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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얼굴들〉 인디토크 기록: '언젠가 우리 기억 속에서 되살아날 이 시간, 이 떨림'

indiespace_가람 2024. 3. 18. 15:18

'언젠가 우리 기억 속에서 되살아날 이 시간, 이 떨림'

 지도제작자의 영화: 이강현 감독 1주기 추모상영회 

〈얼굴들〉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3월 5일 (화)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김새벽, 박종환 배우

진행 신이수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다연 님의 기록입니다.

 

 

오래된 것 같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기억을 꺼내보았다. 작은 기억 조각들과 이야기를 엮어 한 명 분의 사람을 구성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영화처럼 짧은 순간들을 들여다보고 되새겨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순간들은 한 사람을 그리는 이야기가 된다. 순간을 모으고자 하는 염원을 가진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각자의 순간을 나누어 보았다.

 

 

 

 

 

신이수 감독(이하 신이수):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신이수라고 합니다. 이강현 감독님 1주기 추모 상영회에 참석해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오늘은 〈얼굴들〉의 두 주연 배우 김새벽, 박종환 배우 모시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김새벽 배우(이하 김새벽): 안녕하세요, 김새벽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박종환 배우(이하 박종환): 안녕하세요. 박종환입니다. 반갑습니다.

 

신이수: 〈얼굴들〉 속 장면의 의미를 따져서 논해보려고 하면 1시간이 아니라 밤을 새울수도 있을만큼 두꺼운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평 영역에서 워낙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영화이기도 하고, 감독님께서 달변가이기도 하셔서 궁금하신 질문은 인터넷을 찾아보시면 답을 얻으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리도 자리이거니와 배우님들을 어렵게 모시기도 해서 두 분께서 작업과 인연을 맺은 시작부터 시간을 되짚어보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졌더라도, 사소한 이야기라도 기꺼이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어떻게 해서 이 작품과 인연이 닿게 되었는지 여쭙고 싶어요.

 

박종환: 저는 이전에 작업을 함께 했던 윤성호 감독님을 통해서 연락을 받았어요. 이강현 감독님이라는 분께서 시나리오를 보내고 싶다고 하시는데, 그 전에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작업하셨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종환 씨한테 시나리오를 전달하고 싶어 하셔서 연락처를 드려도 되겠냐고 해서 좋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메일로 시나리오와 함께 〈보라〉를 보내주셨어요.

 

김새벽: 저도 전에 같이 작업했던 감독님 통해서 연락을 받았어요. 총 두 분한테 연락을 받았는데, 그 중 한 분이 알긴 아는데 그렇게 친한 건 아니니까 편하게 이야기해도 된다고 하셨고요 (웃음), 한 분은 직접 제본 된 시나리오를 가져다 주셨어요. 익선동 카페에서 받았는데, 시나리오 두께가 엄청 두꺼운 거예요. 그런 시나리오는 처음 봐서 도대체 뭐가 쓰였을까, 궁금해하면서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강현 감독님과 처음 만난 장소는, 방금도 오면서 자리를 지나쳤는데, 예전에 있던 카페예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는데, 오랫동안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어요. 지인 분께 이미 시나리오를 받은 상태에서 감독님을 뵈었어서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몸이 아픈 데가 많아서 바른 자세로 오래 앉아 계신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신이수: 충분히 그려지는 그림이네요. 박종환 배우님께서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박종환: 시나리오가 이전까지 받았던 작품들과는 사뭇 달라서 당황했어요. 시나리오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도 담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 때는 낯선 것을 불편해하는 게 컸던 시기였는데, 왜 좋게 느껴질까 생각을 해봤거든요. 제가 연기한 기선에게 느껴지는 마음이 저에게는 없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있고, 큰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점이 좋아서 낯설지만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기선과 다르게 이런 마음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좋게 느끼는 것을 안 좋게 느껴지게 할까봐 겁이 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괜찮다고, 술이나 마시자고 하셨어요. 술을 마시면서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고요. 제가 취미 생활이 따로 있지는 않은데, 잠깐 낚시를 했었거든요.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을 보셨는지 낚시에 대해서도 물어보시고, 낚시 갈 때 혼자 가는 게 심심하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하셨었어요. 자리를 파하면서 촬영 예정일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생각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만 더 고민을 해보고 연락을 드리겠다, 말씀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신이수: 새벽 배우님께서는 길게 나누었던 대화 중에 기억이 나시는 대화가 있으신가요?

 

김새벽: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요. 꼭 이 주제를 이야기 해야겠다 해서 하는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대화를 계속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제일 길게 얘기를 나눴던 건 처음 만났을 때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혜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감독님께서 혜진은 버티는 사람인데 새벽 씨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시고 새벽 씨는 버틸 때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셨어요. 플랭크를 한다고 대답을 하니까 좋은 것 같다고, 혜진이 가게에서 플랭크를 하는 장면을 넣어보자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어떤 영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통틀어서 이야기를 하셨어요. 감독님이 여러 주제에 대해 방대하게 말씀을 잘 하시는 분이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는데도 집에 가는 길이 별로 힘들지 않더라고요. 저는 만나고 헤어졌을 때의 기분이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그 다음에 길게 했던 이야기는 전화였어요. 사실 감독님과 목소리로 마지막 대화를 했던 게 그 통화인데, 준비하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지도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셨고, 마지막에는 근황을 물어보셔서 잠깐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종환 님께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새벽 씨 힘든 일 있으면 저한테 꼭 이야기 하세요, 제가 뭐든지 도와드릴게요, 라고 하셨어요. 그게 제 기억에 마지막으로 나눈 이야기였어요.

 

 

 

 

신이수: 본격적으로 혜진과 기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각자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지점이 무엇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종환: 저와 기선이 가지고 있는 차이가 크게 느껴졌어요. 차이를 좁힐 수 있을지, 아니면 좁히지 않더라도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잠깐 다시 돌아가면, 일주일 동안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다음 날 아침부터 고민을 하는데 너무 답답해서 집 뒤에 있는 산을 계속 걸었어요. 아무리 걸어도 생각이 바뀌지 않아서 아무래도 못 하겠다고 바로 말씀 드리는 게 좋을지, 어쨌든 일주일이라 했으니 다 고민해보는 게 좋을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 그냥 내려와서 동네 벤치에 앉아서 알고 지내는 배우에게 전화를 했어요. 아마 연락처를 받고 처음 전화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 분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받자마자 ‘형, 뭐해요’ 하시더라고요. 분명 제가 걸었는데 그 분이 그렇게 질문을 하시니까, 제가 걸었는지 받았는지 긴가민가 했어요.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내일 뭐 하냐고, 갑자기 집에 와서 밥을 한 끼 하겠냐고 묻더라고요. 만나서 맥주를 마시는데 갑자기 〈얼굴들〉 시나리오 받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저는 말한 적도 없고, 그 생각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만난 건데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니까 당황스럽더라고요. 그 배우가 무엇에 대해서 단호하게 이야기하거나 입장을 명확히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 영화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쩌면 나와 기선이 많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께 할 수 있겠다고 전화를 걸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받으시자마자 혹시 급한 일이에요, 아니면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 흥분이 가라앉고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습니다.

촬영 하면서는 심적으로 어려웠던 것은 없었던 것 같아요. 새벽 배우님과 실제로 만나서 촬영을 한 적은 몇 번 없어서 중간에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어요.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신이 다 잡히는 앵글이 많아요. 더군다나 길게 촬영된 장면이 많다 보니까 카메라 안에서 걷고, 움직여야 하는데 손발이 노출되는 것이 어색한 거예요. 내가 도대체 어떻게 생활을 했나 되짚어보면서도 손발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너무 난감했었어요.

 

김새벽: 저 같은 경우에는 이전 영화 촬영이 끝나고 며칠 뒤에 바로 시작해서 감독님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어요. 촬영 초반이 대부분 제 분량이었는데, 감독님 디렉션이 상당히 생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예를 들면 계단 세 개를 올라가고 반보를 발을 걸친 다음에 뒤를 봐주세요, 하는 식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연기를 하면서 제가 숫자만 세고 있는거예요. 하나, 둘, 셋, 걸치고, 뒤 보고, 하면서요. 갈수록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거울을 보는 장면이 있는데 감독님께서 새벽 씨, 보통 영화에서 거울 속 자신을 보면 모든 감정을 담아서 쳐다보잖아요. 그런 거 하나도 없이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 그냥 봐주세요, 하시는거예요. 이런 건 괜찮은데 계단부터 너무 혼란스러워서 갑자기 걸을 줄을 모르게 되는 거예요. 그 날 하루 동안 많은 장면을 찍었는데 몸이 컨트롤 되지 않으니까 너무 답답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도 너무 하고 싶은데 제가 아무리 계단에 올라가서 뒤를 보려고 해도 그게 안 돼요, 하고 막 울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게 창피하잖아요. 그러니까 3회차쯤 감독님께서 다큐멘터리를 하던 사람이라 연기 디렉팅이 처음이라고, 방법이 이상하면 말을 해달라고 하셨어요. 이상한 건 아닌데 제가 잘 못 하는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니까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너무 죄송하게도 다음부터는 그런 디렉션을 주지 않으셨어요.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는데, 생각을 할수록 저도 이야기를 잘 했더라면 좋았을걸 아쉬운 기억이에요. 초반의 미팅을 생각해보면 감독님이 생각해두신 그림이 많았어요. 원하는 장면이 명확하게 그림처럼 있는 느낌이라 제가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나리오에 지문이 굉장히 많아서 두꺼웠거든요. 대사보다 지문이 많아서 이미지가 명확하게 있었고, 소설책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반성하는 것 중 하나가 제가 시나리오를 읽었던 톤이 사실 맞지 않았다는거예요. 그것까지 좀 더 빠르게 알았더라면 몸이 말을 들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이수: 계단 디렉션과 비슷한 예시로 백수장 배우님께 드렸던 디렉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요, 꽃 도매 시장에 진입할 때 주셨던 디렉션이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이 걸어 들어오면 돼요’였다고 하더라고요.

 

김새벽: 제가 계단 방법이 어렵다고 말씀 드려서 그런 방식을 택하신걸까요?

 

신이수: 중간이 없네요. (웃음) 아까 새벽 배우님께서 플랭크 습관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런 식으로 촬영 들어가기 전에 배우님들이 내셨던 아이디어 중에 실제로 반영이 되어 추가된 디테일이 있을까요?

 

박종환: 감독님께서 처음 주신 시나리오에서 기선은 담임 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담임 선생님을 연기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그 전까지 명확한 직업이 있는 역할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직업만 보여주다가 영화가 끝나버릴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어요. 그 때문에 제가 편하게 연기하고 싶어서 감독님께 혹시 담임이 아닌 교직원 정도로 할 수 있냐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나중에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행정실 직원으로 바꿔주신 덕에 마음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김새벽: 저는 그때 그때 생각나는 게 있으면 이야기 했던 것 같아요. 플랭크처럼,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슷한 상황에서 제가 할 법한 행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묻기도 하고. 강을 따라 걷는 장면이 있었는데, 밤에 춤을 추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혜진은 계속 누르고 참는 사람이라 연기를 하는 저도 그런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답답했나봐요. 그래서 감독님께 저도 춤추면 안 되냐고 여쭤봤어요. 괜찮을 것 같다고 해주셔서 춤을 췄는데, 제가 그 때 진짜 신나게 춤을 췄거든요. 결국 나중에 그 장면을 다시 찍게 되었는데, 답답한 감정이 해소되고 찍으니까 그 때의 느낌이 안 살아서 다들 아쉬워 하시더라고요. 감독님께서 늘 하나도 허투루 듣는 분이 아니시라서 다 들어주시고, 생각해보고 피드백을 주셨던 것 같아요.

 

신이수: 춤을 추겠다라는 제안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그 장면이 없었으면 제가 받아들이는 혜진의 결이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기선의 직업이 바뀌는 국면에 대한 기억도 저도 얼핏 나는데요, 시나리오를 쓸 때 제가 일종의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이 고민을 감독님께서 들려주셨고, 제가 학교 청원 경찰이 어떻냐고 제안을 했었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이 바로 거절 당했어요. 이강현 감독님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그렇게 몰랐었다 싶네요. (웃음)

촬영에 앞서 감독님께서 참조 삼아서 미리 보면 좋겠다고 추천해주셨던 영화가 있으셨는지, 그게 아니라면 감독님과 함께 영화를 보신 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박종환: 저에게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추천해 주셨어요. 그래서 촬영 전에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새벽: 보내주셨을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영화 〈얼굴들〉 스틸컷

 

 

관객: 기선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주셨는데, 영화를 보면서 기선이 친절을 베푸는 방식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 받고 싶어 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에 따라 기선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신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혜진의 경우 오프닝에서 기선과 달리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둘이 3년간 만난 연인으로 등장하잖아요. 성격적으로 다른 부분에 대해 두 분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고 둘의 만남과 이별에 대해 의논하셨던 적이 있으실지 궁금합니다.

 

박종환: 기선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도 충분히 맞지만, 기선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어떤 무력감이 있는데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는 의지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집착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시선이 있었던 것 같고요. 예를 들어 기선이 학교를 그만 두고 사보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 때 기선이 쓴 글 속에 담긴 의지가 이 사람을 좋게 보게 되는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새벽: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치면 그 상태에 머물려는 사람도 있고, 뭐라도 해서 스스로 정신 없게 만드는 사람도 있잖아요. 혜진은 전자를 겪고 후자로 넘어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오히려 버티는 느낌인 상태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도 그 시기에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짐작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영화 안에서 그런 마음가짐으로 움직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신이수: 한 번에 몰아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두 분 각자 첫 번째 촬영이 무슨 장면이었는지, 그리고 워낙 작업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시니까 다른 영화 현장과 차이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박종환: 첫 촬영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모든 작업들이 고유의 성격이 있어 다르지만, 〈얼굴들〉 촬영을 할 때에는 감독님께서 아침마다 컨디션을 물어봐주셨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매일, 매번 물어보셔서 색다르게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번 개인 컨디션을 챙겨주시는 것이 배우라는 직업으로 저를 봐주시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애정으로 인사를 건네주신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매번 컨디션을 챙겨주시지 의아했었는데, 촬영을 마치고 영화를 보면서 제 컨디션도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새벽: 저는 촬영을 하면서 안 가본 곳을 많이 가봤던 것 같아요. 로케이션이 전반적으로 생소했거든요. 이미 대본 지문에 적혀 있던 로케이션도 많았는데, 그럼 감독님이 미리 다 가보셨던 곳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감독님의 관심사가 보였던 것 같아서 재미 있었어요. 그런 공간들을 영화를 촬영하면서 따라가는 게 결국 영화랑도 상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신이수: 저도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소위 한양이라고 하는 구도심을 이렇게 잘 찍은 영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혜진과 주연이 하루 동안 서울을 여행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소는 촬영 전부터 알고 계셨던 곳인가요?

 

김새벽: 촬영하면서 처음 갔었어요. 그 장소도 생뚱 맞게 거기에 있어서 특이한 느낌이 있어요.

 

신이수: 촬영이 끝나고 인상 깊었던 장소에 다시 방문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새벽: 방금 이야기한 곳이 저희 집 근처거든요. 그래서 경복궁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자전거 길에 고도가 나오진 않잖아요. 그래서 믿고 그냥 가는데,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언덕이 나오는거예요. 그 길을 따라 쭉 가니까 그 곳이 나오더라고요. 그게 얼마 전인데 그래서 여기에 데려왔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마웠어요.

 

박종환: 촬영 끝나고 화성행궁에 다시 다녀왔어요. 촬영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앞에 미술관이 생겼더라고요. 겸사겸사 그곳까지 구경하고 왔습니다.

 

신이수: 그러면 촬영을 하시면서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여러 번 촬영했던 장면이 있었을까요?

 

김새벽: 지금 딱 생각나는 장면은 화장실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장면인데, 느낌 때문에 여러 번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나와야 했거든요.

 

박종환: 여러 번 촬영을 했던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어떤 긴장감이 있었던 장면은 진수와 다시 만나서 시장을 걷다가 무덤까지 가는 장면이었어요. 감독님이 어릴 때부터 자주 다녔던 시장이었다고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고, 장소의 분위기가 명확하게 바뀌는 곳으로 이동을 해서인지 긴장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얼굴들〉 스틸컷

 

 

신이수: 촬영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연출자로 감독님의 특징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으실까요?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거나 하는 부분들이 있다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김새벽: 외적인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은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는 항상 백팩을 메고 셔츠를 자주 입으셨어요. 그리고 되게 빨리 걸으시거든요. 그래서 항상 셔츠를 휘날리시면서 백팩을 멘 상태로 여기저기 계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박종환: 현장에서 감독님이 컷을 외치고 배우들과 대화를 하려고 이동하실 때, 컷과 동시에 이동을 하시느라 헤드셋을 까먹은 상태에서 이동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헤드셋이 머리에서 빠지거나, 선이 빠져서 그걸 끌고 가시는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컷을 외치고 나면 빨리 말을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항상 식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잘 먹고 힘내서 촬영을 하려고 하는 의지가 식사하실 때 많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덕분에 저도 입맛이 많이 도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신이수: 혹시 재촬영을 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을까요?

 

박종환: 네, 혜진과 기선이 병원에서 만나는 장면을 재촬영 했어야 했어요. 처음 촬영했을 때는 날이 따뜻해서 외투를 입지 않아도 무리가 없었는데, 그 사이에 날이 급격하게 추워졌더라고요. 그렇지만 저희는 외투를 입을 수 없었는데, 처음 촬영 때와는 다르게 행인 분들은 외투를 입고 계시는거예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께 추위를 견디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지나가는 행인 분들과 비교해서 제가 영화에 어떻게 보일까요, 하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기선은 아마 열이 많은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요, 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좋다고 촬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이수: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정말 백미라고 생각하는데, 혜진과 기선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느껴졌어요.

 

관객: 영화가 전반적으로 명확하게 기승전결이 있지 않다보니까, 특정 감정이 명확한 상태로 연기하시는 것이 아닌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셔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 같아요. 연기를 하시면서 어떤 마음 혹은 생각으로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박종환: 아까도 잠깐 언급을 했었는데, 상체나 얼굴 위주의 촬영이었다면 표정이나 눈을 통해서 감정의 변화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선의 감정을 어떻게 하면 잘 드러낼 수 있을지, 들킬 수 있을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초반에 학교에서 진수를 만나기 전에 약간 무력하게 있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책상에 엎드려 있는 방식을 선택했었어요. 그런 식으로 몸을 더 움직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새벽: 저도 상황 속에서 작은 폭이라도 기분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계속해서 실내와 야외를 오가니까 공간이 바뀌는 것이 혜진에게 어떤 의미인지, 혼자서 무언가를 쓰는 게 혜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했어요. 일기의 경우에는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하다가 드디어 자신만을 위해 작은 일을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이미 행동과 공간이 주어져 있어서 엄청나게 무엇을 하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이 사람이 어떤 상태와 흐름에 있는지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영화 〈얼굴들〉 스틸컷

 

 

관객: 대본에 대해 말씀하실 때 감독님께서 원하는 그림이 확실하게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실제로 감독님께서 이 장면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명확하게 디렉션을 주신 장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새벽: 다 달랐던 것 같아요. 말씀 없이 진행할 때도 있고, 행동으로 이야기 해주실 때도 있었고요. 어떤 때는 이 사람이 지금 이걸 왜 하는지, 어떤 생각인지를 설명해주실 때도 있었어요.

 

박종환: 저에게는 기선이라는 인물은 일종의 시스템 안에 있는 인물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러한 시스템 안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감독님께서 궁금해하셨다고 느꼈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작업할 때 시스템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안에서 제가 가진 자유 의지를 보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관객: 감독님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감독님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새벽: 감독님이 자리에 없으시기 때문에 작업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마지막에 호프집을 찾는 게 제일 좋았어요. 사실 저한테 이 영화는 많이 차가웠거든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제가 생각했던 온도와 만들어진 영화의 온도가 많이 달랐어요. 그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생각과 다르다, 여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틀거려도 결국 호프집을 찾는 마음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신이수: 온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고 싶어요. 대본도 엄청 두꺼웠고 하셨고, 촬영 중에도 기대하신 온도가 있으신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새벽: 저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어요. 각각의 스토리가 하나의 영화가 되는 구성 때문에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시나리오 자체에 섬세하게 적혀져 있는 질문도 많아서 따뜻하게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제가 멋대로 생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에 작업할 때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정말 다른 온도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신이수: 새벽 배우님은 영화를 관람한 관객으로 생각했던 온도가 아니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종환 배우님께서는 영화를 보신 뒤의 인상이 어떠셨나요?

 

박종환: 같이 작업을 했던 동료이자 배우로서 감독님이 애정하고 고민하는 것이 영화 전체에 섬세하게 담겨 있어서, 감독님이 애정하는 흥미로운 것들이 펼쳐져 있는 느낌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영화에 나온 것은 감독님의 취향 중 일부잖아요. 그래서 촬영 전보다 후에 감독님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신이수: 주변 분들께서도 영화를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지인 분들은 아무래도 일반 관객보다는 특별한 관계잖아요. 그런 분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배역이나 영화에 대해 남겨주신 코멘트 중에 기억에 남으시는 게 있으신가요?

 

김새벽: 사실 오늘 친구를 축하하고 응원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인디토크에 참석하느라 불참하게 되었어요. 아주 최근 일이라 기억이 잘 나는데, 불참 문자를 보내니까 그 친구가 ‘새벽, 난 〈얼굴들〉 너무 좋아’라고 보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 말이 생각납니다.

 

박종환: 처음 영화를 본 게 부산국제영화제였는데, 그 때 당시 제가 참여한 〈밤치기〉라는 영화도 상영을 했어요. 시간이 좀 지나고 어느 날 오전 쯤에 〈밤치기〉를 같이 했던 정가영 감독님께 연락이 와서 어떻게 이렇게 좋은 영화를 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다시 보니까 더 좋다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걸 듣는 내내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있어요. 또 진수 역의 윤종석 배우도 같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이런 작품을 자주 할 수 없고, 어쩌면 다시 못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어쩌면 그럴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기뻐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영화 〈얼굴들〉 스틸컷

 

 

관객: 작품을 촬영하고 6~7년 정도가 지났는데, 그 동안 배우 분들의 생각도 많이 변했을 것 같습니다. 연기하셨던 배역의 감정이나 생각이 아직까지 남아 있거나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을까요?

 

김새벽: 농담이 아니라 플랭크 할 때마다 가끔 생각해요. 혜진이 어떤 마음으로 그 때 플랭크를 했을지, 내가 그 때 생각한 게 맞나 아니면 지금 내가 느끼는 게 맞나, 비교해보는 것 같아요. 비슷한 상황을 만나도 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잖아요. 그걸 받아들이는 관점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니까 아마 혜진이 이랬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 때 당시 제가 생각한 혜진이 결국 영화에 남는 거니까 그 때의 나와 혜진은 그랬나보다 생각을 하면서도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이 때까지 영화를 찍은 모든 순간들에 대해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긴 합니다.

 

박종환: 저는 〈얼굴들〉과 이강현 감독님이 잘 분리되지 않는 것 같아요. 당연히 영화가 감독님의 일부이겠지만, 분리되지 않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촬영 전보다 후에 감독님이 더 궁금해진 것과 같이 영화도 계속 궁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굴들〉 개봉 전에 영화에 대한 글을 봤는데, ‘하나의 절망과 하나의 희망과’라는 글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이런 것을 의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마음에 품고 지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신이수: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감독님께 묻고 싶었지만 끝내 묻지 못했던 질문이 있는지, 없다면 혹시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새벽: 질문을 하면 누가 대답을 해주나요? (웃음)

 

신이수: 전달할 방법은 차차 생각을 해보는 걸로..

 

김새벽: 사실 제가 1년 전쯤에 작별을 여러 차례 했어야 했는데,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도 답을 들을 수는 없잖아요. 결국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질문하고 혼자 계속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자주 묻고 대답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제 삶에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순간이 종종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박종환: 감독님께 주로 질문을 받고 제가 답했던 기억이 많아요. 제 입장에서는 작업하면서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직접적이지 않게 질문을 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많은 것을 묻지 못했고, 그게 습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것과는 별개로 감독님께서 저한테 묻고 싶으신 게 있으셨다면 편하게 마음껏 물어보셨는지 궁금하고, 그러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이수: 마무리에 앞서서요, 오늘 인디토크를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고민을 해봤습니다. 아까 종환 배우님께서도 잠깐 언급하셨던 기선의 사보 글, 시라고 해도 좋을 글귀가 영화를 보는데 무겁게 귀에 걸리더라고요. 이미 기선의 목소리로는 한 번 들었기 때문에 혜진의 목소리로도 들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새벽: 사소한 움직임에도 요동치는 마음. 여운을 남기며 허공에서 멈춰버린 추억들. 언젠가 우리 기억 속에서 되살아날 이 시간, 이 떨림.

 

신이수: 긴 시간 고생해주신 배우 분들과 관객 분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여기서 인디토크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