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기억할 만한 지나침>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1월 10일(토) 오후 6시 상영 후

참석 박영임 감독

진행 이완민 감독 (<누에치던 방> 연출)









*녹취 인디즈 11기 윤영지 / 정리 인디스페이스 전한솔




기형도의 시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 길을 걷던 화자는 어느 관공서 안에서 눈물 흘리는 서기(書記)를 창문 너머로 지켜보게 된다.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이러한 지나침을 기어이 기억하고야 마는 것은 시인으로 살아가는 자의 괴로움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주인공 시인 김도 마찬가지다. 시인 김은 수없이 망설이고, 숨어들고, 슬퍼하지만, 찰나를 기억한다. 그렇기에 시인 김에게는 다음 걸음이 있다. 어쩌면 기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의 피로를 조금은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인디스페이스 개관 11주년 기획전 ‘I-독립영화여성감독전에서 만난 <기억할 만한 지나침> 박영임 감독과 진행을 맡은 이완민 감독의 인디토크 기록이다.



 



박영임 감독(이하 박영임): 안녕하세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만든 박영임이라고 합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완민 감독(이하 이완민): 질문에 앞서, 시를 쓰는 사람에 관한 시적인 영화인만큼 우리의 질문이나 대답도 주어나 술어가 완벽치 않더라도 관대하게 바라봐 주십사 제안을 해봅니다. 제 안에서 가장 강렬하게 샘솟는 질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작품은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거쳤다는 감정을 떨칠 수 없었는데요, 단순히 누군가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가 오랫동안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결과로서, 직관으로서 무언가를 직조해나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고요한 감각에 의해 빚어진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컷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다음 컷에 자리를 내주고, 자신만의 기준에 의해 전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감독님께서는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제가 가진 원칙은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하나는, 촬영할 때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연기와 컷이 제 마음에 와닿는지 따져보고, 편집할 때도 와닿는 만큼 컷을 쓰고자 했습니다. 또 영화를 만들면서 이 영화로 무엇을 남길까, 정말 좋은 마음을 남겨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로는 좋은 것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편집하면서 이 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했고, 힘들 때 제 영화를 많이 봤어요. 좀 우스운 말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저 스스로 위로받고자 했고 만든 사람으로서 일차적으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부족한 점들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이완민: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호흡에 굉장히 놀라셨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 전작과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감독님은 순리필름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고 20년 가까이 영화작업을 하고 계세요. , 실험, 다큐 등의 장르를 아우르고, 작품마다 러닝타임도 굉장히 다양해요. 작업을 이어오시면서 어떤 변화를 지나 이 영화가 탄생했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처음에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막연했던 것 같아요. 제 머릿속에는 이야기 보다는 이미지가 많았고, 그런 것들을 처음에는 실험영화란 이름으로 그려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부끄러워요. 처음으로 스토리텔링을 넣은 첫 장편영화는 15년에 처음으로 공개가 되었는데, 촬영 후 십 년이 지나서야 완성이 된 거예요. 첫 번째 영화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바빴던 것 같아요. 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말 하고 싶다, 그런 조급함이나 치기어림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시골에 내려간 지 6년 정도 되거든요. 충남 홍성의 불모지에 내려갔는데(웃음) 서울에서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고 붙잡고 있던 일들이 다 잘 안됐어요. 몇 년째 첫 장편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고, 영화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태로 시골에 내려갔는데 자연 풍경이 많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 후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완성되는 그 사이에는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2015)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말하려고 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히려 들어주는 영화를 하고 싶더라고요. 김정민우 촬영감독님이 우리 영화는 들어주는 영화 같다는 말씀하셨을 때 공감을 많이 했어요. 이제는 좀 들어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을 좀 하고 싶다,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작업에 있어서도 오랫동안 첫 번째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싶고.(웃음) 내가 왜 영화를 하려고 하는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생기면서 <기억할 만한 지나침>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이완민: 제목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은데, 기형도 시인의 동명의 시가 있죠, 기형도 시인의 시에는 건물 안에서 울고 있는 서기가 등장하고 라는 인물이 서기를 떠올리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요. 염소를 바라보던 시인 김, 그리고 시인 김을 바라보는 연출자 혹은 관객. 이런 구도와 연관 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나침이라는 건 뭔가 스쳐가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표현을 하잖아요. 바닥을 치고올라온다. 누군가가 가라앉고,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일련의 과정을 문적인 형태로 박제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목을 어떤 이유로 선택하고, 이 제목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박영임: 제가 시를 잘 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형도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하는데요. 사실 영화 내용과 동명의 시의 내용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한 순간을 목격하고 그 순간에서 드러나는 마음을 붙잡으려고 하는 지점이 이 영화에도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가 살면서 많은 순간들을 지나치는데, 실제로는 마음이 가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외면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의 마음에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 그 시하고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목을 이걸로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완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작형태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전체적인 제작기간, 그리고 프로덕션 기간, 촬영 자체의 기간, 또 촬영의 순서나 인적구성, 물적구성은 어떻게 되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집요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것들로만 구성되어야 할 것 같고, 실제로 크레딧을 보니 일인다역인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박영임: 시나리오는 1년 정도 쓴 것 같아요. 크게 두 번 정도 이야기가 바뀌었어요. 원래는 세 여자의 이야기, 알고 보면 한 사람이지만(웃음) 각각 다른 세 여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식의 구상 안에서 좀 더 난해하고 추상적이었어요. 그게 변하고 변하면서 한사람의 이야기로 압축하면서 1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캐스팅과 제반준비를 하는데 4-5개월 정도 걸렸어요. 짧은 시간이어서 사실 영화가 촬영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김정민우 촬영감독님은 촬영을 미루자고 했어요. 제가 이 영화 배경이 겨울인데 미루면 내년으로 넘어가야하니까 안 된다고, 지금 찍어야한다고 해서 힘들게 찍었죠. 촬영하면서 헌팅하고, 촬영하면서 캐스팅하고 그랬어요. 결국 남편 역은 촬영감독님이 하셨는데.(웃음) 배우분들과 함께한 촬영은 두 달 정도, 24,25회차 정도 진행했어요. 마지막 후반작업은 1년 가까이 했습니다. 이미지컷으로 나오는 자연의 풍경은 배우들의 촬영이 끝나고도 계속 찍었어요. 흰돌이의 무덤 장면은 시나리오에는 없었어요. 저희가 촬영 중간에 강아지를 구조했는데, 산들이라는 이름도 붙였어요. 그런데 산들이는 며칠 지나 세상을 떠났어요. 마침 흰돌이가 죽는 장면을 편집을 하고 있었는데 산들이의 묘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적구성은 저, 촬영감독님, 연출부 두 분, 촬영부 두 분. 총 여섯명 정도의 인원이 고정인원이었고요. 분장 담당자분이 4-5회차 정도 나오고, 미술감독님도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내내 계시진 못했어요. 장비는 4k 촬영으로 많이 쓰는 소니 카메라를 사용했고, 저희 영화가 2컷 빼고는 다 핸드헬드 씬이에요. 지방에서는 장비를 대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카메라랑 그립 장비는 아예 샀어요. 조명장비 등은 지역에 있는 미디어센터에서 무상으로 대여해주셔서 지원받아서 사용했습니다.

 

이완민: 캐스팅 관련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주연배우인 이헌주 배우님은 어떻게 같이 작업하시게 되었는지, 이 호흡을 지탱하고자 어떻게 대화해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먼저, 오늘 뇌성마비소녀 엄마로 출연하신 오민정 배우님이 오셨거든요. 잠깐 인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헌주 배우와 다른 배우들 모두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을 했어요. 그리고 영화 속 가족구성원들 모두가 리허설을 몇 번을 같이 했어요. 이헌주 배우는 2주 정도 미리 이곳에 내려와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고요. 사실 초반촬영분은 이후에 다시 찍었어요 감정이 무르익지 않았고 저희도 몸이 덜 풀리고. 배우님도 좀 어려워하셨어요. 소통할 때에는 저는 기술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그 감정이 있는 그대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어요. 예를 들어 슬프다는 감정을 그려낼 때 누구는 울 수도 있지만 누구는 헛웃음이 나올 수 있잖아요. 배우에게서 온전하게, 솔직하게 나오는 걸 담아내고 싶었어요. 촬영 중간에도 계속 리허설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때로는 제가 발견하지 못한 걸 제시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이헌주 배우를 이 캐릭터에 끌어당긴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배우를 더 일체화시켜야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돌아보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완민: 캐릭터에 대해서도 궁금한데요, 첫째언니는 집을 떠나 본질적인 문제 상황을 일으키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돌아오는 인물이에요. 어떻게 보면 시인 김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첫째언니가 설정된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하고요. 장 선생님이라는 캐릭터도 궁금해요. 이 영화 속에서 장 선생님은 유일하게 모든 걸 받아주는 듯한 인물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시인 김을 배제하는 것 같았어요. 투 샷으로 시작했는데 원 샷으로 끝나는 그런 장면에서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박영임: 아주 화목한 가정이 아니라도 가족이라는 건 마지막 보루처럼 생각하게 되잖아요. 마지막으로 기댈 곳인데, 가족 구성원의 해체 까지는 아니어도 그런 관계가 부서지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가족구성원들끼리 서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넣기 위해 큰언니라는 인물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투 샷이다가 원 샷으로 한 사람만 잡는 샷은 사실 처음에 투 샷으로 찍었어요. 시인 김과 다른 인물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긴장감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작은 영농조합 반장과 이야기 나누는 장면에서, 김이 해고를 당하는데 거기서 헌주 배우가 눈물을 글썽글썽하는 거예요. 저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미 테이크가 한 스무 번은 갔거든요. 그러면 이 감정을 좀 더 담백하게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주인공을 배제했는데, 그랬을 때 오히려 김이 느끼는 충격이랄까? 당구처럼, 충격이 쿠션으로 더 세게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몇몇 사람과의 컷에는 이런 샷을 일괄적으로 가져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장면입니다. 장 선생님은, 저희 영화가 기댈 곳이 없잖아요. 영화의 인물이. 영화를 보는 사람의 감정이 기댈 곳이 없어요. 사실 저는 주인공이 고난을 겪는 영화를 잘 못 보거든요. 마음이 힘들어서요. 동물이 고초를 겪는 것도 아예 보지를 못해요. 어쩌다보니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됐는데(웃음). 그래도 마지막으로, 혼자라고 생각해도 딱 곁에 있는 하나의 존재, 그런 상징을 쓰고 싶었어요. 장 선생님과 영화에 나오는 많은 자연 풍경들, 동물들은 위로를 주고받는 대상으로써 넣었어요.

 

이완민: 영화를 보는 내내 애도라는 단어가 생각났어요. 어쩌면 시인 김은 자기 자신, 시 쓰기에 있어서의 실패, 또는 자신의 사회부적응에 대해 애도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절대적인 사랑이라고 믿은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을 때를 애도를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또 아버지의 죽음, 흰돌의 죽음을 지나면서 애도를 필요로 하는 과정을 거치다가, 장 선생님을 통해 위로를 터뜨리면서 그것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고나서야 처음으로 색감이 나오죠. 그때 김이 다른 국면에 접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실패나 부적응, 또는 애도 상태에 이르렀을 때 김은 계속 자살을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 이미지들은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직접적으로 넣으셨어요.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죠. 자살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밤들을 견뎌낸다고, 이 영화에서 자살이라는 것은 어떤 평온한, 해방감이 드는 그런 이미지들도 구상된 것 같다는 개인적인 느낌이 듭니다


박영임: 일단 먼저, 죽음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 영화에 계속 죽음이 나오거든요. 근데 영화의 첫 장면에서 김이 저수지를 바라볼 때는 죽음을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저수지를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가요. 자살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말하려고 만든 영화도 아니지만, 죽음에 관해서 긍정적인 느낌으로 담고자 하진 않았어요. 죽음이라는 게 항상 저희의 발밑에 있잖아요. 사람도 기대수명이 있고, 말하자면 유통기한이 끝나면 다 죽을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영원할 것처럼 살고 있거든요.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반대로 삶을 더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더 말하려고 했어요. 또 영화에 로드킬이 나오는데, 시인 김은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거였어요, 제가 시골에 살면서 로드킬을 참 많이 봐요. 차들은 쌩쌩 지나가고 하루에도 죽어가는 동물들이 참 많은데, 우리가 사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남들은 다 차를 잘 타고 잘 달리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갓길에 위태롭게 있는 거 같고, 나도 언제 차에 치여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존재와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엮었어요. 김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끔.

 

이완민: 시인 김이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긴 여정을 거쳐 당도했을 때 아버지의 얼굴을 대면하게 되잖아요. 그걸 굉장히 직접적으로 찍으셨더라고요. 아버지 얼굴이 클로즈업된 장면이 한 번 더 나오고요. 그 사실을 대면해야만 한다는, 그런 의지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박영임: 제가 가족의 죽음을 겪을 때, 영안실에서 시신을 보는 건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이 갑자기 실체화돼서 나에게 툭 떨어지는 그런 형언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 이건 실제구나, 누군가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깊은 절벽이 있는 거구나, 이런 감정을 느꼈거든요. 그것을 물리적으로 대면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완민: 사운드와 색감의 사용도 궁금합니다.

 

박영임: 사운드는 사실 되게 힘들었어요. 심정적으로 고요한 장면이 많은데 저수지에서 오리가 계속 꽥꽥거려서 후반작업에서 다 지웠거든요. 사운드의 큰 기준은 자연에서 제가 듣는 소리를 고요한 상태에서 들려주는 것, 그리고 사운드가 인물과 관계 맺는 것이었어요. 음악을 너무 강렬하게 쓰면 음악에 끌려다니는 것 같을 때가 있어서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는 느낌의 사운드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촬영감독님이 음악도 하시는 다재다능한 분이어서 그런 분위기로 진행했습니다. 색감은 앞서 이완민 감독님이 봐주신 대로 어떤 심정적인 변화, 아주 작은 단서로써 넣게 되었죠.

 



 

관객: 힘들고 여유가 없이 살다보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될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김도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흰돌이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흰돌이가 아플 때나 방에 들어오려고 할 때 소리도 내지 않는데 김은 그냥 안단 말이에요. 김은 되게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잘 발견해내는데 어떤 의도가 있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흰돌이를 발견할 때나 방안에서 아픈 걸 발견할 때 보면 소리가 없죠. 소리를 넣지 않아도 관객분들이 그 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김이 저수지에 빠져있다가 한참 있다가 흰돌이를 찾아 저수지가로 갈 때, 저는 그게 김에게는 들리는 아주 미약한 소리였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잘 안들리지만 김은 그런 작은 소리들에 반응하고 보듬을 것이라고요. 내용적으로는 그렇고, 영화적으로는 긴장감을 주고 싶어서 사운드를 배제했습니다. 흰돌이가 낑낑거리는 사운드를 그 장면에서 넣으면 김이 물에서 빠져나와 움직이는 이유를 너무 잘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김의 행보가 궁금하지 않게 되지 않고 흰돌이와의 만남에서도 맥이 빠져버릴까봐 사운드를 빼게 됐죠.

사실 김의 인생이 힘든 건 그런 걸 외면하지 못해서 힘든 거죠.(웃음) 그런 소리들을 외면하고 산뜻하게 살면 좋은데. 그렇지만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그게 소중한 마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일에 돈을 쓰고 시간을 쓰면 나도 불안해지고 보는 사람도 불안해지고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받지만 결국은 그런 마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김을 통해 하고 싶기도 했어요. 현실에서 붙잡아야 하는 것은 나한테 보장된 것. 현실적인 방법들.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있는 다가오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근데 그런 마음을 붙잡으면 힘들어지죠.(웃음) 그래도 붙잡읍시다, 라고 말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관객: 주인공 김이 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캐릭터잖아요.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잘 소통하지 못하는데, 이런 인물을 보여주는 경우 1:1에 가까운 작은 화면비에 갇혀 보이게끔 하는 시도를 많이 봤는데 이 영화는 시네마스코프 비율이더라고요. 자연경관이 나올 때는 광활한 느낌인데 동시에 김이 등장할 때 오히려 답답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어요. 원래부터 화면비율을 길게 잡기로 설정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촬영은 1.85:1보다 약간 더 와이드한 앵글로 했어요. 나중에 화면비를 시네마스코프로 할지, 1.85:1로 할지 고민을 하긴 했어요. 시네마스코프로 정한 건, 인물이 주변에 있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를 보면 인물이 항상 구석에 가있거든요. 촬영할 때도 그런 식의 배치를 했고요.

 

 

관객: 영화에 들어가는 주변의 소리들이 되게 크게 들리거든요. 바람소리나 자동차 소리, 기차소리가 개인적으로는 위협적으로 들릴 때도 있을 만큼 크게 들렸는데 이런 선택을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두 번째로 영화에 카메라가 멈춰있는 장면이 되게 많았는데요. 그럼에도 대부분의 장면을 핸드헬드로 촬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영임: 자동차 소리는 위협적으로 들리게 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갓길에 서있으면 되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니까요. 자연의 소리로는 되게 미세한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미세한 소리들을 꽉 차게 들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핸드헬드 촬영 때문에 촬영감독님이 정말 고생하셨는데요, 픽스를 쓰면 말그대로 화면이 전혀 움직이지 않잖아요. 그럼 너무 마음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젔어요. 그래도 조금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고정샷임에도 핸드헬드로 촬영했습니다. 그런 미세한 흔들림이 김이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정서와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음 영화는 핸드헬드를 덜...(웃음)

 

이완민: 앞서 두 개의 장면은 핸드헬드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박영임: 하나는 기차 안에서 찍은 샷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들이 장례식 끝나고 싸우는 장면인데요. 기차 안에서는 차체가 너무 흔들려서 굳이 핸드헬드를 쓸 필요가 없더라고요. 가족씬은 길이가 너무 길었어요.

 

 



관객긴 러닝타임을 두려워하면서 들어왔는데 재밌고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초반에 주인공의 그림자가 담벼락에 부딪히는 부분이 있는데, 담벼락에 구멍이 뚫려있어서 그 이미지에 꽂히게 되었어요. 초반에 여러 이미지컷이 나와서 사진전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고요. 이미지컷은 후반작업 때에도 틈틈이 촬영했다고 하셨는데, 영화에 이미지컷들이 어떤 생각으로 들어갔는지, 또 영화 호흡이 상당히 길잖아요. 그것도 유념하셨던 부분인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이 영화는 그림자가 많이 나와요. 말씀하신 담벼락 장면에도 나오고, 흰돌이가 집 앞에 죽어있을 때도 김의 그림자가 나오고. 콘트라스트가 약해서 잘 안보이긴해도 장례식에서 언니가 말할 때 벽에 그림자가 비치거든요. 뒷모습과 마찬가지로 보는 분들이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충분히 넣을 수 있다는 게 그림자의 좋은 점인 것 같아요. 그 담벼락은 마침 구멍이 있더라고요. 발견하고 나서 정말 좋다! 너무 노골적인가? 그래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찍었어요.(웃음) 저도 좋아하는 컷입니다.

먼저 이 영화는 시인이 주인공이기도 하고, 자연의 이미지가 잘못하면 상투적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자연으로부터 내가 받은 위로를 이미지컷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받은 감정, 바람의 느낌, 갈대가 흔들릴 때의 어우러짐 같은 것들을 말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미지컷은 촬영감독님이 거의 혼자 촬영하신 것도 있어요.

그리고 영화의 긴 호흡은, 촬영 때부터 그렇게 찍긴 했는데 사실 이렇게 완성하기는 두려웠어요. 아무도 그걸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아서요. 스탭들은 이미 열 시간짜리 영화 나오는 거 아니냐며 포기를 했고.(웃음) 관객들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전주에서 처음에 영화가 상영할 때 보다가 많은 분들이 나가셨거든요. 역시 그런 거구나 싶고 두려웠죠. 내 이야기나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사실 늘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에 어떤 만화를 읽었어요. 짧은 카툰인데, 주인공의 침대가 너무 큰 거예요. 침대가 너무 커서 그 사람이 자면서 여기서 떨어질 일은 없겠다 생각했는데, 침대가 너무 크니까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가려면 침대 끝을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꼭 떨어지게 돼요. 저는 제 영화의 리듬을 생각하면 그 이야기가 꼭 생각나요. 컷의 호흡에 마음을 놓다보면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야기가 또 다른 감정에 떨어지는, 긴장감이랄까요? 그런 긴장감을 주기 위해 편집 때에 노력을 많이 해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프레임 안에 인물과 함께 소리가 들어오는 게 아니라 소리가 먼저 들어오고 인물이 들어오는 장면이 꽤 많잖아요. 인물중심으로 찍기보단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인물이 장소로 들어오듯 찍으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촬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영임: 지금 기억나는 컷은 흰돌이를 잃어버리는 장면인데요, 대나무가 흔들리고 그다음으로 인물이 장면 속에 들어오죠. 저는 그 공간의 구성요소들이 말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씬에서는 흔들리는 대나무가 말하는 게 있었어요. 사실 영화는 단출하고 프레임은 고요한데 저희는 정말 전쟁처럼 힘들게 찍었어요. 정신없이, 열흘을 연속으로 찍을 때도, 하루에 열 씬을 찍어낼 때도 있었는데. 그렇게 바람이나 날씨가 도와준 적이 많았어요.

 

 

관객: 영화 초반에 20144월 달력이 등장하고, 호수에서 시체를 보는 듯한 장면이 있어요. 2014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초반의 분위기가 앞으로의 긴 영화의 호흡을 보여주게 되는 면도 있을텐데 그 부분을 염두에 두신 건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우선 세월호를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이 워낙 낡은 집이다보니 창문 가리기 위해 지난 달력을 붙여놓는다는 설정이었어요. 촬영할 때 스탭이 보고 4월 달력을 바꿔야 할지 묻긴 했는데, 괜찮을 것 같다고 하고 찍었어요. 초반에 저수지에서 건져 올라오는 사람은 시인 김인데요, 초반 시퀀스는 김의 꿈이거든요. 혹은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자기가 하는 상상이에요. 영화에서 꿈을 적극적으로 썼죠. 꿈이라는 요소가 영화 안에서 많은 자유와 의미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이완민: 이제 마무리를 하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이 시점에서의 감독님의 바람 내지 고민거리, 혹은 영화를 보고나서 든 생각, 향후계획 등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영임: 사실 이 영화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어요. 영화를 촬영하고 1년 동안, 지금까지도 회복중이거든요. 내적인 것도 그렇고 외적으로도 제가 무리를 많이 했어요. 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제 성격에 맞지 않는 일들을 하며 무수한 상처를 받아서, 촬영 끝나고 대인기피증에 가깝게 사람을 잘 못 만났어요. 그래서 더 힘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또 힘든 일이 생기더라고요. 이 영화도 힘든 과정을 겪는 사람에 대한 영화잖아요. 힘든 순간이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건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힘든 이 시간이 나에게 무언가 주고 있겠지 생각하면서 그걸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요즘에는 나는 계속 이렇게 힘들게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겠다는 절망감이 들어요.(웃음) 이 영화를 너무 힘들게 찍고 나니 다음 영화를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운 거예요. 그리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고요. 지금 영화보다 더 완성도 있었으면 좋겠고. 이 영화를 촬영할 때는 현실적인 여건, 제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 흑백이 작품과 잘 맞기도 하지만 여건이 안 되어 컬러를 하지 못한 것도 있어요. 저는 워낙에 작은 영화작업을 해왔는데, 이렇게 작게만 해서는 내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에 가기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한계를 느껴서 다음 영화를 위해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부분이 두렵긴 하지만 현실보다 제 마음이 더 두려운 것 같아요. 제 마음을 제가 바라보려는 시선을 잃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나가야 할 텐데요,

다음 작업은 이 영화랑 비슷한 시기에 기획을 한 영환데, 고독사에 대한 영화예요.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나 고시원에서 결핵으로 고독사한 이야기를 보며 만들어나간 이야기인데 두려운 작업이고 버거운 작업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이 작업을 위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이완민: 세 번의 감사인사를 하고 끝맺겠습니다. 먼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11년간 버텨주셔서 감사하고요. 관객 여러분, 오늘 정말 긴 시간을 함께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박영임 감독님, 긴 호흡으로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영임: 관객분들께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또 인디스페이스의 이번 기획전이 저에게는 참 감사하고요. 이완민 감독님이 인디포럼부터 저희 영화를 볼 기회를 계속 마련해주셔서 항상 감사해요. 저는 이 영화가 외롭고 힘든 분들에게, 또 외로웠거나 힘들었던 분들에게 많이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자신도 그렇지만 그런 분들의 손을 잡고 같이 울어주는 영화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울기 힘들잖아요. 울면 약해지는 것 같고,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하고. 저희 영화는 같이 우는 영화였으면, 위로를 나누는 영화이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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