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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장손〉 인디토크 기록: 끼니를 함께 하는 食口가 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indiespace_가람 2024. 9. 25. 17:35

끼니를 함께 하는 食口가 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장손〉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9월 10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오정민 감독

진행 이동진 평론가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기록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바라는 게 많다. 기상은 몇 시에 해야 하며, 밥은 꼭 챙겨 먹어야만 한다. 달고 짠 것들은 몸에 해롭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되고, 귀찮더라도 하루에 한 번쯤은 잠에 들기 전 안부 인사를 먼저 건네줘야 한다. 가정의 문화마다 다르겠지만, 대개 우리 부모는 조금 귀찮음을 동반한 잔소리꾼이다. 물론 그걸 잃고 나면 그리움과 후회 속에 파묻히겠지만. 
내 머리에 피가 마를수록, 부모가 건네는 관심은 부담스럽고 때로는 불쾌하다. 회초리가 두려워 고개 숙여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 대던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목청은 한계 없이 그들의 말에 대응/대항할 수 있다. 언제 이렇게 자란 건지, 무상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탓하는 것도 잠시, 갈수록 막돼먹어 가는 것만 같은 나 자신에 개탄스러움이 울컥 복받치기도 한다. 
자라날수록 부모와 갈등이 빚어지는 지점이 세밀해지고 다양해지고 횟수가 늘어가는 건 예상컨대 확실하다. 과학적으로 이를 증명하기란 터무니없는 주제라 확인시켜 줄 방법이 없어 아쉬울 뿐. 어릴 땐, 부모의 손길 아래 보호받아야 하니 그들의 의견이 곧 나의 의사가 되는 건 불가항력적인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양육 아래 독립된 개체로서 인정받는 ‘성인’이 되는 순간까지도, 부모의 간섭(강하게 말해)은 끊이지 않는다. 결국 부모-자식 간의 싸움은 여기서 발생한다. 이제는 내 말을 듣지 않는 너. 서로를 존중해주지 못하는 우리.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부지게 공표하는 우리에게, 고집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부모. 그들은 뭐가 그렇게 두려워 우리의 자의적 선택이 못마땅한 걸까.  
공포의 근원을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선, 그들이 살아온 환경을 잠시 떠올려야 한다. 부모 세대, 사실 몇십 년의 시간은 긴 한국의 역사 속에서는 얼마 안 되는 짧은 구간이지만, 안타깝게도 초 단위의 시간을 셈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건과 위험이, 시간의 틈새를 억지로 벌려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창밖의 풍경. 영화 〈장손〉의 인물 승필(우상전)은 한복을 입고 지내던 시기를 넘어, 기계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기상천외한 변화까지 살결로 직접 느꼈다. 배울 틈도 없이 변화하는 세상, 내가 지금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확인한 겨를조차 없이 빠르게 세월이 흘러간다. 흔들리고 불균형한 지반 위에서 매번 위험한 씨름을 이어 나갔던 그들. 인간의 속도를 고려할 새도 없이 멈출 생각이 없다는 듯 고속으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어렴풋이 원했던 건 아마 안정적인, 안온한 하루가 아니었을까? 그들의 모든 지혜와 당신을 향한 충고는 거기서 파생되었다. 전쟁 같은 매일 속에서 깨달은 지혜. 당신을 걱정하기 때문에 쏟아 내야만 하는 나의 모든 정신과 애정. 그리고 알면서도 눈, 귀를 가린 채 모르쇠를 일관하는 우리. 영화 〈장손〉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괜스레 시끄러워진다. 

 


오정민 감독(이하 오정민): 오늘 이 자리가 많이 떨립니다. 안녕하세요. 〈장손〉의 감독 오정민입니다. 이렇게 존경하는 선생님과 관객분들이 모여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는 관객분들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의견, 감상평 공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동진 평론가(이하 이동진): 함께하고 계신 관객분들께서 적극적으로 말씀 남겨 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영화를 만들려면 많은 땀, 또 수많은 아이디어, 의지,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할 텐데 좋은 영화들은 이렇게 의미심장한 것들의 우연한 만남이 영화 밖으로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장손〉의 마지막 장면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눈이 처음에는 안 오지 않습니까?

오정민: 원래 의도했던 장면은 눈이 내린 것이 아니라 내려 있는 상태에서 촬영을 하길 원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공간에 눈이 오는지 2주 동안 계속 지켜보면서 언제든 출동하기로 약속했어요. 그리고 전날 새벽에 가서 눈이 내린 것을 직접 확인하고 갔는데요. 첫 테이크 때 갑자기 눈이 도중에 내려 버려서 영화가 갑자기 너무 따뜻하거나, 낭만적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 있었고, 시간이 많이 없었는데도 욕심이 있어 한 테이크를 더 감행했었습니다. 직후에 바로 해가 뜨더라고요. 주어진 내역 중에서 최선을 택한 거 같습니다. 

이동진: 어떤 예측할 수 없는 변화 같은 것들이 말 그대로 굉장히 성스럽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제일 먼저 느낀 건 정말 곳곳에 땀이 서려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작’이라는 표현이 떠오르기도 했구요. 그런 점에서 말씀을 드린다면 이 영화의 준비기간이 5년이라고 하셨고 또 세 개의 계절을 담으셔서 굉장히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갔을 거 같습니다. 

오정민: 제가 신인 감독이어서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일단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렇게 과감하게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에 시나리오 쓸 때 이런 힘든 과정인 줄 알았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것 같고요. 기간이 길다 보면 스태프랑 배우들 인건비, 진행비들이 많이 지출되는데 그 부분은 저는 고려를 하지 않았었거든요. 저는 그냥 소설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썼던 것 같아요.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PD님들이 알아서 잘 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동진: 사실 독립영화를 찍을 때 짧은 기간 동안 집중해서 찍는 게 일반적인데, 이 영화는 계절을 담아야 하고, 또 무엇보다 보신 것처럼 배우들 간의 리허설이나 양상들이 너무 중요해서 꽤 오랜시간 공을 들인 영화로 보였어요. 

오정민: 차미경(혜수 역)  배우님은 과거 제 졸업 영화 주인공이셨는데, 그때부터 장편을 함께하기로 약속을 해주셨고, 그리고 손숙(말녀 역) 배우님께서는 ‘자기는 여름만 나오면 되니까’라고 전하셨었습니다.(웃음) 나머지 선배님들은 여태까지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여기서 보여줄 수 있겠다라는 판단을 감사히 해주셔서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동진: 배우님들 입장에서는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강렬한 확신이 있었으니까 스케줄을 감당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좋았어요. 저 집에서 오래간 살아온 가족이었을 것 같고, 리딩이나 리허설 같은 걸 굉장히 많이 하셨을 거라 추측됩니다. 

오정민: 저는 영화를 많이 찍지는 않았지만 카메라라는 매체는 아주 정직하게 모든 걸 담아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사전에 최대한 많이, 어떻게든 만나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친한 척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친해져야 가족 간의 접촉도 진정성 있게 보여진다고 느꼈고요. 저희가 총 27회차 촬영을 진행했는데 저희 스태프과 배우분들이랑 하루에 10개 컷 정도를 공들여 찍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동선을 말씀드리면 배우분들은 워낙 전문가셔서 제가 원하는 것 그 이상 혹은 더 좋은 제안, 디테일한 부분들을 채워주셨습니다.  

이동진: 영화 자체가 너무 아름답기도 하잖아요. 상여를 보여주는 장면부터, 가족들이 사는 집 자체도 굉장히 놀라웠었습니다. 촬영을 ‘합천’에서 진행했다고 들었는데요. 

오정민: PD님과 집을 굉장히 오래 찾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추가 투자 제작 지원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쉴 수밖에 없어서 PD님과 한 1년 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었고, 우연히 합천에서 굉장히 큰 집을 발견했는데 제가 로케이션 찾을 때마다 아쉬웠던 게, 대부분의 한국 집들이 너무 작더라고요. 출연하는 배우들이 여유롭게 합을 맞추고 풀샷을 확보할 수 있는 집은 일반적으로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큰 집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마침 합천에서 그런 집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리고 집주인 선생님께서 집을 굉장히 소중히 여겨주셔서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계셨었고, 큰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영화 〈장손〉 스틸컷


이동진: 〈장손〉이라는 작품이, 작품을 넘어 민속학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중에서 등장하는 한국의 제사나 장례 풍경 같은 것들에 대한 건데, 작품을 제작하면서 한국적인 정서나 문화 같은 것에 대해 조사를 굉장히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오정민: 저는 어렸을 때부터 대가족의 문화에 살아와서 익숙했던 것들이고, 실제 저희 할머니 또한 이렇게 상여를 모셨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도 물론 있었고요. 

이동진: 굉장히 특이한 게 영화의 중반까지는 굉장히 유머러스한 블랙 코미디적인 측면도 많았습니다. 특히 장례식장 장면에서 상주, 막내 손주가 등장하자 네가 잘해야 한다며 가족과 친척이 둘러싸 이야기하고, 빈소에 오신 분들을 맞이하다가도 갑자기 슬픔이 넘어올 때는 통곡하고, 우리의 실제 장례 문화가 잘 반영된 거 같았어요. 

오정민: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대가족의 장손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장례식으로 소환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 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장례식장이라는 장소가 사실 슬픔을 공유하는 장소라기보다는 너무 정신없거든요. 저는 한 번도 그 속에서 슬픔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무슨 얘기를 할 때마다 돈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엄숙해야하는 자리인데 사실 사람이 모이면 너무 웃기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현대적으로 좀 다르게 사용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해봤던 것 같습니다. 

이동진: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순간에 너무 잘 이해가 되기도 하고 또 의문스럽기도 한 부분이 있었는데요.  성진(강승호) 이 밖에서 혼자서 등을 지고 울다가 다시 얼굴을 보이고, 마치 연기를 연습하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장면에서 이 성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오정민: 저는 장례식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잃은 슬픔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시간이 좀 지나야 망자의 상실감을 느끼기도 하듯이, 장례식장에서 우는 장면이 꼭 슬퍼서 연출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억눌려왔던 감정이라든지 그리고 미안한 감정이라든지, 어떤 분노라든지. 성진은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왜 나는 슬프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어떤 고민들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동진: 반면에 그렇게 울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였으면서, 후반부에 화재가 나는 장면에서는 망연자실해서 그대로 우는 장면이 있어요. 성진의 마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오정민: 사실 시나리오에 ‘운다’라는 표현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불이 사용되는 장면이다보니, 철저하게 안전을 위주로 리허설을 진행했고 반나절을 연습했는데, 그 감정적인 표현은 강승호 배우의 전적인 표현이었고 저는 그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뿐인 것 같습니다.

이동진: 대가족을 다루는 영화의 익숙한 맥락과 또 영화에서 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훌륭하게 담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가 두부 공장의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그 아이템을 특별하게 다룬 이유가 있을까요?

오정민: 두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거든요. 콩을 갈고 끓이고 굳히고 모든 게 빠져나가면서 아주 소량의 두부가 남는데, 그게 저는 대한민국의 어떤 가족과 굉장히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사실 저희 부모님께서 두부공장을 하십니다. 

이동진: 어쩐지 얼굴에 부티가 났었습니다. (웃음) 

오정민: 그래서 좀 익숙했던 것 같아요. 오프닝에서 두부공장의 모습을 오랜 시간 비췄던 거는 뿌연화면을 통해 관객분들이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영화에 몰입하기를 바랐었습니다. 

이동진: 두부에 대한 은유와 가족을 표현하는 하나의 모티프로 생각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오정민: 그렇게 많이 얘기를 하는데 제 기억에서 촉발된 건 사실이지만 좀 더 보편적인 얘기를 다루기를 바랐고 그리고 제가 유명한 감독이 아니기도 하고, 제 자전적인 이야기를 관객들께서 궁금해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웃음)

 

영화 〈장손〉 스틸컷

 

이동진: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는데요. 영화를 크게  세 부분, 경우에 따라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제사와 장례, 화재 사건이 있는데요. 

오정민: 할머니의 죽음을 기준으로 이 가족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어떻게 가족이 와해되는지, 왜 우리네 가족이 멀어지는가 라는 순수한 질문에서 출발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그런 가족들이 되게 미웠었어요. 속물적인 것 같기도 하고 낭만 같고, 그런데 그 나이를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이기적이고 악마 같은 모습이 저한테도 있다라는 사실을 느끼고 윗세대는 왜 그렇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이동진: 가족의 역사가 한국사 70년의 어떤 모습과 걸쳐 있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영화 제목으로도 나타난 ‘장손’이라는 인물이 처음엔 주인공 성진을 가리키는 것 같았는데, 사실상 한명이 아니기도 했고요. 할아버지와 아버지 태근, 그리고 성진까지. 시작과 끝이 동시에 촉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손’이라는 제목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가부장제를 표면적으로 다루고 있고, 가족 문제를 하나의 키워드로 가져가고 있는데요. 

오정민: 영화 제목을 오랜시간 고민했었습니다. 영화를 확장시킬 수 있는 환기형 제목으로 고려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논쟁적이더라도 좀 더 본질적이고 부정적인 감각을 일으키더라도 과감하게 ‘장손’으로 가자라는 결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올해 사라질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몇 십년 뒤 문화가 달라진 뒤에도 〈장손〉이라는 제목이 남겨지면 재밌을 거 같았습니다. 

이동진: 그렇다면 장손 ‘성진’에 대한 감독님의 구체적인 설정을 듣고 싶은데요. 

오정민: 초고 때부터 로그라인은 단순하게 ‘성진이 계절마다 집안을 방문한다.’였습니다. 카메라는 이 지역을 절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제한이 있었고 한 장소,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기 때문에 지방의 대소사에 초점을 맞추고 인물 간의 솔직한 관계를 담아내려 했습니다. 

이동진: 사실은 이 영화 속에서 모든 인물은 제각각의 비극과 비밀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색깔들이 서로 너무 달라서,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이념 갈등, 계급 문제까지 거의 모든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이 다 들어가 있었습니다. 

오정민: 평론가님의 말씀처럼 저는 이 단순한 가족의 한 미시사를 제대로 바라보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좀 더 거시적인 것들을 억지로 가져온다기보다는, 할아버지, 아버지, 저 또한 이 세계를 극복해낸 사람들이 아니고 사건에 휩쓸려 온 사람들일 텐데, 그것이 이 한 가족이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조금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일제 강점기를 겪어온 할아버지 세대가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사에서 유례가 없는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식민지의 땅에서 태어나 복권을 했지만, 또 전쟁을 겪고, 그 다음엔 독재, 민주화, 지금에 이르러 정보화 시대까지. 이렇게 다 겪고 간 세대가 과연 더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제정신을 차릴 수는 있을까요?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그런 부분들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습니다. 

이동진: 아버지 태근을 향한 트라우마가 담겨진 장면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난처한 주사를 부리는 모습이 영화 속에서 몇차례 목격되는데 가족들은 굉장히 자주 보았던 것처럼 익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영화에서 묘사가 되고요. 아버지가 취해서 주정을 부릴 때, 모자는 손발을 맞춰 제압하고, 할머니는 ‘숨은 쉬게 해라’라며 맞장구를 치죠. 액션 영화 만큼의 합이 느껴 지기도 했습니다.

오정민: 저는 낮에서 밤으로 이행되는 순간 이 집안에서 보이지 않았던 어떤 병적인 징후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되게 오래되어서 고착화된 어떤 폭력의 일종이자 행사 같은 느낌으로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오싹하기를 바랐는데 사실 찍고 보니까 너무 슬프더라고요. 촬영을 진행하고 편집된 완성본을 보면서 저 스스로도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모자가 정말 의도치 않았겠지만 기계적으로 착착착하는 합이 맞는 움직임이 있었거든요. 그러한 상황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어 왔는지, 그런 모습 속에 내재해 있는 그들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거 같습니다. 

이동진: 디테일에 관해서 감독님의 진심이 있었던 거 같은데요. 특히 통장을 보는 장면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돈을 이체한 습관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할머니는  25만 원, 35만 원, 50만 원 이렇게 몇차례 금액을 다르게 이체하기도 하고, 할아버지는 자동이체로 100만원으로 넣은 기록이 나타나요. 물론 한 차례 80만원 입금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전부 다 설계된 부분일까요?

오정민: 사실 완벽한 설계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돈을 쓰는 방식은 정말 다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한글을 잘 못하기 때문에 은행 서류에 대해서 되게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며 그리고 이게 고모의 돈이라고 추정될 뿐, 저는 이 모든 게 주장과 진술만이 반복이 되어서 누구의 돈인지 단언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동진: 묘사가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끝에 통장을 확인하던 성진이 눈을 감는데요. 죄책감일지, 양심일지 성진은 무슨 마음을 가졌을 지 알 수 없죠. 그리고 이런 질문이 저열한 질문이라는 걸 제가 아는데요. 성진은 저 돈을 어떻게 쓸까요?

오정민: 이 질문이 어김없이 받는 질문인데요. 고모의 원망을 안을지, 돈의 행방을 찾는지, 할아버지의 유산을 어떻게 판단할지 이 모든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오히려 다양한 얘기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동진: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은 참 그 자체로 아름답고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입니다. 할아버지가 멀리서 왼쪽 길로 가다가 중간에 멈춰서, 오른쪽 길로 가기 시작하면 카메라가 따라가고 어느 순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이 장면을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으로 생각하셨을까요?

오정민: 저는 오프닝과 엔딩을 떠올려야만 영화를 만들 수가 있거든요. 이 엔딩은 처음부터 변하지 않았던 장면이었습니다. ‘승필이 눈길을 걸어가다가 삼거리 앞에서 갑자기 혼란이 와서 어디로 갈지 망설이다가 저 멀리 보이는 산으로 걸어간다’가 원래 문장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산으로 가려고 하고 카메라는 어떻게든 그 할아버지를 쫓아가려는 그런 긴장감을 잘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장손〉 스틸컷

 

관객: 한 가지 궁금한 게, 영화 내에서 ‘불’에 대한 소재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사 때 지방을 태운다거나, 할머니의 화장, 또 고모 집의 화재 장면도 있었죠. 감독님께서 이 ‘불’의 소재를 의도적으로 배치를 하신 건지 만약에 배치한 게 의도적이었다면 어떠한 의도로 영화 속에서 불에 대한 소재를 배치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오정민: 세심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사를 지낸다는 마음을 담아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제 태도를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해봤을 때, 어떤 불이라는 도구를 떠올렸고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불이 점점 커지는 모습을 도입하게 된 거 같습니다. 

관객: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개별적 시퀀스를 떨어트려 봐도 완결성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기억이 남는 장면이 많았는데요. 할아버지의 엔딩 장면, 아버지의 주정을 막으려 아들이 싸우는 장면, 할아버지가 치매 증세를 보이는 데 갑자기 장면의 각도가 측면으로 바뀌면서 툭 튀는 장면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감독님께는 모든 장면들이 다 기억에 남고 전부 소중한 자식들이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공들였던 장면이 있었을까요?

오정민: 한 장면만 뽑기는 사실 좀 어려워요, 솔직히 모든 장면에 공을 들였으니까요. 그래도 하나만 꼽자면 아주 단순한 장면인데 여름에 성진이랑 승필이 산으로 걸어올라가는 장면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이것 때문에 영화를 찍게 되었나 생각할 만큼, 제 개인적인 감정과 이야기와 직면해 있고요. 어릴적 할아버지와 산소를 자주 갔었습니다. 그 기억이 이 영화를 시작하기 촉발하게 한 어떤 계기여서 그런지, 영화 속 배경이 여름이고, 따뜻한 장면인데도 저는 이상하게 매번 볼 때마다 그 장면에서 울컥하고, 소중합니다. 

관객: 제가 궁금한 부분은 영화 속에서는 잘 비춰지지 않았던, 큰 고모부에 대한 설명을 감독님께 듣고 싶습니다. 

오정민: 큰 고모부는 이 집안의 어떤 염증 같은 존재입니다. 성진이를 마치 자기 자식처럼 여겼을 사람인데, 성진과 관련된 어떤 사건에 의해서 이 사고를 당한 것처럼 나오잖아요. 한 사람을 위해 누군가가 저렇게 희생당하고, 타인들이 어떻게 소멸되는지 그 지점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마 지금 세대의 일들이 운명처럼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도 반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객: 할아버지가 산소에 가실 때 대변을 보시는 장면이 있는데 제가 생각했었을 때, 뭔가 가부장적으로 책임감이 있지만 어찌 됐든 부모님이 계신 산소 앞에서는 뭔가 유아기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도 있었는데, 혹시 감독님께서 이 대변 보는 장면에 어떤 의도를 담으셨을지 궁금합니다. 

오정민: 사실 그런 행위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잖아요. 가장 보여주기 싫은 부분이기도 하고 그리고 동시에, 죽음의 신호라고 저는 생각 하거든요. 그 공간에서 복합적인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산에 가서는 화장실을 마음대로 가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부분을 설정한 의도기도 합니다. 

관객: 롱샷의 와이드로 해서 인물들을 지켜본 듯한 그런 느낌의 샷들과 장례식 행렬, 해가지고 난 뒤에 가족들이 이동하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할아버지를 지켜보는 듯한 장면도 좋았습니다. 촬영적으로 멋있는 장면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 궁금한 장면이 하나있는데요. 고모의 집이 불에 타는 장면을 진짜로 그 집 자체를 불태워서 찍은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거 장면 촬영할 때 어떻게 찍으셨을까요. 

오정민: 솔직한 감상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을 불태우려는 행위를 독립영화에서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서, 철거를 원하는 집을 찾아서 전부 미술작업을 했습니다. 슬프게도 공들여서 미술한 집을 하루 만에 태워버렸죠. 안전상 문제가 없도록 촬영을 진행 했고, 사실 화재가 발생한 이상 다 불을 껐다가 다시 키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테이크를 몇 번 갈 수 없었습니다. 사실 더 롱샷에서 더 전소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더 타지는 않더라고요. 

관객: 개인적으로 올해 본 한국 영화 중에 제일 재밌었습니다. 가족들이 대화하는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데, 다들 경상도 사투리를 다들 엄청 잘하시더라고요. 혹시 배우분들 모두 경상도 분들이신지 아니면 사투리를 배우신 건지, 제가 경상도 사람이랑 개인적으로 궁금했습니다.

오정민: 들으시기에는 완벽한가요? 
 
관객: 저는 경상도 사람인데….. 전부 경상도 분들 같았습니다. 

오정민: 사실 이 영화를 캐스팅할 때 두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모두가 경상도 분이어야만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 사투리를 잘하는 게 아니라 어떤 진정성이 묻어나잖아요.  그런 것들을 잘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상전(승필 역) 배우님만 타지 분이셨고 나머지 배우 분들은 다 경상도 분이셨습니다. 사실 사투리를 쓰는 거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는데, 다만 관객분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이 되기는 했었습니다. 작정하고 사투리를 쓰면 정말 알아듣기 어렵거든요. 어느 정도의 선으로 가야할 지, 그렇다고 너무 관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굉장히 서울화된 사투리를 써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해서 그 접점을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동진: 혹시나 오늘 사투리를 조금이라도 못 알아들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훌륭한 영화를 한 번 더 보실 걸 권고 드리고요.(웃음) 이제 마지막 말씀 듣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정민: 개봉을 맞이하여 이렇게 관객분들과, 또 공경하는 평론가님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 시간이 적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또 한번 배우분들 모셔올 테니, 또 한번 찾아 뵙게 된다면 좋을 거 같습니다(웃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