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삶에 대한 치열한 기록  2019 으랏차차 독립영화 <사수>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2월 16일(토) 오후 4시 상영 후

참석 김설해 감독, 정종민 감독, 조정은 감독

진행 박배일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권정민 님의 글입니다.


 



2011년부터 계속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수>는 단순히 어떤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의 과정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216<으랏차차 독립영화> 기획전에서 상영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GV는 공동연출자 김설해, 정종민, 조정은 감독이 참여했고, 다큐멘터리 <소성리>의 연출자이자 <사수>의 프로듀서인 박배일 감독이 진행을 맡았다.

 

 



박배일 감독(이하 박배일): 먼저 감독님 세 분 인사를 좀 해주세요.

 

김설해 감독(이하 김설해): 안녕하세요. <사수>를 연출한 김설해라고 하고요. 청주에서 살고 있고, 청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다 아는 분들이 오실 줄 알았는데 아는 얼굴이 없어서 놀랍고, 반갑고요. 고맙습니다.

 

정종민 감독(이하 정종민): 안녕하세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라는 단체에서 같이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따로 나와서 활동을 하고 있고, 기록하고 제작하는 활동을 하려고 하구요. 앞으로도 좀 더 잘 하려고 하는 정종민입니다.

 

조정은 감독(이하 조정은): 안녕하세요. <사수> 같이 연출하고,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활동하고 있는 조정은입니다. 반갑습니다.

 

박배일: 저도 <사수>의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마치 집안 잔치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객관적이고 즐겁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초기에 나왔던, 그리고 소개할 때 이야기한 생활공동체 공룡이라고 공동체를 설명해주셔야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것 같아요.

 

조정은: 공룡은 청주에 있는 단체구요.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다른 방식의 삶을 실현해보고 이것저것 해보려고 모였어요. 뿐만 아니라 사회가 변화하는 활동 혹은 최소한 우리가 죽지 않는 활동들을 함께하자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영화의 앞부분에 나온 활동들을 쭉 해왔어요. 특히 유성기업은 같은 지역에 있다 보니 더 자주 가고, 영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많이 연대하면서 관계를 계속 만들어 나갔죠.

 




박배일: 지금처럼 다큐멘터리의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투쟁을 알리는 속보영상 같은 것들을 많이 만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방식이 아니라 다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김설해: 공룡이 만들어진지 한 10년 정도 됐는데, 미디어 활동가들이랑 활발히 지역 활동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만든 단체거든요. 농사도 짓고 교육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데 영상을 할 줄 아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언할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을 한 거죠. 아니면 저희가 직접 그분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영상을 찍고요유성기업과 같은, 비슷한 노동자들이 지역 여러 곳에 있을 거잖아요. 근데 복수노조법이라고 한 공장 안에 하나 이상의 노조를 허용하는 법이 2011년에 시작이 되었는데, 그러면서 회사는 회사 친화적인 노조를 만들어서 지원하고, 회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노조를 탄압하는 일들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어요. 예컨대 민주노총 소속의 금속노조 탄압 처럼요. 지역에 복수노조, 노조파괴문제를 알려보려고 노조분들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게 교육을 하고, 그 영상을 지역방송사에 보내거나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식의 활동을 꾸준히 했었고요. 그러던 중에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고공농성을 진행하실 즈음 다큐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고공농성의 목적을 다 달성하지 못하고 끝났는데, 저희도 뭔가를 해보려고 하다가 좀 흐지부지 됐던 경험도 있었고요. 그러다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신 거예요. 유성기업 노동조합원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고, 절반 이상 우울증을 겪고, 자살시도도 있었기 때문에저희는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고, 긴 투쟁을 하시는 분들이 감내하고 있는 것들이 긴 호흡의 영화로 드러나야 되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다가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셋이 같이 만들어보자고 마음 먹고 2년 반 정도 촬영 및 편집을 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박배일: 세 명이서 영화 연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 같은 것이 있을까요?

 

정종민: 이 작업 때문에 모인 게 아니라 평소에 계속 그런 식으로 활동을 해 왔었고, 유성에도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들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뭔가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일단은 움직이게 만들었던 거예요. 물론 작업이 어떻게 될지 불안했지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조정은: 사람들이 셋이 같이 해도 안 싸우냐고 하시는데, 싸우죠. 심하게 싸우진 않았어요.

 

정종민: 그 전에 단체 생활하면서 이미 많이 싸워서(웃음).

 

김설해: 그리고 박배일 감독님도 비슷하게 이런 미디어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계속 다큐를 만드셨고, 프로젝트로 공동작업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큐를 만들기로 했다니까 같이 하게 됐죠.





박배일: 제가 이 작업을 하러 한 달에 한 번씩 현장에 가다가 마지막에는 거기서 살다시피 했는데, 이분들이 활동가적인 기질이 더 있어서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하자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노조가 어떻고, 이 노조의 현안과 사회적 맥락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등을 먼저 해결해야 작업 얘기를 하더라고요. 피디로서 어려움은 있었지만 많이 배웠습니다. 근데 말씀대로 이전에 작업하던 기록들은 굉장히 짧은 영상들이었어요. 그러다 호흡도 길고 길이도 길고, 관계도 다시 설정해야하는 장편 작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 혹은 달랐던 점이 있었나요?

 

조정은: 짧은 영상을 만들 때는 내용이 정해져 있거든요. 지금 가장 알려야 되는 현안들, 혹은 가장 문제되는 점들이 정해져 있어요. 거기에 맞춰서 이걸 어떻게 잘 전달할까 고민을 하는 식인데, 영화를 만들면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이 투쟁 안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10년쯤 되었으니까 얼마나 다양한 결의 이야기들이 있겠어요. 그 중에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게 중요해지는 순간이었죠. 그래서 고민이 굉장히 많았고요. 촬영이나 조합원들 만나는 면에서도 비슷해요. 촬영도 내가 만들어야할 영상이 정해져 있으면 찍어야 할 것도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는 처음이고, 계속 뭔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하면서 촬영을 하니까 내가 어느 위치에서 이 사람을 바라봐야 되고 어느 위치에서 얼마나 찍어야 되는지 다 고민인 거예요. 그래서 어려웠어요. 조합원들도 저희를 그냥 현장 찍고 가는 애들로 생각하다가 갑자기 집에 들락거리고 계속 주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요. 그래서 관계에 대한 고민도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되게 많이 배우기도 했구요. 처음에 영화 작업은 지금까지의 작업과는 별개라고 생각했거든요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그냥 연대하고 활동할 때에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의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아야겠구나 싶었어요. 내가 이 사람들한테 문제제기도 할 수 있고, 내 얘기도 할 수 있고요. 이 투쟁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해야 하고, 우리가 왜 연대하는지도 고민해야 하잖아요. 지금까지 놓쳤던 것들이 있었다는 생각도 많이 들더라구요.

 

박배일거의 유성노조 싸움의 초창기부터 계속 기록을 했잖아요. 그러면 굉장히 많은 자료들이 쌓여있을 텐데요. 그런 자료들을 활용해서 투쟁의 과정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할 수도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신 후 열사 투쟁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작업을 했는데요. 이유가 있었을까요?

 

김설해: 연출이 세 명이니까 주제를 잡을 때도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결이 조금 달랐어요. 꽂히는 게 다르잖아요. 저는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충격도 너무 컸고, 그것이 머리에서 계속 반복되어서 죽음이 테마였다면, 종민 감독님은 유성 노동조합원들이 사는 방식이 중요했어요. 영동에 포도가 유명해서 포도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되게 작은 시골이라 집집마다 과수원도 있고요. 그런 일상성과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20, 30년간 맺은 관계를 보고싶어 했어요. 정은 감독님은, 모든 노조가 건강하지만은 않잖아요. 근데 유성이 건강함을 유지하고, 조합원들이 민주적으로 스스로 교육하고 민주적인 마찰을 통해서 투쟁해나가는 역사나 과정들을 조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그런데 저희가 한광호 열사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1년에 걸친 열사투쟁을 쭉 지켜보면서, 유성기업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큰 덩어리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개별적인 사람들을 조금 더 보고, 한광호 열사의 주변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 혹은 한광호가 될 수도 있었던, 한광호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고민이나 이야기들을 담아보게 됐던 것 같아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카메라를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떤 얘기가 하고 싶을까 지켜보니까, 사실 카메라 앞에서 하기 힘든 얘기들도 하시잖아요. 바깥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는 내부의 이야기까지 들으면서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뭘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정종민: 싸움의 과정을 정리하는 건, 아마 그렇게 하려고 했어도 잘 안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결들이 많아서 시도를 했어도 잘 안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굳이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짧은 영상들을 만들며 그런 작업들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할 거라서요. 굳이 장편 다큐 작업에 유성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또 하나는 끝나지 않은 싸움이었기 때문이에요. 한광호라는 사람의 죽음, 그 이후에 죽음의 원인, 죽음의 책임을 묻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한광호의 죽음 이전과 분리된 게 아니라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계속 진행 중이거든요. 노조파괴라고 하는 싸움과 분리된 게 아니라서. 그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때는 감정으로, 어떤 때는 구체적인 사건으로 만나게 되고요. 현재의 시간들이 이미 과거의 시간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사투쟁을 담아내는 줄기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관객: 저는 영화를 흥미롭게 보면서도 묘했던 부분이, 한광호씨 형님이 술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잖아요. 나는 그냥 순수하게 한광호의 형일 뿐이고, 나는 술을 먹을 뿐인데, 사람들은 동생의 돈을 들먹인다는 얘기들을 하잖아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필요하고, 그것 또한 누군가에겐 또 다른 프레임을 씌운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거든요. 영화를 찍는 사람들, 찍은 걸 보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의 시점이 혼란스럽게 얽혀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물론 긍정적인 역할이 있지만 행여나 다양한 시선들에 얽혀서 더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었거든요. 이 영화가 말 그대로 현재진행형일 때 싸움이 계속 이어진다면 후속작을 만들 생각이 있으신지, 혹은 다르게 기록해서 진행하실 생각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배일: 저희가 처음 이 영화를 만들고 주인공들과 상영회를 할 때 굉장히 무서웠어요. 이분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니까요. 영화 속 노동자분들이 자리에 안 계신 채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건 오늘 처음인데요. 노동자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또 관객과 만나면서 달라졌던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처음 반응과, 만나면서 달라진 부분, 그리고 앞으로 이분들과 함께 어떤 작업들을 해나갈 계획이 있는지도 말씀해주세요.

 

김설해: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미디어에 노출되는 내용은 노조파괴로 인한 희생자라는 이야기 뿐이었어요. 그동안 계속 있었던 문제이긴 하지만, 저희가 알던 유성기업 노동조합원들은 되게 잘 싸우는 멋있는 사람들인데 어느 날 되게 불쌍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혼란스러운 것도 있었거든요. 우리가 생각했던 모습과 보여지는 모습이 너무 달랐고, 엄청난 영웅이거나 완벽한 피해자도 아닌 이 사람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있으니 그런 모습을 그려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봤을 때 저거 너무 한 것 아니야? 너무 거칠지 않아?’라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장면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넣기로 했어요. 처음 조합원들게 보여드릴 때는 겁이 났죠. 그런데 보시고 빼라고 말씀하신 장면은 하나도 없었고, 다만 꼭 넣고 싶은 장면은 있다고(웃음). 이런 건 노조에 도움이 안 되니까 빼라는 식의 말씀은 않으셨어요. 이 영화를 보고 저희랑 같이 GV도 적극적으로 다니시고 그러셨거든요.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몰랐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잘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확인을 했다는 말씀도 하셨고. 좀 부끄러울 수도 있는 부분들까지 영화에 담겨있으니까요. 또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유성투쟁은 정말 이겨야 될 싸움이기 때문에 승리를 향해서 경주마처럼 달려가는데, 잠깐 멈추고 자기들을 돌아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도 더 솔직하게 드러나고 더 설득력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게 대부분이었고요. 그렇지만 이렇게 힘든 걸 왜 다시 보라고 하냐는 분도 계셨어요. 너무 속상하니까 하신 말씀일 거예요. <사수> 2편 안 찍냐는 말씀도 하시는데, <사수> 2편은 아니더라도 기록을 계속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배일: 이미 기록을 계속하고 있잖아요. 유성의 투쟁이 이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노동자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근황을 좀 말씀해주세요.

 

조정은: 남은 것은 이제 금속노조와 회사가 교섭을 하는 거죠. 2011년부터 교섭이 안 되고 있는데 이제 교섭을 하자, 끝내자, 라는 기조로 아산/영동의 대부분의 조합원이 파업을 하고 본사 점거를 했어요. 거의 최장기간 점거를 하고, 최장기간 파업을 했거든요. 근데 파업도중 유성기업 직원 중에 노조파괴를 계속 주도적으로 해왔던 인물에 대한 우발적인 폭력사건들이 일어났어요. 그게 보수 언론에 쫙 타면서 아주 크게 보도가 되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두 분이 구속, 세 분이 불구속기소 되어 있는 상태예요. 이후에도 계속 파업은 이어갔어요. 그러다가 지금은 파업을 접고 현장에 돌아가서 현장 싸움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최근 들은 얘기로는 유성이 노조파괴로 쓴 금액을 중심으로 투쟁을 하려고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종민: 법에 의해 배신당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법으로 판단하는 게 무조건 옳고 그름의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법정에서는 거의 대부분 조합의 승리로 판결이 나고 있어요. 저희 주인공들, 해고 신분이었던 분들도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아서 지금 복직해서 일하고 계시기도 하고요. 법정에서의 판결은 그런데, 어쨌든 회사와의 교섭, 단체협약이라는 게 맺어져야 마무리되는 거죠. 교섭에서 판결이 난 대로 노조파괴가 잘못이라는 걸 인정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내용을 넣으려고 하는데 회사에서는 자꾸 그건 넘어가고 나머지를 처리하자는 식으로 나오니까 조합에서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교섭이 되지 않고요. 물론 사측에서 성실하게 교섭을 임하지 않은 것이 먼저고. 그러는 와중에 시간이 계속 흘러갔고, 여전히 양재동에 농성 천막이 있고. 대전, 천안에도 시위를 여전히 하고 계시고. 현장에서도 부분파업을 하면서 노조파괴 문제를 알리고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박배일: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비록 저 투쟁 현장에 있지는 않지만, 무엇을 사수하기 위해서 이 짓을 하고 있지? 무엇을 사수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돈도 안 되고 관객들도 별로 없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지?’ 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사수라는 의미가 굉장히 직접적이기도 하지만 폭 넓게 다가온다고 생각하는데, 세 분의 감독님들은 제목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정은: ‘사수라는 제목에 대해 물어보시면 정해진 대답이 있거든요.(웃음) 일단 저희 생각은, ‘사수대사수조들이 있잖아요. 그들이 무슨 일을 하냐면 밥하고, 청소하고, 손님맞이하는 일을 하거든요. ‘사수한다고 할 때의 사수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것에 더해서 사수라는 게 진짜로 목숨을 바쳐서 싸운,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의 투쟁의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상영하면서 관객들이 영화 속 사람들이 본인의 삶에서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럴 때 이 영화가 가지는 의미 같은 것을 생각하게 돼요. 이렇게 전면에서 자본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전면에서 회사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엄청 많이 싸우잖아요. 결국 싸운다는 것은 나한테 빼앗기지 않을 무언가가 있고, 훼손당하지 않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관객분들이 <사수>를 보면서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그렇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정종민: 처음에 세 사람이 각자 주목했던 것들을 얘기했었는데, 저는 이분들이 보는 시간이라는 테마에 꽂혔었거든요. 처음에 명목상의 싸움은 장시간노동 철폐였어요. 장시간 노동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니까 죽지말자고 시작한 싸움이었는데 그 싸움을 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이 감당해야하는 시간의 무게는오히려 다른 제조업 사업들은 시간제노동이 시행이 됐거든요. 어지간한 규모의 사업단은 대부분 시행이 됐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걸 끝내자고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밤샘노동을 하면서 감당해야 하는 시간의 무게가 더 커졌던 것 같아요. 투쟁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거리도 엄청나게 먼데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전국 각지 안 다니는 곳이 없고, 항상 텐트 치고 노숙을 해야 하고. 정말 시간을 쪼개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 사람들이 견디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에 눈이 갔어요. 그 시간들을 감당해 내고, 그 시간들을 지켜내고, 심지어는 되찾아오면서 인간다운 삶이라는 걸 얻기 위한 투쟁을 온 몸으로 얘기했다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들이 잘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 시간에 많이 매달렸던 것 같아요. 한광호 열사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한동안 정말 넋을 놓고 있었는데, 이분들이 밖으로 나와서 싸우고 있으니까 그래, 내가 할 일은 카메라를 드는 거야하고 용기를 내서 나갈 수 있었고, 그런 마음으로 기운을 찾을 수 있었거든요. 사실 장편다큐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과정이었고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런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결국 이분들이 견뎌내는 시간 그 자체 덕분인 것 같아요. 저한테는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김설해: 저도 비슷하고요.(웃음) 사수라는 말이 약간 생경한 말일 수도 있잖아요. 투쟁하는 현장에서는 민주 노조 사수하자!’ 이런 식으로 되게 자주 쓰는 말이거든요. 관용어처럼 써서, 제목을 지을 때 죽을 사()’자에 지킬 수()’를 쓰는,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이름을 지으면서 좀 놀라기도 했어요. 이 영화를 보시고 제목의 의미를 되새기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래서 진짜 목숨 바쳐 싸우라는 얘기냐,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이분들이 정말 살기 위해서 싸우는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고. 표현이 좀 올드하다는 분들도 계신데(웃음) 이 말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노동조합 활동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툭 던져드리고 싶은 맘도 있었어요. 그게 이 영화를 만든 태도와도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세련되게 혹은 멋있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절박함을 느끼고 저희도 절박하게 이걸 만들었기 때문에 그 제목을 고수했던 것 같습니다.

 




박배일: 지금 이 자리가 ‘2019 으랏차차 독립영화기획전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사수>라는 영화가 한국 독립영화, 그리고 한국 독립다큐의 초창기의 모습과 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굉장히 탄압받고 있을 때 민중들의 삶,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들과 어떻게 연대할까, 기존의 영화가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영화는 없을까 하는 의미에서 독립영화가 출발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한국 독립 다큐의 시초와 많이 닮아 있단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현장 안에 들어간 게 아니라, 현장 안에 들어갔더니 미디어가 필요했고, 미디어 활동을 하다보니까 작품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귀하고요. 굉장히 소중한 영화를 만드신 건데요. 제 입으로 이런 얘기 하기 좀 그렇지만.(웃음) 근데 이런 영화가 귀하다는 얘기는 결국 이런 영화들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그리고 이런 영화들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저 역시 우리 사회에 이런 방식의 영화가 유의미한지 고민을 하거든요. 저도 그런 방식의 영화를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지키는 다큐멘터리, 혹은 카메라가 있어야 하는 이유, 이런 제작방식이 계속 있어야 하는 이유, 이런 생각들을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김설해: 저희가 처음 영화를 만들 때는 소박하게 조합원들이 보고 좋아하면 됐지, 이렇게 시작했어요(웃음). 꼭 노동조합에 소속돼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투쟁하는 사람들이 보고, 공감하고, 얘기할 수 있는 영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를 상영하면서 유성에 연대하고 싶어 하거나 관심 있으신 분들, 아니면 비슷하게 투쟁을 하고 계신 분들 위주로 만났거든요.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게 굉장히 힘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이제 막 노동조합을 시작하신 분들이 오시면 서로 질문하겠다고 싸우면서(웃음) 열기를 보여주실 때도 있고. 아픔을 서로 공감한다던가. 사실 저도 상담 받으면서 투쟁하고 있는데, 이런 얘기를 꺼내놓거나 비슷한 경험도 얘기하고. 어쩌면 더 심한 현장도 있고요. 유성은 되게 잘 싸운 노조이기 때문에, 노조파괴를 심하게 겪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켜오셨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런 분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같이 나누는 자리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처음에 생각했던 목표를 잘 달성해가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누구보다 유성조합원들이 이 영화가 개봉되길 바라요. 저희는 사실 개봉을 꼭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그분들에게서 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강한 열망들이 엿보일 때가 있거든요. 이 영화를 가지고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건 저희에게 고민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지금 상영활동을 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고민중입니다. 현장에서의 미디어 활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정종민 감독님이 말씀을.

 

정종민: 일단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요. 이전에 꽤 많은 다큐가 나왔지만 실제로 그들이 담아내는 목소리를 전체적인 양으로 보면 여전히 주목되고 들어야할 목소리가 많은 것 같고요. 그들의 잘 대변해주는 이야기도 필요하지만, 그들이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형태의 작업은 이야기를 대변해주는 사람과 이야기의 당사자가 구분되지 않은 형태의 이야기방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전부터 퍼블릭 액세스라고 해서 실제로 하고자 하는 얘기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누구나 작업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해왔던 사람들이 있고요.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 들어줘야 할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여전히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면서 내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공간과 기회가 계속 만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 방법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잘 찾아서 해 나가고 싶습니다.

 

조정은: 노동운동 내에서 미디어운동을 되게 열심히 하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여기가 영화, 미디어를 만들 보배다, 보물창고다 이러시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극영화를 봐도 맨날 싸우잖아요. 싸우지 않으면 이야기가 정리가 안 되고. 이분들은 결국 체제와 싸우고 자본주의와 싸우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유성 이야기를 찍을 때도 도대체 얘기가 왜 이렇게 많아,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왜 이렇게 계속 있어, 싶었는데 이 사람들이 싸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프레임에 관한 이야기도 했는데 미디어도 하나의 프레임이죠. 그렇다고 생각해요. 근데 노동운동 이야기에 주로 고통 받는 사람, 혹은 피해자라는 프레임, 아니면 강하게 싸우는 노동자의 프레임 말고 다른 프레임은 별로 없거든요. 결국 다른 시각의 프레임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프레임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그래서 계속 현장의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다양한 프레임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고, 그런 면에서 아직도 이런 작업은 유의미하다, 아직 이런 작업이 너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이 들고요.

 




박배일: 해주신 말씀이 으랏차차 독립영화를 기획한 목적이랑 좀 맞닿아있는 것 같아요. 세상엔 정말 많은 영화가 있는데, 함께 싸우고 있는 영화, 내용적으로든 미학적으로든 세상과 싸우는 영화를 발견해내지 못하고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국 독립영화에 다른 프레임들이 있고 다른 이야기 방식이 있다는 걸 지속적으로 알려드리기 위해서 으랏차차 독립영화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으니까 내일도 꼭 함께 와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토요일에 이런 자리 오는 게 정말 쉽지 않잖아요. 굳이 <사수>를 보러 와서 이 대화를 끝까지 남아서 듣고 계신 관객 분들에게 차후 계획 말씀해주시고 마치겠습니다.

 

조정은: 이 시간까지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배일혹시 공룡의 계획은 없나요?

 

김설해: 뮤지션 이형주의 앨범을 곧 텀블벅을 통해서 발매할 예정인데요. 현장에서 만들어진 노래들인데 한 번 들어가서 봐주세요. 공룡에서 다양한 걸 하거든요. 저희가 농산물도 만들어 팔고, 음반도 팔고, 책도 만들고, 영화도 만들고.(웃음)

 


관객: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유성 파업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유성 파업이 네 글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영화를 보면서 되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관객으로서 내가 이 영화를 보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나, 라는 질문이 되게 크게 들었고요. 저분들처럼 삶의 자리에서 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과 견주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 역시 있었고. 저는 굉장히 거칠게 싸우는 현장을 영상을 통해 보니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이미지가 있었지만 오히려 이분들의 정신적인 통증의 맥락을 알 수 있었고요. 그런 점에서 인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영화를 통해서 다른 삶을 배운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도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정종민: 말씀해주신 것이 힘이 되는데요. 저는 이게 다큐라는 형태로 나올 때 바람이 딱 두 가지였거든요. 저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큰 바람이었고, 그걸 넘어서 노동다큐,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다큐, 노동 사안의 당사자, 이런 식으로 국한되기 보단 우리 조합원들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가 원하지 않은 외부의 침입과 충격에 의해서 나의 기반이 흔들릴 때 그것들을 다 잡고 이겨내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봐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말씀해 주신 것 정말 감사하고, 단지 사안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나랑 분리되지 않고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있을 테니까 그런 부분이 좀 더 많이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많이 알려주시고(웃음) 어딘가에서 또 만나 뵙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배일오늘은 아쉽지만 이렇게 마무리 하구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을 페이스북 등에서 검색하시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수>를 함께 사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