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너와 나〉인디토크 기록: 사랑의 메아리
사랑의 메아리
〈너와 나〉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10. 14(토)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조현철 감독
진행 이동진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다연 님의 기록입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4년 봄, 우리는 나일 수도 있었던 수많은 너를 떠나보냈다. 강산이 한 번 변할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나와 너 사이에 경계를 긋고 외면하기에 급급하다. 과연 너의 자리에 내가 있었던 적은 없었고, 나의 자리에 너가 있었던 적은 없었는지.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의 삶을 세밀하게 포착해 내고 생생하게 되살린 영화는 다시금 묻는다. 그날로부터 9년이 지나 어렴풋이 빛이 들어오는 새벽에 문득 자다 깨어 나를 보고 간 너를 느낀다. 모든 곳에 존재하는 너는 내가 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지 않는 너도 내가 된다.
이동진 평론가(이하 이동진): 오늘 조현철 감독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깊게 들을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감독님의 인사부터 듣겠습니다.
조현철 감독(이하 조현철): 안녕하세요. 〈너와 나〉를 연출한 조현철입니다. 개봉 전 첫 관객과의 대화인데요,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동진: 이 영화를 찍으신 지 1~2년 정도 시간이 지났어요. 그동안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했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감독님을 기다린 것 같아요. 저도 역시 그랬습니다. 배우로서 관객과의 대화는 많이 참여하셨을 텐데, 감독으로는 처음 나오셨지 않습니까? 감독으로서 이 자리에 앉으신 소감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현철: 저는 배우에 대해 직업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낭만이나 자의식 같은 것이 상대적으로 적어요. 그리고 배우의 위치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말들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고요. 그런데 감독으로서 제가 만든 이야기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에 오니까 더 떨리기도 하고, 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동진: 많은 분들이 감독님을 뵙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 역시 기대가 굉장히 컸어요. 보고 나서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조현철: 2016년쯤에 제가 굉장히 개인적인 사고를 겪게 되었고, 그를 계기로 죽음과 삶에 대한 관점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이전에 제가 외면했던 죽음들, 저에게 개인적인 죽음이 아니었던 것들이 저를 잡아당겼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찍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가 어디선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어요. 그 느낌을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찍었던 것 같습니다.
이동진: 개인적인 일이 계기가 됐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럼 그 이후에 영화를 만드실 때 기반이 되었던 착상이 무엇인가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지일 수도 있을 텐데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일단은 두 여자아이가 떠올랐고, 이들에게 다가온 죽음이 체감 되는 하루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추모식이 있었어요. 아이들 영정 앞에 서서 얼굴을 하나씩 들여다보는데 굉장히 무참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고, 앞에 놓인 얼굴들이 너무 생생한데 지금은 느낄 수 있는 게 없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좌절을 하는 동시에 생생했던 삶과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두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와 세월호의 전후 관계를 설명드리기가 어려운 게, 제가 애초에 그 이야기를 떠올렸던 것도 저희가 모두가 지켜본 죽음의 풍경이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이동진: 이 영화에서 놀라운 점이 많은데요, 먼저 배우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두 배우가 워낙 뛰어나게 연기를 했고, 나머지 배우들도 연기가 다 너무 좋아요. 실제로 그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 같거든요. 일단 주연 배우인 김시은 씨와 박혜수 씨에 대해 먼저 여쭤보겠습니다. 박혜수 씨와는 이전에 배우로 인연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직전에 박혜수 씨가 쓴 글을 봤는데, 배우 조현철과 감독 조현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조현철: 네, 제가 현장에서 워낙에 말이 없어요. 또 현장에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원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어느 순간 구석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싫은 건 아니지만, 스스로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한 생존 방식이에요.
이동진: 그런데 박혜수 씨가 이 시나리오를 보고 굉장히 반하게 되었고, 제안을 바로 수락하셨다고 해요. 박혜수 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감독님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고 해요.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박혜수 씨가 쓴 단어입니다. (웃음)
조현철: 카리스마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스스로 이 이야기에 가지는 애정이 어떻게 그랬지, 싶을 정도로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에너지가 스태프들이나 배우분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저를 잘 따라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동진: 현장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구호를 외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원더풀, 뷰티풀, 미라클’이라는 구호를 쓰셨다고 하는데, 저는 상상이 잘 안되거든요. 이걸 평소 말투처럼 차분하게 하지 않으셨을 것 같고. 어떻게 하신 건가요?
조현철: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이들이 살아나는 풍경을 보게 되는 순간을 너무 기다렸어요. 그래서 모니터링하는 와중에도 마냥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어요. 어떤 순간순간에는 아이들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혼자 말한다고 한 건데요, 생각해 보니까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듣고 있었겠네요. (웃음) 뷰티풀, 원더풀, 미라클 총 세 단계거든요. 제가 모니터링을 하면서 좋을 때 했던 말이에요.
이동진: 배우들이 정말 기분이 좋고 짜릿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혜수 씨 같은 경우에 연기력을 이미 인정받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요, 감독님께서 호흡을 맞추면서 극찬을 하셨더라고요. 현장에서 보았던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 같다는 표현을 쓰셨어요. 실제로 이 영화에 제일 많이 나오고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는 인물인 세미를 맡으셨는데요. 감독의 입장에서 박혜수 씨의 연기를 함께 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조현철: 혜수 씨는 합을 미리 맞춰 볼 때나 현장에서나 이 인물을 열심히 이해하려고 해요. 이 배우는 자기 내면에서 캐릭터의 감정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런 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이 사람이 이해가 되어야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점이 너무 대단해 보였어요. 그건 제가 가지지 않은 자질이거든요. 현장에서 저는 기술적으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동진: 이해를 못 해도 조석봉 같은 이미지가 나오는 거군요.
조현철: 일종의 영업 비밀이긴 한데. (웃음) 저는 약간의 거리감을 가져야 연기가 되고, 박혜수 씨는 캐릭터와 밀접하게 붙어 있어야만 연기를 할 수 있는 그런 배우였어요. 그것과는 별개로 카메라와의 호흡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것을 너무 잘하더라고요. 뭔가를 잘 알고 있는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동진: 박혜수 씨뿐만 아니라 김시은 씨도 굉장히 놀랍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진식이와 함께 나온 장면 중에 음식이 있는 척 장난을 칠 때라든지, ‘정답!’ 처럼 이야기를 할 때 몸을 활용한다든지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배우의 생동감이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배우에게 저런 모습이 없다면 가능할지 싶을 정도의 생동감이었는데요. 김시은 배우는 현장에서 어떻게 보셨습니까?
조현철: 말씀해 주신 것처럼 굉장히 동물적으로 연기를 하는 친구예요. 처음 느낀 건 오디션 때였어요. ‘정답!’ 장면이었는데, 김시은 배우가 애드리브로 대사를 추가한 거예요. 원래 대사는 간단하게 ‘늙고 병 드니까.’ 였는데 시은 배우가 그렇게 대사를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이 배우가 가질 수 있는 유머러스함이나 톡톡 튀는 매력, 연기를 하면서도 그 자신으로서 말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 매 순간 표현을 해내더라고요. 애드리브도 과하면 이상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적재적소에서 너무나 정확한 방식으로 표현을 했어요. 특히나 놀랐던 장면은 마지막 키스 장면이에요. 두 배우가 키 차이가 많이 나서 어떻게 입을 맞출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은 씨가 일단 이마에 맞추더라고요. 그다음에 세미가 고개를 들었고 입을 맞추는데, 그게 제가 준 디렉션이 아니라 애드리브였어요.
이동진: 버스 안에서 엉킨 이어폰을 풀 때도 잘 푼다는 말을 노래하듯이 하잖아요. 그리고 이어폰을 코에 꽂는데요. 이런 장면도 애드리브였을까요?
조현철: 이어폰을 코에 꽂는 건 시나리오에 있던 설정이긴 했는데.
이동진: 그런 걸 어떻게 상상하셨나요?
조현철: 되게 날카로우시네요. (웃음) 제가 그런 적이 있습니다.
이동진: 그럼 소리가 코로 울려 나오나요?
조현철: 소리가 들리지는 않더라고요.
이동진: 감독님의 모습으로 상상하니 더 귀여워지는 부분이 있네요. 그런 디테일이 너무 훌륭해서 영화를 보다 보면 저 두 배우는 똑같은 관계로 영화를 10편 찍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럴 정도로 합이 잘 맞고, 많이 연습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여쭤보고 싶은 건 사전에 리딩 작업과 리허설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영화에 표현된 정도의 생동감이라면 배우의 동물적인, 혹은 탁월하게 넓은 시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감독님께서 배우이기도 하고, 또 좋은 연출자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서 사전에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무엇보다 아이들이 하는 말이 생생하게 다가와야 했어요. 20대가 나오는 콘텐츠의 호흡이나 회사에서 사용하는 말투 같은 것을 최대한 지워나가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배우에게 대사가 붙도록 사전에 리허설을 많이 했어요. 보통 상황만 주고 리허설을 진행했고, 거기서 나온 대사를 편집을 한 다음에 시나리오에 반영을 했고, 그 시나리오 그대로 현장에 가져갔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저예산이라 빠르게 찍어야 하고, 또 현장에서 즉흥 연기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취했던 것 같아요. 최대한 배우들이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콘티를 최소화하고 블로킹을 사용했던 것 같아요.
이동진: 박정민 씨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역할에 대해 설명해주니까 처음에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조현철: 80년대생 남자분들은 되게 공감하실 텐데, 별말이 없어요.
이동진: 그 정도로 믿는 사이라서 그런 거겠죠.
조현철: 믿는다기보다는 서로 할 일을 알아서 잘할 거라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동진: 박정민 씨가 여태까지 나온, 좋은 의미에서, 가장 늙어 보이는 역할이지 않을까 싶은데,
조현철: 그렇죠. 그런데 사실은 대학생 역할이었거든요. 현장에서 저희도 저건 대학생이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웃음)
이동진: 두 장면 정도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박정민 씨는 상대적으로 리허설을 덜 하셨나요?
조현철: 정민이랑은 아예 안 했어요. 정민이가 워낙 바빠서 대신 같이 나오는 배우들과 리허설을 많이 했어요. 정민이가 현장에 도착해서는 별말 없이 그냥 밥만 같이 먹고 바로 촬영에 도입했는데요. 이 배우를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편했어요.
이동진: 그럴 것 같습니다. 정말 그 장면은 배우가 다 책임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상 깊고 재미있었습니다.
이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훔바바는 영화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뜻은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괴물로 알고 있는데요.
조현철: 저는 ‘훔바바한테 키스하고 싶다’는 글귀가 나올 때부터 관객들이 훔바바가 세미라는 걸 알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랑이 어떻게 증명되고,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가 저에게는 중요했어요. 훔바바는 우선 세미죠.
이동진: 왜 하은이는 훔바바로 세미를 이야기했을까요?
조현철: 일단 제 친한 친구의 아이디가 훔바바였어요. 그래서 그냥 가져왔죠.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든 저는 의미 부여를 하려고 많이 노력했거든요. 사소한 소품이나 사물에 장면이 농축된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게 있었는데, 훔바바는 같은 경우에는 아무 의심 없이 가져왔어요.
분명 제가 예전에 훔바바의 뜻을 찾아보긴 했을 텐데, 영화를 다 찍고 나서야 훅 들어오는 의미가 있었어요. 훔바바가 삼나무 숲을 지키는 요괴잖아요. 그런데 제가 최근에 ‘오버 스토리’라는 소설을 읽고 제주도의 숲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숲에 관해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 훔바바가 영화 이후에 저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이동진: 그러고 보니 영화에 나무라든지 화분 같은 식물이 많이 등장하네요. 그런 것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현철: 화분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제가 살아온 공간과 관련이 있어요. 제가 안산에서 살았었거든요. 어떤 분들은 공감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안산에 사시는 부모님들이 아파트에서 화분을 많이 키우세요. 그런 제 추억 속 유년의 기억과 단원고 학생들이 뛰어놀던 공간을 엮어보는 작업이 하나의 동력으로서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 내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사물이나 배경이 빨려 들어가듯 압축이 되었다가 다시 넓은 공간으로 펼쳐져서 보이고 하는, 시각적 말하기가 재미있었어요.
이동진: 후반부에 독특한 방식으로 소면을 먹는데, 정말 일본에서 슬라이드를 사용해서 먹나요?
조현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 식중독 사고도 났다고 알고 있어요.
이동진: 누가 올린 면인지도 모를테니 비위생적이겠다라는 생각도 드네요,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저 슬라이드는 어디선가 보고 영화에 사용을 하신 건가요?
조현철: 촬영 감독님의 아이디어였어요. 애초에는 제면기였고요. 엄마의 캐릭터가 뭔가를 만들어서 먹는 활동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택배를 너무 많이 시키는 거죠. 그래서 세미는 짜증이 나 있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는데, 촬영 감독님이 슬라이드면 어떻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제가 영화를 만들 때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어딘가 낯설게 툭 튀어나오는 순간을 만들고자 해요. 그런 장면이 오히려 현실감을 만드는 것 같다고 느끼거든요. 학교 장면을 촬영하는데 어디선가 공사를 하고 있다면 더 현실적으로 보이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촬영 감독님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동진: 이 영화의 모든 관계가 그렇지만, 현실 모녀 같은 느낌과 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 관한 질문 더 드리고 싶어요. 위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이고,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 앞을 보면 그제야 교실 안에서 밖을 보고 있었다는 게 드러나요.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떠들다가 카메라를 벗어나면, 그때까지 혼자서 자고 있던 세미가 고개를 드는 뒷모습이 카메라에 비치는 게 첫 장면인데요. 이 장면은 뒤에서 하은이 변주하는 장면이기도 해서 굉장히 인상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첫 장면이 시점 쇼트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경우는 전혀 다르지만 〈유전〉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장면이 매우 초자연적인 시점 쇼트처럼 보이잖아요. 하은의 시각이거나 죽음 이후의 어떤 시각처럼 보이기도 해요. 교실 안에 그러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주관적인 시점이 될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주관적으로 보이게 찍으셔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장면이 매우 묘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시점의 의도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조현철: 영화가 처음에는 단순하게 세미의 이야기 같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체 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치했고, 이외에도 중간에 모든 것을 관조하는 시선을 배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의 오프닝도 말씀해 주신 대로 연출을 했고, 세미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 나오는 몽타주도 마찬가지예요. 마치 신성에 닿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완전히 해외 같기도 하고,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또 저의 욕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고,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자면 영화 속 시선의 변화에 따른 극적인 텐션도 필요했었던 것 같아요. 공룡을 건져내는 장면도 비슷한 의도가 들어갔는데요, 저는 공룡을 구해주는 손이 신의 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세미의 시점 쇼트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좀 더 가깝고 거대한 느낌이 들지만.
이동진: 할머니와 소녀가 구해준 공룡이 빠져 있던 곳도 웅덩이잖아요. 영화에서 죽음의 이미지로 가장 강렬하게 관객을 사로잡는 장면은 하은이 죽어 누워있는 장면인데, 그것도 호수 근처예요.
조현철: 화성과 안산 근처의 시화호예요. 촬영 장소를 찾을 때도 그 장소가 가진 이야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어요. 영화적으로 확실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가지는 않더라도, 영화를 찍는 저희의 내부적인 논리로써 그 공간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시화호는 공룡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곳이에요. 영화를 찍을 때쯤에도 공룡 화석이 나왔었거든요. 그런 이야기가 쌓인 공간 위에 아이들이 죽은 듯이 잠들어 있다는 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동진: 그럼 촬영 장소를 조사하다가 화석에 대해 알게 되시고 영화에 공룡을 건져주는 장면을 넣으신 건가요?
조현철: 어떤 순서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진 모르겠는데, 저는 평소에 관찰을 많이 하고 채집하는 마음, 순간을 포착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영화에 전부 넣지는 못하더라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런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면 이상한 모양들이 많이 겹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제가 자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집중적으로 엮어나가는 것도 있지만, 포착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고리들이 있어요. 아이가 공룡을 건져내는 장면도 제가 일상에서 포착한 장면이었어요.
이동진: 그때도 공룡이었나요?
조현철: 네. 아이가 공룡을 건지면서 할머니한테 '할머니, 공룡이 물에 빠지면 되돌릴 수 없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대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PD님과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각색 후에 만들어진 장면입니다.
이동진: 굉장히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의 동력 중 하나는 간절히 되돌리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느껴지거든요. 초반 에피소드도 너무 잘 배치된 게,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 중 어릴 때 키우던 병아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병아리가 죽었는데 땅이 콘크리트라 묻어주지 못해 크레파스 통에 넣어두었는데 둔 곳을 까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순간에 다른 죽은 새를 묻어주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그때의 병아리를 다시 기억해 내고 묻어주는 장면처럼 느껴져요. 이처럼 영화 속에 상실과 죽음, 재생의 이미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기 죄송스럽지만 아름답게 들어가 있기도 해서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조명의 사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면에 전반적으로 광량이 넘치지 않습니까? 조명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셨고, 영화의 톤에도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습니다. 영화의 가장 슬픈 장면인, 하은이 버스에서 세월호에 관한 뉴스를 듣는 장면에서조차 광량이 넘치는 식인데요. 영화 전반에서 빛을 통제하고 많이 이용해서 마치 빛이 위로가 되고 극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런 조정을 기술적으로는 어떻게 하셨고, 연출에 있어서 의도하신 부분은 어떤 장면들이 있는지 질문드립니다.
조현철: 영화에서 빛이 주는 질감이 되게 중요했고, 꿈 같아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촬영 감독님께 부탁드렸고, 필터를 많이 씌우는 방식을 채택하셨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빛이 저에게 주는 느낌이 있는데, 저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사랑의 형태가 빛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새벽에 깼을 때 그 여명 속에서 굉장히 무서운 기분이 들거든요. 불안하고, 무섭고, 왠지 죽음이 두렵기도 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에 해가 나기 시작하면 그런 기분이 싹 사라져요. 아주 단순하지만 아주 본질적이고 익숙한 어떤 것, 그런데 잊고 사는 무엇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광량을 많이 높이고 인물들에게 그 빛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더불어서 어떤 순간에는 그 빛이 관객의 눈을 향해 직접적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동진: 관객들도 그런 감정을 그대로 느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해 주신 것처럼 영화가 한 편의 꿈 같기도 하고, 몽환적이고 신비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장면이 굉장히 많은데 그중 하나가 똘똘이 주인과 세탁소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때 이야기를 듣는 세미와 하은의 행동과 말이 굉장히 대조적인데요. 하은이 자신보다 앞세운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릴 때 세미가 하은을 쳐다봐요. 영화를 다 보고 최종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면 세미가 하은을 쳐다보는 표정이나 방식이 초자연적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장면에서 세미의 표정이나 시선에는 당연히 감독님의 디렉팅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때 하은과 세미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감독님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조현철: 세미는 정말 이기적인 아이예요. 자기밖에 없고, 부족한 점도 많고, 실수도 많이 하지만 그런 인간의 내면에 굉장히 큰 사랑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평평하고 밉상일 수 있는 세미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나온 행동이 강아지를 찾아주려는 행동이었고요. 그것의 결과로 꿈을 떠올리게 되고, 비로소 자신이 하은에게 한 일을 제대로 보려고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전까지 하은이 세미를 쫓아가던 것과 다르게 하은의 뒷모습을 보며 세미가 따라가는 방식으로 변화를 준 것 같아요. 그런 식의 완전한 전환을 주고 싶었어요.
이동진: 영화에서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런 전환이 시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자체는 세미의 로드 무비처럼 보이기도 해요. 목적은 내일 수학여행에 떠나기 전에 하은에게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백하고 싶다는 것이고요. 그것을 반드시 오늘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하은에 대한 나쁜 꿈을 꿨다는 이유인데요. 이 두 가지 이야기로 로드 무비의 형식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일단 나쁜 꿈을 꾸어서 상대방이 걱정된다는 마음과 수학여행에 떠나기 전에 고백하고 싶다는 마음, 두 가지잖아요. 그런데 막상 세미를 보고 나서는 고백을 하지 않는데요. 세미의 두 가지 욕망에서 모든 일이 시작되게 했다는 데에 대한 감독님의 설명이 듣고 싶습니다.
조현철: 꿈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신탁이라고 하죠. 예지 같은 것을 세미가 무의식적으로 느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오늘 반드시 하은에게 고백을 해야 하고, 함께 있고 싶고, 아프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모든 감정이 초반에는 이기적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처음에는 자신의 불안이나 공포를 달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들뜨고 누군가를 소유하고 싶고 나만 봐줬으면 하는 연애의 관점에서 느껴지는 사랑보다는 더 넓은 의미에서 좀 더 살아가게끔, 살고 싶게끔 만드는 사랑의 의미에 가닿았기 때문에 하은이 누구를 만났든 상관없이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랑의 고백을 하은에게 직접 해버리면 진실 같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거짓말 같이 느껴져서 관객들이 영화 이후를 상상하길 바랐어요. 결국 세미가 하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앵무새에게 가르치고, 세미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앵무새가 하은에게 어떤 말을 해줄지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이동진: 굉장히 사소한데 영화를 보면서 무척 궁금했던 점이 있습니다. 배우들이 프레임에 들어오고 나가는 방식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흥미로운 동선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하은을 자전거로 친 잘생겼다는 오빠와 하은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 오빠의 친구들이 카메라 바로 앞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프레임에 들어와요.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난폭한 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저는 흔한 설정처럼 두 사람이 세미와 하은을 괴롭히나, 싶었는데 그냥 셋이 가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두 인물은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닌데도 프레임에 들어오는 순간을 인식할 수밖에 없어요. 다시 등장할 때도 자전거를 잘못 타서 난폭하게 들어오는 것으로 끝인데요. 이렇게 독특하게 두 사람을 등장시키는 방식은 어떻게 채택하게 되신 건가요?
조현철: 영화 전체적으로 보자면, 영화 속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세미가 자전거를 친 오빠를 찾아갈 때 어린아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들어간 장면이에요. 그런 것들이 주는 생생한 모습을 통해 기존 한국 영화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에 있어 우리가 리얼리티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살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식의 동선을 많이 만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만의, 제가 즐기는 스펙터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동진: 그리고 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오늘 알았던 굉장히 놀라운 사실은 포스터의 글씨가 감독님께서 직접 쓰셨다는 거예요. 영화를 보면 제목의 '너와 나'에 대입하는 두 사람이 명확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너일 수도 있었던 게 나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세미가 죽었을 수도 있지만 하은이 죽었을 수도 있고, 우리 모두가 다 죽었을 수도 혹은 다 살았을 수도 있는 이야기가 되는 건데요. 제목을 〈너와 나〉라고까지 강하게 만들게 된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조현철: 이 제목을 처음 들었던 건 2012-2013년경이었어요. 제 친구가 '너와 나'라는 일본 만화책이 있다고 했는데, 운명적인 느낌으로 이 제목이 저에게 남았어요. 그리고 2016년경에 개인적인 사고를 겪고 난 뒤에 영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때, 이 영화의 제목은 '너와 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회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확실하게 있고, 남자와 여자는 사랑한다, 여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같은 관념이 있잖아요. 그런 것의 경계를 지우려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지워진 곳에 새로운 관점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동진: 저도 이 영화가 계속해서 경계를 문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이 영화의 큰 감동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에 깔려 있는 세월호 이야기를 빼고 본다면, 하은의 죽음의 너울이 둘러져 있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세미가 하은이 죽은 꿈을 꾸었고, 다친 것도 하은이고. 그런데 점점 세미도 손을 다치게 되고, 결정적으로 세미가 세월호에 타게 되는데요. 이러한 동선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세월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고, 영화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치 살아남은 친구가 떠난 친구에게 하는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떠난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한테 돌아와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우리는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타자화할 수 없고, 너와 나는 섞여버리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세미로 보이고 아이들이 잠에 빠져 있는 버스 안에 빛이 들어올 때 하은은 당연히 없었고요. 결국 이 이야기는 남겨진 삶에 찾아온 죽음이 사랑을 말하는 이야기처럼 보이거든요. 그게 이 영화의 굉장히 비범하고도 깊고, 묘한 지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쭤보고 싶은 건 하은이 세미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세미가 하은을 찾아간다는 설정을 하신 이유입니다.
조현철: 영화를 처음 쓰려고 할 당시에 광화문에서 집회가 있었어요. 그곳에 있던 생존자 학생이 꿈에서라도 내 친구가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저희 영화는 하은의 꿈을 찾아오는 세미의 이야기가 되었어요. 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이 되게 이상했는데, 어떤 순간에는 아이들이 저에게 와서 이 이야기를 해달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죽은 아이들이 친구의 꿈을 찾아왔을 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지 생각을 해봤는데, 답이 너무 단순하더라고요. 당연하게도 사랑한다는 말이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경계를 지우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게 비단 영화적인 문법의 경계를 지우는 것뿐만 아니라, 극장에 앉아 스크린을 통해 빛이 우리 망막에 맺히게 되는 모든 과정을 '시네마'라고 했을 때 스크린과 관객 사이에 놓인 경계도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어떤 순간에는 현실과 동일한 위치로 세미가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동진: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았는데요. 세미가 앵무새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시화호 옆에서 잠들어 있거나 죽어 있거나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다 세미가 눈을 뜨고 영화가 끝나지 않습니까. 원래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구상하셨던 건지, 아니면 다른 방식이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이런 방식을 채택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기존에는 앵무새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가르치는 장면으로 끝내려고 했어요. 마지막 장면은 촬영하다가 넣게 된 건데요. 시화호에서 그 장면을 찍고 있는데, 제가 혜수 씨한테 일단 들어와서 눈을 감고 누워 있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편안하게 공기와 바람 같은 것을 즐기는 시간이 영화 외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으로서의 삶에 되게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컷을 하지 않고 8분 동안 가만히 지켜봤어요. 애초의 제 의도는 프레임 안에서 햇빛이 변한다는가, 바람이 세게 분다든가, 벌레가 뛰어 들어오면 끝낼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가장 크게 일어난 변화는 혜수 씨였어요. 한참 그러고 있다가 웃으면서 몰래카메라 하는 거냐고 깨어나더라고요. 혜수 씨가 웃으면서 눈을 뜨는데, 그 순간 이게 영화의 마지막에 들어가야겠다는 직감적인 판단이 들었어요.
영화적으로는 한 번 하은의 얼굴이 여러 얼굴로 바뀌는 걸 보여줬잖아요. 마지막에 세미가 누워있는 걸 보면서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저 대상이 세밀한 개체뿐만 아니라 이것을 보고 있는 자신일 수도 있고, 자신의 친구들일 수도 있다는,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특정한 시공간적 지시성을 없애기 위해 앰비언스를 제거 했어요.
관객: 대사가 정말 현실적이고, 여고생들이 입체적으로 잘 드러난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는 여자 형제가 없으시잖아요. 여고생들의 행동이나 말투를 어떻게 연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취재를 많이 했어요. 고등학생들의 말투나 대화에서 느껴지는 리듬이나 호흡을 최대한 생생하게 살려내기 위해 입시 학원에 취재를 나가기도 하고, 유튜브에 올라오는 브이로그도 많이 봤어요. 요새 유튜브가 좋더라고요. (웃음)
관객: 배경에 깔리는 음악이 빛과 맞물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2010년대에 유행했던 곡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런 노래는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시면서 미리 선택을 해두신 건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저희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몇 안 되는 것 중에 음악이 있는데요, 그래서 2014년경에 유행했던 가요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독립영화다 보니까 예산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전략적인 차원에서 저작권 허락을 받는 데 용이한 사람의 곡을 우선적으로 골랐습니다. (웃음)
이동진: 영화 음악을 오혁 씨가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 속에 음악이 나오는 순간을 관객이 의식하게 하는 방식으로 활용하신 것 같아요. 반면에 영화 속의 앰비언스 같은 일상 소음을 제거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영화 자체가 굉장히 꿈결 같다고 느꼈는데요. 음악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까지 오혁 씨에게 맡기신 건가요?
조현철: 저희 둘 다 말이 별로 없는 편이어서 대단하게 대화로 뭘 나누진 않았어요. 저희가 나눈 몇 안 되는 대화 중에 정말 슬프긴 하지만 어딘가 되게 이상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었어요. 아까 일상적이지만 튀어나온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은 맥락이었어요.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알아서 잘 하시더라고요.
관객: 영화 속에 나온 수많은 생명 중에 나비가 굉장히 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학교 장면에서도 거울에 나비가 붙어 있고, 세미의 집 냉장고에도 나비가 많이 붙어 있었는데요. 이 나비에 의미가 있다면 어떤 맥락에서 넣으신 요소일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요. 아까 아이들이 저를 부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그중 하나가 저희 스크립터님과 촬영 감독님을 만나게 된 것도 포함이거든요. 세월호 사건이 지나고 콜롬비아의 과타페 호수에서 유람선이 침몰해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사에 신경을 많이 쓰던 적이 있어요. 그 기사를 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나리오가 하나 들어왔는데, 그게 콜롬비아에 가는 시나리오였어요. 그래서 읽기도 전에 나는 여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도착하고 나서 코로나가 창궐하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이번 영화의 스크립터 님을 만나게 된 겁니다. 코로나로 영화 전체가 철수하는 과정에서 만나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때 스크립터님이 나비 박사에 대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셨어요. 그 영화가 마치 〈너와 나〉처럼 언젠간 만들어질 것 같다는 이상한 직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비가 영화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관객: 세미가 거울에 서서히 비치는 식으로 등장을 많이 한다고 느꼈습니다. 들판을 달리는 장면에서도 밑의 물에 비치는 모습을 같이 촬영하신 것 같은데, 의도하신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세상에 대해 바라보는 방식이 어떤 순간에는 실제로 있는 건지 의심이 들 때가 종종 있잖아요. 어떤 상이 잠시 맺혔다가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거울이었어요. 거울에 세미의 얼굴이나 아이들의 모습이 맺혔다가 사라지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비슷한 맥락으로 공원 정자에 걸려 있던 시계가 달린 거울은 실제로 단원고 주변에 있는 작은 정자에서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의 모습이 어느 순간에 그 거울에 비쳤을 수도 있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관객: 영화에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이 나왔는데, 가장 낯선 동물 중 하나가 앵무새인 것 같아요.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SNS에 앵무새 사진을 많이 올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앵무새를 소재로 사용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제가 입시 학원 특강을 나갈 때 아이들에게 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어요. 그중 자신이 기르는 앵무새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가르치는 저녁에 대해 묘사했던 학생이 있었어요. 그 장면을 영화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허락을 받고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또 테드 창 소설 '거대한 침묵'이라는 짧은 단편 소설이 있어요. 거기에 앵무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 소설의 내용도 영향을 좀 미쳤고. 사랑한다는 말을 모두가 사라진 뒤에 전할 수 있는 매체로써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세미가 다쳤을 때 배경에 교회 음악이 잘 들리는데, 교회에서 말하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으셨던 건지 의미 없이 들어간 소리인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공간이 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앰비언스나 대사를 넣은 게 많아요. 안산에 가보시면 아파트 단지 주변에 오래된 상가가 많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실제로 교회가 같이 있어요. 그런 곳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병원에서 촬영할 때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찍었는데도 찬송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저 소리를 좀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었죠. 비슷하게 하은의 꿈속에 매미 소리도 믹싱 과정에서 최대한 크게 나오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었어요. 기사님께서 너무 크다고 말리시는데도 매미가 주는 공간적인 느낌과 더불어 처절하게 울고 있는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동진: 네, 감사합니다. 소감 한 말씀 하시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조현철: 끝까지 이야기 들어주시고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고 사라지게 될 텐데도 마치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살곤 하잖아요. 이 영화를 통해서 여러분이 어떤 사랑을 느끼셨으면 좋겠고, 더불어서 죽음이나 상실이 일어나더라도 세미가 안아주면서 괜찮다고 말했듯이 다 괜찮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