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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단평] 〈그녀에게〉: 이 편지가 당신에게도 닿길

indiespace_가람 2024. 9. 25. 16:44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편지가 당신에게도 닿길

〈그녀에게〉 〈내겐 너무 소중한 너〉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특정할 수 없는 ‘그녀’라는 지칭을 수줍게 내밀은 제목에서 따스한 기운이 쏟아진다. 누구의 이름을 써넣어도 상관없다는 듯, 당신과 함께 이 편지의 끝을 아름답게 적어 내리고 싶다는 의지가 한없이 다정하다. 그녀이자 우리의 이야기. 동떨어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고이 접어 보낸. 영화 〈그녀에게〉는 발달장애 아이를 낳게 된 한 여성(김재화)과 그의 소중한 아들(빈주원)의 이야기다.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다른 아이보다 조금 느린 줄만 알았던 나의 아이가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엄마는 소식을 듣자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한 채 넋이 나간 표정을 짓는다. 여태까지 살며 몇 번 만나보지도 못한 장애인을, 끌어안고 살 비비고 살아야 하는 자식으로 마주하게 된다.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라는 말처럼,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법을 잘 알지도 못하는 미숙한 그녀에게 ‘부모’의 태도와 자세는 스스로 정립해야만 하는 평생의 실천과 고민이 된다. 여태까지 설계해 온 삶의 방식은 전부 무너져 버리고, 가장 단순한 희로애락의 발화 지점부터 변화하고 예민해진다. 슬픔에 빠져 무표정을 일삼던 상연은 지우기 벌이는 작은 사건 사고에 일희일비하는데, 투정 부리는 아이의 모습으로 격노하다가도 지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동요하며 슬퍼하고, 결국 아이가 스스로 양치를 해내는 모습에 지나치게 기뻐한다. 기존에는 몰랐던 삶의 다른 구석에 감사하고 감동하기를 연속한다. 

영화는 포스터에서도 표현하듯이, 장애 판정을 받은 이후, 세상에 고립된 채 살아야 하는 두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을 서로만을 옭아매고 있고, 뒤덮은 번진 세상은 무상하게, 무심하게 그들을 피해서 지나칠 뿐이다. 세상은 헤아리기도 어려운 원칙대로 열심히 변해가지만, 그 걸음 사이 빈틈은 존재한다. 장애인과 그들의 부모들은 까매져 가는 속을 덮어두고 날마다 작은 기쁨에 기댈 뿐이다.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비슷한 처지의 선배 영화(김채원)에게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물어보는 상연과 이후 상연에게 같은 질문으로 슬픔을 토해내는 후배 기자 은별(이호진). 남들과 다른 장애라는 정체성을 안고 있자, 모두가 그녀들의 눈치를 보며 곁 떠나기를 한창인데, 그녀들은 새로운 인연을 맺으며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 나간다. 강건하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그들의 선언은 선뜻 의지의 대상이 되어주겠다는 제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 외침은 메아리처럼 번져 이 세상에 있는 우리, 즉 ‘그녀’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로 완성된다. 저항할 수 없는 힘, 억지스러운 신의 고집이 왜 나에게 닿아 있는가. 분한 심정이 물밀듯이 쏟아져 내리 눈물을 쏟게 만드는 나날이 찾아오지만, 살아갈 수 있다는 듯 애정이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컷


여느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 조금 더 길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의 정체성을 타고난 아이들. 장애인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담은 영화들은 아이들의 주변 세계에 대해 면밀히 탐구하고 있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2021)〉는 갑작스럽게 가족이 된 아빠 재식(진구)과 은혜(정서연)의 이야기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 은혜는 ‘촉각’으로 세상을 느낀다. 위장 가족이 되어 쇼윈도를 자처한 재식은 접촉을 통해 세계를 체험하는 아이의 삶의 방식을 지켜보며 묘한 신비와 감정을 느낀다. 비장애인의 생활보다 어려움이 많지만, 제한된 환경에서 더 큰 감정과 소중함을 느끼는 그들의 태도는, 비장애인들에게 세계에 대한 시각의 확장과 환기를 도모한다. 여태까지의 세상과 변한 것이 없어도 그만은 작은 행복과 행운을 알려주는 영화들. ‘그녀에게’가 그들만이 아닌, 우리에게 까지 울려 퍼진다. 

 

 

*작품 보러 가기: 〈내겐 너무 소중한 너〉(이창원, 권성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