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DIESPACE, since2007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어주나요?] 영화제작 후 뒷 이야기

by Banglee 2008. 10. 3.

영화편집을 거의 마쳐가고 있을 시점에 이 영화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남는 시간에는 독립 영화제들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기도 하였고…

결론은 이 영화가 비록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한국사람들이 출연하고 영화의 언어도 80% 한국어 이었기에 한국 영화제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한 듯 했다. 더군다나 가족과 거의 15년이라는 세월을 이산가족처럼 살아왔기에 이 영화가 한국에서 주목을 받고 한국서 영화 일을 하면 정말 좋겠다 라는 바람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주국제영화제에 연락을 취했다.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는 교포이고 독립영화를 한편 만들고 있으니 출품해 보겠다는 연락을 드렸고, 영화 제출 마감일을 지나 보낼 수 있는 입장이니 좀 봐달라는 내용과 함께… 왜 전주국제영화제여야 했냐 라고 묻는 다면, 전주국제영화제에 디지털영화 경쟁부문이 있었고,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이 새로운 시도를 추구하는 독립영화를 환영한다는 그런 문구여서 꼭 내 영화가 가야 할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영화제의 배려로 마감일이 몇 일 지난 날짜에 영화는 출품되었고, 결과발표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영화제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 내용은 죄송하지만 다음 기회에… 라는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난 2년이란 세월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느낌과 함께 영화에 출연하고 나를 도와주었던 이들에게 드는 미안함. 안 그래도 주위 사람들은 나에 대해 “미친놈 아니야? 일 잘하다가 전 재산을 영화 한다고 다 쏟아 부었다는 둥, 지가 영화 해서 성공하면 나도 하겠다” 등등 안 좋은 소리까지 듣고 있는 와중에 밀려오는 쪽팔림은 나를 주눅들게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전주영화제의 결과가 있은 다음 날 바로 멕시코 국경에 있는 한국 중소기업인 리모콘 제조공장에 이력서를 보냈다. 아무래도 아르헨티나에서 쪽 팔리게 사느니 아무것도 없는 사막 같은 곳에 달랑 공장 하나 있는 그런 곳에 짱 박혀 일이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의 응답은 전주영화제와는 달리 완전 호의적이었다. 내가 갈 길은 그쪽이구나 라는 운명을 감지한 후 2주 후 멕시코로 떠날 계획을 하며 무의미한 생활을 하던 중 부에노스아이레스 영화제에서 연락이 왔다. 지난 몇 년간 영화제에 오는 한국감독님들의 통역 자원봉사를 했었기에 올해에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번에는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하던 중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실 나도 영화를 한편 만들었는데, 디지털 영화인데 출품 할 수 있냐 라고 소심하게 물었고, 그쪽에선 빨리 보내봐라 마감일이 몇 일 안 남았다라는 대답을 했다. 전화를 끊고 당장 영화카피본을 들고 영화제 사무국에 찾아가 출품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했고 일주일 후에 영화제 측에서 연락이 왔다.

“배연석 감독님! 당신의 영화가 경쟁부문에 올랐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고, 참으로 아이러니 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계획이 거꾸로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될 판이니 말이다.

그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영화제 기간 동안 내 영화는 매스컴에 집중적으로 보도되었고, 선례가 없던 지라, 동양인이 만든 아르헨티나의 첫 영화라는 것이 이슈를 만들었으며, 영화평도 호의적 이여서 영화제 기간 동안 관객투표 2위에 오를 정도로 관객들이 좋아했다.
그리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인터내셔널 프리미엄의 조건으로 초청되었고, 부산국제영화제, 하바나국제영화제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초청 콜과 관심을 받고 있다.

나는 왜 내 영화가 많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나 추측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아무리 허접한 결과물일지언정 내가 영화에 쏟아 부은 열정과 내가 말하려던 진심을 누군가는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그런 것 같다.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만든다면 언젠가는, 누군가는 알아줄 결과물 이 된 다는 걸… 어쩌면 나는 이런 영화는 앞으로 만들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처음처럼 절실한 마음을 유지하기란 힘들 수 있기에…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