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세상의 종말이 올까  인디돌잔치 <그들이 죽었다>  인디토크 기


일시: 2016년 12월 27일(화)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백재호 감독, 김상석 배우

진행: 정지혜 씨네21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홍수지 님의 글입니다.


이번 인디돌잔치에서는 백재호 감독의 <그들이 죽었다> 상영과 인디토크가 있었다. 영화는 대학로의 무명배우들이 주축이 되며 지구 종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이야기이다. 이날 인디토크에는 정지혜 씨네21 기자, 백재호 감독, 김상석 배우가 참여하였다.  

   


정지혜 씨네21 기자(이하 정): 영화가 2015년에 개봉했고 1년 만에 다시 관객들을 만나는 자리다. 영화를 만든 계기를 생각해보려면 2012년 대선이 있던 때로 거슬러가야 할 것 같다.


백재호 감독(이하 백): 배우로 활동하다가 김상석 배우와 <별일아니다>(2013)로 처음 영화를 직접 찍어봤다. 김상석 배우가 연출한 영화를 찍고 나서 내 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 그게 2012년 가을이었다. 찍는 중에 대선 결과가 나왔고 그걸 보고 그만뒀다. 영화를 찍느라 사회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을 담아서 새롭게 시나리오를 쓴 것이 <그들이 죽었다>이다.


정: 영화를 찍고 있던 상태에서 그걸 그만두고 새롭게 찍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일은 굉장히 큰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감독님에게 괴로운 일이었을 것 같다.


백: 김상석 배우와 둘이서 술집에서 개표방송을 봤다.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결과가 나와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펑펑 울었다.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자신에 대한 화도 많이 났다.


정: 김상석 배우님은 이런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같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김상석 배우(이하 김): 신세 한탄은 <별일아니다>에서 한 번 해봤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사회적으로 여러 일들이 생기게 되어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 사이의 공백은 친구였기 때문에 기다려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백재호 감독이 부산에 틀어박혀서 시나리오를 고쳐왔다. 고친 시나리오가 훨씬 좋다고 생각했고 다시 추진력을 얻어서 찍게 됐다.


정: 2012년 12월 21일에 과연 세상의 종말이 올까, 하는 질문에서 영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것이 감독님에게 어렸을 때부터 화두였다고 들었다. 영화가 현실적 고민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 


백: 나도 그렇고 영화 속 ‘상석’이라는 캐릭터도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큰일이 눈앞에 있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 속 일들이 다 겪어본 일은 아니지만, 실제로 경험한 일이 하나 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붙잡더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왜 그렇게 여유롭게 사냐”고 물었던 일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자주 잊고 해야 할 일들을 미룬다. 그런 것들을 상기시키고 싶어서 영화 속에서 계속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정: 실명으로 극 중 인물들을 소화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부담되는 점이 있었을 것 같다.


김: 처음 감독이 “너희 이름 아무도 모르니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도 이름을 각인하게 하자”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별생각 없었는데, 김태희 배우가 본인의 이름에 자부심이 있다.(웃음) 김태희 배우가 강력하게 찬성을 했다. 불편한 점은 딱히 없었다. 영화가 규모가 작다. 평소처럼 대화하다가 영화를 찍게 되는 상황에서도 헷갈리지는 않았다. 


정: 영화를 다시 보니 사운드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 소리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인물들은 그것과 무관한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의도로 그런 소리들을 넣게 되었는지?


백: 2012년의 정치, 사회에 대한 뉴스들이다. 편집을 할 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그때 우리가 외면했던 것들이 지금의 이런 상황을 발생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소리들을 넣게 되었다.


관객: 감독님과 배우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것 같다. 영화가 굉장히 현실적이다. 그런데 결말은 종말론이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간다. 마지막의 ‘컷’이라는 용어 자체도 영화용어다. 영화적으로 결말을 맺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백: <그들이 죽었다>를 만들 때 이 세상이 멸망하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래서 결말이 그렇게 맺어진 것 같다. 앞의 이야기들도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부분들이 있지만, 어쨌건 영화 속 이야기다. 앞의 이야기나 뒤의 이야기나 어느 것이 더 판타지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관객: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다 쓰고 촬영에 들어갔는지, 영화를 찍으면서 계속 바꿨는지 궁금하다. 


김: 세부적인 장면들을 완벽하게 쓰고 들어간 것은 아니다. 리허설을 하면서 수정된 장면도 대단히 많다. 독립영화치고는 럭셔리하게 찍었다.(웃음) 50회차 정도로 찍었다. 시간이 되면 모여서 하루에 한 씬 찍고 끝내고, 이런 식이었다. 다시는 이런 방식으로 못 찍을 것 같긴 하다. 그런 방식으로 찍게 되면서 생각들이 덧붙여져 영화가 완성됐다. 


백: 기획을 할 때부터 계속 같이 찍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생각했다. 연출을 많이 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실험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관객: 혜화동에 5년 넘게 살고 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배경들이 눈에 익었다. 그 공간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백: 주인공들이 배우이기 때문에 그 근처에 모여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태희 배우와 김상석 배우도 그곳에 살고 영화 속의 옥탑방은 촬영감독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의 집이다. 가장 많이 본, 편한 곳으로 선택했다. ‘주연배우’ 포장마차는 아현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관객: 일출 장면을 기대했는데, 해가 이미 떠 있어서 아쉬웠다. 


백: 일출의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지 않았고 우리 장비로 멋있게 담기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굳이 영화에서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관객: 극 중 ‘재호’가 쓴 시나리오 <차마 말하지 못해>의 경우 염두에 둔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다. ‘화’가 노래방 도우미로 설정된 이유도 궁금하다.


백: <차마 말하지 못해>는 있었던 시나리오고 원래 찍으려고 했던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로 설정되어있었다. 그런데 찍으려고 하니 스태프들을 데려올 상황이 못 됐다. 나를 찍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더 가볍고 실험 가능한 시나리오를 쓰려고 마음먹고 <그래도 괜찮아>를 썼다. 그 시나리오에서 화는 대학로의 바에서 일하는, 배우를 꿈꾸는 인물이었다. 영화를 다시 쓰면서 주인공들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상석이라는 캐릭터가 좋게 보이지 않는 행동들을 했으면 싶었다. 그런 부분에서 상석은 다른 사람들에게 못하는 행동을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 속 상석이 노래방 도우미인 화를 상상해 낼 거라고 생각했다.


관객: 몇몇 장면에서 앞에 피사체가 걸려 있곤 하다. 의도한 것인지 궁금하다.


백: 특별한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평소에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 직감으로 찍는다. 


관객: 그들이 죽은 이유가 마치 뉴스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은 문제의식이 정치적인 부분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하다.


백: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정치적인 것들에 무관심하다는 생각에서 넣은 것도 있고 힌트로 넣기도 했다. 마지막에 상석과 화가 여행을 가서 듣는 뉴스는 내가 녹음한 것이다. 그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걸 알아챈 관객은 그 장면이 상석의 영화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며 상석이 바라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관객: 영화 속에서 또 영화를 찍는 구성이다. 현실과 허구가 구분되지 않는 지점이 많다. 아이폰이 4였다가 5였다가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휴대전화를 구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백: 어쨌든 다 허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에 현실은 하나도 없다. 실험적인 것들을 많이 시도해봤다. 휴대전화를 번갈아 사용한 것은 관객들이 이것이 허구인 것을 알아차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랬던 것이다.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이 영화가 영화인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일반 관객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 나름의 장난을 많이 친 것 같다. 


정: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린다.


백: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 하고 싶은 일이지만 못하는 것은 배우뿐 아니라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들 원하시는 일을 이루셨으면. 응원을 드리고 싶다.


김: 올해는 안 좋은 일들이 많았는데, 내년에는 좋은 일들이 있길 바란다. 영화처럼 우리 인생에도 판타지 같은 순간들이 꼭 올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죽음이 아닌 세상의 종말을 상상한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가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종말은 개인의 죽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세상의 구조적인 문제까지도 모두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그들이 죽었다>는 이 세상에 대한 기대보다도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더 그럴듯한, 죽음이 아닌 종말을 바라는 세상에서 만들어진 영화일 것이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Indiespace_Newsletter_20161220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돌잔치 2016년 12월의 상영작 <그들이 죽었다>


디돌잔치는 1년 전 개봉된 독립영화의 1주년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관심을 듬뿍 받으며 상영된 영화의 1주년을 다시 한번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자리. 이제는 온라인 다운로드, IPTV 등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창구들이 너무 많아졌지만, 스크린을 통해 그 때의 감동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일시: 2016년 12월 27일(화) 오후 8시

●  입장료: 무료 (상영 10분 전부터 선착순 입장)

●  상영 후 인디토크

    참석: 백재호 감독, 김상석 배우 | 진행: 정지혜 씨네21 기자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스페이스가 관객 여러분과 함께 마련하는 값진 상영회!

개봉 1주년을 맞이하는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투표로 선정해주세요.

지난해에 아쉽게 놓친 작품이 있다면, 혹은 스크린을 통해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주저 말고 투표해주세요:-)


자, 2016년 12월의 '인디돌잔치'의 영광은 어떤 작품에게 돌아갈까요? (두근두근)


>> 투표하러 가기 (클릭!) <<




● 후보작

① 나쁜 나라 (감독 김진열 | 2015년 12월 3일)

② 그들이 죽었다 (감독 백재호 | 2015년 12월 10일)

③ 불안한 외출 (감독 김철민 | 2015년 12월 10일)

④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감독 안재민 | 2015년 12월 17일)

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감독 이상우 | 2015년 12월 31일)


● 투표기간: ~ 12월 14일(수)

● 발표: 12월 15일(목) 이후

● 상영일: 12월 27일(화) 저녁 

(입장료: 7,000원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후원회원 무료)


* 투표에 참여해주신 분들 중 5분(1인2매)을 선정하여 초대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그들이 죽었다>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PAH3KR




<그들이 죽었다> : 찬란한 순간이라서 청춘이 아니야



*관객기자단 [인디즈] 채소라 님의 글입니다.


봄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나이에 익숙해지는 계절인 봄이 되니 ‘청춘’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맴돈다. 청춘(靑春). 만물의 푸른 봄철이라는 뜻이다. 추위에 얼어있던 땅이 녹고 동물들이 겨울잠에서 깨는 에너지를 품는 계절. 사람의 인생에서 20대를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청춘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대한민국의 20대들은 에너지 넘치는 봄을 닮았을까? 아니 닮아야만 할까? 닮지 않았으면 청춘이라 할 수 없는 걸까? <그들이 죽었다>에서 그 물음에 두루뭉술한 대답을 들어볼 수 있다. 사실 <그들이 죽었다>라는 영화 자체가 청춘들이 몸부림 친 결과이기도 하다.



영화 주인공인 ‘상석’, ‘재호’, ‘태희’는 무명 배우다. ‘주연배우’라는 단골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주연배우가 되지 못한 처지를 한탄한다. 상석은 돈 벌이를 위해 후배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며 지내고 태희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만 줄줄이 떨어진다. 재호는 배우로서 선택 받는 삶을 잠시 접어두고 직접 카메라를 들겠다고 나선다. 비록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카메라지만. 



셋 중 상석은 재호와 의기투합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애쓴다. 스태프들도 열심히 구슬려보고 재호도 위로해 가면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그러던 상석은 자살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그것마저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운다. 상석의 울음은 영화 내내 상석이 구토를 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속에선 뭔지 모를 에너지가 들끓는데 세상에 그걸 펼칠만한 기회가 도통 오질 않는다. 그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건 헛구역질과 우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죽었다>에서 무언가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부분은 없다. 어딘가 뭉뚱그려진 결말이 다가올 때 조금 당황스럽다. 영화의 흐름도 큰 갈등이나 위기 없이 작은 몸부림들의 연속이다. 영화의 흐름도, 결말도 영화적으로는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그런 영화의 매무새가 꼭 무언가 이루지 못해 불안하고 지난한 청춘의 삶과 닮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편, 무시하려고 해도 자꾸만 흘러나오는 사운드가 있다. TV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다. 영화는 이렇게 몸부림을 쳐도 소용이 없다고 말하듯 경제-정치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흘려 보낸다. 누군가는 세상 탓만 하는 무기력한 청춘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 탓을 할 만한 세상이다. 그 세상 위에서 봄을 보내야 하는 청춘들은 무언가를 하려고 하다가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사실 무언가 해보려고 주인공 상석처럼 이리 저리 애써보다가, 이대로 괜찮냐는 물음에 머뭇거리게 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참 장하다. 청춘은 봄처럼 따스하고 밝은 나날을 보내기 때문에 봄과 닮은 것이 아니라 봉오리를 툭 터뜨릴 에너지를 내뿜고 있기에 봄과 닮았다. 사실은 <그들이 죽었다>에서 보여주는 주인공들은 가장 사실적인 청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빛나는 나날을 보내지 못한다고 좌절할 것 없다. 대신 무언가를 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지를 되뇌어보자. 그럴 여유조차 없다면 딱 102분만 시간을 내어 <그들이 죽었다>를 보면 된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5년 하반기 총결산! 인디즈가 뽑은 올해의 최고의 영화 / 배우 




*관객기자단 [인디즈] 차아름, 김가영 님의 글입니다.


12월,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이제 진짜 연말이다. 201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인디즈 5기 식구들은 올해 하반기 인디스페이스 상영작 가운데 각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영화/배우를 꼽아보았다. 각자의 개성이 담겨있는 답변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2015년 하반기에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무슨 영화를 상영했고, 어떤 배우들을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는지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이 중에서 놓친 영화가 있다면 아쉬워해도 좋다! 




[인디즈] 김가영이 선정한 최고의 영화 <울보 권투부>(감독 이일하)




(1) <울보 권투부>를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일본에서도,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재일동포들이 끝까지 자신들의 뿌리를 지키고자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어요. 정말 가깝고도 먼 존재라고 할 수 있죠. 그들이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더 단단해지고,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뭉클하기도 했고, 어눌한 조선말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그런 과정 하나하나들이 너무 귀여웠다고나 할까요? 생판 모르는 사이인데 영화 한번 봤다고 친한 사이가 된 것 같은 기분, 이게 다큐멘터리의 묘미이기도 한 것 같아요.


(2)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해주세요!

- 끝부분에 3학년 학생들이 졸업을 할 때, 코치님이 권투부에서 얻은 정신력으로 사회를 헤쳐나가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는 졸업하는 학생들의 펀치를 온몸으로 받아내시는데, 그 장면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모습이 드러났던 것 같아요. 


(3) 이 영화를 추천한다면 누구에게?

- 재일동포에 대해 알고 싶거나,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인디즈] 김가영이 선정한 최고의 배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감독 홍상수)의 정재영



(1) 정재영 배우를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함춘수’역은 정말 정재영 배우한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배역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랑 영화관에서 배꼽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특유의 어눌함과 쑥스러워 하는 모습, 능글거리는 모습, 술 취한 모습, 그 모든 게 딱 떨어지는 느낌! 정재영 배우가 없었다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도 없었을 거에요.


(2) 이 배우, 이 영화의 이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

- 영화 <영도>의 주인공.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가진 ‘영도’ 역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정재영 배우의 얼굴에서 묻어 나는 무게감으로 영도의 미스터리한 느낌과 비극적인 운명을 잘 소화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인디즈] 김수빈이 선정한 최고의 영화 <위로공단>(감독 임흥순)




(1) <위로공단>을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봉제 공장부터 콜센터까지, 여성 노동자들이 일해 온 무대를 배경으로 한국 여성 노동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영화였어요. 그 시간들을 걸어온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던 것도 좋았고요. 다큐멘터리로 일관하는 게 아니라 중간 중간 선명한 이미지의 영상들을 결합함으로써 이전의 증언들을 곱씹고 화면에 배치된 다양한 상징들에 내 생각을 엮을 여지도 충분했다고 생각해요. 감독의 여성노동자들을 향한 진심 어린 존중의 태도가 영화를 한층 깊게 만든 거죠.


(2)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해주세요!

-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이 아무리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담담히 이야기하다 결국 눈물 흘리는 장면. 그녀가 느끼는 무력감과 불안, 자식에 대한 미안함 같은 감정들이 일순간에 와 닿았던 장면이에요.


(3) 이 영화를 추천한다면 누구에게?

- 세상의 모든 여성 노동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인디즈] 김수빈이 선정한 최고의 배우 <오늘영화_연애다큐>(감독 구교환, 이옥섭)의 임성미



(1) 임성미 배우를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오늘영화>의 세 번째 에피소드 <연애다큐>를 보면서 한 중반 정도까지는 진짜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어요. 교환(구교환 분)과 하나(임성미 분)가 어찌 진짜 연인이 아닐 수 있단 말인가요! 뒤에 이별 얘기 나오면서 다큐멘터리라는 믿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그 정도로 연기가 생생했죠. 선글라스 끼고 햄버거를 먹으며 씩 웃는 첫 장면에서부터 생 참외를 껍질 째 씹어먹는 장면,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갤러리를 거닐던 장면까지. 그녀가 등장하는 순간 순간이 유달리 선한 인상으로 남아있어요.


(2) 이 배우, 이 영화의 이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

-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는 이 배우를 ‘<스파이>의 여주인공 멜리사 맥카시를 보는 듯 통쾌하고 청량한 느낌까지 전해준다’고 표현했어요. 이 말을 보고 ‘이거다!’ 싶었죠. 뒤집어지게 웃긴 대사를 진지한 표정으로 내뱉는 배우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아무리 센 수위에 방대한 양의 대사를 줘도 거뜬히 소화해 낼 것 같아요. 날렵한 액션 연기도 기대되고요.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팬으로서의 바람이고, 그 깨끗하고 말간 얼굴로 어떤 역할이든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디즈] 심지원이 선정한 최고의 영화 <오늘영화>(감독 윤성호, 강경태, 구교환, 이옥섭)




(1) <오늘영화>를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오늘영화>는 그야말로 '우리, 오늘 영화 볼래?'라는 말 한 마디가 주는 산뜻함을 스크린으로 옮긴 듯한 영화였어요. '영화'와 '연애'라는 누구나 공감 가능한 소재들을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풀어낸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참 매력적이었고요. 영화를 보는 사람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데 모여 만들어낸,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였네요.


(2)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해주세요!

- 세 번째 에피소드인 <연애다큐>의 오프닝. 교환이 하나를 카메라에 담는 그 모습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했어요. 


(3) 이 영화를 추천한다면 누구에게?

- 영화, 그리고 연애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인디즈] 심지원이 선정한 최고의 배우 <거짓말>(감독 김동명)의 김꽃비



(1) 김꽃비 배우를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김꽃비 배우는 언제나 택하는 배역마다 예상치 못한 강렬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거짓말>에서도 역시 자신을 포장한 채 살아가는 아영 역을 섬세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아줄지, 무척이나 고대하게 되는 그런 배우인 것 같아요. 


(2) 이 배우, 이 영화의 이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

-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역할들을 많이 했으니, 코미디 장르에서의 풋풋한 모습도 보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인디즈] 차아름이 선정한 최고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감독 홍상수)




(1)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최고의 영화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홍상수 감독 작품은 대부분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지만 비슷한 상황과 말의 반복이 이어지고 그 안의 미묘한 차이에서 달라지는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 매번 흥미롭게 느껴져요. 이번 영화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1부와 2부에서 거의 같은 상황, 같은 인물이 주어지지만 사소한 차이로 태도가 극명하게 달라지죠. 그래서 더 확연히 그 의미가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더 말해 뭣하겠어요. 실소가 아니라 가끔은 폭소가 터질 만큼 재미있었어요. 


(2)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소개해주세요! 

- 여느 홍상수 감독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역시 술 마시는 장면이 영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어요. 그 중 스시집에서 희정(김민희 분)과 춘수(정재영 분)가 대화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1부에서는 춘수의 순수하지만은 않은 의도를, 2부에서는 가감 없이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춘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에 따라 달라지는 희정의 반응을 비교해서 보게 하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특히 춘수가 머리를 뜯으며 자신의 결혼사실을 알리는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3) 이 영화를 추천한다면 누구에게?

- 연애에 있어 흑역사 하나쯤 갖고 있는 사람들? 이 영화를 본다고 달라지진 않겠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인디즈] 차아름이 추천하는 최고의 배우 <오늘영화_연애다큐>(감독 구교환, 이옥섭)의 구교환



(1) 구교환 배우를 선정한 이유는?

- 구교환이라는 배우를 <오늘영화>에서 처음 봤어요. 우선 목소리가 굉장히 특이해서 대사 한마디 뱉었을 뿐인데 웃음이 새어 나오더라고요. 반면 목소리와 다르게 외모와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고 느껴졌어요. 또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말투까지. ‘이 배우 매력 있는데?’ 했죠. 다른 출연작품이나 연출작도 찾아봤는데 <연애다큐>에서도 느꼈지만 특히 <왜 독립영화감독들은 왜 DVD를 주지 않는가?>(2013)를 보면서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뭔가 허를 찌르는 임팩트가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 이 배우, 이 영화의 이 역할 잘 어울릴 것 같다.

- 지금 생각나는 건 <러브픽션>의 ‘주월’(하정우 분), 좀 찌질하고 코믹한 캐릭터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딱 정하기가 힘드네요. 그 동안 해온 코믹연기를 계속 보고 싶기도 하고 좀 더 무게감 있는 연기도 훌륭히 해낼 것 같아 기대되기도 해요. 






[인디즈] 추병진이 선정한 최고의 영화 <위로공단>(감독 임흥순)




(1) <위로공단>을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먼저, <위로공단>은 우리들이 차마 알지 못했던, 혹은 잊고 지냈던 당시 여공들의 아픈 기억들을 프레임 속에 복원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지 않을까. 거기서 더 나아가, <위로공단>은 과거 여공들이 흘린 눈물이 현재에는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줘요.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인터뷰는 우리의 가슴마저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죠. 또한 얼굴을 가린 소녀나 산을 오르는 어린 자매 등의 이미지들은 영화의 흐름 속에 녹아 들며 우리의 감정을 더 애달프게 만들어요. 결국 <위로공단>은 한 편의 산문이자 서정시 같은 작품이라 생각해요.


(2)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해주세요! 

- 영화의 맨 마지막, 두 할머니가 다리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 모진 세월이 지나가고 이제 노인이 되어버린 두 자매. 언니는 동생을 업고 동생은 언니의 등에 업혀 있어요(혹은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이 천천히 다리 위를 지나갈 때, 화면 바깥에서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와요. 인터뷰에서 말한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하나의 메아리처럼 들리는데 이 두 가지 요소가 한 순간에 나타날 때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어요. 


(3) 이 영화를 추천한다면 누구에게?

- 모든 기업인, 정치인.


[인디즈] 추병진이 선정한 최고의 배우 <그들이 죽었다>(감독 백재호)의 이화



(1) 이화 배우를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그들이 죽었다>에서 극 중 '이화'는 러닝타임 중에서 거의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등장해요. 이 인물이 등장함과 동시에 영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노래방 씬에서는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이후 상석과 옥상에서 대면할 때에는 싸늘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죠. 이 영화에서 지구 종말을 믿고 심각한 상태에 빠져있는 사람은 이화뿐이에요. 그래서 그녀의 표정은 유독 어둡고 차가워 보여요. 이화 배우님의 표정과 목소리는 이 인물의 심각함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 같아요. 또 바닷가의 배경만큼이나 서늘한 이화의 모습은 그만큼 아름다웠어요.


(2) 이 배우, 이 영화의 이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

- <만추>에서 탕웨이가 맡은 '애나'



엊그제 새해가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2015년이 저물어간다. 한 해를 돌이켜보니 올해도 수많은 독립영화가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기획기사를 통해 ‘인디즈’가 선정한 영화 외에도 극영화, 다큐멘터리를 망라하고 다양한 장르의 의미 있는 작품들이 2015년 독립영화계를 풍성하게 장식해주었다. 그 덕분에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으로 다가올 2016년을 이끌어갈 새 작품들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내년에도 인디스페이스, 인디즈와 함께 의미 있는 독립영화들을 만나기로 하자.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하반기 독립영화 캐릭터 열전, 독립영화 인사이드 아웃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올 하반기에도 수많은 캐릭터들이 스크린에 피고 졌다. 절망 속에서 고투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수남, 현실과 다큐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애의 달고 쓴 맛을 생생히 보여준 <오늘영화>의 교환과 하나, 서로 기댄 채 추운 겨울을 살아내던 <들꽃>의 세 소녀 수향, 하담, 은수 등. 관객 저마다의 마음속에 남는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그 숱한 매력적인 캐릭터들 중 몇 가지 뚜렷한 성격으로 기억될 캐릭터들을 모아봤다. 역시나 올해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캐릭터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올 하반기 독립영화의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를 소개한다.



1. 감히 ‘춘블리’라 불러드리고 싶다. 기쁨이 | <춘희막이>의 춘희할머니



한 집안의 본처와 후처로 만나 35년의 세월을 가족으로 살아온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춘희막이>. 모녀 같고 친구 같은 두 할머니의 케미가 빛나는 작품이다. 풍성한 머리숱과 유쾌한 웃음소리를 자랑하는 춘희 할머니는 과연 올 하반기 독립영화 최고의 ‘기쁨이’다. ‘주 차 삘라’, ‘대가리 쳐 박아라’ 등 막이 할머니의 다소 거친 (동시에 애정담긴) 구박을 받으면서도 춘희할머니는 막이할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거둘 줄 모른다. 굽은 자세로 콩콩 뛰며 장난기어린 모습으로 화면에 처음 등장한 춘희 할머니.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긍정에너지를 발산한다. 하지만 막이 할머니가 집을 비운 날 밤, 전에 없던 서글픈 눈물을 보인다. 그 좋아하던 식사도 마다하며 막이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춘희 할머니. 영화 내내 미소를 짓고 계시던 할머니이기에 그 모습이 더 뭉클하다.

- 바로 그 장면! 

남의 밭에서 몰래 고추와 밤을 줍던 장면. 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춘희할머니. 밭 귀퉁이에서 열심히 고추를 캐고 밤을 줍는다. 된장에 찍어먹을 계획을 밝히며 잔뜩 들뜬 모습이다. 한참 후에 덧붙이길, “좀 있으면 밭주인 올 텐데.” 일종의 ‘서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양파망 가득 고추와 밤을 채워 돌아가는데 길 저편에서 밭주인이 다가온다. 춘희 할머니는 뒷짐을 고쳐 지으며 잔뜩 긴장한 뒤태를 보여준다. 밭주인 아저씨가 점점 다가오자 할머니는 묻지도 않았는데 대뜸 고추를 내보이며 말한다. “밤 주워 먹을라는데 밤이 없다. 이건 고추! 고추 새파란 거 베어놨데. 주워간다. 좀 주워서 먹을게요.” 정작 밭주인은 별 개의치도 않는 얼굴이다. 사랑스러운 ‘기쁨이’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장면.



2. 종말을 기다리는 자. 슬픔이 | <그들이 죽었다>의 이화



영화를 꿈꾸지만 능력을 펼칠 기회조차 쉽게 얻지 못하던 젊은 영화학도들이 힘을 모아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그들이 죽었다>. 연출진들이 곧 영화의 주조연이기에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만큼 제작진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와 닿는다. 주인공들이 만드는 영화의 여주인공 이화(이화 분)는 화사하고 밝은 얼굴로 첫 등장한다. 주인공 상석은 그 모습에 반한다. 그러나 직업의 굴레를 벗고 일상에서 마주한 그녀는 무척 침체된 얼굴이다. 그런 모습을 낯설어 하는 상석을 향해 이화는 차갑게 말한다. 이전에 본 모습은 가면을 쓴 모습이라고. 알고 보니 그녀는 인류 멸망, 세계 종말의 날만 꼽고 있는 여자다. 상석을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나며 새 희망을 품을 만도 하지만 그녀의 가라앉은 마음엔 변함이 없다. 담담히 지구 멸망을 기다리던 ‘이화’라는 여자는 올 하반기 스크린에서 만난 가장 슬픈 얼굴 중 하나였다.

- 바로 그 장면!

다가오는 종말의 빛으로 얼굴이 환하게 빛나던 장면. 바다로 함께 여행을 떠난 이화와 상석. 둘은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음악, 술,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예외 없이 끝은 다가온다. 이화와 상석이 바다로 나가자 머지않아 저 멀리서 지구 종말의 빛이 밝아온다. 태양빛에 반사돼 환히 빛나는 그녀의 얼굴에선 이전의 쓸쓸함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초연함으로 가득 찬 ‘슬픔이’의 얼굴, 아름답지만 슬픈 한 컷.



3. 소심함을 무릅쓴 남자의 사랑. 소심이 | <오늘영화> ‘백역사’의 남주인공



영화와 연애를 발랄하게, 날카롭게, 생생하게 그려낸 <오늘영화>는 하반기 독립영화 중 몇 안 되는 밝은 분위기의 영화다. <백역사>는 봄날의 훈풍처럼 부드럽게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촌스러운 꽃남방을 입고 열정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던 남자(박종환 분)를 기억하는가. 그는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여자에게 데이트를 청하려 그녀가 일하는 중국집으로 가는 중이다. ‘소심이’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저돌적인 모습. 그러나 좋아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우물쭈물 거리고 여자의 말에 쩔쩔매는 모습에서 그가 본래는 꽤나 소심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데이트에 대한 의지 혹은 그녀에 대한 진심이 모자란 말주변과 소심한 성격을 메워주는 것 같달까. 하반기 스크린에서 만난 ‘소심이’들 중 진정으로 가장 용감한 ‘소심이’였다.

- 바로 그 장면!

여자에게 데이트를 청하는 장면. 멋진 가죽옷을 빼입고 오로지 데이트에 대한 일념 하나로 여자가 있는 중국집으로 내달린 남자. 일하는 여자를 지켜만 보다가 그녀가 그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자 조심스레 다가가 말한다. “우리 영화 보기로 했는데…”. 그래도 여자가 듣지 못하자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영화 보러 가기로 했는데…” 소심하지만 진지한 고백. 여자와 남자의 백역사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순간.



4. 살아남기 위해 돋아난 가시. 까칠이 | <들꽃>의 은수



거칠고 메마른 현실이란 들판, 그 위에서 들꽃처럼 질기게 살아가는 가출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들꽃>. 거리에서 모진 계절을 버터야 하는 영화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까칠이’들이다. 하지만 동질감에선지 처음 본 하담을 살갑게 대하는 수향과 그런 수향에게 서서히 마음의 빗장을 푸는 하담과 달리 은수(권은수 분)만큼은 극 내내 경계를 거둘 줄을 모른다. 추측해보자면 은수의 지난 세월이 유달리 쉽게 회복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소녀들이 이룬 유사가족 관계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그 여린 세계에서 ‘가장’이 되어 집을 구하고 양식을 마련한다. 자신과 곁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경계를 늦출 수 없어서, 가시를 두른 ‘까칠이’가 되었던 것 아닐까.

- 바로 그 장면!

맥주병을 깨트리며 울부짖는 장면. 은수는 바울이 가진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조금씩 현실에 정착할 준비를 한다. 수향에게 건넬 선물을 고르는 은수의 얼굴을 보면 전에 없던 생기가 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 수향이 태성을 살리기 위해 피 같은 돈을 써버린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쳐버린 소녀들. 아직 어린 은수는 이전의 삶이 두려웠나 보다. 옥상에서 병을 깨트리며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어떤 감정을 마구 내뱉는다. 감독은 우연히 홍대에서 은수 또래의 여자가 병을 깨트리는 모습을 보고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아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이 느꼈을 강렬한 인상이 재연된 장면.



5. 언제나 위태로운 남자. 버럭이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형석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던 한 여자의 현실 분투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만화적인 캐릭터와 설정들로 가득한 영화답게 이 영화엔 순도 99%의 ‘버럭이’가 등장한다. 분노 조절장애를 앓는 형석(이준혁 분)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하루 세 번 약을 복용하면서 차오르는 화를 겨우 참아내며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재개발 추진 위원회의 행동대장에 가까운 청년 대표직을 맡게 된다. 위원장 경숙은 그에게 사주를 내린다. 재개발 반대 서명운동을 받으러 다니는 수남을 막으라는 것이다. 형석에게 약을 처방하던 경숙은 그가 하루에 먹는 약을 1/3으로 줄이며 겨우 억눌러져있는 그의 분노 스위치를 느슨하게 한다. 형석은 그 길로 무서운 기세로 수남을 쫓는다. 결국 그녀가 탄 오토바이를 전복시키며 납치에 성공해 이후 갖은 잔인한 방법으로 수남을 고문하기 시작한다. 분노를 장애처럼 앓는 형석이기에 그가 행하는 악은 더 날 것의 느낌이 난다. 버럭을 넘어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갖춘 형석은 하반기의 잊을 수 없는 ‘버럭이’다.

- 바로 그 장면!

세탁기 고문 장면. 형석은 그녀더러 재개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대로 있으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수남은 병원에 있는 남편을 봐줄 사람이 없다며 형석에게 보내줄 것을 빈다. 수남의 말은 곧 형석의 분노를 자극한다. 그는 살기어린 표정과 함께 어둠 속으로 그녀를 끌고 간다. 이윽고 세탁기에 들어앉아있는 수남의 모습이 나온 뒤 가장 끔찍한 고문이 이어진다. 경악스러운 한 컷.



영화의 어떤 캐릭터가 한 가지 성격만을 대변할리는 만무하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소심해하고 경계하고 화내는 성격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본성이기 때문이다. 위의 다섯 캐릭터들도 하나의 성격으로 일반화하기엔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고백하건대 이 캐릭터들의 매력이 배가된 순간은 일관된 얼굴을 지우고 다른 모습을 보일 때이기도 했다. 슬픈 기쁨이, 소심한 버럭이, 까칠한 기쁨이의 모습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꼈달까. 때로는 선명하고 때로는 복합적인 모습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하반기의 캐릭터들. 새해엔 어떤 캐릭터들이 스크린을 수놓을까.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들이 죽었다       


12월 25일(금) 20:00 │ 26일(토) 18:10 │ 28일(월) 11:00  29일(화) 16:00  31일(목) 17:30 종영


 INFORMATION 


제                  목 : 그들이 죽었다 (We will be OK)

제                  작 사십이

각   본  /  연   출 백재호

출                  연 : 김상석이화백재호김태희

배 급 마  케 팅 :  ㈜인디스토리

상    영    시   간 : 102

개                  봉 : 2015년 12 10

영       화       제 : 1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

영화제                 20회 인디포럼

영화제                 40회 서울독립영화제

영화제                 10회 런던한국영화제

공  식  사 이 트 www.facebook.com/wewillbeok

 

 

 SYNOPSIS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넌 뭐 할 거야?”

 

지구 종말론으로 떠들썩한 연말,

죽기 전에 뭐라도 남겨보자라는 일념으로 친구와 함께 영화를 찍기로 한 상석’.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헛꿈에 젖은 것도 잠시,

어수선한 현장 분위기를 감지한 여배우와 촬영 감독은 돌연 잠적해버린다.

그날 이후, ‘상석은 유서인지 시나리오인지 모를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고,

우연한 만남을 반복하는 신비로운 여인 이화와 마지막 날을 함께 하기로 하는데

Posted by 인디스페이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5.12.31~2016.01.06 인디스페이스 시간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이상우 | 99분 | 극영화 | 청소년 관람불가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안재민 | 70분 | 다큐멘터리 | 12세 이상 관람가

<그들이 죽었다> 백재호 | 102분 | 극영화 | 12세 이상 관람가

<불안한 외출> 김철민 | 90분 | 다큐멘터리 | 15세 이상 관람가

<나쁜 나라> 김진열 | 120분 | 다큐멘터리 | 12세 이상 관람가



 :: Event & Info :: 


<나쁜 나라> 무대인사

● 일시: 12월 31일(목) 19:30 상영 전

● 참석: 미정


<그들이 죽었다> 12월 31일(목) 17:30 종영


 *인디토크 일정 및 참석자는 추후 변경될 수 있으니 관람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예매 안내  (실시간 예매 가능)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네이버 http://bit.ly/OVY1Mk

● 다음 http://bit.ly/1srfYBx


 인디스페이스 좋아요♥ 

● 트위터   Twitter.com/indiespace_kr

● 페이스북  Facebook.com/indiespace

● 인스타그램 Instagram.com/indiespace_kr

Posted by 인디스페이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