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어른 김장하〉인디토크 기록: 어른을 그려본다
어른을 그려본다
〈어른 김장하〉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11. 19(일)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김현지 감독, 김주완 기자
진행 위근우 작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기록입니다.
가을 낙엽이 소복이 깔린 추운 날 길을 걷다 보면 유독, 어른은 무엇인지, 언젠가 문득 다가올 것만 같은 어른이라는 이름에 나는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어른 김장하〉는 어른이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영화는 아니다. 그들이 읽어낸 ‘김장하’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 어른을 그려볼 수 있는 힘과 시간을 주는 영화이다. 그 힘과 시간이 담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위근우 작가(이하 위근우): 저는 오늘 〈어른 김장하〉 GV 진행을 맡은 위근우라고 합니다. 영화를 연출하신 MBC경남의 김현지 PD님 그리고 김장하 선생님의 취재를 오랫동안 맡아 주신 김주완 기자님 오셨습니다. 두 분 제가 확인한 것만 해도 GV를 엄청나게 하고 계시는데요. 어제도 압구정에서 하셨고, 좀 강행군이었을 것 같은데, 피곤하지는 않으십니까?
김현지 감독(이하 김현지): 방송이랑 완전히 달라서요. GV를 이렇게 많이 하는구나. 처음 알았고요. 만날 때마다 새롭고 너무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세요. 방송도 이런 걸 하면 좋겠어요. 요즘 영화계에서 많이 배워가고 있습니다.
김주완 기자(이하 김주완): 저도 새로운 경험을 하며,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위근우: 오늘 GV는 세 가지 맥락에서 구성해볼까 합니다. 우선, 창작자들이 어떠한 계기로 취재를 하게 되었는가를 듣고, 두 번째는 취재하는 과정에서 접했던 김장하 선생님에 대한 해석, 감상을 들어볼까 하고요. 세 번째는 〈어른 김장하〉라는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작품이 나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사실은 김주완 기자님께서는 김장하 선생님의 명신고등학교 환원을 보시고 관심을 가지셨지만, 취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험이 있으셨습니다. 이후 다시 본격적으로 취재를 하게 된 계기와 김현지 PD님과의 협업 과정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주완: 2015년도에 채현국 선생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풍운아 채현국』이라는 책을 썼고, 이걸 계기로 포털 다음에서 ‘풍운아 채현국과 시대의 어른들’이라는 기사를 연재했어요. 그때, 마지막 순서에 김장하 선생님 이야기를 허락받지 않고, 인터뷰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 나름대로 외곽에서 취재한 자료로 기사를 썼는데, 선생님 허락을 받지 않고 썼기 때문에 다 쓰고 난 후에 선생님께 찾아가 양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 첫 마디가 “막 휘갈겨 놨데?”였습니다. 침묵을 지키시다가 이왕 써보니 어떠냐며 차나 한 잔 하자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타 주신 녹차를 마시면서 한 20분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게 어쩌면 취재의 시작이었고, 그날 이후에 김장하 선생님과 가깝게 지내는 분들과도 은밀하게 합의가 된 게, 그분들도 김장하 선생님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된다고 생각하고 계셨는데, 선생님께 운을 떼면 워낙 절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니까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차에, ‘김주완 기자가 기사를 쓰고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크게 혼나지 않았다더라’하는 소문이 퍼지며 이참에 김주완 기자 취재를 도와주자는 합의가 그분들 사이에 이루어져서 그때부터 김장하 선생님이 참석하시는 지역 사회 모임이나 식사 자리에 저를 끼워 주기 시작하셨죠.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고, 2021년 연말에 신문사에서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이 취재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2022년에는 책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김현지 감독이 전화가 와서, 같이 다큐를 만들자고 제안하셨고, 제가 김현지 감독을 찾아보니 그동안 진정성 있고 의미 있는 프로를 많이 만들었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합의를 했고, 1년 동안 같이 공동취재를 해서 저는 책을 내고, 감독은 다큐를 내었습니다.
김현지: 김주완 기자님은 오랫동안 취재를 해오셨는데, 저는 진주 사람이 아니라 (김장하 선생님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MBC경남이 예전에는 진주MBC, 마산MBC 이렇게 나뉘어 있었거든요. 저는 마산MBC 출신이라 전혀 모르다가 통합 과정에서 진주로 와서 2019년 한 술자리에서 명신고등학교 졸업생 한 분이 이야기를 자기 학교 이사장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이 분이 점잖은 분인데 너무 심한 과장을 하셔서 '술이 많이 취하셨구나' 이 정도로 생각했어요. (웃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졸업한 지 40년이 지났는데 자기 학교 이사장을 기억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찾아보니 진짜더라고요. 이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저는 처음에 순수한 호기심과 대박이겠다 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점점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진심이 느껴지더라고요.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유일하게 김장한 선생님에 대한 텍스트를 남기신 김주완 기자에게 전화를 드렸고, 완벽한 공동취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위근우: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공동취재 과정에서 두 분의 협업이 어땠는지, 또, 김주완 기자님께서는 카메라가 있음으로써 취재에 있어 더 도움을 받은 게 있으신지 여쭤봅니다.
김주완: 김현지 감독과 함께하며 “연출을 시키지 마라. 난 배우가 아니다.”고 하며 내가 취재하는 걸 찍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시작했는데, 취재 과정에서 자꾸 이것저것 시키기도 하고. (웃음)
위근우: 오프닝에서부터 잘 드러나죠. (웃음)
김주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한번 걸어봐라 이런 것도 시키고, 취재와 인터뷰가 다 끝났는데 “아직 일어서지 마시고 두 분 이야기 더 나누고 계세요.” 이런 주문도 하시고, 더 이야기를 나누라고 하니까 어색하기도 했어요. 한번은 (김현지 감독에게) 물어봤어요. 끝났는데 왜 자꾸 앉아 있으라고 하냐고 물으니, 인서트라는 걸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감독이 “이런 거 다시 해주세요.” 하면 살살 짜증도 났는데. (웃음) 촬영감독께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엎드려 가면서 찍기도 하고, 그분이 수풀 우거진 곳에서 모기에 뜯기면서도 찍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해져서 나중에는 다 이해하게 됐어요. 저는 아무래도 신문 기자이다 보니 메마르고 건조한 질문, 팩트 확인이 주인 질문을 중심으로 하는데, 김현지 감독께서는 아주 감성적이고 촉촉한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같은. 그런 부분이 상호보완이 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김현지: 사실 방송사 내에서도 기자와 PD가 같이 일해서 성공한 유례가 없거든요. (웃음) 각자 일하는 방식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저희는 서로 인터뷰 프리뷰 노트까지 싹 다 공개하고, 서로가 찾은 추가자료도 다 같이 공유하면서 했어요. 좋았던 게, 저는 방송하면서 늘 텍스트로 남기고 싶었는데 휘발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국장님(김주완 기자)께서 너무 완벽하게 책으로 남겨 주시니까 영화의 완벽한 보완재가 존재하는 거잖아요. 너무 좋았던 협업이었습니다.
위근우: 두 분의 신뢰와 투명성이 중요했을 거 같은데, 우선 김현지 PD님께서 신뢰를 얻기 위해 더더욱 투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셨을 거 같은데,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김현지: 어디서 저에 대한 신뢰가 생기셨나요? (웃음) 제가 되게 존경하는 분이셨어요. 국장님은 지역의 언론 대선배시기 때문에 강의하시면 쫓아가서 듣고 했고요. 제가 신뢰를 보여드린 부분은 글쎄요. (웃음)
김주완: 저는 사실 김현지 감독 전화를 받고 약간은 우려를 했어요. 방송에서 상업적으로 김장하 선생님을 활용하는 그런 가벼운 접근이 아닐까 하고요. 제가 걱정을 해서 김현지 감독이 만든 프로그램과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것들도 다 찾아봤어요. 보니까 진정성 있는 것들을 참 많이 했더라고요. 역사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관심이 많은데, 저와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젊은 감독이 그동안 만든 프로그램들이 저는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이런 PD가 있다는 부분이 저로서 고마운 일이었고, 김장하 선생님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는 다큐를 만들겠다는 자체가 고마웠습니다. 젊은 사람이 관심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위근우: 김현지 PD의 전작들을 많이 얘기해 주셨는데요, 김현지 PD가 만드신 ‘놀이터 민주주의’ 유튜브에서 볼 수 있죠?
김현지: 네. ‘놀이터 민주주의’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위근우: 굉장히 좋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토의민주주의가 어떻게 실현 가능한가에 대한 지역사회에 알맞은 좋은 기획의 다큐인데, 저도 이 다큐를 보며 김현지 PD님의 작업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어른 김장하〉가 대박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김현지 PD님께서는 김주완 기자님이 텍스트로 내주신 책이 영화의 보완재처럼 좋은 기록이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러면 다시 김주완 기자님께서는 〈어른 김장하〉라고 하는 TV 버전이든 영화든 영상 언어라는 것에 대해 어떤 감정이 드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주완: 영상은 잘 모르는 분야인데, 영화 속에서 김장하 선생님 표현처럼 저도 지금 얼떨떨함의 연속이거든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고. 이런 GV를 계속하는 것도 저한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고요. 제가 김현지 감독을 만나지 않고 책만 썼더라면, 물론 김장하 선생님의 삶이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줄 수 있는 삶이기에 그냥 묻히지는 않았겠지만, 이만큼의 큰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상과 결합을 하니까 훨씬 더 시너지가 크게 나타난 것 같습니다.
위근우: 이 시작이, 김주완 기자님이 기사를 쓰시고 선생님을 찾아 뵈었을 때 혼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김현지 감독님도 이걸 찍어도 혼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지요.
김현지: 지금, 이 순간도 제일 두려운 것이 김장하 선생님이 “이제 그만해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제일 두려워요. 선생님이 아직도 허락하신 적이 없고, 영화로 개봉한 것도 불편해하세요.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힘들고,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하시고. 저는 그런 스트레스가 있어요. 저희가 김주완 기자님을 앞세우고 처음에는 형평운동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선생님을 만나 뵈었을 때도 대답도 안 하시고 “그냥 차나 마시고 가세요.” 하시니까 무서웠어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선생님께 카메라 들고 자주 찾아 뵙겠다고 말하니 선생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셔서. 제가 안 쪼는 사람인데, 태어나서 그렇게 심장이 쿵쾅거렸던 적이 없어요. “다음에 또 카메라 갖고 올게요.” 하며 도망치듯이 나왔어요. (웃음) 그 뒤로는 김주완 기자를 방패 삼아 계속 찾아갔고, 장학생 이야기를 하면 유일하게 얼굴이 펴지셔서 장학생을 섭외해서 장학생을 앞에 두고 취재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위근우: 아직은 선생님께 혼나지는 않으신 거고요. 그린 라이트가 들어온 적은 없고요. 약간의 거짓말을 해서 완성을 했는데 좋은 텍스트가 나오고, 이게 과정에서 맞게 가는 건가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셨는지, 선생님이 “이런 건 안된다.”라고 하시면 다큐는 무산이 될 텐데, 거기에 대한 걱정은 없으셨나요?
김현지: 그게 제가 2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거예요. 선생님이 안된다고 하시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웃음)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하셔서 영화가 폐기된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도 언론인으로서 취재 윤리 부분에서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아요. 이 분이 평생 지역을 위해서 헌신하셨는데, 내가 이 분 스토리를 팔아먹으며 이 분을 이용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도 마지막에 영화화를 부탁드리러 갔을 때 선생님이 그만했으면 싶다고 하셨는데, 젊은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니 선생님이 그냥 그러면 묵인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고요. 얼마 전에 지인분에게 들었는데, 선생님이 불편해하시긴 하셔도, 젊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는다고 하니 표정이 누그러지셨대요. 그래서 관객 여러분들이 선생님에 대한 저의 알리바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위근우: 김주완 기자님도 김현지 PD님과 같은 걱정을 아주 안하시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이 우려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있으셨나요?
김주완: 저는 사실 김장하 선생님이 공인에 준하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학교 재단을 설립해서 운영을 하셨고, 남성문화재단 이사장도 하셨고, 시민단체장도 하셨기 때문에 공적인 인물에 준하는 인물이죠. 제가 선생님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생님에 대해서 쓰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예요. 그런데 제가 취재를 할까 말까 고민을 했던 부분이 자녀분들, 아드님, 따님을 만나서 가정에서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까지 취재하고 싶은 유혹을 계속 느꼈어요. 그 분들은 공인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 분들한테까지 가서 취재하는 것은 사생활 영역이라 자제를 했습니다. 김장하 선생님도 영화는 안 보셨지만, 다큐멘터리는 보셨거든요. 다큐멘터리가 MBC경남에서 처음 방송하던 날 주변의 후배들이 선생님께 같이 보자며, 영화에도 등장하는 극단 아래 카페에서 선생님을 모셔서 같이 20명 정도 인원이 함께 봤어요. 선생님도 같이 보고 난 후에는 가타부타 이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고, 선생님을 찾아뵙고 다큐멘터리에 대해 여쭸더니 “그거는 PD와 작가의 영역이지 내가 뭐라고 할 건 아니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정도까지는 용인하시고 인정하셨다고 생각하고 있고, 단지 선생님 스스로도 크게 회자가 될 거라고 상상은 못하셨어요. 이 다큐멘터리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고 재방송도 되고, 넷플릭스에도 나오니까, 선생님이 갈수록 다큐를 괜히 찍은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자꾸 드시는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영화까지 나온다고 하니까 더 불편해하시죠. (웃음)
위근우: 영화를 보면 이분의 따스한 모습이 비치지만, 공적 영역에 한정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얘기하셨던 취재 윤리 관련해서도 마지막 보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공적인 부분으로서 김장하라는 사람에 대해 대단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은 어떻게 하면 저럴 수 있지?”하며 ‘김장하 비긴스’ 같은 영화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이분의 대단한 일도 대단한데, “어떻게 모순이 없는 사람이지? 어떻게 안 그럴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인간은 실수도 하고 배우며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데, 그 과정이 분명히 김장하 선생님에게도 있는데 사적인 영역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오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 부분에 대해서 취재하시는 분들에게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건지 궁금합니다.
김현지: 선생님께 존경하는 사람을 여쭤보면 할아버지라고 답하셨어요. 할아버지가 남성(南星)이라는 별처럼 살라고 하셨고,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자기 할 일은 잘하는 그런 별이래요. 좋은 사람이 되고, 남을 도우라고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선생님, 저희 부모님도 좋은 말씀은 많이 해주셨어요.”하고 답했죠. (웃음) 그런 부분이 납득이 안 가서 계속 다른 부분을 캐 보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깨달은 게 선생님은 이미 한번 말씀하셨거든요. 선생님이 이렇게 살게 된 계기는 “19살에 연 한약방에 손님이 몰리며 크게 번 돈이 다 아픈 사람들에게서 왔으니까 그게 내가 내 가족만을 위해 쓸 수는 없어서 사회에 돌려주는 거다.”라고. 그 이유를 제가 소화를 못 한거예요. “이렇게 숭고한 이유만으로 인간이 움직일 수 있나?” 하며 저는 못 그럴 것 같아서 계속 다른 이유를 찾는 건데, 저는 포기했고 김주완 기자님 책에는 몇 가지 합당해 보이는 이유가 있으나 그것 또한 저는 인정하지 않아요. 일반인들이 위인을 보고 감동받고, 자기 인생을 바꾸지 못하잖아요. (웃음) 그래서 제가 어떤 이유를 찾는 게 저 사람처럼 살지 않아도 될 핑계를 찾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유를 찾는 건 포기했고요. 그냥 저 사람이 저렇게 살았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고, 그럼 나는 무엇을 하면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어요.
김주완: 영화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와요. 진주지역 시민들이 선생님 깜짝 생일 잔치를 열어 드렸을 때 선생님께 마이크를 드리며 한 말씀을 부탁하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아직도 부끄러운 게 많습니다. 남은 인생은 부끄럽지 않게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이 말에 전부 부끄러움이 들어있어요. 취재하며 선생님께 가장 좋아하는 문구가 무엇이냐고 여쭈었을 때 선생님이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仰不愧於天俯不怍於人)”이라고 하셨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 고개를 들어 사람을 향해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지향한다는 뜻이에요. 그걸 신조로 삼고 살아오셨다고 하더라고요. 평생 선생님은 정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평생의 화두였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살아오셨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김현지: 영화를 보면 선생님께서 학교에 감사가 들어왔을 때 “그리 나오면 나는 쉬워요. 왜냐면 나는 잘못한 게 없거든.”이라고 하시는데,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엄청 크고 위대한 장군처럼 보이잖아요.
위근우: ‘부끄러움’이란 말이 와닿는데 사실 저도 영화에 나온 말 중에 “번 돈이 모두 아픈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라는 말에서 궁금했던 게 저건 벌었으니 한다는 사회적 책무의 한 종류인지, 아니면 어떤 죄의식 같은 것인지 궁금해진 것 같아요. 영화에서 김장하 선생님이 따뜻한 웃음을 계속 보이시지만 저는 영화를 보며 상당히 투사적인 면이 있다고 보였어요. 우선, 진주신문 관련해서 김주완 기자님께서 날카로운 질문 해주셨을 때, 거기에 대해서 선생님은 “얼마나 힘든지 알지 않냐. 독립운동하듯이 했다.”라고 했어요. 이런 지역적 맥락이라는 것과 김장하 선생님이 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분의 싸움이라 생각하는데, 이런 것에 대해 김주완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기에 지역신문이 가진 토호 세력과의 싸움, 지역에서 토호가 얼마나 강력한지 부연도 부탁드립니다.
김주완: 서울에 있는 언론들도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그런 언론들이 있죠. 그런데 지역으로 갈수록 지역 사회는 좁다 보니 모든 인맥이 얽히고설켜서 기득권과 언론이 실제로 지역사회 소유 구조 자체가 그 지역의 토호 기업이 그 언론사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역 언론이 스스로 약점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지역 언론 스스로가 갖고 있는 약점, 지역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모기업의 약점, 기자들이 여기저기 결탁하거나 뒷돈을 받는 약점들이 워낙 많다 보니 스스로 약점이 많은 언론은 권력 기관을 비판하지 못하는 거죠. 쉽게 말해, 지역 언론이 함부로 겁 없이 검찰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 검찰은 바로 그 언론사에 바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게 되면, 그 언론사는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는 지역 언론이 권력에 독립적이고, 권력이 언론사에 힘을 가했을 때 아무런 약점이 나오지 않는, 떳떳한 언론이 거의 부재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김장하 선생님을 중심으로 진주지역에 뜻이 있는 분들이 진주신문을 개간했고, 그 신문을 선생님은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는데 힘에 부쳐 결국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셨던 것 같아요.
김현지: 김주완 기자라서 할 수 있는 질문이었어요. 김장하 선생님의 지원에 대한 약간은 삐딱한 질문이잖아요. 선생님의 지원 때문에 진주신문이 자기 동력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데 진주지역 사회에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건 김주완 기자님 밖에 없을 거예요. 권위에 도전하는 거니까요. 기자님 스스로 도민일보와 시민주주신문을 만들어 운영 해오셨기 때문에 힘듦을 알고 있고 자기 스스로 그 과정을 뚫고 나오셨으니까요. 그 질문을 해도 상대 기자가 그 정도만 받아 칠 수 있었죠. 다른 사람이었으면 엄청 화를 냈을 것 같아요. (웃음) 저는 다큐멘터리에서 그 장면을 절대 뺄 수 없다고 했죠.
위근우: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영화판에 남을지 안 남을지. 왜냐하면 그 부분이 맥락을 모르면 살짝 튀거든요. 그런데 이 맥락을 고려하면, 그 부분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죠. 저는 김주완 기자님을 2010년도, 김태호 총리 후보가 문제가 있어 낙마했을 때 경남 출신의 이 정치인이 낙마한 것에 대해 경남도민일보에서 ‘우리가 지역 신문 내부에서 제대로 검증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하는 자성과 반성의 글을 보고 누가 쓴지 찾아보니 김주완 기자님이시더라고요. 김장하 선생님이 어떻게 보면 그 분도 토호셨던 건데. (웃음) 이 분이 갖고 있는 불의가 어떠신지 궁금하더라고요.
김현지: 장학생들이 선생님을 찾아와 이야기하시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 분들도 자기 선후배들이 궁금해서 장학생들끼리 홈커밍데이가 하고 싶으니, 선생님께서 명신고등학교를 세우기 전 지원해주신 개인 장학생들의 명단을 주시면 안되겠냐고 요청 드렸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렇게 되면 성공한 사람들은 즐거울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 잘 풀리지 않은 사람은 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형평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건 안된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은 형평운동이 자기 안에 큰 가치로 세우고 계신 것 같았어요. 영화 만들고 나서 선생님을 무슨 진보진영의 아이콘, 진보의 큰 어른으로 모시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을 좌우, 어떤 진영논리로 해석할 수 있는 분이 아니고, 굳이 해석하자면 굉장히 차가운 보수주의자로고도 생각되거든요. 보수의 제일 기본 사업 중 하나인 교육 사업에 열과 성을 다해서 투자하셨으니까요. 선생님은 정말 실천적인 유학자세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을 은둔의 독지가로 해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유일하게 영화에 나오는 과거 영상자료가 선생님이 형평운동에 설명하시면서 인터뷰하는 내용이잖아요. 그때는 방송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자기 자신을 알리는 게 아니라 형평운동을 진주시민사회에 알리는 거였으니까요. 은둔의 독지가가 아니라 가슴 속에 불이 있는 분인데, 그런 걸로 인해서 자기 이름을 알리는 거는 원치 않으셨던 거 같아요.
위근우: 형평운동의 시각에서 차별을 반대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누구도 화나게 하지 않아요. 하지만 ‘남녀 차별은 나쁩니다.’라고 하면 누군가를 화나게 하고, ‘가사노동을 여성만 하는 것은 차별이다’라고 하면 많은 사람을 화나게 하고, ‘호주제를 폐지하자’고 하면 더욱 질타를 받는 거죠. 호주제 폐지한다고 했을 때 유학에서 남은 구태들이 그때 다 갓을 쓰고 나왔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선생님을 생각하기에 분명 저는 작품 자체가 어느 정도는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보여주지는 않지만, 우리의 정치적 실천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지점에 대해서 영화에서 그런 부분을 좀 내세우지 않고 싶으셨는지, 아니면 그런 해석과 맥락을 봐주시길 바라는지 여쭤봅니다.
김현지: 우리가 ‘진보, 보수’를 편 가르기를 위한 이름표 붙이기로만 쓰잖아요. 그런데 저는 김장하 선생님이 보수적인 면과 진보적인 면을 둘 다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하는데, ‘내 편이 아니면 적이야.’ 이렇게 해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씀을 드리고요. 선생님이 정치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굉장히 정치적인 행보를 계속해 오셨고. 근데 그게 어느 진영에 유리하게 해오신 게 아니라 지역을 위해서, 시민들을 위해서 활동해 오신 거니까요.
위근우: 김장하 선생님이 자신을 반골이라고 말씀하실 때, 제도로서의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지 어떤 정치 혐오적인 이유에서 한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주완 기자님께서는 김장하 선생님을 오래 보셨던 만큼 우리가 말하는 이름표로 사용되는 보수, 진보주의를 떠나 이분(김장하 선생님)이 실천하는 정치하는 사람으로서는 어떤 분이신가요?
김주완: 저도 어떻게 김장하 선생님이 이렇게 살아오실 수 있었는지, 선생님의 철학적 바탕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했어요. 김장하 선생님의 철학적 뿌리는 공자와 남명 조식 같아요. 흔히 공자 하면 아주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공자 말씀 중에 김장하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말 하나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데요. 이게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는 게 군자가 아닌가.’하는 말인데요. 공자의 말씀을 직접 실천하며 살아오신 것 같아요.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 삶을 평생을 지향해 오셔서 인터뷰도 거절하고, 본인이 드러나는 것도 싫어하시고요. 그래서 그야말로 대가 없는 나눔이 가능했던 것 같고, 그것이 끊임없는 본인의 인성 수양을 통해 가능했고, 특히 평등사상, 형평사상을 직접 나서서 실천하시며 남명 조식의 ‘많이 아는 것만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하셨던 실천적인 담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남명 조식 선생님은 조선시대 가장 실천적인 유학자로 임금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임금과 임금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상소문을 쓰는 등 대쪽 같은 유학자이신데, 이런 실천적인 삶을 본인의 살 속에서 구현하려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것 같아요.
관객: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와의 갈등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세대가 어른을 찾고 싶어하고 그걸 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김주완: 꼰대라는 말을 요즘 사회에서 많이 하는데, 김장하 선생님은 그야말로 누구를 말로써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 수많은 장학생들 중에 그 누구도 선생님으로부터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분이 없더라고요. 학교를 운영하면서도 교사들에게 “이런 학교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는 말을 안 하셨고. 본인이 살아오신 삶으로써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그 삶 자체가 많은 가르침이 되는 거죠. 그야말로 꼰대는 말로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에 꼰대가 아닐까 하고, 선생님은 그런 차이가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현지: 꼰대를 혐오하는 시대,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어른을 기다리는 시대. 이게 영화의 로그라인이었어요. 저도 그랬고요. 저희가 선배, 어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귀를 닫으니까 너무 힘들고 답답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기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무엇을 강요하기보다 우리의 등을 밀어주면 더 앞으로 나갈 수 있게 길을 내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그런 사람을 누군들 안 기다리겠어요? 어른도 어른이 필요하거든요. 저도 어른을 시작하는 나이의 시기인데 너무 무서워요. 원래 저도 회사에서 선배들에게 대드는 포지션이거든요. 그게 너무 마음이 편했어요. 근데 이제 후배들이 저에게 대드니까 힘들더라고요. 사람들에게는 본받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저대로만 하면 나도 무언가 될 것 같다고 안심시켜주는 그런 예시들이 필요한 거니까요. 젊은 분들이 GV를 하면 우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대구 오오극장에서 GV를 할 때 앞에 앉아 계신 분이 GV 내내 계속 우셨어요. 저는 사연 있는 분인 줄 알았어요. (웃음) 그냥 계속 눈물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너무 목말라했던, 우리가 기다렸지만 기다린다고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보이지 않았던 게 (영화에서) 보이니까, 그런 눈물인 거 같아요.
관객: 취재 중 김현지 감독님과 김주완 기자님은 혹시 눈물이 글썽였던 적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지: 저는 너무 T인간이라서 눈물을 흘린 적은 없어요. (웃음) 그런데 영화를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보면서 찡할 때가 조금 있었습니다.
김주완: 저는 책 관련해서 강의를 하는데, 제가 강의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스스로 울컥해서 민망해지는 그런 상황이 있어요.
위근우: 두 분 말씀 정말 잘 들었고요. 오늘 영화 보시고 GV 함께해 주신 관객분들 감사드리고, 오늘 함께 좋은 말씀해 주신 김현지 감독님과 김주완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