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Review] 〈해야 할 일〉: '오늘' 해야 할 일
〈해야 할 일〉리뷰: ‘오늘’ 해야 할 일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글입니다.
문제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였기 때문에 일어난다. 한양중공업의 입사 4년 차 대리 강준희는 구조조정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 준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업무의 마무리를 위해서라면 야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주말이라도 회사로 향한다. 준희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해고 대상자 파일을 정리한다. 요구에 맞춰 척척 수정안을 내놓는 준희를 보며, 차장은 감탄한다. “일 정말 잘하네?” 칭찬을 받는 준희의 표정은 어딘가 어색하다. 마치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한 사람 같다. 준희는 자신의 성실함이 동료 직원을 베는 날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가 성실히 작성한 문서에 따라 해고 절차는 착착 진행될 터였다. 준희는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자신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되뇐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준희의 믿음은 일순간 무너진다. 해고 대상자를 추리던 중, 상부가 원하는 대로 대상자 명부를 수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준희는 회사의 실리와 당위 사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였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해고 대상자들은 소위 블랙리스트에 오른 직원들이었고 회사의 선택은 부조리한 것이었다. 준희는 사회적 존재와 회사원의 정체성 사이, 윤리 규범과 상부의 지시 사이에서 갈등한다. 고민 끝에, 준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아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한다. 회사의 부조리함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사무적인 대답만을 반복한다. ‘당신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어차피 할 일’이라는 것이다.
회사는 건조한 태도로 해야 할 일을 처리한다. 해고 대상자들의 저항에도 개의치 않고 도리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게시한다. 회사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고 한다. 회사의 논리는 놀랍게도, 정리해고 대상자들의 입을 통해 재현된다. 왜 열심히 하지 않았냐는 인사팀의 면박에 생산직 직원들은 답한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문제는 개인의 불성실함이 아닌, 개개인의 강점을 고려하지 않은 배치와 잦은 부서 이동이었다. 영화는 개인에게서 사회로 시선을 돌린다. 성실하게 일하여도 인정받지 못하고 도리어 벼랑에 내몰린 이들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성실하지 못해서 해고당한다는 회사의 논리를 반전시킨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는 인사팀 내에서도 드러난다. 해고 대상자 면담을 하던 준희는 답답함에 대책을 강구하려 애쓰지만, 돌아오는 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자조의 말뿐이었다.
회사의 부조리에 반발한 준희의 대척점에는 인사팀 부장이 있다. 부장은 누구보다 회사를 아끼는 인물로 회사를 위해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서 모순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부장이 말한 구조조정의 목표는 회사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재를 뽑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희망퇴직을 쓴 직원은 대부분 대리급으로 회사에서 젊은 층에 속했다. 회사를 위하지만 정작 회사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부장은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다. 그는 한양중공업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를 원하지만, 그 방법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준희를 통해 제기되는 뿌리 깊은 인습과 구조의 문제를 묵인한다. 영화는 개인의 결단만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뿌리 깊은 인습과 불합리의 구조를 제시한다. 이 시점에서, ‘회사의 지시라면 부정한 일이라도 해야 할까?’라는 판정의 물음은 ‘회사의 미래,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라는 설명의 물음으로 전환된다.
영화의 마지막, 준희와 동우는 신년사를 사내 게시판에 부착한다. 신년사에는 구조조정이 끝났으니, 새롭게 뭉쳐 새해를 준비하자는 말이 쓰여있다. 신년사 옆으로 불과 몇 개월 전, 해고 반대 시위대가 부착한 벽보가 보인다. 그곳에는 뭉쳐서 구조조정에 대응하자는 또 다른 목소리가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다. 멈춰서 벽보를 보는 준희에게 동우가 남긴 말은 의미심장하다. “올해도 춥대.” 영화는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올해에도 겨울은 온다. 계절은 돌아오고 실수는 반복될 것이다. 영화는 미래를 낙관하지 않음으로써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