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의 시간에서 벗어나 영화적 감각으로 짜여진 세계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꿈의 제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1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조현훈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꿈의 제인>의 시간은 불친절하게 흘러간다사라져버린 사람이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극 중 인물들의 관계가 뒤엉키기도 한다하지만 시간의 선형적 질서에서 벗어나 시청각적으로 표현된 영화적 언어를 받아들인다면 치밀하게 짜여진 <꿈의 제인>의 세계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많은 궁금증과 단서들이 오갔던 지난 밤의 기록이 나름의 이해와 해석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진행): 감독님과 GV 시작 전에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요기분이 센티멘탈해지셨대요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요.

 

조현훈 감독 (이하 감독): 아마 오늘이 마지막 <꿈의 제인> GV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진행: 저는 마지막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요인디스페이스에서 조만간 또 기회가 있을 거라 믿어요사실 지금쯤이면 감독님이 <꿈의 제인>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근데 말씀을 들으니 아직까지는 감정적으로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했나봐요.

 

감독사실 전까지는 감사한 마음이 구체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감사한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시기고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저번 주부터는 무엇이 감사한지에 대한 일기도 쓰고 있고요.

 

진행: 어떤 점이 감사한지 조금 공개를 해줄 수 있나요?

 

감독: 요즘 독립영화가 참 관객이 없어요우리 영화는 운 좋게도 많은 분들께서 봐주셨지만요관객 분들이 개봉 시기에 챙겨봐주셨다는 점과 지금까지도 꾸준히 지지를 보내주신다는 점이 정말 감사해요최근에는 또 스태프 분들이 생각나더라고요촬영감독님과 PD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떠올랐어요분위기가 약간 눈물의 GV로 흘러가는 것 같네요.

 


진행: 오늘 오신 관객 분들께 이따가 말씀을 또 드리겠지만어떤 마음으로 오셨는지가 궁금해요영화를 한 번 더 극장에서 보자는 취지도 있을 것 같고아직 감독님께 궁금한 점들도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요. 개봉 이후에 우연히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저는 이번 GV를 준비하면서 <꿈의 제인>을 또 봤는데정말 고심을 많이 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영화가 주는 매혹이라던가 압박감에 눌려있었는데그 감정에서 벗어나니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를 보게 됐어요. <꿈의 제인>은 굉장히 많은 사건들로 짜여진 복잡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복잡한 구조 안에서 컷 하나까지도 촘촘하게 설계된 영화예요감독님이 어떤 태도로 이 영화를 대했는지가 궁금해요.

 

감독: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과거를 추측하게 돼요작업을 하는 방식과 연결시켜 보자면 저는 스스로 먼저 꺼낼 수 없는 이야기나 믿지 않는 주제들로는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꿈의 제인>을 만들 때는 ‘아이들에게 스스로가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이 제 마음속에 남아있었어요그 점이 가장 중요했고요지금도 여전히 작업을 하기 위해서 고민할 때는 적어도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작업에 담으려고 해요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거예요때문에 다음 작업이 좀 오래 걸리겠구나 생각도 들고요.

 

진행: 감독님은 어미 하나까지 언어를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지고 어투가 주는 뉘앙스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그래서 '소현'의 내레이션이 풍부한 울림을 가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요좀 느닷없는 질문이긴 한데감독님은 일기를 어떤 투로 쓰는지가 궁금해졌어요본인만의 글은 어떤 형식으로 쓰나요?

 

감독일단 반말로 쓰고요, 반성문처럼 써요주로 뭘 잘못하고 있고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사실은 거의 맨날 같은 말만 써요누가 만약 제 일기를 주워서 읽는다면 '이 사람은 왜 매일 똑같은 말만 하지?' 생각 할 정도로요똑같은 일상을 보내기 때문에 특별한 내용을 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진행: 영화를 본 분들 각자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이 다 다르더라고요보편적으로 처음에는 '제인'을 위주로 많이 보는 것 같고반복 관람하는 분들은 주변 아이들을 하나씩 보는 것 같아요저는 개인적으로 소현에게 이입을 많이 했고 감독님 또한 소현에게 가장 마음을 주면서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실제로는 어땠나요?

 

감독: '병욱'에게 시선이 가기도 하고 또 '대포'에게 마음이 가기도 해요캐릭터 하나 하나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극중에서 주장 혹은 토론할 수 있도록 신경 썼는데소현이 기본적으로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아이였지만 병욱이나 대포 같은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그런 면이 있어요반면에 유독 제가 감정을 주지 않았던 인물은 '정호'였어요정호만 멀찍이 떨어져서 봤던 것 같아요정호한테까지 이입을 해서 왜곡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그래서인지 영화는 정호 이야기를 유독 아껴서 보여주고 있어요불필요한 이야기들은 최대한 덜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정호의 컷들도 궁금합니다.

 

감독: 소현과 제인의 입장에서 정호에 대한 낭만적인 기억들 혹은 향수 같은 것들이 시나리오 상에는 담겨있었어요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들어내야 된다고 판단했던 거죠왜나면 제가 정호 얘기를 하는 것이 창작자의 나르시즘 같다고 느꼈어요아름답게 포장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부정적인 쪽이라고 판단했거든요정호라는 인물을 냉정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또 대변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진행감독님이 어떤 면에서는 결벽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태도를 중시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정말 빈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요그래서 이 영화가 어떤 분들에게는 굉장히 무섭고 차갑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하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행복이나 희망에 대한 견해그리고 세상의 절망을 바라보는 시선이 저에게는 한없이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어요지금도 여전히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혹은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감독영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어요순전히 제 생각인데사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이 영화를 봤을 거라 믿거든요비슷한 사람들끼리 생각을 공유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어요그렇다고 해서 제 생활이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런 조금의 차이들이 제가 앞으로 만들 영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했고요


진행: 감독님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관객이 비단 저만은 아닌 것 같아요물론 이른 애기일 수도 있겠지만 감독님이 방금 차기작에 대한 단서를 던졌잖아요염치 불구하고 여쭤보겠습니다차기작 계획이 있나요?

 

감독: 일단 장편 시나리오는 계속 쓰고 있는 상태고요,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중요하게 잡아둔 부분은 있어요이 또한 가족의 관계 같은 것인데장편과 함께 그 내용과 연계된 단편을 촬영할 것 같아요. 각각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이런 방식을 프리퀄이나 스핀오프라 하나요아무튼 단편은 전사(前史)를 드러내는 정도로 작업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진행: 이렇게까지 주인공의 안 좋고 감추고 싶은 부분을 막 드러내는 작가는 드물거든요소현의 비겁하고 치사한 부분주인공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도 인물과 거리를 유지해버리는 카메라의 태도가 인상 깊어요그래서 저는 감독님이 소현에게 가장 이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거고요새로운 주인공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는 어떨까 궁금해졌어요지금 쓰고 있신 주인공에게는 조금 덜 가혹한가요?

 

감독: <꿈의 제인>을 쓰던 당시에 저의 세계관이라 해야 할까요? 그땐 결국 희망이나 긍정적인 상황은 없다는 전제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지금 쓰는 시나리오도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가 될 것 같은데말씀하신 것처럼 <꿈의 제인>보다는 따뜻한 면들이 있겠죠

 

진행: 편집하며 컷을 붙이거나 넘어갈 때 가장 고심했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감독: 현장에서 촬영한 분량은 다 사용했어요여력이 안되고 시간도 부족해서 촬영 단계에서 편집을 하면서 찍어가야 했거든요. 찍은 건 다 썼지만, 찍을 때 없앤 부분이 있어요. 때마다 고심했던 부분은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 했던 고민들과 굉장히 유사했어요. '소현에게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시하는가?'라는 부분이에요. 가령 삭제된 장면 중 하나인데제인이 아이들 사이에서 소현이를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 얘기하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있었어요그런 장면이 저에게는 좀 불편했던 것 같아요환상 혹은 판타지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인데굳이 이 장면들까지 넣어서 이 아이의 낙차를 크게 하려는 연출자의 의도가 무엇인가,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삭제했던 것 같아요.

 

진행: 저에게 <꿈의 제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잔상이 또렷해지는 영화예요심리적이고 시각적인 모티브를 통해서 마음속에 깊게 들어가는 체험을 선사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거실에서 제인이 소현에게 휘파람을 불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그 장면의 공간이나 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처음에 제인이 휘파람을 불러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 공간에는 그 둘만 존재하는 것 같잖아요하지만 카메라가 뒤로 빠지고 프레임이 점차 커지니까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있어요저는 그 순간 아이들이 유령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어요미동조차 하지 않고 어떤 의식처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는데소현의 깊은 고독이나 감정들이 한 순간 너무나 크게 다가왔어요작년 6월 GV에서 이 장면에 대해 감독님은 소현이 마치 숲에 둘러싸여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했어요다음 장면은 제인이 투신해서 떨어져 있는 장면이죠. 그 다음은 다시 어두워진 가운데 미러볼이 돌아가고 침대에 누워있는 제인을 소현이 지켜보고 그 후경에 아이들이 미동 없이 앉아있는 장면이에요이 장면에 대한 감독님의 의도도 들어보고 싶어요.

 

감독: 일단 언급하신 장면들은 같은 방식으로 연출하진 않았어요휘파람을 부는 장면은 리허설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갔는데그 때 당시의 분위기가 우리가 보는 장면과 흡사했어요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소리를 듣고 있는가에 집중했고 그 감정들이 담겨야 된다는 것이 최우선이었어요유령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결국엔 초현실적으로 보여야 했고 그 공간이 이질적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아요그런 장면들이 영화 내에서 힌트나 열쇠가 돼야 하잖아요마치 숲 속에서 한 사람이 동물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듯한 이미지에서 시작을 했어요제인의 시신을 보고 있는 소현과 아이들 장면에서 명백하게 의도를 뒀던 지점은 죄책감이나 죄의식이었어요그 장면에서 '지수'는 드러나지 않거든요. '왜 지수를 숨기고 있는가? 제인의 죽음이 결국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나름의 원칙을 갖고 촬영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고요.

 

진행: 대포가 지수인 척 하고 나온 소현과 터널에서 대면할 때검정 비닐봉지를 씌우기 직전에 카메라가 한 번 터널 밖으로 빠졌다가 다시 들어가는 순간이 있어요터널 속의 대사처리는 사운드로만 들리고요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중간에 넣은 의도는 뭘까요?

 

감독: 어떤 의도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저 역시도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이 부분에서 감정적으로 동요가 많이 됐거든요소현의 말이 대포에게 전달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대포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애당초 소현의 말을 거의 듣고 있지 않았던 거죠사람들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대포는 조금 다른 아이인 것 같아요대포를 연기한 박강섭 배우가 제 학교 후배인데, 박강섭 배우는 정말 단순한 친구고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에요본인도 스스로가 의리 있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친구인데그런 면들이 저는 단순하다고 느꼈고 배우의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 반영됐어요. 대포의 행동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섬세하진 못 한거죠그 장면은 대포의 사고방식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해요.

 






관객: 영화 속 각각의 캐릭터들이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모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어요캐릭터에 대한 감독님의 감상을 들어보고 싶어요.

 

감독: 이제 겨우 한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고, 영화 작업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제 나름대로 인물에게 양면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어요. 창작론은 아니고 제가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중 하나인 것 같아요실제로 더욱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요인간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방식이 내 세계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고민을 해요일부러 원칙들을 신경 쓰면서 이야기를 구상하진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자연스레 담긴 것 같아요.

 

진행: 아무래도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의 등장인물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캐릭터의 풍부성이 곧 감독님의 태도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요? 함부로 단정짓지 않는 조심스러운 태도와 거리를 두려는 자세가 보여서 좋았어요. 

 


관객영화를 보는 내내 꿈을 꾸는 것처럼 기억들이 조각나 있다고 느꼈어요그렇게 느낀 이유 중 하나가 뒤죽박죽인 순서 때문인데이야기가 순서대로 정렬된 건지 궁금해요소현의 내레이션이 반복되는데, 영화 전후의 이야기를 분리해서 봐야 하는지아니면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서로 연관시켜서 봐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또 딸기케이크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케이크가 가진 상징적인 의미도 궁금합니다.

 

감독: 첫 번째 질문이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에요항상 하는 대답은 있는데요즘 생각과 연결시켜 답하자면, 제가 단편영화를 찍는 꿈을 계속 꿔요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고통스러워 하면서 준비도 안 되어있는데 뛰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꿈에 나와요걱정하는 것들 혹은 희망하는 것들이 꿈에 반영된다고 생각해요긍정적인 관점에서 소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또 이 친구가 가장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영화적으로 표현해야 했어요. 소현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무엇을 이루지 못했는지어떤 것을 가장 후회하는지에 집중할 수 있게끔 순서를 구상한 것 같아요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엉키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반복되는 편집, 내레이션, 공간들은 나름대로 이야기를 풀어갈 열쇠나 힌트를 드리고 싶었던 것이고 케이크 또한 같은 의미를 가진 소품이죠많이 못 보시는 장면인데, 처음에 소현이 편지를 쓰는 모텔 방에서 천천히 카메라가 들어갈 때 먹다 남은 케이크가 보여요이 장면은 사실상 이후에 나오는 소현이 딸기 하나를 케이크에서 떼 먹는 장면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어요실제 시간이라기보다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원칙이나 방식을 제시한 것이고그런 것들을 단서로 삼아 본인 방식으로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영화를 통해서 권유한 거였어요.

 

진행: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정말 기대하고 있었어요개봉 당시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 방식으로 하거나 안 하려고 피했거든요저는 이 영화에 나름의 엄청난 원칙들이 있다고 생각해요굉장히 첨예하게 만들어 놓은 연결고리들이 있어요크게는 음악빛의 활용이 있죠소품 하나 대사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계산돼 있어요때문에 저는 영화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는 순간이 많았어요.

 


관객: 제인이 미러볼이나 공 같이 둥그스름한 것에 집착해요그 소품들에 담긴 의도가 궁금합니다.

 

감독미러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이 말을 하는 게 민망한데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밝아진다는 주제의식을 반영하는 소품이에요소품의 특징을 제인과 연결시킴으로써 제인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고요미러볼과 공처럼 둥그스름한 것이 제인 그 자체다, 라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진행: 구교환 배우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일 년 전쯤에 이런 답변을 했어요그 때 굉장히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동그라면 좋지 않냐고 하면서 동그랗기 때문에 모서리도모난 부분도 없이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제인과 닮았다고 이야기했어요.

 






관객: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제인의 매력에 빠졌는데그 다음에 볼 때는 모든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어요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 저의 모습과 많이 겹쳐 보였어요때문에 감독님이 각각의 캐릭터를 단정짓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가 좋게 와 닿았고요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갔는지누구를 먼저 만들어냈는지 궁금해요.

 

감독아무래도 소현이란 인물이 제일 중요했고 그 다음으로 지수란 인물도 중요했죠원래 단편이 시초였는데단편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였어요지수가 팸의 가장이라는 설정이었고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는 내용이었어요그런 이야기를 쓰다가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로 가는 것 같아서 조금씩 수정해나갔어요인물들을 만들 때는 제인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며 쓰지는 않았어요. 제인이라는 인물 한 명만 방향성을 잡고 만들어 낸 캐릭터예요. 제인은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면서 약간 촌스럽기도 해요이런 부분이 분명히 필요한 특징이라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넣었어요.

 


관객: 영화에 트랜스젠더나 청소년들이 많이 등장해요하지만 대중들은 성적소수자나 소외계층의 삶을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쉽게 관심을 주지도 않잖아요이런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감독: 결국 영화를 왜 만들고, 어떻게 만드는가로 생각이 이르는 것 같아요저는 홀로 남겨진 사람의 마음에 이입을 해요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해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에요그런 마음들이 이야기를 만들게 해요그렇게 시작을 하다 보니 인물의 곁에 두고 싶은 인물들이 하나 둘씩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죠그래서 제인을 만들어냈고 가출팸 아이들도 만나게 됐죠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소현 같은 인물이에요.

 

진행: 왜 그런지는 보는 사람들이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제가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영화에서 환지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환지증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감독: 두 가지 면을 생각했어요당사자가 아니라면 우리들이 판단할 수 없는 범위가 있어요그런 관점에서 편견이나 오해동정을 이야기하고 싶었고또 한편으로는 소현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소현이는 비뚤어진 시선들을 개의치 않아한다는 부분이물론 주제적으로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편견을 대하는 제 개인의 태도와 소현이의 태도가 많은 다른 사람들과도 닮아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환지증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진행: 지난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꿈의 제인>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동료 선후배 감독들이 준 상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클 것 같아요마찬가지로 저 또한 <꿈의 제인>이라는 영화가 영화계 안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값진 자극을 준 영화라고 생각해요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관객도 모으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또 독립영화가 독립영화답게 존재하는 것 조차 힘든 세상에서 몇 줄로 정리되지 않는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어요이 영화는 소리와 이미지가 하나의 덩어리로 운동하듯 다가왔고 영화적인 경험을 안겨준 좋은 영화였어요앞으로도 계속 이런 영화를 찍어주셨으면 좋겠어요감독님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감독: 긍정적인 희망이나 목표를 두고 영화 작업을 하진 않을 것 같아요하지만 분명 그런 시기도 있겠죠이 일은 공격적으로 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를 좀 오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산업이니까요그렇지만 정확하게 어떤 원칙을 갖고 이렇게 작업하겠다고 얘기할 순 없어요단지 고민이 많고, 조금은 침울한 상태로 작업에 임하고 싶다는 게 제 개인적인 목표예요못보고 지나치지 않도록또 놓치고 있는 것들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행: ‘침울한 상태로 있어야겠다라는 말이 굉장히 반갑네요무슨 의미인지 다 아실 거라 생각해요늦은 밤까지 자리해주신 관객 분들에게 마지막 인사 부탁드릴게요.

 

감독: 사실 오늘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고 그걸 목표로 이 자리에 왔어요개봉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에서 영화를 다시 보러 와주시고 또 늦은 시간까지 영화관에 남아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마법 같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이 영화를 택한 것 자체가 우연이라 할지라도요하지만 저에게 오늘은 절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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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직관의 시간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1일 오후 2시 30분 상영 후

참석 정재훈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실험 영화의 범주 안에 포함되는 영화들을 관객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영화를 보기 전, 미리 얻을 수 있는 정보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목부터 상영시간까지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만든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를 두고 어떤 이는 초저예산 SF 블록버스터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212분이 흐른 뒤, 출입구로 등장하는 감독의 얼굴이 그 어떤 관객과의 대화 때보다 반가웠다.





 

정지혜 평론가 (이하 정지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먼저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재훈 감독 (이하 정재훈): 휴가지에서 뒷산에 갔는데, 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 것 같았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이런 걸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1부는 2005년에 찍은 것들입니다. 2부는 찍다 보면서 쌓인 것들을 가지고 편집했습니다. 2부를 먼저 만들고 뭔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찍어둔 것들을 찾아봤는데, 영상들이 있기에 1부에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 두 개를 붙이니까 영화가 너무 길어서 휴식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 중간에 인터미션 영상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정지혜: 두 영상을 붙이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미션이 2부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키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재훈: 1부의 경우에는 산이라고 하는, 혹은 멈춰진 상태라고 하는 것에 대한 경험적인 축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호흡의 작업물이 나오게 된 것이고요.

 

정지혜: 감독님은 이 영화를 ‘4DX 어드벤쳐물로 생각하고 접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SF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2부로 넘어가기 전 인터미션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1부에서는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고 계속해서 흔들리거나 흐르는 것들을 찍었습니다. 시간이 변하고 있다는 걸 미세하게 보여주는 차원이었던 것 같은데요, 이런 장면들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정재훈: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했다기보다는 계속 변하는 것,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관객이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1부는 사운드가 통제되어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정재훈: 사운드를 넣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장면인 일출 장면을 예로 들면, 인위적인 조작은 없었지만 소리만 통제하는 방식으로 편집했습니다.




 

정지혜: 2부는 공간이 주는 소리가 극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정재훈인터미션에서 사운드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적극적으로 사운드를 넣었습니다.

 

정지혜: 전작을 봐도, 영화를 통해 촉감을 자극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 등장한 지글거리는 사운드도 그렇고요. 사운드의 울림이 커서 몸에 진동이 오기도 해요. 그래서 실제로 신체에 자극이 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 안에서 감각적인 자극을 주는 방식에 대하여 의도한 게 있나요?

 

정재훈: 2부에서 관객이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운드에 신경을 더 쓰는 편입니다. 영화를 상영할 때도 상영 기사 분들한테 사운드에 관해 부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지혜: 촬영 장비가 각각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영화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재훈: 유튜브를 많이 봅니다. 스트리밍 동영상을 보다 보면 인터넷 상황이 안 좋을 경우 화면이 문제가 뭉개질 때가 있는데, 이런 경험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크게 의미부여가 돼있는 건 아니었어요.

 

정지혜: 다른 상영회에서 감독님을 만났을 때, 감독님께 2부에 감독이 등장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감독님은 그때 맞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는데요.

 

정재훈: 사람이나 캐릭터는 영화를 만들 때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2부에서 사냥터와 조선소가 같이 나오는데, 사냥터에서 돌아다니는 개의 모습과 조선소에서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이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동자를 넣게 되었어요.

 

 



관객: 영화가 어려워서 생각이 이것저것 많이 듭니다. 찍는 과정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1부는 다 카메라가 고정되어있는데, 찍으면서 화면만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2부에서 사냥꾼들과 조선소, 개를 찍으면서 힘들었던 점과 이런 소재를 선택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정재훈: 1부는 별 생각 없이 찍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산이고 23일정도 찍었습니다. 사람이 등장하는 모습은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촬영할 때 딴 짓은 딱히 안 했습니다. 조선소의 경우 촬영이 원래 안 되는데, 일했던 곳이라서 슬금슬금 촬영했습니다. 별 문제는 없었고요, 이 영화를 통해서 조선소의 노동환경 같은 문제는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업은 여러 포맷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써서 작업하기도 하고, 배우와 함께 작업하기도 하고, 계기가 생겨서 특정한 장면만 찍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경우엔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자료들이 쌓일 때쯤, 이 자료들 사이에서 추상적으로나마 선을 그리면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어 붙이게 됐습니다. 편집은 4개월 정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지혜: ‘이 영화는 감정을 갖고 접근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전작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보였습니다. ‘말하지 않음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2부에서 사람이 등장할 때도 이름이 나오지 않고 대사도 없습니다

 

정재훈: 영화 안에 인간의 언어는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소리가 주는 질감을 언어체계화해서 전달하려고 시도해 봤습니다.

 

정지혜: 그래서 다른 사운드들이 감각적으로 전해지는 부분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2부에는 조선소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특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반부에 개의 모습을 확대해서 찍는 것도 역시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재훈조선소 노동자가 카메라를 쳐다보는 장면은 화질이 너무 낮아서 그렇게 되었어요. 쳐다봤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관객: 감독님의 전작 <서울연애>(2014) <상냥한 쪽으로>에서도 산이 등장하는데요, 감독님에게 한국의 산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정재훈사실 큰 감정은 품고 있지 않습니다. 면적의 높은 비율이 산이니까 자연스럽게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에서 찍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산밖에 없다라는 문구가 머릿속에 남아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지혜: 1부에서 카메라가 갑자기 고정된 숏에서 움직이는 때가 있었습니다.

 

정재훈: 뭔가 숲에서 움직였다거나 기척이 있어서 저절로 시선이 따라갔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한 건 아니고요, 시선에 감정이 깃들려고 하면 의도적으로 빠지고, 그런 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정지혜: 더 찍고 싶을 때가 있으면 어떻게 했나요?

 

정재훈: 나중에 편집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단 더 찍었습니다.


정지혜: 인터미션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정재훈: 이 영화는 제가 재미있자고 만든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미션이 제일 재미없는데, 영화 안에 더 동적인 걸 넣어보자고 생각해서 만들 게 됐습니다. ‘파이널 판타지의 엔딩곡이 좋아서 게임 음악을 인용하게 됐습니다. 게임 안에서 전투 중 아이템을 얻거나, 소환수를 부른다거나, 공격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소리와 날씨예보, 고승덕의 주식투자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붙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직관적인 작업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파장, 웨이브와 같은 단어들이 반복되는 것은 인상 깊습니다. 제목에 등장하는 난기류라는 단어도 그렇고요.

 

정재훈: 주식투자 프로그램에서 쌍봉, 파장이라는 단어로 상황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1부에서 나오는 기계적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카메라 워크에서 2부의 와이파이가 잘 터졌다 말았다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혹은 인위적인 형태지만 하나의 묶음으로 연결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212분이라는 시간이 만드는 입장에서 부담되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관객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정재훈: 주변에서 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많이 틀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습니다.

 




관객: 개도 많이 나옵니다. 마지막 눈 오는 장면에서도 그렇고요. 관객이 개의 시선을 공유하는 경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 뤽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2014)도 생각이 났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제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야기를 배제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미학인 것 같습니다. 무늬, 소리(기계음)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건지 궁금합니다.

 

정재훈: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영화도 준비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 경우엔 이야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소화를 잘 못 시키는 타입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야기를 철저히 배제하려고 애쓰진 않았습니다. 정보라는 걸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데, 이런 마음이 영화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정지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관심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게 있나요? 전작 <환호성>(2011)의 경우 지독하게 일만 하는 남자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서사로서의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재훈: 사랑과 우정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노동시간이 많아서 이야기를 가질 수 없는 게 지금 사회구조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환호성>에 넣었던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다같이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를 틀어놓고 보는데, 문득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있을 수 있고, 이야기가 없는 전제조건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지혜: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드립니다.

 

정재훈: 이 영화를 첫 상영을 한 지 1년 됐습니다. 그 동안 4번 정도 상영했는데, 항상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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