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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12 [인디즈 Review] <대관람차>: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애정






 <대관람차>  한줄 관람평


김정은 | 삶이라는 광활하고 아득한 우주 속에서 잠시 나를 찾아 흘러가는 로 표류해도 괜찮아

주창민 잔잔한 오사카의 풍류 속 이문세와 우주의 청춘

승문보 | 세상에서 표류 중인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되어줄 어쿠스틱 선율

박마리솔 오사카라는 대관람차

도상희 | 이제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인공이 행복한 영화를 보고 싶다

권정민 | 장점과 한계점이 같은 영화. 편안하고 개운하게 볼 수 있어 좋다

윤영지 |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애정






 <대관람차>  리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애정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영지 님의 글입니다. 




영화 <대관람차>는 미완성형이다. 이 영화를 채우는 것은 여백이다. 그리고 그 여백의 의도는 영화 곳곳에서 상당히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관람차>는 관객의 우주에, 그러니까 당신의 우주에 가닿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영화이다.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백재호 감독은 전작 <그들이 죽었다>(2014)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계속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냐고, 이대로 괜찮겠냐고 말이다. 이희섭 감독과의 공동 연출로 개봉한 그들의 신작 <대관람차>는 <그들이 죽었다>에서 끊임없이 던지던 질문에 내놓은 해답 같은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 '우주'오사카 출장 중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실종된 선배 '대정'을 찾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피어 34’라는 작은 바의 사장 '스노우'와 그에게 기타를 배우는 '하루나'를 만나며 그는 잊고 있던 음악이라는 꿈에 한발 다가가며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을 보다 또렷이 바라보고 타인에게 한 뼘 더 다가가게 된다.

 




영화 속, 국적도 언어도 다른 그들을 매개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상실의 아픔과 상처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음악 영화와 성장 영화의 구조를 띄고 있지만 그 기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세월호 참사를,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었다하지만 우리는 사실 서로가 가진 아픔에 대해 알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그 상실의 크기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영화 <대관람차>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곳의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어색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슬픔을 가진 인물을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떠밀지 않는다. 관객을 영화 속 인물들보다 우위에 위치시키고 그들을 내려다보게 하지 않고, 우리 각자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을 그 각자의 아픔을 돌아보게 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대관람차>는 눈물을 닦아주는 영화라기 보다는 손을 잡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방법을 택한다. 상실이나 상처를 온전히 치유가 가능한 대상으로 포장해버리지도 않는다. 정확히 우리가 타인에게 건넬 수 있을 만큼의 희망과 위로에 대해 집중한다.

 

 <대관람차>에서 인물은 늘 사건보다 앞서 있다. 거대한 사건 대신 사소한 선택이 있고, 큰 시련 대신 작은 변화가 있다. 인물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그들과 발을 맞춰 걷는다. 카메라는 언제나 인물에게 한 걸음 떨어져있다. 무리하지 않고 작위 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천천히 다가가려는 시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소중하고 애틋하다. 이 영화는 이렇게 삶 속의 사소하지만 소중한 순간들로 가득 차있다.

 




영화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환상성이다. 영화가 다루는 세부적 이야기는 현실적이지만 영화 속에는 자주 초현실적인 장면과 은유가 등장한다. 척박하고 환멸 나는 현실을 피하거나 이야기의 도구로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길로 우회해 될 수 있는 한 아름다운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보기 위해 애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는 모호한 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이것이 바로 여백의 이유가 된다. 우리는 모두 우주를 채워 넣을 수 있고 <대관람차>에 등장하는 대관람차는 각자에게 어떠한 의미로든 가 닿을 수 있다. 내가 느낀 대관람차는 위안과 희망이었다. 나는 대관람차를 타본 일이 있다. 도피성으로 혼자 떠났던 유럽 여행에서 처음 탔던 대관람차는 사실 내게 공포였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그렇게 높은 곳까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혼자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앞에 앉은,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대답했다. 걱정 말라고. 그냥 이 풍경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나는 그제서야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 <대관람차>는 그때 내가 마주했던 나의 우주를 자연스럽게 환기시켜주는 영화였다.

 




<대관람차>는 동시에 가볍고 기분 좋게 즐기기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오사카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들과 루시드폴, 스노우의 음악은 마음을 따뜻하게 채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하게도 극장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이 아름다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기를 희망한다. 당신의 우주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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