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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최소한의 선의〉 인디토크 기록: 바라본다는 것은

indiespace_가람 2024. 11. 15. 20:13

바라본다는 것은

 〈최소한의 선의〉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11월 3일(일) 오후 1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현정 감독, 장윤주, 최수인, 이창훈 배우

진행 이우정 감독 (〈최선의 삶〉연출)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기록입니다.



어떤 마음은 아주 단순하게도 타인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 무언가 자연히 뿌리내리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처럼 보여도 기어코 시선이 멈추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것은 이내 새로운 마음의 씨앗이 된다. 오며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시선을 내어줄 수 있기를, 그리고 당신도 누군가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볼 수 있기를. 아주 최소한의 것이라도.

 


이우정 감독(이하 이우정): 안녕하세요, 오늘 〈최소한의 선의〉 인디토크 진행하게 된 감독 이우정입니다. 시작하기 앞서 참석하신 분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현정 감독(이하 김현정): 안녕하세요, 〈최소한의 선의〉 연출한 감독 김현정입니다.

장윤주 배우(이하 장윤주): 안녕하세요, 〈최소한의 선의〉에서 희연을 연기한 배우 장윤주입니다. 홍대에서 만나 뵙게 돼서 기쁘고 오늘 많은 분들이 와주셨는데 즐겁게 영화 얘기하면 좋겠습니다.

최수인 배우(이하 최수인): 안녕하세요, 〈최소한의 선의〉에서 유미를 연기한 배우 최수인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창훈 배우(이하 이창훈): 안녕하세요, 배우 이창훈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이우정: 먼저 영화에 대한 감상을 잠깐 이야기하면서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희연 같은 경우는 창백한 얼굴로 영화에 등장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에 핏기가 돌고 진한 표정이 나와서 안심이 됐고 유미 같은 경우는 방어적으로 굳어 있던 표정이 한결 풀리면서 영화가 끝이 났는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인물들의 표정이 깊게 남았습니다. 먼저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작년 〈흐르다〉를 개봉하고 빠르게 다음 작품이 나왔는데 작품 만드시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김현정: 재작년에 원작 시나리오를 처음 보내주시면서 작품 의뢰를 같이 주셨고, 개인적으로는 〈흐르다〉 이후로 방황의 시기를 겪었어요. 새삼스럽게 영화가 뭘까에 대해 고민을 하고 개인적인 고민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첫 작품을 장편을 하고 이어서 두 번째 영화도 장편으로 나오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들 때문에 고민이 더 깊었던 것 같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작품이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고민하던 지점이었는데 〈최소한의 선의〉는 원작 시나리오를 받고 읽을 때 다른 생각 없이 오랜만에 웃고 감동받은 시나리오여서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다만 이전 작업 진행이 시나리오를 만들고 제작지원을 받는 형태였다면 이번에는 제작사가 정해진 상태에서 작품을 들어가다 보니 도움 주신 분들께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다른 지점에서 고민이 있었지만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서 용기를 내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우정: 이어서 배우분들도 작품 시나리오를 받아보셨을 때와 이후 작품이 완성되고 극장에서 보셨을 때 다른 감정이나 느낌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받고 개봉하기까지 소감이 어떠셨나요?

장윤주: 시나리오를 받은 당시에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최소한의 선의〉시나리오를 같이 받아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회사 측에서 상업영화를 제안해 주셨는데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발랄하고 통통 튀는 이미지의 캐릭터여서 대단히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어요. 오히려 〈최소한의 선의〉 시나리오를 읽고 반전 아닌 반전이라던가 재밌는 부분들이 많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야기적인 부분들을 포함해서 연기적인 부분에서 기존에 비춰지던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의 모습 중에서 우울함이나 조금 더 깊이감 있는 부분들이 저에게도 분명히 있거든요. 기존에 작업하던 인디음악들을 포함해서 기존의 저의 보여지는 이미지와 다른 것들을 꺼내고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오히려 작품이 나오고 나서 생각한 건데 〈최소한의 선의〉가 시기적으로 한 줄기 빛 같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어쩌다 보니 올해 1월에 〈시민덕희〉가 개봉했고, 〈베테랑2〉 그리고 〈최소한의 선의〉, 12월엔 〈1승〉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하는데 이번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상업영화의 문법에서 제가 기존에 비춰지던 이미지를 활용한 캐릭터로 출연해요. 〈최소한의 선의〉는 충분히 만족스럽게 담담한 방식으로 어려운 문제를 잘 풀어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영화들도 물론 좋은 영화들이지만 개인적인 애정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수인: 임신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분석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있었어요. 그런데 김현정 감독님을 만나 뵙고 윤주 선배님을 차례로 만나 뵙는 과정에서 차츰 유미라는 캐릭터와 희연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여성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많은 부분들이 닮아 있다는 걸 느꼈고 그때 느꼈던 공통점을 통해 내용과 유미를 나름대로 풀어나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맡은 유미라는 캐릭터를 정말 열심히 하면 영화 안에서 충분히 내가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과 함께 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물론 회사의 추천도 있었고 주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어찌 보면 용기 내 도전했다는 점에서 좋은 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창훈: 대본이 왔을 때 일단 첫째로는 스케줄상 부담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여담인데 캐스팅되기 전에 어느샌가 요즘 등장하는 영화들이 점점 비슷해지고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더 단순화되고 평면화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던 시기였어요. 이런 시기에 〈최소한의 선의〉 같은 대본을 받으면 일단 굉장히 반갑고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보이고 거기에 어떤 친절함이 있고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는 마음이나 태도 같은 것들이 대본에서도 보였는데 만나서 작업하고 결과물을 봤을 때도 그 마음이 계속 이어졌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내가 아닌 주변 인물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항상 친절한 태도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 참 좋았어요.

 

영화 〈최소한의 선의〉 스틸컷


이우정: 먼저 장윤주 배우님께 질문드릴게요. 전에 언급하셨던 작품 선택의 연장선 상에 있는 질문인데 장윤주 배우님이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사랑받았던 캐릭터들이 있는데 〈최소한의 선의〉 작업은 안전 영역을 벗어나는 선택인 동시에 누군가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 주기 바랐던 모습을 만나셨던 것 같아요.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 중에 있어서 보여주고 싶었던 갈등과 막상 이걸 밖으로 꺼내서 작업을 할 때 느끼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촬영을 하시면서 느꼈던 두려움이나 내면에서 갈등이 생겼던 부분들이 있으셨나요?


장윤주: 촬영을 하면서, 어떻게 보면 촬영을 하기 전까지 배우들 캐스팅이 정리가 되고 또 감독님을 만나서 대본에 대해서 같이 얘기하는 과정들을 거쳤는데 촬영 직전까지는 오히려 좀 더 예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어서 제가 감독님 한번 만나고 싶다고 요청드려서 미팅도 했는데 감독님이 굉장히 과묵하셨어요. 저는 작업이나 프로젝트를 할 때 소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포함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는데 답을 못 들은 경우가 있었거든요. 〈최소한의 선의〉 같은 경우는 좀 더 깊이 대화하고 우리가 같이 얘기를 나누면서 질문도 하고 나름의 답도 찾으면서 만드는 게 더 재밌고 좋지 않을까 싶은 고민도 있었거든요. 근데 오히려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치고 촬영이 딱 시작됐을 때는 오히려 전에 느낀 두려움이나 불안이 없었어요. 감독님을 100% 신뢰하기도 했고, 감독님이 이전에 작업하신 단편, 중편, 장편들을 보면서 느낀 건데 인물들이 신기하게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어요. 근데 그 결이 감독님의 어떤 모습들이랑 닮아있어요. 그래서 희연을 연기할 때 감독님의 모습을 가져오면 어떨까 힌트를 얻었고, 감독님을 관찰하면서 표정이나 보이지는 않지만 속에 있는 뜨겁고 고집 있는 모습들을 가져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희연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더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고, 유미나 학생주임 선생님을 포함해서 프로젝트에 모인 사람들이 크고 작게 영향을 주다 보니 촬영 과정에서 생긴 두려움은 없었어요. 그리고 저는 모델 활동을 오래 했잖아요. 지금이 거의 20년 정도인데, 한 5년 정도 됐을 때 이 메커니즘이 이렇게 진행되는지를 알았거든요. 근데 또 한 15년 차 되니까 사실 A컷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20년 정도 되어보니 이제는 그야말로 전체가 보이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여기에서, 이 레이아웃에서 이 화보의 그림들을 이어갈 건지 터득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생각할 때 연기 같은 경우에도 한 20년 정도는 해야지 이제 좀 알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근데 모델 활동 때 느꼈던 마음처럼 매 신마다 A컷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은 항상 들어요. 영화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A컷과 감독님이 생각하는 A컷, 사람들이 생각하는 A컷은 다 각자 다르겠지만 촬영하는 모든 신마다 집중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점에 가장 집중을 했던 것 같아요.


이우정: 최수인 배우님 같은 경우는 이제 막 성인이 되고 한 촬영이라고 들었는데, 성인 배우가 되었다는 점이나 여러 부분에서 힘이 많이 든 연기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유미라는 인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캐릭터를 만드셨는지, 그리고 감독님과 함께 이 인물에 대해서 얘기 나누셨던 것 중에 기억나는 것들이 있는지 여쭤볼게요.


최수인: 영화 주제를 중점으로 봤을 때 어려움이 컸던 건 사실이에요. 촬영을 시작할 때 특히 해석이 어려웠는데, 유미라는 학생과 희연이라는 선생님이 어떤 관계를 이루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감정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 단계는 임신 과정이 어떤 부분에서 힘들고 왜 아프고 어떤 신체 변화들이 생기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 부분들에 있어서 감독님과 소통을 많이 했고 감정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자문을 많이 구했는데 사실 임신이라는 주제로 소통이 잘 됐던 건 오히려 윤주 선배님이었던 것 같아요.


장윤주: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들을 다 통틀어서 출산과 임신의 경험을 한 사람이 저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수인 배우에게 특히 신체적인 변화나 디테일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줄 수 있었어요.


최수인: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을 때면 선배님께 찾아가서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요? 하면서 연기에 대한 소통도 하고 개인적으로 프로그램을 참고하거나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면서 임신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던 과정들이 떠오르네요.


이우정: 이창훈 배우님께 질문드릴게요. 제가 봤을 때 희연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3학년을 담당하다 삶의 무게 중심을 자기 개인적인 삶에 조금 더 치중하기 위해 중심을 옮기면서 더 휘둘리고 흔들리는 인물 같아 보였거든요. 그에 반해 학생부장 선생님은 이미 그 중심을 딱 잡고 있는 인물로 보였어요. 그래서 희연에게 휘둘리지 않게 중심 잡으라고 하는 대사도 찰떡같이 붙었다고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학생부장이라는 인물 자체가 과한 선을 넘지 않아서 오히려 현실감 있게 보여진 것 같은데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연기에 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창훈: 대본리딩 할 때 감독님이 배우나 캐릭터에게 원하는 게 어떤 건지 알고 '난 그걸 해낼 수 있어.' 같은 계시 같은 마음보단 캐릭터에 대해 감독님이 생각하는 면과 내가 생각하는 면이 비슷하겠구나라는 정도를 알게 됐고 현장에서 그 마음을 믿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좀 편하게 감독님의 시선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우리가 스스로를 여길 때는 상대적으로 복잡하게 받아들이면서 타인은 그에 비해선 단순하게 해석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저는 선이라는 걸 생각할 때 희연이 개인에게 치중하려다 보니 더 흔들렸을 수 있지만 저는 애초에 고정된 사람을 크게 신뢰하지 않아요. 경계에서 갈팡질팡하고 뭐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고, 그래서 더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살아있다고 느끼고 더 좋은 사람 같고 오히려 신뢰가 가요. 편이라는 것도 이 사람이 무언가를 정했다는 뜻이고 무언가를 정하면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어떤 단체를 위한다던가 좋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이 인물은 그런 의미에서 유미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거죠. 그래서 ‘이 나이 때는 이런 게 필요하고 이런 상황에선 이런 미래가 있으니 이렇게 가야돼.’ 라고 단순히 해석을 하게 되니까요. 학생부장이 삶에서 어떤 고정된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지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을 해요.


장윤주: 연기를 하면서 집에서 배우 김민재 씨가 남편 역할을 기꺼이 해주셔서 든든했는데 촬영장에서 의지가 되는 건 이창훈 배우님이었어요. 연기를 일단 너무 잘하시고 개인적으로 이전부터 너무 좋아하는 배우여서 학생주임 역할로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이전에 참여했던 〈세자매〉에서도 목사님 역할로 잠깐 나오시는데 이창훈 배우님과 함께 연기를 하면 막힘이 없어요. 같이 나왔던 신들이 편집 하나 없이 영화에 다 들어갈 정도로 현장에서 이창훈 배우가 갖는 유연하고 리얼리티를 실감 나게 하는 자연스러운 부분들이 있어요. 지난 GV에서 이창훈 배우가 현장의 공기 같은 존재이길 원했다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지난 현장을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영화 〈최소한의 선의〉 스틸컷


이우정: 자칫 학생부장 캐릭터는 비호감적으로 과하게, 세게 나갈 수 있는 연기도 보이기 쉬운 그런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이 없어서 감독님과 어떤 부딪힘이 있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그럼 이제 감독님께 다음 질문드릴게요. 영화의 첫 장면부터 졸업식 창밖의 풍경, 교무실 안에 희연까지 움직이는 카메라 동선을 보면서 감독님의 이전작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특히 〈최소한의 선의〉가 문제의식이나 명확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전 작업들과 다르다고 느껴졌는데 혹시 이전과 달라지고 싶다라는 이런 욕망이 반영된 건가요?


김현정: 작업의 목표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 작업은 대중들이 더 많이 찾아봐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저는 보통 샷 길이가 조금 더 길고 커버리지를 많이 하지 않는 쪽으로 샷 구성을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조금 더 커버리지를 많이 찍고 리듬감을 더 많이 줄 수 있게끔 목표를 설정했어요. 촬영 감독님이 경험도 많으시고 잘 이끌어주셔서 연출 방식을 조금 달리할 수 있어요. 연기적인 부분도 저는 오히려 예전에는 통제형이었어요. 그래서 말투나 연기에서 제가 느끼기에 옳다고 느끼는 쪽으로 요청을 하는 편인데 〈흐르다〉 이후에 영화적인 질문들이 몇 가지 생겼거든요. 연기를 해주시는 배우님들을 좀 더 믿고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제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던 부분이 있다고 할 때, 각자가 갖고 있는 부분들을 더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오히려 괜히 혼란을 가중시킬까봐 말을 아끼게 됐어요. 이 작업에 대해서 제가 어떤 부담이 있었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그것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얻었으면 하는 지점에서 저를 조금 덜어내고 작업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배우님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지점들이 다 다르고 전부 매력적이예요. 특히 이 영화에선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셨던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와 달리 억눌린 인물을 그릴 때 윤주 선배님이 갖고 있는 연기적인 잠재력들이 좀 더 발견됐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저의 어떤 발언이 좋은 쪽으로 항상 작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디렉팅에서 더 조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장윤주: 그럼에도 감독님은 항상 어떤 신에서 연기를 하면 제일 제가 많이 들었던 디렉션이 "조금만 덜 표현할까 봐요.", "조금만 더 보여주세요.", "조금 더 절제해 주세요." 같은 표현들이었어요. 근데 오히려 저는 이런 디렉션이 저한테 되게 필요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고 느껴요. 희연이 자칫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여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근데 그 완급조절을 감독님 디렉션을 통해 할 수 있었고 연기할 때 큰 도움이 됐어요.

 

이우정: 장윤주, 이창훈 배우 두 분께 두 분은 특히 교무실이라는 어른의 공간에서 촬영을 하셨는데 그 공간에서 두 분이 주고받았던 대화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실까요?


장윤주: 특별히 대화라기 보다는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있어요. 회의 장면 같은 경우에는 학부모 회의실에 다들 너무 연기를 잘하시는 연극배우님들이 다 한자리에 모여계셨거든요. 근데 그 자리에서 연기를 하려니까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계속 혼나는 신인데, 상대하는 배우분들이 선배님이고 연기를 잘하신다는 점을 떠나서도 어려운 신이었어요. 그럼에도 잘 헤쳐나갈 수 있었던 건 이창훈 배우님이 그 자리에서 옆에 든든히 자리를 지켜주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회의가 정리되고 나갈 때 학생주임 선생님이 "이제 그만 내려놔요." 하고 나가잖아요. 그게 원래 없던 대사였어요. 그런 부분들을 보면서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이우정: 학부모 위원회 장면 같은 경우도 두 분 다 각각 어떤 소신 발언들을 하시잖아요. 그 장면에서 그 대사들을 내뱉을 때 맡았던 역할도 있었겠지만 배우분들 각각 개인적인 내면의 소신 같은 것에 연결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긴 했거든요. 혹시 관련된 지점들이 있을까요?


이창훈: 저는 당연히 보면서 찍을 때도 그랬지만 그 대사를 지금 학부모들의 대사를 좀 못되게 말하는 게 생각했을 때 과연 아이를, 그냥 단순하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다른 아이를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자신의 아이에게 과연 좋을까? 저는 아이가 없지만 그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장윤주: 저희가 작품 들어가기 전에 전체 리딩이라는 걸 하잖아요. 전체 리딩을 할 때는 정말 책을 읽어나갈 때처럼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여서 그때 제 연기가 제일 좋았었어요. 유미와 그간에 있던 이야기들을 나열하면서 어차피 학교 못 다닐 거니까 그러니까 우리 이거는 허락을 하자 그리고 육아 탈출하려고 학교로 다시 오는 게 아니다. 어차피 도와줄 사람이 없다. 그 대사에서는 계속 울컥했던 대사였던 것 같아요. 전체 리딩 했을 때부터 혼자 집에서 연습을 할 때, 그리고 내가 왜 계속 이 대사에 울컥하지 어떤 한 인물을 바라보는 마음이 내 안에 있는 거구나 하면서 그 대사는 할 때마다 복받치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 〈최소한의 선의〉 스틸컷

 

이우정: 최수인 배우님은 유미라는 인물이 이 영화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는데 대면하는 인물들과 경험하는 온도 차들이 엄청 극심하죠. 친구 강희, 동생 유정, 전 남자친구, 아빠 그리고 희연 선생님 만날 때마다 다 다른데 다양한 인물들과 부딪힐 때 가장 내적으로 힘들었던 인물은 누구였고 가장 친밀했던 인물은 누구였을지 궁금했습니다.


최수인: 사실 유미 또래 제일 친밀했던, 정말 터놓고 말 터놓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건 강희였다고 생각하고 같이 웃고 장난치고 이랬던 신들이 사실 조금 더 있었어요. 그걸 연기하고 보면서 유미가 너무 행복했겠다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편집되면서 몇몇 장면들은 사라졌지만 유미가 처한 상황이나 성격을 생각할 때 보여지는 건 너무 밝은데 싶다가도 하나뿐인 친구랑 소통하는 게 기쁘고 좋아 보이는 건 사실이었어요. 촬영을 하면서도 강희 역할을 맡아주신 배우분과 정말 둘도 없는 단짝 친구처럼 친밀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인물은 아무래도 남자친구가 아닐까 싶어요. 입장을 이해는 하겠지만 유미는 강인하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뭐든 열심히 하고, 아이도 키우고 육아도 하고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남자친구가 밉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우정: 이 영화를 보면 뭔가 현재 나를 투영시키기도 하지만 막막했던 10대 시절이 떠올리게도 만드는 것 같아요. 감독님, 배우분들께 이제 나이 지나온 10대에 대해서 한 문장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수인: 저는 중고등학교가 모두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있어서 온라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어쩔 수 없이 정말 차분하게 그냥 조금은 지루했던 학교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장윤주: 저도 이렇게 일찍 데뷔를 했었거든요. 16살에 모델 학원에 등록을 하고 계속 연습생 시절을 한 2년 6개월 정도 보냈고 그래서 나의 10대는 감각으로 남아있어요. 꿈을 쫓아서 계속 무모하지만 꿈을 향해서 계속해서 노력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김현정: 결핍인 것 같습니다. 그때 충족되지 않고 혹은 되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에 대해서 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영화를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창훈: 저의 10대는 '답답했다'. 저는 정치외교학과를 나왔고 연기 전공이 아니에요. 근데 왜 갑자기 불현듯 군대 갔다 24살에 연극을 시작했을까 생각해 보면 배우에 대한 동경보다도 그냥 10대에 답답했던 게 쌓이고 쌓여서 분출이 됐는데 그게 저는 연극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덥고 습하고 답답한 그때의 감각도 생각납니다.

 

영화 〈최소한의 선의〉 스틸컷

 

관객: 네 분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 우선 감독님께 먼저 질문드릴게요. 유미의 집에 보면 십자가 자석이 있어요. 영화상에서 유미의 아버님이 다니시진 않으셨을 것 같은데, 실제로 산모의 권리라든지 임신 중단의 권리 약간 좀 분분한 사회적 얘기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이슈를 염두에 두고 문 앞에 십자가를 붙이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장윤주 배우님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처음에 놀랐던 연기가 비빔밥을 먹으면서 눈물이 갑자기 터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부분이 너무 놀랐는데 비빔밥이 입맛 없을 때, 혹은 입덧이 올 때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비빔밥이 매개체로 나오는데 해당 신을 찍을 때 개인적인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수인 배우님은 착한 역 말고 약간 나쁜, 터프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 역할은 아주 나쁜 역할은 아니지만 반항하는 연기가 있잖아요. 급식실 장면에서 어떻게 연기에 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창훈 배우님이 만약 유미의 아버지로 연기하신다면 어떤 행동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김현정: 사회적 이슈를 고려한 건 아니지만 그 장면을 찍을 때 의식은 됐어요. 로케이션으로 선정된 집에 원래 붙어 있어서 자칫하다가 의미 부여가 많이 될 수 있어서 제거를 할까 고민도 했었거든요. 근데 또 그러지 않았던 것은 말씀해 주신 대로 보수적인 유미 집에서 어떤 폭력 같은 것들이 간접적으로 조금 비춰지지 않을까 싶어서 따로 제거하진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연출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를 하려고 한 부분은 따로 없습니다.


장윤주: 비빔밥 장면 같은 경우에는 저는 결혼을 했고 임신을 숙제처럼 준비를 계속하면서 되게 힘들었어요. 막상 임신을 하면 기쁠 줄 알았는데 기쁘지 않고 오히려 조금 싫어지는 마음들이 생겼어요. 가끔 내 자신이 되게 싫을 때, 왜 나라는 인간은 왜 이 모양일까? 어떻게 보면 집의 벽지 안에 곰팡이처럼 희연은 겉으로 볼 때는 윤리 선생님이고 어떤 문제 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집에서도 편하게 생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자신의 아주 깊은 내면은 본인만 아는 지점이 있잖아요. 임신을 하면 나를 챙기고 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더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항상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잘 차려 먹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실상 대충 남은 나물들 비벼서 먹다가 그 괴리를 불현듯 느끼는 일상을 잘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최수인: 유미가 고집이 세다라는 생각은 계속하고는 있었는데 얘가 그래서 도대체 지키고 싶은 게 뭘까? 학교생활을 더 지키고 싶을까, 아니면 아이를 더 지키고 싶을까? 정말 저도 유미를 연기하면서 진짜 너무 고민이 많았는데 급식실 신 같은 경우는 약간의 화풀이와 고집이 표출된 장면이었다고 생각했어요. 학생이 급식실에서 밥 먹는 게 뭐가 이상한 건가, 왜 나는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빠와 싸우고 난동 부리고 친구 집에서도 나오게 되고, 엄마한테도 그렇고 남자친구한테도 그렇고 그럼 난 도대체 어디 가서 밥을 먹고 어디를 가서 내가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유미가 그랬듯이 연기하는 저도 혼란스러웠거든요. 근데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학교라는 공간 자체에서도 왜 선생님은 나한테 밥을 못 먹게 하는가라는 그때 어린 마음과 유미의 그 힘듦이 막 우러나왔던 신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창훈: 제가 아버지라면 어떤 행동을 취하지를 못할 것 같아요. 어떤 완결된 행동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본능적으로 딸이 느낄 수 있는 안전한 거리를 두고 그저 일단은 같이 동행하는 수밖에 없다.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이전 작품처럼 주요 장면에서 블랙아웃을 쓰시는데 이번에도 출산 장면에서 블랙아웃을 사용하셨잖아요. 이 연출이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느껴지는데 이번 작품에선 어떤 의도로 사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정: 유미가 출산에 임박해서 서로 감정의 고조 상태를 온전히 몸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사실 영화를 통틀어 편집이 제일 고민이 많이 됐던 부분이었어요. 감정의 폭이 너무 커서 고민을 하다가 일종의 감각적인 연결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서사적으로 감정 폭이 너무 크니까 출산 장면에서 먼저 뮤트를 시키고 그다음 화면을 블랙으로 암전해서 감각이 없어지는 경험을 통해 관객분들을 빠져나오게 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겠다는 의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고심을 하다 넣게 된 연출이고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전 작인 〈흐르다〉에서도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굉장히 긴 블랙아웃이 등장하거든요. 그런 활용들이 영화 편집과 함께 시도를 했던 부분들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좋다고 느꼈어요. 도식적인 활용에서 벗어나서 영화에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영화의 한 장면으로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우정: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아쉽지만 다들 마무리 인사 부탁드릴게요.


김현정: 배우분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학생부장 역할이 단순한 악역처럼 보일 수 있었는데 저는 이창훈 배우님께서 해주셨을 때 정말 더하거나 덜 부분 없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진짜 장면이 조금은 뻔하게 흘러갈 수 있는 지점을 늘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수인 배우님은 어려운 장면들이 굉장히 많았던 역할인데 늘 항상 제가 생각한 이상의 연기를 해주셨어요. 윤주 선배님은 온몸으로 연기해 주시는 걸 제가 옆에서 지켜봐서 제가 힘들어서 주저 앉고 싶을 때마다 선배님이 해주시는 연기들을 보면서 힘을 더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진짜 온 마음, 온 몸으로 영화를 만들어주셨던 부분들에 있어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관객분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장윤주: 저희가 남아있는 GV 일정들이 있지만 사실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한 분 한 분 만날 때마다 되게 소중한 시간인데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돼서 진심으로 너무 반가웠습니다. 영화 보고 좋은 리뷰 남겨주시고 입소문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좋은 기회로 뵐 수 있길 바라요.


최수인: 작년에 좋은 배우분과 스태프분들을 만나서 기뻤고 개인적으로도 역할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찍은 영화가 개봉을 한 지금까지도 실감이 크진 않아요. 영화관에 걸린 포스터 보면서 겨우 실감하곤 하는데 저는 이 영화가 사회에 정말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관람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관에 발길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까운데 그래서 오히려 입소문을 통해서 영화가 많은 분들에게 전달이 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좋은 시간 좋은 얘기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창훈: 내가 어떤 영화를 찾고 어떤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런 것들로 미루어보면 거기에 나 자신이 있는 것 같다고 여겨요. 여기에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 아마 분명히 따뜻한 분들일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각자 돌아가시는 곳이나 머무르는 공간이 항상 따뜻하시길 바랍니다.


이우정: 이 영화는 아마 계속 곱씹으면 각각 내면에 더 확장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참석해 주시고 이야기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만 인디토크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