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침몰가족〉 인디토크 기록: 미래로 열린 집
미래로 열린 집
〈침몰가족〉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5년 4월 26일(토)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가노 쓰치 감독,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통역 심아정 독립연구활동가
진행 한디디 커먼즈·도시운동 연구자
* 관객기자단 [인디즈] 문충원 님의 기록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낯섦에서 출발해 익숙함에 도착한다. 우리도 타자로 시작해 공동에 다다른다. 우연히 만나고 어쩌다 모인다. 훗날 흩어져도 그때 우리가 우리였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리고 피는 다르지만 다 같이 아이를 키웠던 이들이 있다. 함께 육아 일기를 작성하고 잔디밭에 둘러앉아 생일파티를 열어준 사람들이 있다. 그날의 그들을 무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질문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로도 향해간다. 그 여정을 이어내는 매듭처럼 영화 〈침몰가족〉은 지금 우리 곁에 있다. 돌아오는 가정의 달을 앞두고, 다시금 질문을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 우연히, 어쩌다 인디스페이스에 모였다.
한디디 커먼즈·도시운동 연구자 (이하 한디디):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한디디입니다.
가노 쓰치 감독 (이하 가노 쓰치): 안녕하세요. 저는 가노 쓰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이하 김순남): 안녕하십니까, 저는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순남입니다. 반갑습니다.
심아정 독립연구활동가 (이하 심아정): 안녕하세요, 오늘 통역을 맡은 독립연구활동가 심아정입니다. 반갑습니다.
한디디: 가노 쓰치 상은 지금까지 일본에서 이 영화를 많이 상영하시고 또 100번이 넘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일본 외 국가에서 상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관객을 만나면서 꼭 전달되었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가노 쓰치: 일단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가슴 벅차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공간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이 처음 해외에서 상영하는 날이라 의미 있는데요. 일본 외의 사람들에게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너무 궁금합니다. 여러분의 감상이나 의견을 많이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를 촬영한 것은 10년 전, 제가 대학생일 때였는데요. 이 '침몰가족'은 제가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기억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더 알고 싶어졌고 나를 키워준 사람들과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어요. 그 만남의 방법으로 ‘영화’라는 도구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상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옛날에 제가 살던 집, 함께 살던 사람들이 나오니까요. 그렇기에 많은 분 앞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것이 제게도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일본에서 정말 많은 관객을 만났는데요.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GV를 할 때면 관객분들이 자기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그러한 성장 환경들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여러분들도 감상 외에 가족 이야기,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관계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한디디: 다음으로 김순남 선생님께 질문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일단 영화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은데요. 특히 선생님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라는, 중요하고 재미있는 책을 쓰신 바 있습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라는 측면에서, 〈침몰가족〉의 관전 포인트를 덧붙여서 말씀해 주세요.
김순남: 우선 해외에서의 첫 상영 자리에 제가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화에서 계속 '우연하게 태어났고, 우연하게 돌봄을 주고받았고, 우연하게 가족이 되었다'는 내용이 언급되는데요. 저도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에 여러분과 우연히 섞이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자신을 잃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 21살 싱글맘이 어떻게 살아갔을지에 대한 주제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위태로운 순간에서의 선택은 자기 삶의 여정과 긴밀히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여정으로서의 삶이란 단지 혈연이나 국가가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에만 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또한 출산이나 가족을 이유로 고립되고 안주하는 폐쇄성으로서 나의 삶을 상상하는 여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메구 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부모 외에 힘들 때 도망 갈 곳이 있다라고 한 것, 그것이 다양한 의지처가 갖는 힘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에 가노 호코 상이 이야기하듯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와 어떻게 섞이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여정이고, 저는 영화가 이를 알아보기 위한 시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연대로서의 돌봄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고요. 연대 자체도 굉장히 우연한 연대였지만 내가 의지할 다양한 몸들이 가능한 장소와 관계가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혈연 중심성이나 가족주의를 넘어서, 다양한 몸과 삶들이 의지할 수 있는 장소와 관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그저 '다양한 가구의 형태'로 보면 안 될 것 같아요. 핵가족을 넘는 주거·가구의 형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우리 삶의 보편적인 관계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디디: 이 영화의 깊은 부분을 얘기해 주신 것 같아요. 이어서 관객 질의응답 시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관객 질문 채팅방 속에서 많은 분이 음악에 관해서 얘기해 주고 계세요.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모노 노 아와레(MONO NO AWARE)의 노래가 나와서 너무 반갑고 좋았습니다. 가사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감독님이 특히 이 밴드를 좋아하시는지, 좋아하는 음악은 어떤 장르인지 궁금합니다.'
가노 쓰치: 모노 노 아와레라는 밴드는 최고입니다. 보컬과 기타를 맡아준 이들은 제가 이사 간 지역인 '하치조지마'에서 저보다 한 학년 선배들이었고요.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위해서 음악을 만들어 주셨고, 주제가도 다 만들어 주신 거예요.
한디디: 다음 질문입니다. '침몰가족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영화여서 좋았습니다. 감독님께서 어머니와 얘기하시며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서 키우는 게 걱정되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는 게 재밌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이 구성원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가노 쓰치: 그때 제가 왜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인지 잘 모르겠고 기억도 잘 안 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역 앞에서 다 같이 춤을 추는 등, 정말 멋지고 재미있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키우는 것이 걱정되진 않았는지 엄마에게 물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물어보면서도 엄마는 절대로 걱정했다고 답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질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알고 물어본 것이었는데요. 역시 걱정했다고는 안 하시더라고요.
한디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일본 사회가 새로운 실험을 낯설어하고 무척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편견을 깨주셔서 고맙습니다. 침몰가족이라는 실험 이후에, 일본 사회에서 비슷한 형태의 가족이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혹은 인식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가노 쓰치: '침몰가족' 이름의 유래를 말씀드릴게요. 어떤 역 앞에서 정치가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그 전단지는 당시 일본에서 싱글맘들이 늘어나고 있고, 보통의 가족 형태가 아닌 모습이 늘어나면 일본 사회가 침몰할 거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키워주신 분들이 “그럼 침몰하면 되지”라며 말씀하셨고 그래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또 일본 사회에서는 확실히 보수적으로 바라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도 지금은 2025년이잖아요. 어떤 시도들이 있냐면, 일본에서는 셰어하우스라는 형태로 함께 아이를 키우는, 그러니까 복수의 세대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시도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면서 그런 분들도 많이 만나왔어요. 그러나 침몰가족의 특이성이라고 할까요? 특징이라고 한다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 시도와는 달리 침몰가족은 집이 외부로 열려 있었어요.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다고나 할까요? 친구의 친구까지 다 함께 집으로 들어와서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가 그 공간에서 이루어졌다고, 한 마디로 ‘열린 집’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시도는 일본에서도 별로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셰어하우스에서는 10명, 20명씩 세대가 함께 모여 공동 육아를 하는 일은 있어도 침몰가족의 특이성을 가진 곳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한디디: 말씀하신, '외부로 열린 집이었다'는 말씀과 연결되는 질문이 있어서 함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침몰가족이 재미있어 보이면서도 세상이 너무 험해서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낯선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인데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김순남 선생님의 말씀도 같이 들어본다면 좋겠습니다.
김순남: 중요한 질문이네요. 또 쉬운 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낯선 존재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말하는 낯섦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실은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는 출발인 거잖아요. 낯선 관계로 이끌리면서 삶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낯섦 자체가 공포로 연결되는 지점은 굉장히 다를 수가 있겠죠. 누군가가 공포화된 낯섦으로 사유되는가는 굉장히 사회적인 부분인 거잖아요. 난민이나 이주 같은 부분의 영역은 영화에서 깊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건 논외라고 하더라도, 기존에 우리가 당연하게 혈연관계를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도 어른이 아이를 대할 때 그 아이가 익숙한 관계는 아니잖아요. 가장 낯선 타자인 거잖아요. 아이가 부부라는 양육자를 대할 때도 굉장히 낯선 존재일 테고요. 그래서 익숙함과 낯섦은 철저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자기를 계속 확장하는 과정이 관계가 이루어지는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혼자서 아이를 두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끊임없이 공동의 일기를 작성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아이를 마주하면서 느꼈던 불안함이나 아이를 어떻게 마주할지 모르겠는 낯선 감정을 집단적으로 논의의 장으로 계속 만들어내는 시도들이 낯선 자신을 마주하는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가노 호코 상 역시 아이가 배고플 때 먹이는 방식의 돌봄이 아니라 관계를 확장하는 상호 성장을 이야기하는데요. 이처럼 우리가 새롭게 배워야 할 관계성의 출발로 낯섦을 인식한다면 훨씬 열린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노 쓰치: 완전히 모르는 낯선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1990년대에는 인터넷이 잘 없었잖아요. 침몰가족에 오게 되는 사람들은 당시 전단지를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면서 알렸기 때문에 친구의 친구, 이런 식으로 입소문을 듣고 모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대를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인터넷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교류의 힘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단지를 전달하려면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눠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지만 어떤 세계에 대한 신뢰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한디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어머니가 섬으로 떠나기로 결정할 당시 살아간다는 기분에 대해 삶의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의 궤적이 변하고 침몰가족을 떠나는 결정을 하는 건 어느 순간에는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능하다면 당시 결정의 맥락을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가노 쓰치: 침몰가족은 사상이나 운동이 아닙니다. 어떻게 양육자가 어린이를 잘 키우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죠.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니까 돌봄을 받지 않아도 혼자 설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공동 육아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요. 두 번째로는 셰어하우스에 있는 방이 너무 좁아졌기에 나가야 했던 이유도 있습니다. 어머니 가노 호코 상은 고정된 관계를 언제나 피해 왔던 사람입니다. 관계가 고정되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영화에서 이야기하듯이 말이죠. 그리고 미디어와 주변에서 침몰가족의 리더는 가노 호코 상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면서 자신이 고정되는 관계에 놓이는 것보다는 '부드러운 교류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치조지마로 이사 가면서 하나의 매듭이 되었습니다.
한디디: 다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신 분이 있어서 그 질문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작년 미혼인 상태로 임신하게 되었을 때 유튜브를 통해서 침몰가족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왔기에 이런 형태라면 나처럼 사회에서 준비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아이를 낳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 응원해 주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고 중절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제가 공동체의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도 다양하게 공동육아를 선택한 이들이 많고 그들의 자식들은 제 친구이기도 한데요. 공동체 내에서 분란에 휘말려서 오히려 자라면서 공동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 이들도 많고, 육아 공동체에서 벗어났을 때 적응하기 어려워서 부모의 선택을 미워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감독님은 침몰가족 내에서의 갈등 때문에 불안했던 적이 있으셨나요? 그리고 후에 침몰가족을 떠나서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고 학교에 다니며 적응할 때 어떤 것이 힘들었는지, 그것을 어떻게 겪어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가노 쓰치: 저를 키워준 어른들은 회의를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함께 사는 주택 거주의 문제라든가 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있기 때문인데요. 함께 살기 위해서 공간을 어떻게 좋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 함께 회의했습니다. 물론 저는 당시 아기였기 때문에 맨날 잠을 자고 있어서 그런 사실들을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보육 노트를 보니 알겠더라고요. 그런데 갈등이랄 것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회의를 굉장히 많이 했다, 함께 고민했다- 정도가 적혀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런 공동체를 벗어나서 사회에 나갔을 때 어려운 점이 있으셨냐고 질문하셨는데요. 침몰가족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카오스적인 공간이잖아요. 그런 공간과 학교가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물건을 잃어버리면 안 되거나, 숙제를 똑바로 하는 것을 지나치게 열심히 한달까, 학교 질서에 과잉 적응하려 했었는데, 그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하긴 했지만요. 하치조지마로 처음 이사했을 당시에도 제 생활은 커다란 변화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와 비슷한 정도로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근데 어머니는 침몰가족이든 하치조지마든 어느 곳에서든 항상 즐거워하셨어요. 때문에 아이였던 저도 포기를 하고 얼른 적응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난 뒤였기에, 좋은 의미에서의 포기였습니다.
한디디: 눈앞에 있는 부모가 불행해 보이는 것보다 행복해 보일 때 아이들한테 훨씬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질문인데요. '초반에 보면 보육자 중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잖아요. 이러한 점이 되게 흥미로웠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왜 남성 보육자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보시나요?'
가노 쓰치: 1990년대에 도쿄에서 '다메렌'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는데요. '낙오 연대'라는 의미입니다. 연대라고는 하지만, 굉장히 느슨하고 부드러운 연대인데요. 일할 수 없거나, 일하기 싫거나, 연애가 잘 안되거나, 인생이 꼬이거나, 사회에 잘 따라갈 수 없거나, 그래서 남들이 비난할지라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그룹의 사람들과 호코 상이 만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동 육아를 할 때 남자들이 많았던 이유는 결과적으로 다메렌에 있는 멤버들 중에 남자들이 많았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어머니 호코 상께서 그분들께 '너희들 침몰가족에 오지 않을래? 지금 아니면 평생 육아 같은 경험은 할 수 없어'라고 하시면서 꼬드긴 것 같습니다.
김순남: 너무 중요한 질문들을 듣다 보니 시간이 다 되었네요. 요새 돌봄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고 또 양육과 돌봄이 분리되어서 이야기되는데요, 저도 제 인생에서 기회가 된다면 이런 양육에 한번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호코 씨가 이야기한 '공동 육아의 공동은 어디까지일까요?'라는 질문이 새삼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육아가 아니라 공동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것이 가장 강렬한 열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란, 돌봄이란, 아이와 어른의 관계란, 낯섦이란, 의존이란 뭘까, 그러니까 이런 질문이 가능한 여러 세계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우리는 어른과 아이라는 고정된 관계, 낯섦과 익숙함이라는 고정된 관계, 혈연으로의 위계 같은 것들이 아닌 새로운 질문이 가능한 사회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 속에서 나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공존의 조건이 중요하다고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또한 오늘은 한디디 선생님이 쓰셨던 『커먼즈란 무엇인가』에서 공동의 세계를 구축하는 커머닝으로서의 돌봄과 유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중요한 자리에 우연히 연결되어서 재차 감사함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가노 쓰치: 우선 영화를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제 인생에서 다시 만날 일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분들과 또 아버지인 가노 야마 씨도 흔쾌히 영화에 나와 주셨고요. 사실 이 영화를 만들고 난 이후 그를 만나는 횟수가 부쩍 늘었습니다. 그리고 호코 상은 하치조지마에서 염소와 고양이랑 지금도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쩌다 생긴 여러 만남으로 인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들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90년대 일본의 도쿄에서 이러한 시도가 있었고 거기서 자란 아이가 아주 행복했다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와 양육에 관한 논의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요. 마지막으로 『침몰가족』 책을 읽으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맥락과 이야기가 책 속에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일본에서 출판된 책이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나왔는데요.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디디: 수고해 주신 심아정 선생님께, 그리고 초대해 주신 인디스페이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요. 다시 한번 책을 꼭 보시기를 권해드리며, 책 속의 한 구절을 골라 왔습니다.
엄마는 영화 개봉 후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공동육아의 힌트를 얻은 것도 과거에 공동육아를 했던 사람들이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야.
그래서 〈침몰가족〉을 보고 힌트를 얻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어.”
호코 상은 어릴 적 공동 육아에 대한 영상을 보고서 공동 육아를 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 해요. 마찬가지로 〈침몰가족〉 영화를 보고 힌트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몰가족이 비단 특이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고 있는 삶의 모양을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행동들의 연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와주신 분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