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Review] 〈샤인〉: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다 해도 우린 여전히
〈샤인〉리뷰: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다 해도 우린 여전히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님의 글입니다.
이별을 겪어본 자는 안다. 떠나감을 인정하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없다고. 그러나 이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 본 자는 안다. 새로운 시작이 좌절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고.
목가적 분위기와 느린 카메라 움직임. 제주도의 다양한 지역 중에서도 시내와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람보다 파도가 더 가까운 듯한 전원적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 〈샤인〉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언덕을 오르는 나이 지긋한 수녀님의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과 그를 따르는 젊은 수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할머니를 잃은 소녀인 예선, 소녀의 절친과 이들을 따르는 천방지축 후배들, 그리고 의문의 어린아이까지. 티 없이 깨끗하고 구김살 하나 없을 것 같은 천진한 요소들이 잇따라 등장하지만, 영화가 풀어내려는 이야기는 다소 어둡다. 사실상 고아가 돼버린 소녀와 이들을 도와주려는 수녀들은 번번이 시스템의 문턱에 막히고, 신앙을 빌미로 자매님께 부탁드려보지만, 현실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실을 가슴에 안은 채 삶을 버텨내겠다고 마음먹은 소녀 앞에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꿈꾸게 해줄 아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허나 모두가 마음을 여는 순간,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적 상황과 시스템적 강요가 다시 한번 등장한다. 가족은 무엇이고, 애정이란 무엇일까. 명확한 판단과 답변을 준비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는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관객의 머릿속을 물들여간다. 언덕 위 갈대는 하염없이 낭창댈 뿐이다.
〈샤인〉 속 등장인물들은 끝없이 떠나감에 대해 어떻게 소요하고 반응할 수 있는지를 그려낸다.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세상으로부터 도망가기도, 새로운 사람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허나 영화는 제 나름대로 치유해 보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과 부딪히는 인물과 사회의 구도를 반복적으로 제안하며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던 상처의 치유가 어떻게 주변 인물들, 그리고 인물을 둘러싼 공동체와 호흡하며 이뤄지는지 조명한다. 예선은 영화에서 원치 않는 이별을 다시 한번 마주하지만,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알고 있다. 막막하게 흘러가는 사건 가운데, 여전히 파도는 하염없이 부서질 뿐이다.
추상적으로, 조금은 일반적으로 느껴질지 모르는 이별과 치유의 키워드를 〈샤인〉은 이별 그 이상의 것으로 그려낸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극복했다고 느꼈을 때, 또다시 찾아오는 헤어짐의 순간을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지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의 레이어와 교차하는 제주도의 풍경, 그리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의 이해관계를 통해 느리게 조명한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빛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