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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벗어날 탈 脫〉인디토크 기록: 마침내 마주한 너와 나

indiespace_가람 2024. 3. 9. 12:45

마침내 마주한 너와 나

〈벗어날 탈 脫〉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2월 23일 (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서보형 감독, 박우재 거문고 연주자 겸 음악 감독, 임호준, 위지원 배우

진행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기록입니다.

 

 

내가 네가 되었다, 네가 내가 되었다는 번뜩이는 느낌 혹은 그런 가능성의 순간들. 스치듯이 본 사진의 피조물과 그의 세계가 마치 나의 것인 것처럼 느껴지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험들. 정해진 정답 따위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다는 듯 언어의 한계를 수려하게 넘나들며 호흡을 기꺼이 나눠주는 〈벗어날 탈 脫〉이 모두가 잊고 있던 서늘하고 날 선 감각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정한석 평론가(이후 정한석): 영화 흥미롭게 보셨습니까? GV 시작 전 박우재 연주자님께서 들려주신 거문고 연주 다들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영화 종료 후 박우재 연주자의 〈벗어날 탈 脫〉엔딩곡 등 거문고 연주가 진행되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거문고 연주를 이렇게 가까이서 듣고 보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인데 굉장히 울림이 컸습니다. 본격적으로 감독님과 배우분들, 그리고 거문고 연주자 이자 음악 감독님까지 모셔서 이야기들을 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꽤나 유쾌한 분들이셔서 영화 보시면서 떠올렸던 궁금한 점들을 많이 물어보시면 정답게 많이 답변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감독님부터 차례대로 인사부탁드립니다.

서보형 감독(이후 서보형): 관객분들이 많이 와주셨네요. 다들 너무 반갑고 오늘 개봉 이후 첫 GV인데 재밌는 얘기 많이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감독한 서보형 입니다.

위지원 배우(이후 위지원): 안녕하세요. 〈벗어날 탈 脫〉 에서 지우 역을 맡은 배우 위지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임호준 배우(이후 임호준): 〈벗어날 탈 脫〉 에서 영목 역할을 맡은 임호준 입니다.

박우재 거문고 연주자 겸 음악 감독(박우재): 영화에 나오는 모든 거문고 소리를 연출하고 녹음했고, 영화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박우재라고 합니다.

정한석: 1시간 정도의 대화 시간이 있는데요, 한 절반 가량 정도 제가 진행을 하고 궁금하신 것들이 원래 있으셨거나 말씀을 듣다 보면 또 생기실 텐데 그 부분들을 중반부부터 관객분들께서 자유롭게 질문해 주시거나 의견들을 또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감독님께서 음악 감독님하고 처음 작업하실 때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서보형: 연극 연출과 공연 연출을 겸하는 지인의 부탁으로 제가 거문고 공연을 촬영하고 뮤직비디오를 찍어준 적이 있어요. 그때 거문고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제가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언젠가 이 친구(박우재 님)와 꼭 한번 작업을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금 이 영화까지 탈 시리즈라고 불리는 장편 하나 단편 하나 같이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정한석: 힘들게 모셔 놓은 것 같은데 왜 퇴짜를 놓아가면서까지 그러니까 음악으로 무엇을 더 보여주시고 싶으셨고 어떤 것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으셨나요? 더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음악 감독님하고 어떤 얘기들을 좀 많이 나누셨었나요?

서보형: 사실 저희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만나서 하자.”고 한 후에 중간 지인의 집에 만나서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영화 음악의 방향성과 디렉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만나자고 한 자리였고 음악 얘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우재 감독님이 사실은 내가 만들어 왔다 그러는 거예요. 그 날 녹음해온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저는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영화에 말하지 못한 부분들을 음악을 통해 모두 다 얘기해 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고 너무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부산영화제에 이 영화가 소개되었을 때 음악 작업을 다시 했는데 그 때는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을 다 해오셨어요.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던 곡은 정말 정제되어 있고 소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았지만 제가 처음에 느꼈던 그 어떤 느낌적인 느낌 같은 거 있죠? 그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재 감독이랑 그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나는 이 영화는 거친 맛이 있고 날것의 느낌이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너가 처음에 녹음해왔던 그 연주가 퀄리티를 떠나서 내 마음을 울린다. 그래서 너무 미안하지만 원래 했던 홈 레코딩을 했던 각오로 했으면 좋겠다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컷

 

 

정한석: 음악 감독님께도 한 가지 여쭤보고 싶어요. 저 개인적인 감상입니다만 만만치 않은 영화입니다. 그런데도 솔직히 말씀드리면 영화의 어떤 주요한 리듬이나 맥을 이 음악이 짚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영화 속의 음악을 들었거든요. 음악 감독님께서는 이 작업을 하시면서 어떤 부분들을 좀 주안점을 두고 하셨는지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우재: 영화의 음악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어요. 이전에 짧은 작품들을 한다거나 아니면 더 어렸던 시절에 큰 영화 작업에서 연주자로 참여하면서 뒤에서 악보를 그리거나 정리하는 작은 작업들 한 경험만 있었지 큰 작업을 한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땐 영화와 음악이 만나는 작업들은 많이 있으니까 그래도 해보면 될 줄 알았는데 우선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게 어렵더라고요. 대본을 보고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보다도 저 사람, 인물의 속을 알아내는 것이 어렵단 말이죠. 대본의 텍스트로 되어 있는 내용들을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나중에는 읽어도 읽어도 잘 이해가 안 가서 '이 분(감독님)은 이해불능을 표현을 하면은 이해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겠는 어떤 소리들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제 감독님께서 홈레코딩의 살아있는 소리들이 좋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좋았다면 악기 소리에서 정제된 소리들 말고 다양하고 조금 독특한 소리들을 많이 담아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스코어링을 진행했어요. 장면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감독님과 함께 레코딩 룸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거문고 소리를 몇 시간짜리를 녹음 해서 필요한 부분들을 잘라냈고 이 소리들을 장면에 넣는 방식으로 사용을 했습니다. 의미를 담는 부분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처음 시작 할 때 불일불이( 不一不二) 자막이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어떤 소리들을 녹음으로 남겨놓으면 누군가는 영감을 얻고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다가가게 됐습니다.

서보형: 제가 조금 보태보자면 음악 컨셉트에 대해서 제가 처음에 어떤 식으로 얘기를 한건 일단 거문고 나무잖아요. 그리고 이 영화의 나무가 저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이제 영목이라는 이름도 그림자 영景 의 나무 목木 이거든요. 그래서 우재 감독한테 나는 거문고가 낼 수 있는,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채집하고 싶다. 그래서 소리를 어떤 작은 단위로 쓰고 마지막에 가서는 종합된 어떤 믿음을 가진 곡으로 완성되면 좋겠다. 그래서 사운드적으로 접근했다가 나중에 점점 뒤로 갈수록 음악적인 어떤 멜로디를 가지는 선율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정한석: 음악 감독님과의 일화를 전제로 가정해 보자면 배우들도 편히 놔두지 않았겠구나 직감이 들기는 하는데 일단 위지원 배우님부터 작업하시면서 생긴 일화라던가 감독님과의 논의사항 혹은 캐릭터에 대한 생각들처럼 생각나는 것들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위지원: 음악이 주는 힘이 있다고 느낀 게 영목과 지우가 뭔가 하나가 됐다라는 느낌을 이 음악이 완성시켜준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은 어떻게 음악 감독님을 모셨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작품에 참여했을 때에 떠오르는 건 감독님이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 주셔서 배우로서 의견을 내고 아이디어를 반영하기에 굉장히 좋은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힘들거나 어렵다거나 이런 부분은 사실 환경적으로는 없었고 개인적으로 이제 배우로서 이 역할을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연기도 역시 정답이 없다 보니 내가 과연 하고 있는 이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끝까지 영화가 개봉하고 상영하고 나서도 생각하게 돼요.  지우라는 인물은 대체 어떤 인물이지? 지우가 원했던 건 뭘까?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결과적으론 알 수 없는 부분들을 알아가고 싶게 만드는 게 감독님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한석: 보충적인 차원에서 한번 여쭤본다면 그렇다면 지우라는 인물이 어떠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혹시 연기에 임하셨을까요? 혹은 지후의 어떤 부분들을 우리가 조금 더 주목하면 좋을까요?

위지원: 일단은 지우라는 캐릭터에서 굉장히 공감이 됐던 부분은 끝에 대한 두려움 같아요.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고 끝을 마주하는 일이 항상 쉽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 지우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낸 게 너무나 기특해요. 저런 방법이 있구나 하면서 배우로서, 혹은 한 개인으로서 재밌는 발견이 되기도 했고, 지우라는 역할과 지우가 겪은 깨달음에 대해 관객분들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 자체가 깨달음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가고 있지만 사실 그런 깨달음, 지우가 원하는 그런 영감 같은 경우도 사실 일상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고 자연 속에서나 길을 걷거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관객분들께서 모두가 깨달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한석: 같은 질문을 임호준 배우님께도 드려볼까요?

임호준: 저는 일단 이 영목이란 캐릭터를 처음 만났을 때 일단 영목이라는 인물과 지우라는 인물의 차이점이 또 뭘까에 대한 생각을 했었는데 영목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의 목표가 관객들에게 스며들어가야 되는 지점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지우는 어쩌면 환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영화가 진행 될수록 지우라는 인물은 어떤 분야에서든 드러나야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조금 난감하게 느껴져서 한 편으론 신 하나하나 컷 하나하나를 감독님 의도들을 다 듣고 싶었어요. 궁금증을 느끼는 부분들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마다 감독님은 항상 정답은 없지만 나는 이런 느낌이었으면 한다라는 얘기를 범위 내에서 말씀해주셨고 수직과 상승 혹은 선, 점 이런 것들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배우의 입장에서는 다소 추상적인 디렉션이라서 난감했었는데 어쨌든 영목이라는 인물의 목표가 누군가에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혹은 그래야 된다라는 생각이 항상 들었어요. 제 개인적인 감상과 느낌을 감독님과 주고 받으면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편집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영목이 자신만의 관념 속에 빠져 있다가 헤어나오려고 하는 감정들이 잘 느껴진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감독님께도 감사했어요.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컷

 

 

정한석: 이건 관객으로서 제 경험인데 어떤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런데 혼자 할 때는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데 다른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할 때는 배우의 기량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상대역 배우가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혼자 연기하느냐 둘이 연기 하느냐에 따라서 그 각자마다의 장점이나 혹은 특색들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돌이켜보면 이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어떤 환영으로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만 실물로서 만나는 장면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혼자 연기하는 장면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는데 1인으로서 연기할 때 중심을 둬야 될 그런 부분들이 혹시 있습니까? 혹은 디렉팅적인 부분에서 감독은 뭐라고 연기 연출에 대한 얘기를 해줘야 되는 건가, 배우와 감독은 어떤 얘기들을 나누었을까 하는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궁금해지거든요. 그 부분들에 대해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요?

임호준: 촬영 중 에피소드가 한 가지 있었는데 영목이 누워서 오열을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지문 상에 흐느껴 운다 혹은 그냥 운다 라고 간결히 적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오열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고 흐느껴 우는 식으로 첫 테이크를 갔었는데 감독님이 오셔서 사람이 너무 슬퍼서 울다 보면 나의 울음소리에 슬퍼져서 감정이 더 크게 와닿지 않느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지점이 깊이 공감이 돼서 적절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처럼 감독님께서는 항상 모든 테이크마다 제가 외도했던, 혹은 그렇지 않았던 부분들, 혹은 본능적으로 나오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일단 지켜봐 주시고 영화의 전체적인 그림에 대해 조언을 해주셨던 부분들이 생각이 나요. 배우로서 혼자 연기할 때 큰 도움이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위지원: 저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지우가 작가로서 영감을 찾는 과정과 제가 배우로서 지우를 연기하는 과정이 똑같이 영감을 찾는 과정이라서 촬영 내내 지우의 행동이 저의 행동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지우는 호기심도 굉장히 많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호기심만으로 저 사람한테서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따라갔잖아요. 저 역시 연기를 하면서 정말 궁금한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지우면서 생겨난다는 나레이션이 중첩되며 지우개로 흑연을 지우는 장면도 현장서 지문을 재현하는 그 작업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새로운 발견이기도 했고 뱃속에서 그 인형을 꺼낼 때 정말 영감이 정말 고팠거든요. 그래서 혼자서 연기하지만 뭔가 지우랑 같이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이번 작업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각자 장면을 연기하다 마지막에 임호준 배우님이랑 만나게 되는데 그것도 참 감격스럽더라고요. 임호준 배우님은 겨울에 촬영하시고 저는 여름에 촬영하고 둘 다 개인의 고생을 다 마친 상태에서 눈을 딱 마주치면서 연기하는데 그 순간 촬영에 임하던 지난 날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던 것 같아요. 그 순간 외로움이 채워졌던 것 같습니다.

정한석: 혹시 각자의 촬영분을 보신 적은 있습니까?

위지원: 촬영하실 때 저는 모니터로 확인을 했어요.

임호준: 저 같은 경우에는 매 회차를 감독님 집에서 촬영을 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과 집에서 맥주 한잔 하면서 모니터를 그날 찍은 분량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서로 얘기 나누는 작업을 계속 했었던 것 같아요.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컷

 

 

정한석: 마지막 엔딩신에 관해 감독님 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네 분의 생각이 모두 궁금합니다. 음악 감독님까지 포함해서 이 마지막 신에 대한 각자의 말씀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

박우재: 저는 다른 분들보다 영화를 가장 늦게 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화를 보며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지우랑 같은 사람인 것인가, 해변의 사나이가 영목과 같은 사람인지 헷갈렸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같은 집 안에서 키스할 것처럼 다가간 후에 날숨을 내뿜는 듯한 소리를 내는 장면이 에로틱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혼을 교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세상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작용으로 두 개의 영혼이 합치게 되었구나 하는 식으로 그 순간을 바라봤었거든요. 아직도 누가 누구다, 혹은 누가 누구일 수 있다는 가망성은 있으나 누구일 수는 없다는 식으로 생각이 남게 되었어요. 곡도 이런 저의 개인적인 감상을 배경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임호준: 저는 마지막 장면의 물잔이 항상 생각나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장면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둘이 만나서 호흡하고 교감을 하는 듯한 느낌, 서로 다른 인물이 한 자리에 만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때 물잔이 가장 큰 작용을 한다고 생각했던 게 화면이 클로즈업 되면서 물이 살짝 찰랑거리는 느낌이 시나리오 상에서 이 영화의 어떤 하나의 어떤 대표적인 이미지라고도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촬영에 본격적으로 들어섰을 때 이런 의견을 감독님께도 전달했어요. 저는 시나리오 상에서 읽었을 때 그 물잔의 느낌은 물잔의 물이 지금처럼 좀 잔잔한 느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찰랑거리면서 이렇게 물방으로 튀는 느낌으로 상상을 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선 감독님과도 많은 질문을 드리고 의견을 나눴는데 수용되지는 않았어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지원: 사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원래 다르게 연출이 됐어요. 영화 중간에 무성 영화에서 지우가 엔딩을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그걸 의미하는 여러 가지 몽타주들이 보이는데 거기서 이제 남녀의 키스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 장면을 엔딩 장면에서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원래의 마지막 장면이었고요. 그런데 촬영 당일 생각을 해봤을 때 엔딩이 남녀의 키스신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게 되면 정말 끝이 나버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 부분은 지우도 원치 않고 영화의 방향성과도 조금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셨던 것처럼 저희 영화는 호흡 소리가 굉장히 잘 들리는데 그런 부분에서 날숨과 들숨 소리가 이 사운드를 잘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숨이 혼자서 들이쉬고 내쉬고 할 수도 있지만 영목과 지우의 그런 만난 듯하면서도 이제 떨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연결점들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장면을 제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보형: 엔딩에 대해서는 아마 너무 많은 해석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일단 영목의 관점에서는 결국 어떤 거부하는 것들을 마지막에 마주하게 되고 받아들이는 느낌이라면 지우의 입장에서 엔딩은 마치 그녀가 하는 미술 작업처럼 무언가를 살려내는 어떤 생성의 니즈, 저는 이제 물잔이 이렇게 찰랑거리는 게 그런 이미지로 보여줬으면 했거든요. 왜냐하면 그전에 물잔이 깨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통합되는 느낌을 영화 마지막에 주고 싶었고요. 또 한 가지는 이 영화는 어쨌든 두 가지 이야기고 저는 이 둘 중에 하나의 이야기가 없다면 이 영화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두 개의 이야기에서 두 인물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동시의 존재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한쪽이 다른 쪽의 과거인 것 같기도 하고 시간차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사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제 의도는 어쨌든 영목의 이야기로 시작된 이 전체 이야기가 마지막에 마지막에 지우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면 좋겠다. 그래서 이제 관객분들이 관점에 따라서 누구의 이야기로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구성을 하려고 노력을 했고 엔딩 장면이 구성이 됐어요.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개인적으로 카메라 워킹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맨 마지막에 그 무빙이 정확하게 180도가 돌아가요. 마치 한쪽 세계에서 다른 쪽 세계로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정한석: 영화 속에서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제가 아까 듣고 다소 놀랐던 부분은 처음에는 기획되어 있지 않았지만 나중에 만들어졌다고 얘기를 했잖아요. 나레이션이 영화 속에서 많은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언제쯤 어떤 이유로 해야 되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셨어요?

서보형: 저는 원래 미술을 전공을 했었고 미디어 아트를 했었거든요. 근데 미술과 영화의 큰 차이라고 한다면 미술은 프로세스 아트 같은 느낌이 있어서 끊임없이 새롭게 길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느낌이 있어요. 근데 저한테 영화는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편집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편집 과정에 많은 것들이 삭제되거나 덧붙여지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첨가되기도 하는데 나레이션도 사실은 처음에는 없었지만 이제 호준 배우님이 제안을 하셨어요. 너무 아무 말 없이 그냥 좌상하고 108배하고 누워 자고 물 먹고 이런 장면을 계속 관객들이 보고 있으면 이거 너무 지루하지 않겠냐 최소한의 삶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무리 표현을 하더라도 어려운 영화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조금 친절해져야겠다. 그리고 어쨌든 지우 부분에서는 나레이션이 많으니까 그것과 대응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이제 호준 배우의 얘기를 듣고 떠올라서 그래서 나레이션을 편집 할 때 썼죠.

임호준: 제가 좀 덧붙이자면 영화가 지루해서 제가 그런 제안을 드린 건 아니고 촬영 가편집본을 감독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여주셨거든요. 편집을 거치며 변화되는 중에도 이야기가 너무 어렵다라는 생각이 지울 수가 없어서 영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나레이션으로 뭔가 이 상황들을 좀 설명해 주는 느낌으로 해보면 어떻겠냐라고 말씀을 드렸던 거예요. 그런데 놀라웠던 점은 한 번 고민해 보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다음 날 나레이션의 모든 글들을 다 써주셨어요. 마치 미리 생각하셨던 것처럼 모든 것이 하루 만에 준비됐다는 사실에도 놀랐는데 내용들 모두 너무 감동적이라는 느낌도 받았어요.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컷

 

 

정한석: 지금까지는 제가 주로 질문들을 좀 많이 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궁금한 점들이 좀 생기셨을 것 같습니다. 손을 들어주시면 찾아가서 질문을 좀 받아보로독 하겠습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저는 감독님 영화를 이전부터 단편 작업부터 좋아해왔어서 처음 장편을 찍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관람하러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단편 같은 느낌을 주는 장편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영화에서 인물을 딱 2명만 사용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서보형: 이 영화는 ‘탈 시리즈’라고 제가 단편 영화로 이전에 찍은 영화가 있습니다. 〈탈날 탈 頉〉 이라는 영화였는데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규칙을 미리 정해놓고 포맷 안에서 만들어보자는 계획이었어요. 4대 3 비율을 사용할 것, 그리고 남녀 한 명씩만 등장시킬 것, 그리고 거문고 음악을 사용할 것. 또 한 가지, 한자에 대해 깊게 알지는 못하지만 각 획을 통해 의미하는 바와 만들어진 조합들에서 의미를 파생하는 방법들을 흥미롭게 생각해왔거든요. 그래서 한자 안에서 이야기를 찾아내서 한자의 획 하나하나가 어떤 이야기의 씨앗이 잠들어 있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접근을 하게 됐어요. 문자를 해석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저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부분이 있는데 무라는 문자의 어원에도 여러 가지가 존재해요. 마치 다비식을 하듯이 밑에 불이 있고 나무가 있고 사람이 타서 사라진다 같은 느낌으로 해석하는 문장 해석이 있고요 또 하나는 춤추는 무인처럼 해석하는 방법이 또 있습니다. 그래서 제 영화 속에는 두 가지가 다 나와요. 마지막에 그 수피댄스를 추는 것도 사실은 무의 형상을 이미지화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한석: 다음 질문 받아볼까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감독님과 음악 감독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저는 영목이 육과 색을 탐하는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그 이후에 영목의 대사에서도 깨지는 소리만 남고 나는 사라져 있다라는 것으로 영목의 깨달음을 따라가는 여정 같은 같으면서도 결국엔 나 없음을 표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감독님께서 108배를 하면서 얻은 어떤 깨달음과 그와 관련된 체험을 경험하신 걸 영화에 담으신 건지 아니면 불교 철학을 공부하시면서 이거를 이렇게 인지적으로 푸신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음악 감독님은 공연을 위주로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영화 작업해보시면서 어떠셨는지 공연에서 라이브성과 다르게 음악과 연주가 영화에서 이미지로 많이 입혀져 가는 과정이 어떠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서보형: 일단 제가 정말로 영목처럼 108배와 좌상을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꽤 오래 몇 년을 매일 한 건 아니지만 꽤 관심 있게 불교 철학에 심취해서 정말 깨달음이 뭔지 너무 얻고 싶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상당히 오묘한 체험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경계가 사라지고 이거밖에 없구나, 혹은 내가 찾던 게 이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있어요. 영화 속에서는 마지막에 깨지는 소리만 있고 듣고 있는 내가 없었다라고 표현이 됐는데 이게 참 영화적으로 풀기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걸 영화의 언어로 풀고 싶다는 게 되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박우재: 저는 거문고를 어려서부터 해와서 지금까지도 거문고 연주자로 살고 있어요. 뭔가 고도화된 연주를 잘 연마해서 정해진 시간 동안 연습을 해서 사람들한테 짜잔 보여주고 희열을 느끼는 즐거운 직업으로 삼고 살아 가고 있었는데 음악이 영화랑 만났을 때는 앞선 이야기 중에 나왔던 것처럼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게 참 어렵더군요. 작업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뭔가 방법을 찾지도 못했을 부분도 있고 이번 작업 스타일도 많은 작업을 경험한 음악 감독들이 하는 여러 가지 스타일 중에 어떤 한 부분에 조금도 못 쫓아갔을 것 같은데.. 어쨌든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본다는 건 참 어렵다는 것. 그러면서도 무언가 함께 이야기하면서 하나의 어떤 점을 통해 무언가 맞닿아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얘기하다 보면 쿵짝이 맞을 때가 한 번 있으면 거기서 무언의 힘을 얻어 강력해지는 순간들이 생기곤 하더라고요. 앞으로 또다시 영화 작업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또 어떤 방법으로 내가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상상조차 안돼요. 어쨌든 이번 기회에서는 참 즐겁고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속에 제가 빠지는 기분이 있어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독님께 다시 인사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컷

 

 

관객: 감독님께 질문이 있는데요. 일단 영화를 보면 독특하게 보는 것들이 발견했는데 헤드룸이 남게 이제 인물을 잡는다든가 아니면 이제 마지막 장면에서도 보이는 콜드 프레임처럼 화면을 멈췄다가 이제 진행한다는 장면, 아니면 중간중간에 뚝뚝 끊기는 스텝 프린팅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셨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의 전반적인 장면보다는 특정 장면들에 집중적으로 사용된 지점들이 보여서 각 장면들을 어떤 의도로 연출하셨을까 궁금했습니다.

서보형: 일단 4대3 프레임을 미리 정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정해진 화면 비율 안에서 영화를 어떤 식으로 이제 구성할 수 있을까를 정해둔 다음에 생각을 한 거죠. 이 영화는 수직의 움직임이 상당히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4 대 3 비율이 중요했고, 고전 영화는 대부분이 4대 3이 비율을 쓰고 있고 엔딩 크레딧이 끝나면서 ‘The End’ 자막이 딱 뜨고 영화도 끝나버리잖아요. 어쨌든 4대 3 비율을 채택을 했기 때문에 그 프레임 하나하나를 되게 회화적으로 잡아야 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인물을 잘라서 잡는 그런 것들이 좀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한석: 제가 보충 질문 하나 할게요. 지금 관객분께서 드리신 질문을 제가 조금 거칠게 요약하자면 어떤 공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앵글 그리고 속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텐데요. 시청각적으로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지금 좋은 질문을 주셨으니까 거기에 한번 덧붙여 보자면 색과 빛에 대한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데 이를테면 전반적으로는 푸른색이라고 할까요? 청록색이라고 할까요? 이런 부분들이 배경인데 음악 감독님의 표현을 들자면 꽃 같은 어느 한 점에 이런 부분들은 굉장히 강렬한 붉은 빛을 그 안에 띄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상반된 세계 구조나 그리고 빛에 대한 부분들이 이 영화를 매혹적으로 보게 만드는 좋은 지점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가 궁금합니다.

서보형: 답변하기에 앞서서 아까 제가 콜드 프레임에 대해서 대답을 못 드려서 그 얘기를 먼저 드리자면 이 영화는 정지와 움직임을 하나의 전체적인 키워드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정지는 카메라 정지가 될 수도 있고 그리고 좌선하는 자의 장치가 될 수도 있고 그 움직임은 1800 이런 느낌이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영화를 하나의 무빙 이미지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정지하는 프레임을 넣었을 때 저는 오히려 움직이던 이미지가 정지할 때 좀 더 움직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움직임에 대한 어떤 관객들이 이게 영화다라는 사실을 그 순간 다시 한 번 이렇게 인지하면서 움직임에 대한 사유를 할 거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이 움직임에 대한 것은 마지막에 플립북이 등장하는데 이 플립북이라는 장치는 애니메이션과 달리 제가 움직여야 이미지가 움직여지잖아요. 프레임도 영화 자체를 제가 편집하는 입장이었으니 플립북 같이 행위자의 움직임을 확장시키고 동시에 정지되는 화두를 확장시키고 싶었던 의도가 영화 바깥으로까지도 드러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세계관에서 붉은색은 정말 중요한 압착인데 붉은색의 계열이 있고 푸른색의 계열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물과 불이라고 거칠게 이렇게 구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건 영화의 어떤 쪽에 상반된 콘셉트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인물하고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요. 말하자면 영목이 좀 더 물적인 요소들이 많다면 지우는 불적인 요소들이 많죠. 그래서 이런 색의 대비를 처음부터 많이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영화를 찍을 때 사용했던 카메라가 볼렉스라고 해서 우리나라는 몇 대 없는데 그 카메라가 옛날 필름 카메라의 질감을 많이 내거든요. 그리고 빛에 상당히 민감해요. 그래서 저렇게 강렬한 색채가 나오게 찍기가 사실은 쉽지 않은데 그 카메라가 가진 특징을 많이 이용하고 싶어서 붉은색을 더욱 강렬하게 남기게 되었습니다.


관객: 영화 재밌게 잘 봤습니다. 영화에 불교적인 메타포를 좀 많이 녹여내셨던 것 같은데 일단 첫 번째로 궁금한 건 이 영화 자체를 만들 때 중점을 둔 부분이 감독님께서 어떤 깨달음을 얻으신 것을 영화에 녹여내려고 만드신 건지 아니면 어떤 관객들에게 저마다의 화두를 좀 던져주고 싶으셔서 그런 부분을 중점으로 만드신 건지 일단 이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영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실 때 조금 팁을 주십사 좀 여쭤보고 싶은 건데, 이 영화 내에 있는 어떤 이미지들 하나하나에 좀 중점을 둬서 해석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아니면 이 영화를 한 줄로 쭉 꿰서 어떤 서사적으로 마지막에 나오는 그 결말에 이르렀을 때의 그 느낌을 가지고 관객들이 감상하기를 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말씀을 하신 내용을 들어보면 둘 다일 것 같기는 하지만 해석을 위해서 저마다 각자의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서 조금 팁을 주신다면 어느 쪽이 더 좋은 감상에 도움이 될 것 같은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서보형: 이 영화를 아까 제가 어떤 뭔가 깨달음이 오는 순간을 살짝 경험했었다, 이런 이야기도 언급을 했는데 순간을 영상화하기 위해서 형식을 찾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못 찾았어요. 그러다가 언어를 벗어나는 것 같은 불교의 불이법(不二法),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라고 말하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언어는 분별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법과 대비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영화에서 동작으로도 나타나는데 지권인(智拳印)이라고 하거든요. 중도 부처도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분별하지 않음이 불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걸 영화적인 구조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나란히 병치해놓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 불기법의 상태로 나아가게 해야겠다는 게 이 영화의 커다란 플랜이었어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지 하나하나가 사실은 다 대응되는 것들이 있어요. 동일한 것들도 많고 그래서  하나하나를 비교해 보시면 그 안에서 아마도 어떤 이야기나 느낌들이 생기실 텐데 그런 개개인의 감상들을 좇아가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결국은 이 영화는 하나의 어떤 통합으로 나아가긴 하거든요. 해석하는 사람 안에서 통합됐을 때 마지막 그 느낌에 대해서 어떤 느낌을 받으시건 생각하시건 그건 자유로운 부분이고 결과적인 부분에 대해 이상적인 해석이나 정형을 덧붙이는 것보단 체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보시는 게 저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 선문답이 많이 나오는데 선문답의 해석은 사실 동문서답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말이 아닌 말처럼 들려요. 그래서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 혹은 공안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런 것처럼 이 영화를 통해 저는 해석보다  어떤 체험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이시면서 그 안에서 각자가 사유할 수 있는 지점들이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감상해주세요.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컷

 

 

관객: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에 대한 지점이 되게 궁금한데 이 영화에 특히 자연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자연에 대한 상징들 이를테면 불, 물, 나무 등이 등장하는데 아파트가 가장 주가 되는 공간이니 한편으로 인물들을 더 단절되게 계속 만들고 있었던 것 아닌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물들이 등장하고 주로 생활하는 공간으로 아파트로 선정을 하셨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보형:  말씀드렸던 규칙 중에 또 하나를 말씀드리면 장소를 저희 집에서 찍는 거였거든요. 그래야 가장 제작비를 줄이는 것이 가능하니 집에 사용하는 물건을 다 치우고 실제로 제가 산책하는 코스를 그대로 따라서 영화를 찍었어요. 저에게는 일상적인 환경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도 있고 앞서 탈 시리즈와 같이 언급되던 그 영화도 같은 아파트 안에서 찍었어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번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 영화에서는 아파트 안에서 어떤 단절을 그리고 있거든요. 저는 아파트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부분이 항상 사람들이 동시적으로 같이 있는데도 단절된 느낌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 집에 있다보면 세대를 공유한다는 동시적인 느낌에서 많이 멀어지게 되는데 아파트가 전체적으로 단수가 갑자기 되거나 경비사무소에서 안내 방송을 할 때면 여기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살고 있는 곳이구나, 혼자 여기서 살고 있는게 아니구나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단절된 공간의 느낌과 공동 생활공간이라는 성질을 같이 지닌다는 점에서 영화에 잘 어울리는 배경이라고 생각해요.

정한석: 그래서일까요? 저 개인적인 감상입니다만 지금 청중분이 말씀해 주신 부분을 들으면서 떠올린 생각인데 유독 아파트 외관이나 찍을 때 격자라고 표현할까요 아니면 이 분리라고 표현할까요?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강조됐었다는 느낌을 감독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관객으로서는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질문 받고 GV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모티브에 관해서 좀 궁금해서 질문드리고 싶은데, 영화를 보는 내내 하나 떠오르는 작품이 있었어요. 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을 혹시 모티브로 두고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서보형:  제가 하루키를 좋아하는데. 『양을 둘러싼 모험』은 너무 예전에 봐서 기억이 안 나네요. 근데 함께 얘기를 하자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책이 있어요. 질문자 분께서 혹시 보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세계의 끝이라는 챕터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라는 챕터가 계속 교차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거든요. 어릴 때 하루키의 그 책을 읽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부분들이 있었고 그게 지금까지 제가 영화를 만들 때 형식적으로 그 때 받은 영향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영화를 만들더라도 전반과 후반이 다른 내용으로 나눠져있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통합되는 이야기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고, 이 영화도 그 영향 아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한석: 레퍼런스를 말씀하셨으니까 저는 조금 더 1차원적인 질문을 한번 추가하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해변의 사나이라고 하는 말은 되게 중요하고 존재도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지우가 읽는 책에도 자주 언급되고 등장하는데 저는 사실 못 읽어본 책인 것 같아요. 그 책은 어떤 책입니까?

서보형: 사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없이 배우들을 먼저 캐스팅이 먼저 이뤄졌어요. 캐스팅부터 현장에서 작업을 할 때도 배우 뿐만 아니라 영화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중간에 등장하는 지우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사실 손성경 작가님의 작업이거든요. 직접 만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제가 계속 아이디어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니스 해변에서 해변의 사나이라는 아이디어는 지원 배우님이 깐느 영화제가 갔다가 니스를 다녀왔다고 해서 사진을 보여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사진 중에 하나가 영화 속에 나오는 그 사진이었어요. 그 사진을 보니 해변의 사나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른거죠.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해변의 사나이는 그 소설 속에서 항상 누군가의 사진 뒤에 찍히는 존재에요. 근데 그 존재가 언제부터 사진 속에 등장했고 또 언제 사라져 버렸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낯선 존재이거든요. 소설에서는 그 얘기를 하면서 사실 우리도 해변에서 모래에 찍힌 발자국 정도만큼 짧은 찰나일 수 밖에 없고 유한한 존재라고 말해요. 지원 배우님의 사진을 보면서 영화에 이 이야기를 들여오게 된 거죠.
페트릭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나오는 하나의 이야기가 뭐냐 하면 해변의 사나이는 그 소설 속에서 항상 누군가의 사진 뒤에 찍히는 존재인데 그 존재가 언제부터 사진 속에 등장했고 또 언제 사라져 버렸는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낯선 어떤 존재이거든요. 지원 배우님의 사진을 보면서 사진이라는 매체와 소설의 이야기를 영화에 들여오게 되었습니다.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컷

 

 

정한석: 지금까지 얘기들을 좀 많이 나눠본 것 같고 관객분들이 가지고 계신 궁금증도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궁금하신 것들이 많이 있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에 관해서는 기회가 되신다면 또 보시고 또 얘기 나누실 기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제 영화 개봉 첫 번째 GV라고 그러셨나요? 아마 감독님도 그렇고 음악 감독님, 배우분들께서도 관객들이 어떤 반응이신지 궁금하셨을 것 같고 들려드리고 싶은 말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하는 입장에서 한마디씩 이제 자유롭게 마지막 인사 겸 그리고 정리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서보형: 이 영화가 21년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이후에 3년 만에 이제 개봉을 하게 되었어요. 개봉 지원금이 없어서 개봉관이 정말 적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이 영화는 애초부터 두 번 이상 봐야지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어요. 아마도 두 번 보시면 진짜 완전히 다른 감상을 또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합니다. 그래서 꼭 한번 N차 관람을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입소문이 진짜 많이 필요하거든요. 자유롭게 관람하시고 많은 리뷰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뵙게 돼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위지원: 저는 개인적으로는 깨달음을 좋아하고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어서 감독님 영화에 참여한 이유도 있어요. N차 관람을 한 사람으로서 매번 영화를 볼 때마다 가지고 가는 생각이나 느낌들이 정말 다르거든요. 보면 볼수록 같이 온 분들, 같이 관람한 사람들 또는 저희 영화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과 대화할 거리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아까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정말 어디에도 없는 형식의 영화이기 때문에 해석을 하고 싶어 하실 것 같아요. 저희 영화는 이제까지 없는 형식의 영화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이런 영화가 나왔네라는 재미있는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고, 주변분들과 같이 관람하시길 추천합니다. 오늘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임호준: 영화를 보며 새삼 느꼈는데 음악의 힘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GV가 개봉 이후에 처음이지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참여하고 있는 입장에서 관객들의 질문이나 반응, 참여도가 사실 아무래도 영화가 쉽지 않은 영화다 보니까 좀 망설여 하시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어요. 근데 오늘은 GV 시작을 좋은 거문고 연주로 시작하다보니 질 높은 질문들도 많이 해주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음악이 어쩌면 영화의 마음을 열게 해주는 하나의 어떤 장치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서 음악 감독님과 관객분들에게 모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우재: 도움이 된다고 그러면 언제든지 발 벗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혹시 서 감독님과 인사할 기회가 생기신다면 눈동자 한번 바라보세요. 동공이 색이 조금 남다른데, 저는 지인들에게 얘기해요. 빠져드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라고. 정말 그런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이거든요. 그 아름다운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이 영화로 해결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또 다른 영화에서 또 다른 어떤 현장에서 만나게 되든 서 감독님과 함께하는 일이라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함께 많은 점들로 와주신 여러분들과 함께 이 면을 채워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