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화해'에 대한 아름다운 머리말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방문>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8. 12. 23.






'화해'에 대한 아름다운 머리말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방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1월 11일(일) 오후 3시 30분 상영 후

참석 명소희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감독은 아들을 낳고 싶던엄마와 화해하고 싶었다. 엄마를 미워하는 자신과 화해하고 싶었다. 유년을 지나간 상처 그리고 엄마의 빨리 잊으라던 말과 화해하고 싶었다. 아이를 품어 감독 자신이 엄마가 되었을 때,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도록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춘천의 엄마에게 갔다. 6년 뒤 '-엄마-엄마의 엄마'에 대한 다큐멘터리 <방문>이 탄생했다. 그는 영화는 완성했지만 완전히 화해하지는, 깨끗이 치유되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낸 여성만이 쓸 수 있었던 아름다운 머리말로 읽힌다. 인디스페이스 개관 11주년 기획전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방문> 상영 후, 정지혜 평론가의 진행으로 명소희 감독과 관객이 나누었던 대화를 옮긴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6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이 영화를 작업하셨는데, 애초에 생각하셨던 방향에서 본인의 생애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거치면서 이 영화의 운명도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스물네 살 가을에 카메라를 들고 춘천행 열차에 타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애초부터 이렇게 장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을 못하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이 작업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감독(이하 명소희): 처음에는 나는 왜 엄마가 미운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영화를 시작했어요. 나는 서울에서, 엄마랑 떨어져있는데도 왜 엄마가 미운가? 이 질문이 제 안에 내내 있었고 답을 찾고 싶어서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엄마를 찍어야겠다고 호기롭게 춘천에 갔어요. 두 달 정도 촬영을 하고는 사실 접었었어요. 살면서 엄마 일상을 그렇게 가까이서 지켜본 건 처음이었는데 별로 마주하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고, 늘 미워하던 엄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들이어서 그런 것들을 인정하는 제 모습이 힘들어서 진행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편작업을 염두하고 시작했던 거라 두 달 촬영하고 포기했는데, 영화에도 나오지만 4,5월 즈음에 제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다시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가 엄마를,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것도 있고. 엄마가 항상 외할머니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요, 다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도 여전히 단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 낳고 생활하면서 제 감정들이 변화하더라고요. 이 감정은 뭔지 의문들이 생겼어요. ‘왜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이 이 작업을 하게 된 이유예요. 또 한편으로는 생활이 계속 불안정한데, 이 생활이 엄마의 생활과 비슷하더라고요. 왜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면서 힘들게 사는가, 이런 질문으로 넘어가는데 그때 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운 감정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 저에게 큰 짐처럼 남아서 그런 것들을 기록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장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지혜처음에 감독님의 서울살이 이야기가 시작되고, 기차를 타고 춘천을 가는 모습이 등장하는데요. 왜 그 힘든 순간에 춘천이라는 곳, 그곳에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떠올랐을까요. ‘도대체 왜 그 힘든 순간에 다시 춘천으로 가게 됐을까?’라는 물음이 6년간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게 되는 단초잖아요. 영화를 보다보면 장면 장면에서 일종의 되감기가 몇 번 진행이 되더라고요. 처음 기차가 춘천역으로 들어갈 때 맞은편의 기차는 반대로 움직이는걸 보면서 되감기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반사경에 비치는 이미지로 사람이 뒤로 걸어오는 모습도 있었고요. 그 지점이 영화 전개상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서, 되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명소희: 되돌아간다는 결정은, 단순하게 엄마를 찍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춘천을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춘천에 가는 게 너무 힘이 들었는데 이 영화를 완성하려면, 제 스스로 다음으로 넘어가려면 꼭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떤 부분을 꼭 마주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부끄러운 것이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마주한다는 게 나라는 사람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에 있어 중요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사라지는 것들을 보면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되감는다, 되짚어본다는 게 중요한 이유였어요.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 두 가지 안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변화하는 제 자신도 발견하게 되고, 결국 사라지지 않는 무엇을 사라져가는 제가 마주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그런 질문들이 스스로에게 있었어요.

 


정지혜영화의 초반에 엄마에 대한 이야기인가?’ 라고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감독님의 사건들과 이야기들에 더 집중되어 진행되는 모습이었어요. 초반부분을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감독님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엄마를 그렇게 오랜 시간 지켜볼 일이 사실 없잖아요. 엄마의 대부분은 계속 뭔가를 분주히 해나가는 모습이었어요. 굉장히 많은 시간 엄마의 모습을 찍고 그 중에 추리고 추렸을 때 감독님이 본 엄마의 핵심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하고있는 모습일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반에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를 그려나갈 때 엄마를 어떤 인상으로 그리고 만들어나가셨을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엄마는 저와 반대되는 성격의 인물이에요. 엄마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힘을 얻으시는 분이에요. 뭔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를 받는 분인데, 그러면서도 엄마는 항상 나쁜 일은 빨리 빨리 잊어버려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엄마라는 인물을 그려내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어요. 그 모습이 엄마의 생활 속 어떤 곳에서 드러나고 있을까? 그게 궁금했는데, 엄마는 뭔가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몸을 더 움직이시더라고요. 그런 게 저한테는 인상적인 모습이었어요. 엄마가 바쁘게 일을 한다는 것은 기분이 안 좋거나,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라는 게 짐작이 되면서도 저렇게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서 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 수 있었겠다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저와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괜히 위로도 되더라고요. 엄마와 나의 삶을 비춰봤을 때 우리가 되게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엄마는 끝없이 움직이고 딸인 저는 한숨 쉬면서 고민하며 살고 있거든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엄마를 보면서 계속 열심히 살아주길 바랐던 마음도 있고, 여러 가지 의미가 겹쳤어요. 항상 열심히 일하고, 누군가를 탓하지 않는 모습에요.

 




정지혜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때 <방문>이 처음 공개되었는데요, 그때 어머니께서 영화를 보시고 어떤 반응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이 그날 굉장히 긴장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명소희: 그날 최고로 긴장했던 날이었어요. 또 거의 마지막 상영인 날 오셔서 관객도 더 적었는데. 그날 오셔서는 왜 이렇게 관객이 없어? 영화가 재미없어서 그런가.” 하시고.(웃음) 또 그날 친척들이 다 오셨는데, 술을 한 박스씩 사서 오셨대요. 그런데 그 술을 그대로 남겨서 가져가셨대요. ‘다들 네 영화 보고 나와서 기분이 썩...’ 이러시면서. 술 먹을 정신도 없을 만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지.(웃음) 저는 다들 좋아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앞에서 까불까불 거리면서 영화 어떻게 봤냐고 물었는데 다들 그냥..” 그러시더라고요. ‘그냥이라는 단어에 그렇게 많은 뜻이 있구나 싶었어요.

 

정지혜감독님이 가족들,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그분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영화지만 감독님의 목소리가 아주 확고한 영화이기도 한데요.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그러한 점이 돋보였어요, 나를 알고 싶고, 내가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끝까지 집중하는, 그러면서도 엄마와 할머니의 자리를 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지던 영화였어요. 특히나 감독님이 떨칠 수 없었던 감정들, 기억들을 불러내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 순간들을 내레이션의 방식으로 고백하신 것 같아요. 촬영 이후 편집을 진행하시면서 내레이션 작업을 결정하지 않으셨을까 싶고, 그 고백을 하기가 참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요. 내레이션을 통한 감독님의 속 이야기, 그리고 눈길을 걸어갈 때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올해 초반에 촬영이 된 걸로 알고 있어요. 가편집본을 보신 어머니의 말씀을 통해 추가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진행된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명소희: 이 영화를 단편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넣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그 사건을 빼놓고 엄마와 나의 관계의 이야기를 하기 참 어렵더라고요. 사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엄마와 나의 거리감은 그 사건 이후부터 생겨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그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 사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고요.

그 사건을 어떻게 전달을 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았어요. 내레이션을 할 때 피해자가 되었다이런 식으로 썼다가 이건 아닌 것 같다, 싶기도 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할지, 이 영화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지 고민했고요. 엄마가 가편집본을 보시고 영화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리고 한 달 뒤쯤 술을 마시는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엄마가 갑자기 가해자가 누구잖아.”하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엄마가 알고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20년 만에 알게 됐는데 그것 때문에 또 한동안 작업이 주춤했어요. 이 이야기를 넣느냐 마느냐 결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넣기로 결정했을 땐 어떤 방식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요. 엄마의 말을 넣기까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웠고 영화 안에서 엄마가 비춰질 모습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오늘 다시 보면서도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이 고민은 계속 하겠지만 지금 저의 역량 안에서는 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지혜감독님의 내레이션이 단편소설을 낭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어머니가 직접 등장해서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지만, 오랜 시간 감독님이 내레이션을 썼다 지우면서 문장 하나하나를 오래 고민했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아요. 정돈되고, 자신이 하려는 말을 에두르지 않고 정확하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내레이션의 선택과 고민의 시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명소희: 물리적으로 내레이션을 쓴 시점은 가편집이 시작되고부터인 것 같아요. 장편이 처음이다 보니 편집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6년 치 소스를 보아야 하고, 아직 저에게는 긴 호흡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버거운 일이어서 본격적인 편집기간으로만 거의 1년 정도였어요. 그때부터 내레이션을 정리하기 시작해서 쓰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작업 막바지까지도 문장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내레이션 쓸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어렵지만, 내가 글을 정말 못쓰는구나 싶어서 하루하루 좌절하다가 어떤 날은 너무 좋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정지혜영화에 물의 이미지가 계속 등장하는데요. 축축하고 눅눅한 이미지가 등장하고, ‘물비린내가 난다는 표현도 쓰셨어요. 춘천이란 공간이 가진 특징이기도 할 텐데요. 분지에, 습하고, 호수가 있고 안개가 잦고 비가 오고. 그게 감독님의 서울 생활과 이어지기도 하고 엄마와 할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이어지더라고요. ‘이라는 것이 왜 공간과 관계 안에서 중요한 시각적 이미지, 촉각적, 후각적 이미지로까지 들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제가 춘천을 딱 떠올리면 기억나는 냄새가 있어요. 물비린내. 그래서 춘천이라는 공간을 표현한다면 당연히 물이 등장하겠구나, 하고 단순하게 접근했는데 영화를 계속 만들면서는 물이 가진 은유들이 적재적소에 잘 어우러질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파편화된 기억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묶어줄 수 있을지 떠올려보니 기억들 안에 공통적으로 물이 있었어요. 그래서 물이 영화 안에서 다양한 은유로 사용돼요. 엄마가 아침에 떠놓고 기도하는 신성시되는 물도 있고, 제 몸을 닦고 아이의 몸을 씻기는 물도 있고, 비나 눈, 동네 곳곳에 모여 있는 썩은 물, 죽음을 내포한 강 등 여러 가지 은유를 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힌트를 얻었던 엄마의 말이 있어요. 춘천 관광을 해주시면서 손님들한테 소양강을 보여주면서 하시는 말이. “이 물이 흘러 흘러서 여러분이 사시는 서울의 한강까지 갑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그게 인상적이었어요. 가끔 한강을 보면 엄마가 있는 곳에서 흘러온 물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끊어지지 않고 계속 반복되고 제자리로 돌고 도는 이미지를 포함할 수 있는 딱 하나의 물질이 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 안에서 여러 은유의 방식으로 물을 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관객: 먼저 두 분께 여성감독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감독님 스스로 영화를 평가하실 때 몇 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아쉬운 점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정지혜감독님께서 여성 감독들의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라는 모임도 하셨는데, 이번 기획전에 참여하시면서 남다른 마음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명소희: 여성감독전을 한다고 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무수한 좋은 작품을 만드신 감독님들과 함께 한다는 게 영광이었어요.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 싶고요. 제가 영화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여성감독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둘러보면 영화를 떠나신 분도 있고 준비하던 게 잘 안돼서 포기하신 분도 있고, 지금도 여성 감독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많이 사라지기도 해요.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새로운 여성감독의 등장이라는 토크를 진행했었는데, 그 안에서 저랑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신진 여성감독들이 모두 했던 말이 있어요. 항상 많은 여성감독들이 새로이 등장하지만 그 여성감독들이 두 번째 영화를 찍거나 세 번째로 넘어가는 경우를 잘 볼 수 없다, 그래서 10년에 한 번씩 새로운여성감독의 등장 이라는 타이틀로 포럼을 하고 또 10년이 지나가면 다시 새로운여성감독이 등장한다는 거죠, 이번 기획전에는 다양한 장르의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상영이 됐어요. 새로운 장르들, 공과 사를 넘나들고 우리의 일상 언어를 기록하는 영화가 굉장히 많은데, 그 영화들이 대부분 제작지원을 받지 못하고 영화제에서도 초청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영화를 발견하고 찾아내고,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획전이 있다는 것은 저희에게는 소중한 기회고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용기와 위로가 되기도 하거든요. 여성 감독의 영화들을 더 많이 소개하고 누군가는 비평언어로 여성들의 영화를 읽어내주는, 그런 시간들이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획전은 소중한 자리입니다.

 

정지혜이어서, 작품에 점수를 매기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고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연출자로서의 나의 위치랄까요? 내레이션을 썼다 지웠다 하는 과정에서 나의 위치를 고민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좀 더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명소희: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린 건 저의 게으름도 있겠지만 상황도 한몫했어요. 출산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상황에서 촬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었고, 편집에 온 힘을 쏟을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었어요. 그렇기에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것도 제 몫인 것 같아요. 편집기를 닫는 순간 더 이상 나는 고치지 않는다, 편집을 하지 않겠다, 하는 마음으로 내레이션도 끝까지 수정을 한 거고 편집도 끝까지 한 건데 오늘 이 자리에서 보니까 아쉬운 점이 많긴 하더라고요. 말을 번복하기도 참 그렇고.(웃음)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때 저는 최선을 다한 거니까 다음 영화로 넘기려고요.





관객: 영화 잘 보았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아픈 기억들이 치유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될 줄 알았는데. 치유가 된 것 같진 않아요. 부산국제영화에서도 상영을 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데 어떤 분이 GV 내내 우시다가 마지막에 이야기를 하셨어요. 나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고요. 지금도 울컥하는데, 그 말이 위로가 됐어요. 내가 영화를 완성해서 치유한 게 아니라, 이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 영화를 두고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 내가 치유가 되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게도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어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가지는 고민을 잘 담아낸 것 같아요. 역설적이게도 아이가 태어나서 다시 영화를 시작하게 됐고, 아이가 이 문제가 풀려나가는 지점인 것 같은데요. 선우라는 아이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아이였다면 어떻게 됐을지, 그리고 다큐가 아니라 극이었다면 해결의 결말을 어떻게 연출하셨을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영화를 만들 때, 처음엔 아들이어서 안도한 게 있었어요. 딸이면 이 아이를 사랑할 자신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 당시에는 많이 했어요. 지금은 아이가 5살인데 이만큼 자란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한국 사회 안에서 남성으로 자라나고 있고, 문득 아이의 사회적인 남성성을 발견할 때 고민이 생겨요. 이 아이가 딸이었다면 어땠을지도 해결되지는 못했어요. 그걸로 다음 영화를 기약하고 있어요. 불쑥 튀어나오는 나의 감정에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다큐멘터리가 시작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극영화로 만들었다고 해도 비슷한 결말을 취하지 않았을까 해요. 완전한 화해가 아닌 이해한 듯 못한 듯 서로가 그렇게 남아있는, 좋은 말로 하면 열린 결말이요.

 

 




정지혜영화의 제목이 <방문> 인데요. 영문 제목은 <The strangers> 복수로 되어있더라고요. 직역하자면 낯선 자들인데요, ‘방문이라는 것이 사전적으로는 어딘가에 찾아간다는 의미가 있는데 영제와 붙여놓고 보니 그 뉘앙스가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감독님께서 그곳을 어떻게 바라보고자 하는가에 대한 시선, 태도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마냥 반가운 마음으로 간다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보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지기도 해요. 제목에 대한 감독님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명소희: ‘방문의 사전적 정의는 잠깐 들렀다 온다는 의미거든요, 방문을 환영합니다, 같은 말 처럼요. 제가 춘천에 갈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잠깐 들렀다가 오는 곳. 영제목 <The strangers>는 보어같이 사용을 했어요. 저와 엄마, 혹은 외할머니, 영화 속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지칭 하는 단어예요. 그 사람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며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엄마가 대구에 갔다가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렇게 느껴졌어요. 저의 삶도 그렇고요. 표류하는 여성의 삶, 가장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목소리를 잃은 여성들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저의 위치를 표현하고 싶어서, 이곳에 영영 정착하지 못하는 저의 마음 상태나 위치를 표현하고 싶어서 한글 제목을 <방문>이라고 했습니다.

 

정지혜내레이션 중에 인상적이었던 단어가 그날이라는 표현이었어요. ‘그날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뭔가가 일어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특이한 그날그날은 물비린내가 싫지 않았다.”는 문장 속에 있는데요. 할머니 장례식 뒤에 바로 이어지는 그날은 이상한 뉘앙스거든요. 바로 그날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좀 더 감독님의 이야기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할머니의 죽음이 엄마에게도 미친 영향이 있을 테고요,

 

명소희: 사실 영화가 거기서 끝났어야 해요. 단편으로 생각했을 때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그날 물비린내가 싫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춘천과 화해를 했다하는 식의 해피엔딩으로 끝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그 때 저의 감정 변화 상태를 표현하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춘천과 나의 관계가 조금 풀어지려고 하다가 다시 틀어지는 시점에 무의식적으로 그날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아요. 결혼식 날 밤에 춘천의 야경을 보고 있는데 그날따라 공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한 달 뒤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사람이 그런 게 있잖아요. 슬슬 좋게 마무리가 되겠다 싶었는데 불쑥 무언가 던져지면 혼란스럽고 나를 시험하려는 건지 의심스럽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외할머니를 너무너무 미워했는데, 외할머니가 사라진 춘천이 이상하리만큼 쓸쓸해 보이더라고요. 그때 화해가 다 안됐다는 걸 알았어요. 아직 미운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았구나. 그날 처음으로 춘천과 화해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예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춘천에 가는 동안, 그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고 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기도 했어요. 나는 왜 하나도 슬프지 않을까? 이 미운 감정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그게 그 순간 저에게 의문이었어요.







관객: 차기작은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생각만 하고 있는 단계라서 분위기나 뉘앙스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영화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울한 분위기. 가족들은 이제 밝은 영화를 만들으라고 하는데 제가 가장 어려워하는 거예요 알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다음 영화는 조금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자료조사와 공부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정지혜오늘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감독님 영화는 조만간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소희: 일요일 오후에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감독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