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돌들이 말할 때까지〉: 마침내 발화되는 이야기

indiespace_가람 2024. 4. 25. 14:31

〈돌들이 말할 때까지〉리뷰: 마침내 발화되는 이야기

*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1948년부터 1954년까지 발생한 제주 4.3 사건의 생존 수형인들 중, 당시 스무 살 내외였던 여성 생존자 5명의 증언을 6년 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그들의 기억을 더듬어 76년의 세월과 그 시간 속에 숨겨져 있던 역사를 보여준다. 단지 끔찍했던 그날을 서술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이들이 평범했던 일상을 뺏긴 채, 형무소로 보내지고 현재에 이르러 재심을 통해 비로소 무죄를 인정받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따라간다. 여전히 과거의 어떤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던 제주의 아픈 역사가 피부로 바로 와닿는 듯하다.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스틸컷

 

 

거친 파도 소리 위에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제주 방언으로 진행되는 면접 조사에서 목격자이자 동시에 당사자인 그들은 오랜 시간 묻어뒀던 그날의 기억을 한 움큼씩 입 밖으로 꺼낸다. 70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잔인할 만큼 생생하고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영화는 국가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학살의 흔적을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서 차분하게 따라간다. 내 부모, 형제, 자식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눈. 총소리와 비명을 기억하는 귀. 눈과 귀로 똑똑히 보고 들은 것들을 전달하는 입. 이를 묵묵히 지켜보는 우리는 이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그 기억을 안고 살아왔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저 지나간 역사의 한 순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제주 4.3은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로 존재하고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존자들을 옥죈다.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스틸컷

 

 

영화는 할머니들의 증언과 제주의 자연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우리를 그 당시 제주로 데려다 놓는다. 카메라는 제주의 고요한 바다, 숲, 돌담, 오름, 설산을 가만히 비춘다. 가끔 증언과 동일한 장소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은 오랜 시간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며 당시 제주의 잔혹했던 시간을 증명하는 침묵의 목격자가 된다. 동시에, 그 광경을 함께 마주하는 우리도 그날의 또 다른 목격자로서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제주도민의 모습처럼 각양각색의 돌들이 있다. 우리는 돌들에서 그들 각자의 모습을 겹쳐 본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무 말 없는 제주의 자연이 이전처럼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고요함 속에 묻힌 아픔과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건 그 자체로 폭력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입을 여는 이유는 다음 세대가, 우리가 이 일을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 그 하나다. 기록은 역사를 담아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전한다. 예술의 방법으로,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로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숭고한 일인지 이 영화는 말해준다.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스틸컷

 

 

돌의 섬 제주의 모든 돌이 일제히 말한다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그 소란스러움이 우리에게 닿을 수 있을 만큼, 우리 귀에 들릴 수 있을 만큼 제주 4.3은 계속 이야기 되어져야 한다. 더 많은 돌이 말할 때까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돌들과 마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