 이해해 주셨다고 하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실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는지, 뭘 얘기하고 싶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전찬영: 저는 이 영화에서 표현된 게 아빠라는, 전성이라는 캐릭터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효정이라는 캐릭터도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의 일상은 또 다르게 흘러가잖아요. 그래서 현실의 전성이라는 인간을 봤을 때 많은 시도를 했어요. 사실 저도 아빠가 ‘찬영이 우리 딸 그렇게 힘들었어. 미안해’, 이렇게 해주길 바랐던 것 같은데 그건 처절하게 실패를 했고 그런 시도들은 저번 단편에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빠와 많은 대화들을 나누었지만, 아빠는 그냥 자리를 떠나버리는 결론들이 있어서 소통이 힘들었고 사랑을 주는 표현 방식이 아빠와 저랑은 많이 달랐어요. 그렇기 때문에 화해 같은 아름다운 엔딩은 불가능했고 저도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부분들은 깔끔하게 포기한 것 같아요. 이럴 수도 있구나, 아빠가 저런 생각 할 수 있지 하고 제가 바뀌었던 부분이 큰 것 같지만 폭력적인 부분들이나 제가 가진 상처들에 대해서는 제가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할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에 저는 그냥 아빠에게 받은 상처는 상처고 사랑해 주는 마음은 마음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러면서 아빠와 약간 거리감을 가지고 거리감이 있는 가족 관계랄까 그런 것들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김효정: 질문 감사합니다. 아마 저를 되돌아보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제가 힘들다고 이야기했는데 들어주는 상대가 없을 때의 공허함이 컸었거든요. 근데 제 마음은 같이 살았던 시어머니와 제 남편이 그 얘기를 들어주기를 너무나 바라서 많이 호소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지금 제가 거리를 두고 독립을 선택하고 나서 제가 작은 제스처를 취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어머님도 너무 감사해하고 남편도 들어주려 하더라고요. 이때까지 제가 절실할 때 귀를 기울여 주지 않고 힘들다 해도 그건 너의 몫이라며 던져놓던 것들을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싫은데 굳이 내가 괜찮은 척 봐줘야 할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지지를 보냈던 게 엄마 마음 가는 대로 하라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요. 제가 준비가 5가 되었는데 늘 10의 행동을 하지 않았나, 그것이 제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대치를 높게 하지 않았나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나는 지금 내 힘듦이 5면 5라고 얘기하고 1이면 1이라고 얘기하는 연습을 지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소리를 내었을 때 제 소리가 소통되기를, 그런 얘기들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저의 독립이 주는 변화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직접적으로 그 대상과 얘기하는 것들은 쉽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 싫으니까 멀리 가라는 소리도 지금 저에게는 큰 용기거든요.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저를 오히려 대견하게 여기고 그냥 해도 큰일 날 일은 없어, 안 하는 게 문제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할 때 분석가들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당신은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살지 않나요’에요. 저도 그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이제 그 생각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는 저 자신이 그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명현: 첫 질문과 답변 감사드립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너무 야무지시잖아요. 힘들다는 얘기를 잘 안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타인이 보기에 야무져 보이는 경우들이 있어요. 여기서 가족들 그리고 효정 님 일터에서의 장면들이 나오는데, 보면서 궁금했던 건 친구들한테 이렇게 힘든 얘기를 하거나 가족 외에 다른 데서 위안을 얻는 그런 곳은 없을지 여쭤보고 싶더라고요.

김효정: 아마 주변에 저를 지지하는 친구들과 소통이 되는 친구들에게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거기서 위로를 받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스스로를 계속 주저앉혔어요.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할 틈과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았어요. 삶이 너무 직진만 하고 살았거든요. 아파도 병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그냥 직진이 계속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속도로가 있는데 저는 그냥 계속 달리고 있었고 휘발유가 떨어지고 엔진이 부서졌는데도 저는 그것조차도 돌보지 않고 그냥 달려가고 있었던 느낌을 받았어요. 

진명현: 어떻게 보면 감독님이 어느 순간에 어머니 효정 님의 주행거리를 확인하시고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달려왔구나, 우리 엄마가 한 번쯤은 돌아보고 새 차를 마련해주는 시간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또 어머니에게 바치는 신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다른 관객분 이야기도 들어보겠습니다.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관객: 전찬영 감독님께 궁금한 점이 있는데 단편 영화도 몇 개 봤었거든요. 항상 그림이나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 편이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애니메이션 아이디어는 어디서 가져오시는지, 이번 영화의 애니메이션 배치는 촬영 중에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민하셨는지 그 점이 궁금합니다.

전찬영: 영화 기획을 하면서부터 애니메이션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컸었고 가정폭력에 대한 기억이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었어요. 이걸 애니메이션으로 많이 상쇄시킨 것 같아요. 제가 사실 애니메이션과를 나왔거든요. 그래서 나의 살리지 못한 꿈들을 이 다큐멘터리에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저의 욕심들이 많이 투사가 된 장면들이었어요. 아빠의 캐릭터를 어떻게 구현할까, 이런 부분들이 다른 폭력의 기억을 가진 분들에게 너무 트리거처럼 작용하면 안 되는데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 그런 부분들을 맞추는 데 가장 노력을 했어요. 그래서 사실 이 기억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저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구현하는 것에 힘쓰다 보니까 지금 버전이 나온 것 같아요. 

진명현: 효정 님이 처음으로 2층에 독립하셨을 때 엄청나게 방을 꾸미잖아요. 그런 것들이 찬영 님에 유전적인 영향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이제 좁은 공간이 아니라 넓은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되셨는데 인테리어 스타일도 달라지지 않으셨을까, 새집을 어떻게 꾸미셨는지도 궁금해요. 

김효정: 여전히 소품들을 좋아해서 많이 활용하고 색 같은 것도 제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하는 얘기가 어딜 가든 엄마 집이야 이렇게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아기자기한 게 많습니다. 

전찬영: 집에 가면 그런 게 많아요. 내가 사기는 아까운데 남들이 선물해 줬으면 좋을 것 같은 비싼 물건들 있잖아요. 예쁜 휴지갑 같은 것들요.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집에 놔두면 인테리어가 너무 예뻐 보이는 게 많아서 가끔 가격을 물어보면 다 비싼 거예요. 그래서 이걸 다 언제 어디서 샀는지 모르겠으나 너무 예뻐서 훔쳐 가고 싶은 아이템들이 많습니다.

진명현: 긴 기간 동안 소망이었기 때문에 장바구니가 얼마나 가득하셨겠어요? 또 친구들이 독립하셨다고 결제해 준 것도 있었을 거고요. 다섯 번째 방 포스터도 굉장히 예쁘잖아요. 아마 그것도 집에다 두시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다음 질문 받아볼게요.

관객: 어머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 저는 같은 여성으로서 큰 용기를 받아서 어머님이 이렇게 용기를 내서 오픈을 하고 또 따님을, 감독님을 믿어주신 게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 같아 감사했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감독님께는 외할머니, 어머님의 부모님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느껴졌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어머님이 이렇게 강단 있고 멋진 분으로 살아가시는 게 어린 시절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 행복했던 기억이나 사랑받았던 기억을 한번 알려주실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진명현: 덧붙여서 장래 희망이 뭐였는지도 같이 여쭤볼게요.

김효정: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자랐는데 사랑이 많은 집이었어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많이 사랑하셨고 어머니 또한 대가족 속에서 살았어요. 항상 대가족 속에서 희생하셨지만 그 희생을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알아주셨고 마지막에 어머니가 가장 원하던 집을 지어주시고 돌아가셨거든요. 저는 자라서 대구로 유학을 나왔는데 그때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 그래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의 도리는 하고 살고 꼭 필요할 때는 함께 하는 것들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이 되라는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필요하면 그 자리에 있으려 하고 그런 관계를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늘 사랑이 많다 보니까 저 또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저는 어린 시절에 그런 것들을 가지고 살면서 자라서 교사가 되려고 했었거든요. 지금은 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담가로서 학교에 상담하는 선생님 소리를 듣고 있고 어느 순간 결혼해서 내가 상담가가 되면 참 좋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 저에게는 천직과 같은 일이 아닌가, 그 일을 선택한 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명현: 또 상담소 대표신데 영화 개봉하는 게 굉장히 큰 홍보가 되기도 하거든요. 업무적으로도 많은 좋은 영향이 있기를 바랍니다. 

관객: 다큐멘터리 너무 잘 봤고 이런 다큐멘터리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고요. 저희 어머니 오늘 같이 오셨는데 영화 보고 나서 너무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씀해 주셔서 뜻깊은 모녀 나들이가 된 것 같습니다. 효정 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어머니들께서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낳고 기르시다 보면 그 중심으로 삶을 끌어 나가게 되잖아요. 그래서 뒤늦은 독립을 하게 된 스토리라고 이해가 되는데 아직 효정 님만큼 독립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도 많을 거로 생각해요. 아직 자신만의 다섯 번째 방을 가지지 못한 다른 효정님, 다른 어머님들께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김효정: 질문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뭔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근데 그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벽, 경계, 테두리 이런 것들을 먼저 깨야 하지 않을까. 누가 해주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고민해서 쳐다보고 그런 자신을 깨워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관객: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마지막 영화가 끝날 때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데 그게 혹시 감독님께서 의도를 하신 건지 아니면 영화 촬영을 다 하니까 마침 그 시기가 마무리되는 시기였는지가 궁금합니다. 

전찬영: 그러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 계획대로 영화가 흘러가고 엄마가 집을 나가고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근데 전혀 그런 것들은 전혀 없었고 저 장면들은 사실 봄에 저희가 연례행사로 냉이를 캐는 가족 행사가 있어요. 그때가 아마 장례식장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그 이야기들을 엄마와 나눠야겠다고 생각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때 봄이 왔던 장면들인데 저는 어떤 장면들을 엔딩으로 배치할까 고민하다가 엄마가 그래도 긍정적인 느낌으로 그려졌으면 좋겠고 결말이 봄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지막에 들었어요. 그래서 봄인 신들을 고르다 보니 냉이 캐는 신들이 마지막에 배치됐어요. 저도 지금 저 장면이 마지막에 간 게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진명현: 그러면 처음에 장편 기획안 쓰실 때 마지막은 이런 장면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졌나요?

전찬영: 저도 엄마가 진짜 독립하실 줄 전혀 예상을 못 했어요. 사실 그건 저 혼자만의 마음속에 있던 결말이었어요. 엄마가 독립을 해준다는 게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른 결말들을 여러 가지 찍고 있었어요. 할머니와의 관계, 아빠와의 관계를 이리저리 생각해 봤는데 영화가 이상해진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나 집 나간다, 이렇게 전화가 와서 영화가 다행히 끝이 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진명현: 결론적으로 감독님의 기획안이 어머님의 미래를 내다보게 해드리기도 했네요.

전찬영: 그런 말은 실제로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때 집 분위기도 너무 안 좋았었거든요. 저도 마음이 아픈 일들이 많아서 엄마 일에 너무 공감하면서도 그래도 영화는 끝이 나는구나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마무리 촬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30년이란 시간이 걸렸잖아요. 중년 여성이, 엄마라는 사람이 집을 나가는 사례가 워낙 적다 보니까. 독립이라는 게 저희 세대에게는 너무 익숙한 말인데 엄마가 독립한다니. 이게 물음표가 저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이 자리를 빌려서 엄마에게 너무 고맙다는 말을 늘 하고 싶었어요. 제가 평소에 표현을 잘 안 해가지고. 

진명현: 보면서 한번 하세요. 

전찬영: 감사합니다. 영화를 개봉하게 해줘서.

김효정: 나도 감사합니다. 

진명현: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관객: 아까 영화 촬영 시기 말씀하실 때 시기가 코로나 영향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 영화 보기 전에도 코로나로 인해 가족 안에서 강제로 계속 붙어 살아야 했고 그래서 자기 공간에 대한 필요가 더 많아졌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영화는 코로나의 흔적이 거의 깔끔하게 지워진 듯이 보이지 않는데 일부러 따로 이렇게 연출을 하신 건지 아니면 따로 코로나 관련해서 일이 있었는데 편집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전찬영: 한창 촬영할 때 코로나가 있었고 또 저희 집이 대구잖아요. 저는 그때 집 밖에 나와 살았는데 코로나 초반에는 대구에 가면 큰일 나겠다 싶었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여러 이슈가 있었는데 그때는 대구에 가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잠시 촬영을 중단하고 저는 숨어서 편집을 시작했던 기억이 나요. 코로나가 끝나고 추가 촬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진명현: 그러면 효정 님께 코로나 때 일상은 어떠셨는지 간략하게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김효정: 코로나 때 아마 처음으로 제가 화초를 키우기 시작했던 것 같고요. 집이 1, 2층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시어머니와 남편은 1층에 있고 저는 2층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꽃이나 이런 걸 키우는 장면들이 제가 일상을 멈춰본 적이 없다 보니 그 멈춘 시간이 너무 공허하고 이상해서 화초 키우는 게 저에게는 너무 위로되는 시간이었거든요. 저희 어머님이 늘 상추 같은 것을 2층에서 키우시는 걸 보며 늘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먹는 생활을 했는데 되게 감사하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래서 이게 수고로운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고 좋아하는 허브들 키우고 차로 만드는 그런 일들을 해봤던 시간이었어요.

진명현: 영화 속에서 중요한 장면인 게 끼니를 할 수 있는 식용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자기 휴식을 위한 화초를 키우는 결정을 효정 님이 하시는 게 영화에서 어떻게 보면 예비 결정 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게 영화 속에 잘 녹아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앞으로 전찬영 감독님이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지, 다큐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앞으로가 궁금해져서 질문드립니다. 

전찬영: 마무리되는 시간이니까 짧게 말씀을 드리면 저는 저희 엄마가 한국의 전형적인 엄마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렇게 가족들한테 희생하고 우리 자식들을 돌보면서 살았던 엄마가 아니라 만약에 엄마가 좀 별로라면 우리 가족들의 얘기가 어떻게 흘러갈까 하는 반대의 질문이 들어서 그런 캐릭터를 가진 시나리오를 지금 쓰고 있고요. 다큐멘터리 작업을 저도 여전히 너무 하고 싶어서 지금은 부산에 있기 때문에 부산 로컬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부산에서만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을까 하고 기획차 지금 부산 여러 곳을 막 뒤지고 있고요. 어쨌든 저도 긴 작업이 끝나다 보니까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전시나 다른 매체의 작업을 많이 건드리고 있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진명현: 그리고 효정 님께도 여쭤보고 싶은 게 사실 독립하면 제일 좋은 게 여행 갈 수 있잖아요. 영화 속에서 여행 가는 장면이나 그걸 꿈꾸는 장면은 없었는데 혹시 여행 계획이 있으신지, 만약에 가신다면 어디를 제일 가보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김효정: 여행을 지금 자유롭게 많이 다니고 있고요. 근데 여기 서울에 와서 사람이 많아서 너무 놀랐어요.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서 걸으니까 너무 고요하고 좋더라고요. 여행을 간다면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좀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을 좋아해요. 산이 있고 자연이 있는 곳에서 걸을 수 있는 그런 곳을 여행하고 싶어요. 

진명현: 혹시 계획해 놓은 해외 여행지도 있으세요?

김효정: 지금 독립을 하면서 모든 걸 처음 시작하는 밑바닥의 단계라서 해외여행까지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현실에 맞는 것들을 차근차근 준비해서 국내라도 가보려고 합니다. 

진명현: 사실 감독님도 긴 기간 고생하셨고 개봉하는 게 선물이기도 하잖아요. 시간 내셔서 두 분이 가까운 해외라도 다녀오셔서 브이로그처럼 찍어오셔도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렇게 이어져서 공항으로 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렇게 마지막 날 참석해 주신 두 주인공분과 끝까지 자리 함께해 주시면서 이야기 나눠주신 관객분들 너무 감사드리고요. 〈다섯 번째 방〉은 자기만의 개성으로 무장한 작품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보시고 이야기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모녀분들이 오신 관객분들도 계시는데 가족들에게 추천하면 좋을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주인공들 두 분의 끝인사 말씀드리면서 자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효정: 먼저 아마 멀리서 오신 분들도 계시고 가까이서 오신 분도 계신 것 같아요. 끝까지 얘기 들어주시고 남아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함께 자기 틀을 깨면서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전찬영: 긴 시간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하고 사실 저희 배우 효정에게는 엄마의 이야기를 진지하고 뜨끈하게 들어줄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 같고 그걸 관객분들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항상 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이라서 너무 아쉬운데 주위에 홍보도 많이 해주시면 많은 분들이 보고 자기 가족에 대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진명현: 최애라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한테 하는 말이 ‘하고 싶은 거 다 해’잖아요. 관객분들도 이 영화 보시고 용기 얻으셔서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