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Review] 〈미지수〉: 상실의 기억과 공생하기
〈미지수〉리뷰: 상실의 기억과 공생하기 - 쏟아지는 빗속에 젖어 들며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기완(박종환)의 강박과 두려움은 비가 오는 날 유독 고개를 들이민다. 또 다른 인물 지수(권잎새)와 우주(반시온)는 기억 저편에 있는 빗 소리를 억지로 끄집어내어 곁에 고이 둔다. 그러나, 쏟아지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연인의 반응과 달리 문밖의 날씨는 건조하기 짝이 없다. 히스테릭하게 그들의 주위를 맴도는 비의 발원지는 과연 어디일까. 하늘 위의 구름 속 수분이 응축되고, 응결되다 참지 못해 터져 나오는 비는, 격한 감정을 견디지 못해 새어 나오는 인물의 감정선을 유유히 따라간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가득 머금은 수분을 토해내어 축축이 적셔진 옷 끝자락, 그 어디쯤은 곪아버린 상처 부근에서 묻어나온 진물이 아닐까 싶다. 영화 〈미지수〉는 크게 두 개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오랜 연인이었던 지수와 우주의 이야기, 그리고 치킨 장사를 함께하는 부부 기완과 인선의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각자 독자성을 지니고 있으나 영화는 마냥 친절하게 이들의 이야기를 명확히 구분하여 전개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짧고 산발적인 시퀀스로 연인과 부부를 반복적으로 오간다.
영화의 시작 미술학원에서 일하는 지수는 집에서 자신의 영역 내로 침범한 익숙한 타인의 흔적을 발견한다. 갑작스러움도 잠시, 그 범인이 자신의 전 연인이었으며, 돌아온 남자는 자신의 우발적 살인을 고백해 버리기까지 한다. 지수의 집 화장실 한구석에 우주가 만들어 놓은 살인의 광경이 펼쳐진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그들은 친한 이의 죽음에 슬퍼하려는 듯 애도의 자세를 취하려다 가도 전 연인인 서로의 이야기에 저며 들고, 고인이 되어버린 남자를 처리할 방도를 논의하는 등 살인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초연한 태도를 일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외성과 의뭉스러움은 그 뒤로 이어지는 우주의 두 번째 살인(엄마)과, 갑자기 살아난 영배(안성민)와의 몸싸움에서도 연속된다. 연인은 감정이 결여된 듯한 태도를 일삼고, 살인이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헤어진 전 연인이라는 서로의 관계성에 빠져 멜랑꼴리함을 선보이기도 한다. 상황은 심화되고 지수의 집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360도로 회전하는 카메라로 빼곡하게 담아내는데, 인물들의 감정은 그사이에 섞이지 못한 채 둥둥 부유한다.
다음 이야기는 치킨집을 함께 운영하는 부부 기완(박창완)과 인선(양조아)의 이야기다. 부부에게는 묘한 긴장감이 계속해서 따라붙는데, 부부 사이의 관계 내에서, 가끔은 세상과의 교류 속에서 이들의 불안은 상시로 등장한다. 기완은 통화를 하며 치킨 배달을 나가려는 남자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아내는 그 상황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듯 남자를 진정시키다 그만하라는 듯 남편에게 울분을 토해낸다. 이어 남자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우주선 발사’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우주’에 대한 집착을 일삼는다. 불쾌함과 분노, 불안함 따위의 감정이 몇 차례 비춰지며 부부의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그들의 감정을 이끈 대목이 무엇인지는 알려주기 싫다는 듯 철저하게도 원인과 서사는 숨겨진다. 부부의 감정은 서사는 배제된 채, 돌출되어 표현된다.
영화는 두 관계성을 비추며 완성되는데, 상이한 이야기인 줄 알았던 개별적 관계들이 ‘우주’를 통해 이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자신의 주변인들을 죽인 살인자로서 극의 등장한 우주가 되려, 그들의 곁에서 사라진 고인이었다는 사실이 스산히 밝혀진다. 지수와 오랜 시간 연인으로 보냈던 우주는 부부가 운영하던 치킨집에서 배달 기사로 일을 한다. 중요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집중하지 못하는 우주의 태도에 지수는 되레 화를 낸다. 지수의 눈치를 보던 우주는 비가 오던 날, 남자 사장의 사정에 못 이겨 치킨 배달을 나가고, 빗길 사고로 인해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지수와 우주 사이의 온전하지 못하던 감정과 직원을 잃은 부부 사이의 죄책감에 뒤덮여 드러나지 않았던 상세한 이야기가 혼합되어 서사적 맥락을 갖추자, 영화는 우주(인물)가 만든 우주(세계) 속에 관객을 가둬 버린다. 우주를 중심으로 이어진 관계 속에서 슬픔을 유영하던 인물들은 삶의 궤도 속에서 길을 잃은 채 구의 형태를 맴돌고 있다.
영화는 떠나간 이를 보낸 상실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려는 듯, 각 관계들의 입장을 상이하게 표현한다. 부부는 우주를 떠나보낸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듯, 연연한 그들의 맺힌 감정을 모든 상황에 대입해 상상한다. 그들에게 비가 내리는 날은 곧 우주가 그들을 부르는 날로, 슬픔과 미안함의 감정은 심화된다. 지수는 우주가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듯, 다시 등장한 우주를 고인이 아닌, 떠나보낸 연인으로 대우한다. 과거를 되새김질하고, 동시에 속상했던 일상을 꺼낸다. 눈앞에 사람이 죽었어도, 그들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듯 지수는 우주의 살인을 감싸주기 위해 노력하고 우주 부모님이 죽은 채로 욕조에 담겨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가 해준 음식을 그리워하는 수상한 태도를 보이며, 떠나간 인연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한다. 마지막으로 우주가 욕조에 담가 놓은 두 인물인 엄마와 영배는 우주를 향한 슬픔을 온몸으로 방증해 낸 사례로 볼 수 있다. 떠나간 이와,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들의 모습을 동시에 비춰낸 영화는 떠나보낸 이를 어떻게 기억해야하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남긴다. 각 관계와 인물이 표상해낸 슬픔은 그들의 현재에 들러붙고, 무언의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발화의 중심이 되고, 감정과 서사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하다 단숨에 섞여 일상의 수면 위로 돌출되어 버린다.
“떠나보낸 이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가?”
현재를 살아야 하는 존재들에게 과거의 기억은 가끔 발목을 잡기도 하며, 시공간의 질서를 무너뜨려 현재의 감각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과거는 연속된 체험 마냥 우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데, 그를 무시하기도 어려운 건 무언의 죄책감과 기억을 안고 사는 인간의 지적 능력에 의한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우주의 엄마는 아들의 연인과 만나 다정한 식사를 함께 나누다가도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우성에 장총을 꺼내, 덮쳐오는 두려움을 막아내려 애쓴다. 혼자가 된 지수는 타인의 호감을 얻기도 하며, 관심의 대상에 올라서는데 마냥 그 관심을 거둘 수 없다는 듯 호의를 거절하고, 캔버스엔 우주를 그리는 붓질을 지분거리며, 잊지 못한 그녀의 마음을 표출해 낸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찾아오는 기억과 슬픔을 마냥 거절할 수 없는 이들은 가끔은 비를 맞듯 그 기억 속에 온전히 적셔 들고, 때로는 총을 들어 고통의 기억과 투쟁하기도 한다.
선형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현재의 속성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슬픔에 대응하고 있다.
상실의 기억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살아가는 존재들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명쾌한 해결책은 없다는 듯, 영화는 미지수의 세계를 관조하는 답을 남긴다. 삶의 궤도 속으로 복귀하려다가도 갑작스레 돌출되는 서사와 감정은 어림없다는 듯 그들을 궤도 밖으로 목덜미를 잡아끌어 내려 버린다. 그러나 그 슬픔의 궤도 속을 온전히 더 유영해야 한다는 듯, 영화는 한껏 비를 더 쏟아 내려 버린다. 온몸을 적시는 비가 날씨인지, 과거의 울분일지 모르겠으나 비가 내리고 그치는 것을 반복해 쏟아지는 비를 맞아 온몸이 마르다가도 축축해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삶이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생경한 것을 계속해서 맞닥트리고, 연습하는 것이 아닐까. 〈미지수〉는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