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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단평] 〈마녀들의 카니발〉: 점들이 연결되면

indiespace_가람 2024. 10. 8. 16:53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점들이 연결되면

〈마녀들의 카니발〉 〈우리는 매일매일〉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삶의 어떤 문제들이 우리를 가파른 절벽으로 내몰 때, 추락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온전한 자리를 찾을 때까지 앞을 둘러싼 문제들을 돌파하며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마녀들의 카니발〉은 여성이 더 이상 가부장적 제도로부터 내몰리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서 있을 자리는 내가 정한다”고 외치며 안전지대를 향해 행진하는 부산 중심의 지역 여성운동을 다룬다.

 

영화 〈마녀들의 카니발〉 스틸컷


페미니즘이 직면하는 문제는 격리와 계보의 영역에서 잘 드러난다. 여성혐오와 성차별의 문제는 각종 사회집단과 미디어 속에 마치 공기처럼 들어 차 있음에도 가부장적 질서 체계를 위협한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쉽게 격리된다.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간단히 묻혀서 각각의 페미니스트들은 분명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의 문제들을 개인으로 직면하느라 고되고 외롭다. 


또한 그것들은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없던 것이 되며 생성과 함께 빈번히 파괴된다. 기존 질서에 위협을 가한다는 이유로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목소리가 없다는 것과 동일시하며 여성운동의 역사는 마치 없는 것처럼 취급되어 왔다. 페미니스트 선언과 함께 거리에 쏟아져 나온 여성들을 사회가 아직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역사와 계보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상 검증과 문제 색출에 대한 공포는 시대를 막론하고 여성의 삶에서 꾸준히 반복되어 온 경험이다. 다만 간과한 점이 있다면, 마녀로 표적화되던 여성에겐 이미 충분한 계보가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구시대적인 역사관에 끊임없이 질문하며 새로운 집단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녀들의 카니발〉은 1990년대 여성 노동자의 권익 신장 운동이 종교계 성폭력 사건 규탄, 여성장애인 성폭력 대응, 성매매 집결지 폐쇄 운동, 대학 내 여성운동, 청소년 스쿨미투를 아우르는 부산 지역 여성운동의 계보를 제시한다. 그들의 역사는 더 이상 개인의 역사가 아니다. 어제의 영(young) 페미니스트는 오늘의 영 페미니스트와 만난다. 개별의 점들은 하나의 선이 된다.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강유가람 감독의 〈우리는 매일매일〉은 학내 반성폭력 운동부터 호주제와 군 가산점 폐지 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투쟁하던 키라, 짜투리, 어라, 흐른, 오매를 중심으로 2000년대 대학가 중심의 영 페미니스트들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그들의 과거는 매일의 역사를 거쳐 현재로 이어지지만 더 이상 그들은 마냥 젊고 언제나 패기 넘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페미니즘을 역사로 지닌 이들은 이제 일상 속에 어디에나 존재하며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시간이 지나 집단이 군중 속으로 흩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였다는 사실은 군중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페미니즘의 시작에 대해 묻는다면 여성들이 각자가 가져온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과거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비추고 싶다. 길고 지난한 싸움을 통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데려갈 수 있음을 깨달은 이들은 승리에 대해 함께 축배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보러 가기: 〈우리는 매일매일〉(강유가람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