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정범 한줄 관람평


이지윤 | 아직도 불타는 망루 안에는 사람이 있다

박범수 | 지속 가능한 공동체와 연대를 질문하다

조휴연 | 가장 두려운 것은 희미해져 가는 기억과

최대한 | 연대로서 함께 고통에 마주하다

이가영 | 정작 스스로를 책망해야 할 자는 누구인가 

김신 | 공동체와 기억의 분열을 직시하고도 시선을 돌리지 않겠다는 대면의 윤리 속에서 혁명은 비로소 가능성을 얻는다

남선우 | 언젠가 카메라가 나를 비출 때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공동정범 리뷰: 지속 가능한 공동체와 연대를 질문한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공동정범>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철거민들이 용산참사 현장에 얽힌 엇갈린 입장들을 하나 둘 씩 꺼내 놓을 때다. 전국 철거민 연합 회원들은 용산 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의 태도에 서운함을 표한다. 용산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었음에도 농성에 참여한 회원들의 희생이 외면 당했다는 것이다. 철거민 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 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신세를 한탄하면서 철거민들끼리 의미 없는 모임을 가질 시간에 다른 집회 현장을 찾아 다니며 용산참사를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철거민들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순간, 용산참사의 본질을 국가 폭력에 맞서는 철거민들이라는 프레임만으로 이해하기는 다소 난처해 진다. 왜 철거민들은 국가 폭력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반목하는가. 이제는 순수한 연대는 커녕 생존과 정당한 권익을 위한 연대마저도 불가능해진 것일까.

 






철거민들의 갈등 이면에는 서로 말하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복잡하게 엉겨 붙어 있다. 경찰 진입을 막기 위해 뿌린 인화성 물질이 화재의 원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철거민의 고백이 있고, 동료들과 아버지를 남겨 두고 혼자 망루에서 뛰어내린 외면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 때문에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는 자책감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문제는 저마다의 고통을 드러내고 증명할 방법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모든 생존자들이 손으로 함석판을 짚고 불타는 망루에서 뛰어내린 상황은 똑똑히 기억하지만, 그 함석판에 길게 베인 손바닥의 상처는 아문 지 오래다. 생존자들이 6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억울하게 짊어지고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참사 현장은 재개발 계획에 의해 깨끗이 철거되었다. 참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지는 동안, 갈등과 상처들은 해소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곪아 들어가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공사가 중단되어 방치된 또 다른 재건축 현장에서 살아가는 삶, 한 때 누군가가 살았던 건물을 철거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삶, 동료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의 공론화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삶은 모두 그 황폐화된 내면의 풍경들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동정범>의 카메라는 수 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무너져 가던 생존자들의 삶의 궤적을 충실하게 담는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가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폐허를 딛고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영화는 참사 당일의 현장을 기록한 경찰 채증 영상으로 돌아간다. 흔적으로만 남아있던 참사는 철거민들의 기억 속으로 다시 한 번 생생하게 소환된다. 그리고 마침내 각자가 마음 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기억들이 조심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의 기억들을 채증 영상과 짜맞추어 보는 순간, 명백한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죄책감이 빚어낸 거대한 허상이었다는 것 또한 드러난다. 주관적인 감정으로 지탱해 온 불완전한 기억들은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바로 잡힌다. 바로 잡힌 기억들 위에 형성된 공감대는 비로소 죄책감 너머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화재의 원인과 사건의 진상을 온전하게 밝히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적어도 서로가 품고 있던 오해와 죄책감을 해소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환부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환부가 정확히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다.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는 참사의 궁극적 원인인 국가 폭력을 조명한다. 무리한 진압 작전을 승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6명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경찰청장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그 경찰청장의 상관들은 참사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들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영화는 진상규명과 연루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공동체와 연대가 어떻게 분열하고 해체되는 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동정범>은 좀 더 큰 의미를 가진 영화로 다가온다. 공동체와 연대의 문제를 철거민들만의 것으로 미뤄두기에는 그들이 겪었던 오해와 반목의 과정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다른 국가 폭력에 의해 제 2의 용산참사가 발생하더라도 공동체와 연대는 과연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공동정범>이 무겁게 던지는 진정한 물음이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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