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소소대담] 2024. 8 관찰과 돌봄
[인디즈 소소대담] 2024. 8 관찰과 돌봄
*소소대담: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의 정기 모임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기록입니다.
참석자: 베이글, 머핀, 파이, 쿠키, 파운드, 마들렌
마주 앉은 타인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일면을 이해하게 되는 건 백 마디 수식어보다 가끔 마주치는 시선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낯선 공간에서 열리는 영화제와 같은 스크린을 공유하는 사람들. 그 모든 감상에 귀 기울일 수 없지만 스치고 지나가며 시선을 내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파이: 첫째 날 상영했던 〈4000BPM〉이 너무 귀엽고 마음이 녹을 것 같았어서 기억에 남아요. 줄넘기 4,000개를 채워야 집에 갈 수 있는데 하필 만보기가 3,999에서 고장이 나요. 만보기가 딱 4,000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같이 설레고 벅차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강릉이 보수의 도시인데 행정 담당하시는 분들이 개회식 때 참석하고 영화도 보고 가셨을거라고 생각하니 묘하게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재밌었어요.
쿠키: 둘째 날 상영했던 〈이리할멈〉은 깜짝 놀라는 장면도 많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너무 무섭다고 느꼈는데 같이 보시던 분들이 아무 미동도 없이 보셔서 스스로 안 놀란 척하고 안 무서운 척했던 기억이 있어요.
파이: 야외 스크린에 비치는 화면에 한계가 있어서 어떤 장면들은 잘 안 보여서 아쉬웠어요. 대신 사운드가 크니까 바닥까지 같이 울려서 그 부분은 일반 영화관에선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 그런지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명태〉도 좋았어요. 동료의 아들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데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고 정작 현장의 사람들은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모습들이 나오잖아요. 아파트를 지을 때 누군가 사고가 나서 죽으면 시멘트에 그대로 묻는다는 식의 소문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영화가 고조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한밤중에 도망을 갔다던 행방불명의 아들이 어디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소문과 존재의 행방을 찾는데 마지막에 화면은 가려지고 사운드만 들리는 장면을 큰 스피커를 거쳐 들으니 좋았어요. 전체적인 연출이 훌륭하다고 느꼈어요.
파운드: 서로 다른 세대 간 갈등도 다루고, 덕장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개발을 통해 아파트를 짓고 관광과 부동산에 일조를 해야한다는 지역의 입장이 충돌하기도 하고, 명태가 잘 안 잡힌다는 말을 통해서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도 느꼈어요. 러닝타임은 짧은 데 비해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었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보다는 모든 갈등과 입장이 이해됐어요. 특히 전경에 덕장을 담고 후경에 개발 중인 아파트를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야외에서 영화를 보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데, 〈딸에 대하여〉는 세 배우의 연기 덕에 끝까지 집중해서 볼 수 있었어요.
머핀: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도 읽었는데 책은 엄마의 시점으로 내용이 진행되는데 영화에선 그런 개입을 줄이고 침묵하는 장면들로 바뀐 부분이 좋았어요. 침묵하면서 엄마와 딸이 서로를 바라보는데 내가 살아온 환경이나 가지고 있던 생각들로 이해할 수 없던 딸을 침묵으로써 이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나랑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첫 단계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거라고 생각해서 영화적인 각색과 촬영이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파운드: 영화에서 요양병원의 장면들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어요. 요양병원이라는 공간이 사실 보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히 모를 수도 있는 곳이잖아요. 살아있는 생명체지만 죽음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누워 밀집되어 있는 공간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영화에서 충분히 느껴졌어요. 그리고 오민애 배우도 엄마 역할을 많이 하시지만 각각의 엄마 역할에서 다른 역량이 보여서 볼 때마다 새로워요. 저는 특히 오민애 배우가 요양병원에서 일할 때 기저귀가 떨어지니까 옆 방에 가서 빌리는 장면이 좋았어요. 약한 사람을 도우려고 약한 사람들끼리 필요한 물건을 빌리고 구하는 장면들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파이: 요양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그분들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데 오히려 그때의 기억들이 똑같이 상기가 됐어요. 감독님 프로필을 살펴보는데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스크립터를 하셨더라고요. 〈시〉에서도 할아버지를 돌보는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딸에 대하여〉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을 돌보는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오는 울림이 있었어요.
〈진주의 진주〉
[리뷰]: 공간을 둘러싸고 동하는 마음들(김지윤)
[단평]: 공간을 붙잡는 혼의 아우성(김예송)
[뉴스레터]: Q. 😮 철거 직전 카페에서 영화 찍기?(2024.8.14)
파이: '내가 진주였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는데 자꾸 진주가 한 선택의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지역과 공간의 소멸을 다루는 영화의 주제 의식에 대해 공감하는 입장이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오히려 진주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파운드: 이 영화가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나왔으면 진주가 영화에 담기를 원했던 로케이션 장소인 삼각지 다방이 무너지지 않고 촬영을 하면서 모두가 행복한 엔딩으로 끝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오히려 시청 공무원들과의 갈등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과 진주의 꿈이 대립하고 결국엔 주인공의 꿈이 무너지는 게 오히려 더 의미 있게 느껴졌어요. 개인적으로 임호준 배우의 얼굴에는 유쾌함과 사명감 같은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서 그게 더 잘 느껴서 영화가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예술 종사자에 다룬 부분도 와닿았는데 진주가 사라지는 공간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지역의 영상위원회, 예술인들을 돌아보며 이들의 존재를 다룬다는 점이 더 와닿았어요.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활동을 이어간다는 점과 함께 인물 한명 한명을 보여주면서 캐릭터가 대표성을 띄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샤인〉
[리뷰]: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다 해도 우린 여전히(이수영)
[단평]: 오고 가는 마음들, 그 사이를 비추는 빛(서민서)
[뉴스레터]: Q. 🎵 지치고 힘들 땐, 어디에 기대?(2024.8.21)
쿠키: 〈샤인〉은 제가 근래 본 영화 중에 러닝타임이 가장 긴 영화였는데 그 과정에서 인물들과 제주도의 자연경관들을 조급해하지 않고 담아내는 모습들이 긴장 없이 편하게 느껴졌어요. 문종택 배우가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역할로 나오시는데 그 부분이 세월호 참사와 연관되면서 마음이 아팠고,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는 돌봄에 맞닿아있다고 느껴졌어요. 수녀님들과 친구들이 주인공을 항상 돌봐주면서 혼자였던 사람이 다시 밖으로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고, 어느 날엔 갑자기 찾아온 어린 여자애를 돌봐주는 상황도 생기는데 그러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는 모습들을 보면서 돌봄의 선순환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끔 사람은 돌봄을 주고 또 돌봄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충만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 영화에 장선 배우가 출연하는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트레일러에선 이전 작품인 〈겨울나기〉나 단편 작품들이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었어요. 짧은 장면들을 보는데 인상에 깊게 남아서 앞으로 더 자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선 배우의 전작들에 더하여
마들렌: 〈비밀의 언덕〉이 개봉 1주년 행사들을 많이 진행했었는데, 저는 그중에서 각본집 출판 기념 GV에 다녀왔어요. 각본집에 묘사되어 있는 장면들 중에 엄마 역할을 한 장선 배우가 대게를 먹는 장면을 묘사한 지문이 ‘엄마는 앙상한 대게 다리만 골라 먹는다’ 였어요. 일부러 미워해서 구박하는 게 아니라 각자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명은이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각본집을 보는 것처럼 맥락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파이: 저는 장선 배우가 영화에서 명은이가 글짓기 대회에서 상 받았다는 내용이 신문 기사에 실리니까 그걸 스크랩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반장 하지 말라고 하고 상을 받아와도 괜히 한 마디씩 말을 미운 말을 얹어도 그 장면을 보는데 마음에 소름이 돋고 뭔가 벅차더라고요. 그런 연기를 도맡아 하는 장선 배우가 너무 좋아요.
파운드: 그런 모습이 〈샤인〉에도 나오고 이전 작품 중에 〈바람의 언덕〉에서도 나와요. 울먹울먹하면서 눈물은 흘리지 않지만 웃음이 일렁이는 얼굴 표정이 참 좋아요. 〈비밀의 언덕〉에서도 명은이가 반장도 하고 상도 타고 잘 됐으면 좋겠는데 본인이 무엇을 더 해줄 수 없는 상황이 같이 겹쳐 떠오르면서 복잡 모호한 마음들을 몸으로 표현하던게 대단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