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기획] 살아있는 유령과 살고 싶은 유령이 건네는 위로 〈밤의 문이 열린다〉 유은정 감독 인터뷰
살아있는 유령과 살고 싶은 유령이 건네는 위로
〈밤의 문이 열린다〉 유은정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일상적인 공간에 깊이 들어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고통을 관객의 눈 앞에 가져다 놓지 않고도 서늘한 분위기를 형성해낸다. 동시에 삶에 대한 무기력한 태도를 가지고 유령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나서야 적극적으로 삶의 의지를 보이는 혜정을 통해 극장을 나서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도록 만든다. 유은정 감독은 자신이 만드는 장르영화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 미션이라며 말했다. 그 미션을 첫 장편으로 성공적으로 해낸 유은정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개봉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유령처럼 살던 혜정이라는 인물이 어느 날 진짜 유령이 되면서 주변을 살펴보게 되는 이야기고요, 그러면서 자신이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상황들을 만나고 삶의 용기를 얻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어떤 영화를 만들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평소에 판타지 미스테리 장르에 관심이 많아서 유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러던 중 김희천 작가의 〈바벨〉(2015)이라는 작품을 보았는데, 작품 속 “요즘은 죽지 않으려고만 하지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라는 대사가 제가 표현하고 싶은 정서와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로부터 〈밤의 문이 열린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밤의 문이 열린다〉라는 제목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영화의 제목이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밤’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생각해보았는데, 밤은 혼자 있는 시간이고, 낮에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이고, 그러면서 자기가 지나온 것들을 후회하기도 하는 시간이라 생각했어요. 혜정이라는 인물은 유령이 되어서 계속 과거로 되돌아가면서 자기가 지나왔던 것들을 돌아보게 되는데, 후회로 점철될 것만 같았던 시간이 끝에 이르러서 자신을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밤의 문이 열린다’로 제목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또 다른 의미로는, 자기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들을 유령이 된 후 할 수 있게 되면서 밤이 끝나고 아침을 맞이한다는 뜻으로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의 이전 단편 〈낮과 밤〉이나 〈캐치볼〉, 〈싫어〉 를 보면 주로 서울 변두리에서 살아가거나 노동의 현장에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으시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인물들에 주목을 하게 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다른 감독님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제가 겪은 경험이나 인상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영화의 이야기에 녹아드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이 서울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사회가 말하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서 계속해서 아웃사이더처럼 밖에 있는 인물들에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유령이라고 하면 원한을 품고 누굴 괴롭히거나 사람들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부유할 것 같은데, 혜정은 유령이 되고 난 후에야 주변을 적극적으로 살피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줘요. 그런 점에선 영화에서 가장 악인이라 할 수 있는 효연도 혜정과 완전히 다른 성격이지만 결국엔 잘 살고 싶은 욕망이 큰 인물이기에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었어요. 감독님께서 두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하셨고 두 인물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혜정의 경우에는 이야기를 구상할 때 가장 먼저 정해진 인물이에요. 혜정은 삶에서 큰 비전이 있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돌진해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뭔지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마음이 가는 인물이고, 그래서 오히려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있었어요. 자신은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버려질 것 같다고 느끼는 인물들.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인터뷰를 보기도 했는데요. 사람들이 20대 청년이라고 하면 전부 대학교에 다니고 취업준비를 하고 회사를 다닐 것처럼 이야기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본 적이 있어요. 자신은 공장에서 일하는 20대인데 사람들은 ‘젊은데 왜 이런 데서 일해? 더 좋은 데서 일 해야지’라는 식으로 말할 때 자기가 유령 같다고 느꼈다고 말하시더라고요. 그런 구체적인 레퍼런스들이 모여서 혜정이 되었던 것 같아요. 효연은 이 반대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효연도 마찬가지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고, 자기 안에 혜정의 모습이 있어도 저항하고 싶기 때문에 밖으로 에너지를 분출하고 악을 쓰면서 살아가는 인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벽에 머리를 박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거나, 방의 문이 열렸을 때 낮은 보폭으로 재빠르게 숨고, 커튼을 둘둘 말고 그 안에 들어가는 등의 장면들이 이상하게도 계속 기억에 남아있어요. 끔찍하고 잔인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이런 일상 속의 비일상적인 장면들을 통해 장르 영화의 미스터리하고 긴장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이런 연출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신 지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를 볼 때, 되게 현실적인데 기이하고 이상하다고 느끼는 장면들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언가를 발산하는 느낌 보다는 약간 비틀어진 느낌을 주는 장면들을 저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포영화는 아닌데 영화 〈질투는 나의 힘〉(2003)에서 하숙집 아들이 아버지 방에 머리를 박는 장면이 있어요. 엄청나게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영화인데 그렇게 튀어나온 장면들이 더 선연하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분위기들에 영향을 받았던 게 아닐까 싶어요. 구체적으로 이런 것을 의도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처음 〈밤의 문이 열린다〉를 구상할 때 이 영화를 저와 너무 다른 결로 만들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밤의 문이 열린다〉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한해인 배우님과 전소니 배우님 모두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남다른 것 같았습니다. 또 독립영화 인터뷰매거진 NOW 18호에는 한해인 배우님께서 직접 감독님을 인터뷰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요, 영화의 싸늘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현장에서의 분위기는 단란하고 화목했을 것이라 예상이 됩니다. 배우님들, 현장에 계신 스탭분들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어떤 분위기였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대형제작사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다 보니 스탭들의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구멍이 나는 빠듯한 일정이었어요. 영화를 잘 완성하기 위해 다들 서로를 믿고 진행한 감이 없지 않았어요. 주로 메인 스탭들이 현장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데 저희 촬영감독님이나 피디님이나 팀장급 스탭분들이 다들 조용조용하게 웃으면서 일하는 분들이라 분위기여서 좋았어요. 아카데미 동기인 촬영감독님과 제가 처음 이 장편을 같이 만들기로 했을 때, 우리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람을 잃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 영화를 찍음으로 인해서 누구를 상처주지 말자는거였어요.
배우 분들의 인상깊은 연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님께서 연기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디렉팅을 하셨는지 혹은 배우분들께 맡긴 부분이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혜정도 효연도 어떤 부분은 디테일하게 디렉팅을 주고, 어떤 부분은 아예 맡기기도 했어요. 혜정은 앞서 얘기 드렸던 것처럼 구체적인 레퍼런스들이 있어서, 한해인 배우님과 연기의 초반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혜정이라는 캐릭터가 사실 감정을 이입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기도 하고, 이입을 할 부분도 많지 않은 캐릭터예요. 수양과 방에서 만나는 장면이 초반에 찍었던 장면인데 모두 그런 역할은 처음인 거잖아요. 해인 배우도 자신이 유령이라 생각하고 연기를 해야하고, 소현 배우도 눈 앞의 유령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연기를 해야 하고, 저 또한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가야 해서 사전에 디테일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던 것 같아요. 효연의 경우엔 배우와 함께 만들어가야 했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전소니 배우님께 맡겼어요. 소니 배우가 생각하시는 대로 한번 해보고 나서 얘기해나가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효연은 감정적인 상태에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순간에 집중을 하도록 했고, 많은 디렉션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피했어요.
그렇다면 캐스팅은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보시고 진행하셨나요?
이 사람의 분위기가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 확신을 가졌던 것 같아요. 사실 가장 머릿속에 그리기 어려웠던 장면이 혜정이 깊은 어둠에서 깨어나는 장면인데, 해인 배우님께서 오디션 때 그 장면을 굉장히 설득력 있게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혜정이라는 인물에 주어진 미션을 굉장히 잘 해내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소니 배우님은 이미지가 굉장히 좋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여자들〉(2016)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 굉장히 자기 중심이 있는 연기를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드리고 효연 역을 맡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배우님께서 효연이라는 인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음을 너무 알 것 같고 효연에게 애정이 간다고 말씀하셔서 꼭 같이 하고 싶었어요.
투자를 받은 후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시나리오의 수정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수정을 하셨는지, 초반 시나리오와 최종 시나리오의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예산에 맞춰서 규모를 줄이기 위해 시나리오를 수정했는데, 사실 시나리오의 3분의 1이 줄어들었어요. 90씬에서 60씬이 됐는데 없어진 30씬은 혜정이 관심 갖지 않았던 인물들을 만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풍부한 전사(前史)였어요. 민성이 어떤 가족들과 살고있는지, 그들의 부모는 어떠한 사람들인지. 효연과 지연이 어떤 관계인지, 지연은 효연의 어떤 점을 품어주고 있는지 같은 것들이요. 하우스메이트인 미숙에 대한 이야기도 꽤 있었어요. 미숙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 직장에선 어떤 모습을 하고있고 어떤 연애를 하고 어떤 미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가지들을 쳐내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미숙이가 일하는 곳은 직업소개소인데,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다시 외국으로 일을 알선해주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효연은 외국으로 도망가려고 미숙에게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했고, 혜정이 그 직업소개소를 갔을 때 많은 여성들이 일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었어요.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 버전과 개봉 버전에 작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시간을 거스르는 시점부터의 날짜 표기 방식과 같은 부분인데요. 영화제 버전과 이번 극장개봉 버전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콘티 외의 장면은 거의 찍지 않고 타이트하게 계획대로 찍어서 편집이 바뀌진 않았어요. 다만 이미지만큼이나 사운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서, 공간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또 대사도 더 잘 들릴 수 있도록 사운드 믹싱을 다시 한 부분이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날짜 자막의 경우 분위기는 잘 맞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어서 영화의 컨셉을 살릴 수 있는 플립 달력 형식으로 바꿨어요.
지난 6월 서울독립영화제가 주최한 토크포럼 ‘우리는 어떻게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는가’에 참석하셨던 유은정 감독님과 김보라 감독님, 안주영 감독님, 한가람 감독님 모두 공통적으로 하셨던 말씀이 여성감독들은 사실 굉장히 잘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한 검열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을 극복하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추진력을 얻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장편 〈밤의 문이 열린다〉를 개봉하기까지 유은정 감독님은 어떤 고민의 과정을 겪으셨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여성감독들에게 주변의 지지가 박하다는 생각을 해요. 이야기를 들고 오면 격려하기 보단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고싶은 거야? 그게 재밌어?” 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내가 이해하기가 어렵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든 영화를 만드는 건가? 내가 사람들과 소통을 잘 못하나?’ 이런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는 잘하는 사람이 만들 필요가 없고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고민해왔지만 사실 그런 고민은 참 쓸데없으니, 내가 영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상 계속 만들면 되겠다 싶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모든 기간 동안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사회적 자본들이 투자돼서 만들어질 가치가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나 자신의 재능은 둘째치고 여기에 투자되는 물적, 인적, 심적 자원들을 공중분해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그럴 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야겠다, 소박하더라도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식으로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영화제 상영 이후 지금까지 극장에서 관객들을 직접 만나시면서 소감이 어떠신지, 인상 깊었던 관객의 반응은 무엇이었는지 듣고싶습니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전에 의욕이나 욕망이 없는 캐릭터, 복잡한 이야기 구성을 보고 사람들이 외면할까 두렵기도 했어요. 또 어떤 것들은 너무 얕게 다뤄진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영화를 보고 공감해주시는 리뷰를 볼 때마다 정말 고맙고 기뻤어요. 그런 분들을 한 분 한 분 만날 때마다 그래도 영화를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광주여성영화제에 갔을 때 어떤 관객분이 ‘이 영화에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밤길이 무섭다는 것밖에 없는데 왜 여성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틀고 싶다고 하셨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자리가 끝나고 극장을 나왔는데 다른 관객분이 자기는 여성영화가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재밌게 느끼신 설정들을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럴 때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쪽으로 인상깊은 질문은, 어떤 관객분께서 그렇다면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여쭤보신 적이 있는데 제가 그때 생각을 하느라 제대로 답을 못했어요. 그게 좀 마음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밤의 문이 열린다〉를 관람하신 관객분들이 어떤 마음을 안고 극장 밖을 나섰으면 하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위안이 된 순간들을 생각해봤는데요.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는 게 팍팍하고, 내 코가 석자라서 내 일을 챙기는데 급급하고, 외롭다고 생각하다가도, 극장을 나설 때는 사람에 대해서 신뢰를 회복하게 되는 영화들을 언제나 좋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이 영화를 보고 내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이든 멀리 있는 사람이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에 대한 희망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과 비슷해요. 가끔 인생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제가 만들거나 레퍼런스로 삼는 영화랑은 다르게 〈허공에의 질주〉(1988)를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그 영화가 결국 저한테 주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주는 신뢰,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다뤄서 앞으로 사는 데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공포영화로 어떻게 그걸 할 수 있을까요? 그게 저의 미션인 것 같아요. 장르영화를 좀 더 찍어보고 싶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