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되새기며 새롭게 나아간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2 - 김환태 기획전  대담 기


일시: 2015년 12월 21일(월) 오후 7

참석: 김환태 감독,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진행: 김보람 감독(신나는 다큐 모임 회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시간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2]이 막을 내렸다. 12월, 마지막 기획전의 주인공은 김환태 감독이다. 강경태 열사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감독이 속한 세대의 고민을 담은 <1991년 1학년>(2001),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다룬 <708호, 이등병의 편지>(2004), 원폭피해자들의 삶을 담아낸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2012)까지 감독의 세 작품이 12월 7일과 20일 두 번에 걸쳐 관객들을 만났다. 감독은 데뷔 후 갈지자로 우왕좌왕 시간을 지나왔다고 말하지만 걸어온 그 길 위엔 다큐멘터리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김보람 감독(이하 진행): 김환태 감독 기획전이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2’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다. 세 편이 상영됐는데 선정 계기를 들어보겠다.


김환태 감독(이하 김): 마무리를 하게 돼서 기쁘다. 연말에 이렇게 조촐하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고 감사하다. 신나는 다큐 모임 후배분들이 내년엔 어떻게 하실지 기대가 된다. 

세 편을 선정하라고 해서 <1991년 1학년>, <708호, 이등병의 편지>,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을 선택했다. 15년 정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는데 크게 봤을 때 내가 다룬 주제는 이 세 가지다. 첫 번째, <1991년 1학년>의 주제는 대중운동과 기억이다. 사회적인 경험을 해왔던 걸 다큐로 만든 것이다. 두 번째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다루고, 마지막은 원폭, 핵문제를 다룬다. 세 편을 선정하며 예전에 썼던 연출의도를 좀 찾아봤다. 세 작품엔 ‘기억’과 ‘기록’과 ‘다짐’의 교집합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모든 다큐가 기록과 기억을 다루지만 나만의 특징을 꼽자면 다짐인 것 같다. 이도훈 활동가께서는 ‘투사’라는 표현을 써주셨더라. 투사라는 게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한다는 데에서 의미를 지니지만, 영화적 고민을 덜 한다는 의미로 읽어서 반성을 하기도 했다. 영화적 수사의 문제로 방황했던 시기를 생각하기도 했다. 

<1991년 1학년>은 당시의 경험, 젊은 날의 기억을 단지 추억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기억하고 삶의 동력으로 삼고 싶어서 상영작으로 선정했다. 당시에는 지루했는데 다시 보니 재밌더라.(웃음) 영화에 사람들의 10년간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져 있는데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 많은 것 같더라. 이 작품이 끝나고 다큐 작업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다큐를 하겠다는 마음을 다큐라는 매체로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사회적 책무도 많이 느꼈다. 그 과정에서 2002년에 자연스럽게 운명적으로 <708호, 이등병의 편지>를 시작하게 됐다. 다큐를 해나가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과의 관계라는 생각을 한다.

<708호, 이등병의 편지>는 인물과의 신뢰관계가 있어야 이야기가 쌓여나간다는 걸 직접 체험하고 만끽했던 작업이다. 농성장을 이끌던 사람들이 ‘강철민이란 사람이 현역군인인데, 농성한다고 찍어야 하지 않겠냐’ 먼저 제안해주셔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자연스레 이뤄진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포함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내게 중요한 주제다. 내 안에 내재된 남성성, 국가주의에 대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였다. 이 주제를 다음 작업으로 기획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 작품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작품의 인물들을 만나게 된 건 2005년도다. 이 분들이 히로시마로 종이학을 들고 순례를 떠나는 상황을 보며 한국인 원폭 환우분의 존재를 알게 됐고,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7년 정도 기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가운데 2009년 쯤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스스로가 뚝심이 있어서 하나를 물면 끝까지 간다고 생각했는데 당시는 그게 힘들었다. 진짜 열심히 다큐 작업을 하고 나름대로는 영화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굉장히 없더라. 2007,8년 쯤 어느 자리에서 말한 적이 있다. ‘작품을 몇 년 걸려 열심히 만들었는데 관객으로 만난 사람들을 따지니까 2000명도 안 되는 것 같다’고. 그 때가 힘들었다. 열심히 했는데 관객들을 만나는 게 힘든 현실. 생활인으로서도 힘든 시기가 찾아왔었고. 다 하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고 작품에 대한 치열함이 좀 떨어졌다. 2009년부터 3년 정도는 두문불출하며 영화제에도 많이 안 가고 사람들도 잘 안 봤다. 그러다가 2011년 원전 폭발 사고가 있었고 그동안 기록해 놓은 걸 토대로 영상을 만들고 틀 기회가 있었다. 25분짜리를 만들었는데 핵에 대한 내용을 넣어서 넓히면 장편이 되지 않을까 싶더라. 방금 말씀드렸지만 영화에 대한 치열함이 떨어졌던 시기의 작업이라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이란 작품은 개인적으론 영화적 수사로서는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지만 내겐 소중하게 느껴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분들을 만나고 영화를 만들며 전해들은 말들이 무척 감사했다. 감사하다는 그들의 말이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자각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핵 마피아>라는 작품을 하고 있다. 작업을 더 빨리 끝냈으면 같이 볼 수 있었을 텐데, 내년 3월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하던 방식과 완전히 다르고 매우 치열한 작품이다. 현재로선 매우 만족하고 있다. 물론 끝나봐야 알겠지만.(웃음) 어찌됐던 이 세 작품은 내게 매우 소중한 작품이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도훈 활동가(이하 이): 이 기획전에 초청받았을 때 매우 반가웠던 것은 선정된 세 작품 중 하나를 무척 좋아하고, 또 못 본 작품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보고 정리하자는 마음이 들어서다. 두 가지의 생각을 했다. 하나는 이번 기획전을 통해 내가 잊고 있었던 다큐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또 하나는 다큐는 무엇을 왜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 영화를 보고 있으니까 그런 질문들이 자연스레 떠오르더라. 매 작품마다 나를 부끄러워지게 하는 지점이 있었다. 다큐가 가지는 큰 힘이 있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러움과 반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다큐가 가진 원론적 질문에 관한 것을 먼저 얘기해보겠다. 세 작품의 연출 구성, 작업 태도 등을 보면서 작품을 만들 때 느껴지는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다큐의 내러티브가 사회적인 관심을 다루면서 특정 개인 한 명을 영화의 중심으로 잡는다는 점이다. <1991년 1학년>은 강경대 열사가, <708호, 이등병의 편지>은 강철민을,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은 한전순 회장을 서사의 중심에 둔다. 감독님에게는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을 통해 사회구조 비판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연속성과 시의성이다. 시의성보다는 연속성에 방점을 두고 싶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에 대한 관심, 두 번째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통한 권력에 대한 문제, 세 번째는 핵과 반전에 대한 큰 문제의식이 있지 않나. 이런 걸 연속적으로 작업하시는데 이 점이 재밌는 건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 같은 경우 제작에 7년이 걸리며 시의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감독님처럼 우직하게 한 길을 걷다보면 시대의 부름에 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감독님 작품 안에선 항상 기존의 대중 미디어나 권력자들의 반대편에 소수자가 위치해있는 걸 볼 수 있다.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에도 중간 중간 미디어의 모습과 활동가, 전문가들이 반박하는 모습이 함께 있어서 대립되는 장면이 형성된다. 감독님이 극을 구성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진행: 방금 말씀해주신 걸 듣다보니 한 장면이 생각난다. 마지막 한정수 회장이 흥겹게 춤을 추지 않나. 마지막에 감독님도 함께 춤을 추신다. 감독님은 찍는 대상을 일으켜 춤추게 하고 함께 춤출 수 있는 사람이다. 감독님께서 작업할 때 어떻게 개인에게 다가가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 가는지가 궁금하다.


김: 작업을 해나가는 방식은 ‘시간’이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들어온다. <708호, 이등병의 편지>도 이전의 관계들이 있었기에 작업이 가능했다. 아직까지도 그 분들과 연락한다. 그게 숙제 같은 거다. <핵 마피아> 작업은 이전과 작업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다. 사람이 잘 모를 때는 갈등이 생기는데 조절하는 것도 제 몫이라 생각한다. 내게 맞는 작업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관계 맺는 방식은 상황마다 달라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왔다.


진행: 개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다.


이: 스타일에 대한 말씀을 하셔서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나는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는데 감독님은 은연중에 부정하고 넘어서려고 하시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은 운동과 다큐 작업을 분리한 게 아니다. 생활하고 운동하는 분에 대한 기록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편집하는 식이었는데 그런 스타일에 대해서 아쉬운 점이 있으신 게 아닌가.


김: 절대 그런 건 아니다. 나의 자연스런 방식이다. 단지 진화하고 싶고 새로운 방식들을 하고 싶은 것이고 이건 스타일을 넘어서기 위한 제 다짐이다. 더 치열하게 작업하겠다는 다짐으로 이해해 달라.


이: <1991년 1학년>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나는 03학번이라 91년의 일을 이 영화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 첫 작품으로 이걸 만들게 된 계기가 경험적인 요인에서 뭐가 있었는지 알고 싶다. 다른 작업은 인물들이 생존해있는데 이 작품은 기억과 싸우면서 진행된 것이었다. 왜 이 작품을 처음으로 했나.


김: 1991년 4월 26일, 강경대라는 친구가 백골단에 의해 죽은 그 현장에 나도 있었다. 그 당시에 잠시 어디 갔어야 해서 학생회실에 있었는데 방송으로 그 소식이 나와서 학생들과 몰려갔던 적이 있다. 내가 죽을 수 있었고 우리가 죽을 수 있었다는 부채의식이 있다. 국가 폭력에 대해 체험적으로 느꼈다. 그 당시를 겪었던 사람들이라면 그 부채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군대를 갖다온 후 다큐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에서 그 부채의식 때문에 자연스레 이 작업을 하게 됐다. 생계에 대한 고민도 있었는데 이왕할거면 제대로 해야겠단 생각으로 당시 다니던 프로덕션을 그만두고 하게 됐다. 2000년에 독립해서 2002년까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모두 부채의식을 갚기 위한 작업이다. 영화 내용을 보면 유명한 사람이 많이 나오더라.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나오고 박원순, 한상렬, 이수호 등을 인터뷰했다. 나에게는 사적인 기억이지만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라 환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91학번들이 강경대 열사에 대한 부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영화는 몇 부분으로 나뉜다. 강경대 열사의 죽음과 장례식 과정, 그리고 이후 시위가 전개될 때의 혁명의 분위기가 1부에 압축적으로 편집돼있다. 2부부터 전문가, 91학번들이 나와서 이야기한다. 2부로 넘어가며 느꼈던 게, 1991년 5월을 중심으로 일어난 혁명적 분위기에 열광했던 운동권들이 5월 이후 국면이 바뀌며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데에 대한 좌절감을 토로한다는 점이다. 감독님이 내레이션을 하지 않으셔서 감독님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궁금하다. 5월 국면에 대해 당시 감독님은 어떤 열망을 갖고 있었나. 그 이후의 운동에 대한 아쉬움도 복합적으로 느끼시는가.


김: 비슷한 느낌이다. 내 생각은 내레이션이 아닌 자막으로 이뤄져 있다. 이 작품에선 내레이션을 하지 않았고 <708호, 이등병의 편지>은 나 혼자 내레이션을 했고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은 둘이 했다. 이것도 나의 작은 변화들 중에 하나다. 여하튼 그 땐 자막으로만 했는데, 처음 자막으로 정리했던 코멘트가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열망은 절대적으로 남아있다는 의미다. 마지막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체 게바라의 말을 썼다. 동시대 사람들이 느꼈던 것들에 대한 것이다. 이후 학생운동이 변화되고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었는데 내가 경험했던 91년 5월이 광범위한 대중운동의 마지막이라 생각한다. 그 때 이후로 권력집단의 프레임 안에 대중운동이 말려드는 국면을 띄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열망들이 사그라졌다. 너무 패배감이 크니까. 그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는 마지막에 91학번들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제가 바라는 것들을 자막으로 표현했다. 91년을 정리하는 데 그런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708호, 이등병의 편지>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2007년쯤에 전역을 하고 봤다. 나는 2004년 11월에 입대를 해서 일병 넘어갈 때쯤에 이라크에 자원해서 6개월간 파병을 갔다 왔다. 작품을 보며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 나는 정치외교학과 출신이고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주변의 선배, 친구들과 입대 전 파병 반대와 반전을 외치며 군대에 가서도 총을 들지 않겠다고 얘기했는데 막상 군대를 가니까 하나씩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거기에 순응하게 되고 나중엔 비판적 의식마저 사라져버리더라. 전역 후엔 내가 잘못된, 그릇된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다가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놀라웠던 건 강철민 씨가 옆집에 있는 청년 같은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도 똑같이 강철민 씨를 보고 신기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친구가 과연 큰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그 전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라 8일간 짧게 만났던 사람인데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또 첫 만남 이후 어떻게 머릿속으로 빠르게 작품 구상을 하셨나.


김: 작품 구상을 빠르게 하진 않았고 강철민이란 친구를 어떻게 충실히 기록하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옆에서 거추장스럽게 뭔가를 캐내려는 시도를 하진 않았다. 끝나고 나서 프리뷰하면서 강철민이란 사람의 변화과정을 알게 된 면이 있다. 신념을 뚜렷이 보여주는 친구들과 다르게 약간 어리바리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어쨌든 그 당시에는 과정을 잘 기록하고 남겨놓는 것이 중요했다. 작품이 다 끝나고 난 후 감옥에서 출소하고 만나보니까 더 어리바리하고 착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은 결혼해서 대구에서 잘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음 작업을 하면서는 공개하지 않은 내용이 많아서 출소 얘기관련해서 또 만나지 않을까 싶다. 그 당시엔 쭉 따라가는 게 중요했다.


이: 영화를 보면 농성장 안에서의 일들을 기록했던 게 영화의 주요 임무라고 생각하고 찍었던 것 같은데 거리두기를 의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강철민 씨에 대한 언론의 말들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독과 강철민이 어느 정도로 친밀한지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은 ‘철민이’라고 부르시지만 친해진 게 사후적인 건지, 실제로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 사후적인 거다. 철민 씨라고 불렀다. 농성장에서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든지를 봤기 때문에 그 친구가 울면 같이 울었다. 거리두기를 일부러 하진 않았다. 처음엔 그냥 어려웠다. 중간 중간 이 친구들이 어떤 고민을 할까 상상은 했다. 카메라가 질문을 던지는 것도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 정도 까지만 했다. 오히려 편집을 하며 철민이에 대한 애정이 강화됐고 이후 출소하고 난 뒤 영화를 같이 보고 얘기도 하면서 ‘철민아’라고 할 수 있는 가까운 관계가 됐다. 


관객: 기록하는 것 자체를 중요시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굳이 작품화하지 않아도 기록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김: 그렇진 않다. 내가 해야 되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 여성 문제에 대한 기록을 잘 하지 않는다. 그걸 작업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고 해왔던 걸 하겠다는 생각이 있다. 다큐멘터리스트는 자기 영역이 있다. 다양한 영역을 하진 않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들이 있고 이후 작업으로 지속될 예정이다. 다양하게 다 기록하는 게 아니라 쌓아온 관심영역에 대해 기록한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보장할 수 없다. 또 다큐들이 공개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기도 했다. 기록을 공개할 타이밍 같은 것들에 조급함은 느끼지 않나. 그런 것에 대해 조언하는 사람은 없나.


김: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은 없다.(웃음) 작업을 꾸준히 하고 남겨놓으면 되는 것 같다. 농부의 마음으로 다큐 작업을 한다고 말하는 형이 있다. 김태일 감독이다. 작업을 씨앗뿌리는 마음으로 하는 거다. 이도훈 활동가가 나에 대해 쓴 글 중에 ‘장기간의 작업이 종종 현재성, 시의성, 현재성마저 담보하는데 이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에 선견지명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가능하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 하다보면 시의성과 현장성이 담보되는 거고 그러면 어느 순간에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을 하는 거다. 장맛이 좋으려면 많이 묵혀야 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 않나. 묵혀서 거름만 되지 않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여전히 초심을 잊지 않고 잘 살겠다고 후배들에게 얘기한다. 꾸역꾸역 걸어가는 선배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롤모델이 김태일 감독인가.


김: 롤모델은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형이다. 나이 많은 형. 수염난 형.(웃음)


진행: 두 분 모두 마지막 말씀 부탁한다.


이: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못했는데, 고통에 대한 문제들을 어떻게 영상화하고 사람들에게 인지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요즘 나의 화두다. 이 작품을 보면 핵에 관련된 얘기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았던 경주에는 원자력 폐기물 처리장이 있다. 물론 경주도 서울만큼 면적이 넓어서 발전소가 눈앞에는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처리장이 들어섰을 때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크게 없었다. 이런 걸 누가 알려서 각성을 일으킬 건가하고 생각해보면 방송의 역할은 아닌 것 같다. 방송의 힘으로 스펙터클화되면 오히려 무뎌질 것 같다.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해주는 게 영화의 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 <핵 마피아>를 기대한다.


김: <나쁜 나라>에 나오는 유가족들의 말씀 중 제일 가슴 아픈 말이 ‘당신이 그런 상황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막기 위해 우리가 싸운다’는 거다. 그 분들이 싸우게 될 줄 알았겠나. 카메라를 든 사람은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지점으로 나아가야 한다. <핵 마피아>는 규모 있게 작업한 첫 작품이다. 시스템을 밟으면서 치열하게 작업하기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면 내 작품은 대중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없다. 개봉을 해 본적도 없고. 좀 더 대중과 접점을 가지고 싶다. 다큐라는 매체를 통해 시대와 호흡하고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잘 만들고 싶다. 열심히 만들고 싶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친구에 대한 부채의식을 품고 다큐를 시작한 김환태 감독. 들인 노력에 비해 작품이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 못해서 치열함을 잃었던 시기가 있었고 생활인으로서 위기를 겪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곡절에도 감독은 작업영역을 고수하며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감독은 현재 새로 채택한 도전적인 작업 방식, 성실히 모아둔 기록들을 토대로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작품 제목은 <핵 마피아>.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와 맥이 닿아 있는 이 작품은 핵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부터 되짚는다. 내년 초 완성될 감독의 용감한 다큐멘터리가 보다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길 바란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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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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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2 - 김환태 기획전

● 상영: 2015년 12월 7일(월) 오후 6시 <1991년 1학년> | 오후 8시 <708호, 이등병의 편지>

                       12월 21일(월) 오후 7시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 + 대담

● 장소: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 관람료: 6,000원 (신다모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5,000원)



 김환태 감독 소개 


기록영화제작소 '다큐이야기' 감독으로 반전, 평화,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오고 있다.







 <1991년 1학년 Freshmen In 1991>  _2001, 93분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1학년이던 강경대가 백골단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분노한 사람들은 연일 시위를 거듭하고 정권타도를 외친다. 하지만 장례식과 유서대필 조작 사건, 정원식 외대사건 등을 거치며 91년 5월 투쟁은 종료된다. 그로부터 10년, 강경대 열사를 기억하게 하는 삽화적인 일들과 당시 1학년이었던 91학번들의 "삶"의 이야기, 망월동의 1년이 만나가면서 10년 간 한국사회의 변화와 91년 5월 투쟁이 가진 의미를 살펴본다. 강경대 열사의 10주기인 2001년, 91년을 기억하는 91학번들은 한자리에 모여 새내기 시절 꾸었던 "꿈"을 생각하며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708호, 이등병의 편지 Room 708, The Letter From A Private> _2004, 82분 




2003년 11월 21일 이라크 파병반대 병역거부를 선언한 강철민씨와 그와 함께한 농성장 사람들의 8일간의 기록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 Cruel Inheritance – Heredity> _2012, 94분 




한국원폭 2세 환우회 한정순 회장은 아픔과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다. 2008년부터 환우회 회장을 맡으며 자신의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차츰 알아가고 원폭 2세 환우들의 아픔을 만나면서 진실이 은폐되고 고통이 감춰지는 현실을 당당하게 맞서 나가고자 한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피폭자들은 덩그러니 삶의 한 가운데 놓여져 있다. 잔인한 내림(遺傳)은 계속되고 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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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믿음, 변화에 대한 믿음으로 작업한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 이마리오 기획전 대담 기


일시: 2015년 11월 23일(월) 오후 7

참석: 이마리오 감독,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진행: 김수목 감독(신나는 다큐모임 / <니가 필요해>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이마리오 감독은 뚜렷한 문제의식을 창의적 접근방식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과 후반을 장식했던 그의 작품 세 편이 11월 9일과 23일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됐다. 제2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수상한 <주민등록증을 찢어라>(2001)는 주민등록증 제도의 파시즘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미친 시간>(2003)은 베트남 전쟁동안 한국군에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기억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2008)은 한국독립영화협회 10주년을 맞아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독립영화인들의 일상과 고민을 녹여낸 작품이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의 상영이 끝난 뒤 세 편을 아우르는 대담이 진행됐다.





김수목 감독(이하 김): 우선 두 분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본 후 관객 분들과 얘기 나누겠습니다.


이마리오 감독(이하 이): 기획전에서 세 작품을 고르라고 했는데, 이 세 작품 외에는 제가 혼자서 연출한 게 없습니다. 굉장히 많이 작업한 느낌이지만 세 작품밖에 없고요.(웃음) 오늘 <바람이 불어 오는 곳>를 오랜만에 봤는데 새롭네요. 7년밖에 안 지났는데 굉장히 오래지난 거 같아요. 영화에 등장한 인디스페이스, 미디액트를 비롯한 많은 공간에 변화가 있어서 느낌이 남달랐던 것 같고요.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이하 채): 첫 번째 작품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부터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도 주민등록증 문제 관련해서는 아르바이트 격으로 기자회견을 찍으러 다니다가 우연히 알게 돼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영화에서 이 문제가 다이렉트로, 공격적으로 드러날 때 제가 겪었던 충격이 떠오르면서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기분을 받았어요. 주민등록증이라는 게 자기 존재와 같이 가는 것이고 근본적으로 세계를 보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큐를 보고 상당히 세다고 느꼈습니다. 그걸 논리적으로 진행함과 동시에 감독님 개인의 경험담을 엮은 게 치밀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미친 시간> 같은 경우는 앞이 옆을 따르지 않고 그냥 그 분들의 이야기만 듣는 방식이었어요. 전쟁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그 분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바로 ‘학살’과 맞물리는 걸 보고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와는 접근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살 한 부분만을 건드리면서 자기검열없이 강하게 국가를 비판하는 태도를 동시에 읽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은 달랐어요. 감독님이 세게 나갈 거라고 생각했고 또 개인적인 고민과 엮어서 이 영화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전작들과 달리 따뜻한 태도가 드러나서 조금 놀랐어요. 독립영화의 미래에 대해 따뜻한 믿음이 담겨 있고 낙관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2008년이 배경이기 때문에 촛불집회 정국 같은 게 담겨 있지만, 세 가지 작품 접근 방식이 다 다르고 국가가 국민과 결합되어 있다는 환상을 무너뜨리면서 같이 가는 사람들과의 행보에 대해서 감독님이 상당히 따뜻한 태도를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가와 민중을 구별하는 태도가 현재에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2008년 이후 작업을 안하다보니 이런 자리가 낯서네요. 작업을 할 때마다 기저에 담겨있는 것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음에도 시간이 지나니 ‘내가 뭘 고민했었나’, ‘어디까지 고민했었나’ 잊어버리게 돼요. 요즘에 작업준비를 다시하고 있는 건 국정원 대선개입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어이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이지만 언론들에 가려진 사건에 대해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내가 왜 처음에 다큐멘터리를 하려고 했었나’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하구요. 그리고 거창하게 작품 세계 이런 표현 쓰시는데 그런 거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앞뒤 재지 않고 하는 스타일이라 보니 그렇게 작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 하는 작업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오히려 용인하는 범위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기에요.


채: 작품들을 보면서 기가 막힌 우연인가 아님 엄청난 촉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세 작품 다 무척 타이밍이 좋아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가 나올 때는 마침 정보가 한창 전산화되는 시기였고, <미친 시간> 때는 이라크 파병 시기였고,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의 배경인 2008년은 촛불집회라는 새로운 시위문화가 나왔던 시기라 다양한 사람들이 한 거리에 나와 있는 모습이 영화에 담겼습니다. 사회이슈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이: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비슷할 거라고 봐요. 다큐멘터리가 담는 게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이다 보니까 당시의 사회 공론이나 중요했던 순간을 다루게 되죠. 현실에 발을 딛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현실은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에 담기는 것 같아요. 그게 다큐멘터리의 매력 중 하나이고요. 의도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채: 사회 이슈와 맞닿아가는 것과 또 하나 중요한 게 개인의 경험을 작품에 담는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성찰이 영화에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사회문제와 개인의 경험을 섞는데 고민은 없으셨나요?


이: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제가 등장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계획이었는데 촬영 섭외하는 과정에서 그게 안 된 거죠. 그러다가 우연히 제 모습이 영화에 잡힌 적이 있는데 ‘내가 등장해야겠다’ 하고 그 순간에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 1인 시위를 하고 경찰서를 찾아가기도 했는데 사실 그거 때문에 촬영감독과도 많이 싸웠어요. 영화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거죠. 그렇게 만들고 난 후에 결과물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구나’ 싶으면서 말이 된 것 같았어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등장했으면 남의 얘기로만 느껴질 수 있었던 거죠. 상영을 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좋은 접근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느껴졌어요.



채: <미친 시간>은 학살 희생자들을 만나며 기획된 건가요?


이: 1999년 한겨레21에서 베트남 민간 학살 문제를 기사화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그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어요. TV등 여러 매체에서 많이 다뤄졌는데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으면 좋겠다,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게 한국 사람들에게 공유가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기획하게 되었어요. 굉장히 시간을 길게 보고 시작했습니다. 이걸 보는 한국 사람들이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별로 좋지 못한 감정을 갖고 시작했어요. 물론 생존자들이 느끼는 감정에 비하면 몇 천분의 일도 안 되겠지만. 그러면서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감정을 전하고 싶었어요.


채: 이전 작품과 접근방식이 조금 다른데 더 말하고 싶었던 게 있으셨나요?


이: 베트남 가서 촬영현장에 있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으면 말은 못 알아듣지만 얼굴표정이나 눈빛으로 감정상태가 전해지거든요. 촬영이 끝나고도 그게 계속 남아서 힘들었어요.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는 분들의 작업이 정말 힘들다는 걸 느꼈고요. 또 희생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인터뷰로나마 응어리들이 좀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느꼈던 것들이 영화에서도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감정을 느꼈어요.


관객: 저는 베트남에서 왔습니다. 7년 만에 감독님을 보러왔어요. 저는 이 문제와 관련된 사회운동을 계속 하고 있어요. <미친 시간>을 보면 감독님의 촬영이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정부의 허가 같은 걸 얻기도 힘들고 촬영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이렇게 영화 만드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너무 잘 만드신 것 같아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미친 시간>밖에 없어요. 제가 청소년 교육 관련된 일을 하는데 유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미친 시간>이예요. 오늘 <바람이 불어 오는 곳>도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이마리오 감독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아닌가 싶고요.(웃음) 이마리오 감독님 봬서 영광입니다.


이: 저도 촬영하고 나서 4,5년 동안 관련활동을 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고. 한국에게는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숨기고 싶은 역사인데 그런 부분들이 적극적으로 얘기가 돼야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회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죠.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과 역사적인 정리도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관객: <미친 시간>을 보면 참전한 분들 인터뷰도 계속 나오는데 그 분들 반응이 궁금해요. 섭외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그 때 당시 학살 문제를 인정한 유일한 참전 군인들이시죠. 근데 그 분들도 베트남 전우회 소속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사업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해서 쉽지 않았어요. 그 분들이 드러내는 걸 주저하셨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마산에서 10년 동안 주민등록증 날인 거부 운동을 하고 계셨어요. 그걸로 설득이 굉장히 쉽게 된 거죠. 영화제 할 때 모셔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어쨌든 만족하셨던 것 같아요. 그 분들 말고 다른 베트남 참전하셨던 분들이 보시면 좋을 텐데 그런 기회가 없죠. 지금 나이에 <미친 시간>을 만들었으면 참전 전우회에서도 상영을 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시는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을 거 같고요. 나이를 먹은 게 다 나쁜데 이런 좋은 부분도 생기는구나 싶네요.


관객: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을 보면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부드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8년 당시 상황을 꼬집는 식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한국독립영화협회가 10주년이 됐고, 마침 저도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한지 10년이 됐었죠. 협회 10년을 기념할만한 다큐멘터리를 부탁받았는데 제작기간은 6개월이 주어졌어요. ‘6개월 만에 만들어서 10주년 기념하는 날에 상영을 할 거다’해서 만든 거죠. 그 이전에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라는 한국독립영화에 대한 굉장히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가 나와 있는 상태였어요. 저는 그만큼 깊이 있게 다룰만한 실력도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다가 공동프로젝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형태를 가져와 보기로 했죠. 독립영화인 여섯 명을 선정하고 그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촬영을 하면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식으로 기획하고 작업을 했어요.


관객: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여섯 명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조연출: 선정회의를 많이 했습니다. 경순 감독님과 김태일 감독님 같은 경우는 십년 이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신 분들이죠. 이 분들을 투톱으로 선정했어요. 최진성 감독 같은 경우는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독립영화인같은 느낌이었어요. 본인이 다큐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제에서 얼굴이 잘 안보이게 된 이유가 본인이 참여를 덜한 것도 있고 상업영화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변화의 시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종필 감독은 몇 년 전의 최진성 감독처럼 <불을 지펴라>(2007)로 각광받으며 당시 막 시작한 느낌이죠. 활동가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도 함께 하게 된 거고요. 지역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박광수 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도 넣게 됐습니다. 



관객: 새로 하는 작업 때문에 한국 사회가 더 퇴보됐다고 느낀다 하셨는데 7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보는 소회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새로 작업하시는 과정도 듣고 싶네요.


이: 생각보다 더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웃음) 한국독립영화협회 10주년 되는 날 실제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을 했었거든요.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니까 다들 빵빵 터지고 난리가 났죠. 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재미가 굉장히 반감될 수밖에 없는 그런 작품인 거 같아요. 오랜만에 다시 보니까 좋네요. 화면에 등장했던 공간들은 다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늘 그 자리에서 꾸준히 있으니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표현하는 방식이나 그런 공간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다 사라진 게 큰 변화구나 싶어요. 점점 더 위축이 돼가는 것 같아요. 예술영화, 독립영화 극장들에게 ‘선정한 것들만 틀어야 지원해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내놓고 있고. 이렇게 내몰리는 상황들이 불과 7년 만에 더 늘어난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많이 퇴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작업하는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굉장히 민감한 문제잖아요. 정보기관도 관여돼있고. 어려울 거라는 걸 예상은 했는데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굉장히 겁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인 개인이 아니라 회사 이름이 제작지원에 들어가는 순간 문제들이 발생할 거고 그런 거에 대해서 겁먹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들이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김: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품고 시작하셨다가 좌절을 많이 느꼈다고 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몇 년 만에 다큐멘터리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두 작품을 만들고 나니 저의 바닥이 보였어요. 만들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난 이후 다음 작품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공동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직접 작업은 안 해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하나의 작업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같은 고민들을 하고 함께 만드는 과정이 있더라고요. 그걸 보며 힘을 얻은 것 같아요. 그렇게 공동 작업을 하며 얻은 힘으로 작업을 계속 하게 되었어요. 관심 있는 주제가 사람에 대한 거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첫 번째 이유는 아무도 안하니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잘 만들어야겠는데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는 개봉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하지만 실제로 만들다보니까 어려움이 생겨요. 개봉을 안 하면 돈이 안 드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개봉을 하려면 법적, 제도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거기서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왕 시작했는데 개봉을 해야겠다 싶어요. 내년 정도에 크라우드펀딩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당시 상황을 봐야겠지만 지금은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태예요. 공식적인 곳에서 나서줬으면 좋겠는데 과연 어느 곳에서 나서서 하려 할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관객: 감독님은 서울에 사시다가 강릉으로 이사하셨다고 들었는데 삶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어떤 식으로 나아가려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강릉에 미디어센터가 생기면서 그 쪽에서 일을 하겠다는 훌륭한 핑계를 대고 서울에서 내려가게 됐어요. 서울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주변에 늘 보는 사람밖에 없어서 내가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빠지면 미안한 생각이 드는 상황이죠. 강릉에 내려가서는 사람들과 자그마한 커피가게를 하면서 2층에선 영화 상영을 하고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사람들, 지역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협동조합도 계획하고 있어요.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밌죠. 지금 하고 있는 작업 같은 경우엔 PD빼고 다 강릉 출신 스텝들이예요. 제작비가 많았으면 다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텐데.(웃음) 주변에 촬영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 영화를 하고 있는 친구들, 미디액트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과 작업을 하고 있죠. 그렇게 나의 생활과 작업이 섞이는 건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서울에서 살던 것 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있어요. 오늘도 서울에서 사람들 만나려고 일찍 왔는데 다들 정말 바쁘게 살더라고요. 뭔가에 쫓기듯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지방에 가면 안 그래도 돼요. 훨씬 더 마음의 여유, 정신적인 여유를 충분히 누리면서 살 수 있어요. 경제적인 여유를 조금만 포기하면 돼요. 포기라는 게 심각한 정도는 아녜요.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연친화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자연이니까. 생각하는 지점들이 더 넓어지고 여유 있어 지는 것 같아요. 사건이든 사람이든 날카롭게 본다기 보다는 부드럽게 보게 돼요.


김: 강릉에 ‘봉봉방앗간‘이라고 있는데 1층은 까페, 2층은 상영공간이에요. 너무 좋아요. 상영을 생각하시고 계시다면 강추합니다. 커피도 맛있고요.(웃음)


채: 저는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의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배경으로 한 마지막 장면에서 힘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영화에 나왔던 것 같은 그런 여유를 감독님이 품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그런 부분이 있죠. 있으니까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영화를 믿는다기보다는 사람을 믿어요. 그리고 한국 사회가 힘들지만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런 믿음이 없다면 굳이 한국 사회에 발 딛고 작업을 하는 이유가 없죠. 저 말고도 여전히 창작을 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굳건히 살고 있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그런 변화의 지점은 각자에게 다 있다고 생각해요. 꿋꿋이 버티고 작업을 하다보면 7년 전의 <바람이 불어 오는 곳>에서 느껴졌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도 또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등장하는 사람들, 혹은 등장인물들과 잘 아는 사이의 독립영화인들이 영화관을 많이 찾은 듯 했다. 때문에 영화를 상영하는 두 시간동안 상영관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마냥 유쾌하진 않았다. 스크린 속 그들이 말하는 영화와 사회에 대한 고민은 곧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점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작업과 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사회를 향한 변화의 바람은 그들에게서 불어오는 것이라 확신한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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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2 -이승준 기획전 초대 이벤트 ::





페이스북 댓글로 <달에 부는 바람> 기대평을 남겨주세요. 

  응모하기  >> http://on.fb.me/1IxDzrU

추첨을 통해 관람의 기회를 드립니다. (1인 2매)

 

초대일시: 8월 17일 (월) 오후 7

초대장소: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이벤트 기간: ~ 8월 15일 (토)

당첨자 발표: 8월 16일 (일) 개별연락

(당첨되신 분께서는 공연 당일 매표소에서 본인 확인 후 티켓 받으시면 됩니다.)




<달에 부는 바람>  Wind on the Moon _2014년, 98분



태어날 때부터 시청각 중복장애를 안고 살아온 열아홉 살 예지의 세계는 일반인들이 다가가기에 좀처럼 쉽지 않다. 엄마는 이런 예지와의 소통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단 한 번도 무엇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는 예지는 마치 우주인처럼 무한하고도 칠흑 같은 공간을 떠다니는 듯하다. 과연 예지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며, 우리는 그곳을 잠시라도 엿볼 수 있을까?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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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2 - 이승준 기획전

● 상영: 2015년 8월 3일(월) 오후 6시 <신의 아이들> | 오후 8시 <달팽이의 별>

                       8월 17일(월) 오후 7시 <달에 부는 바람> + 대담

● 장소: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서울극장 6관)

● 관람료: 6,000원 (신다모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5,000원)





 이승준 감독 소개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을 꿈꿔왔다. 디자인회사에서 글 쓰는 법을, 1년 간 인도에 있었을 땐 고단함을 이기는 법을, 다큐멘터리 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에선 일상의 위대함을, 한 케이블 방송사에선 방송의 정형성을 운 좋게 배울 수 있었다.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며 TV든 극장이든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전쟁 - 인도 비하르 리포트>(1999) 공동 연출, <폐허, 숨을 쉬다>(2002), <들꽃처럼, 두 여자 이야기>(2007), <신의 아이들>(2008), <달팽이의 별>(2011), <달에 부는 바람>(2014)





<신의 아이들>  Children of God _2008, 90분, 12세관람가



네팔의 퍼슈퍼띠낫에 있는 성스러운 강 바그머띠를 따라 그려지는 아름답고도 기이한 풍경, 그리고 삶과 죽음의 공존. 어떤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화장하는 동안 아이들은 장례식장에서 떠내려오는 돈과 음식을 얻으려 생존을 위해 강에 뛰어든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여인들이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달팽이의 별Planet of Snail _2012년, 85분, 전체관람가



영찬 씨와 순호 씨가 사는, 달팽이의 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보이지 않는 눈과 들리지 않는 귀를 가졌기 때문에 마치 달팽이처럼 오직 촉각에만 의지해 아주 느린 삶을 사는 영찬 씨. 

영찬 씨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순호 씨는 척추장애로 조금 작은 몸집을 가졌지만 영찬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생명줄 같은 역할을 한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이 연인의 사랑은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나, 우주에서 가장 빛난다. 





<달에 부는 바람>  Wind on the Moon _2014년, 98분



태어날 때부터 시청각 중복장애를 안고 살아온 열아홉 살 예지의 세계는 일반인들이 다가가기에 좀처럼 쉽지 않다. 엄마는 이런 예지와의 소통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단 한 번도 무엇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는 예지는 마치 우주인처럼 무한하고도 칠흑 같은 공간을 떠다니는 듯하다. 과연 예지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며, 우리는 그곳을 잠시라도 엿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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