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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소소대담] 2018.06 재연과 재현, 영화가 취하는 아슬아슬한 경계 사이에서

by indiespace_한솔 2018. 8. 7.

 

 [2018.06 소소대담] 재연과 재현, 영화가 취하는 아슬아슬한 경계 사이에서 


참석자: 이수연, 윤영지, 박마리솔, 최대한, 김민기
('소소대담'은 매달 진행되는 인디즈 정기 모임 중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연 님의 글입니다.





 

[리뷰] <서산개척단>: 번역물로서 다큐멘터리 영화 (Click!)

[인디토크 기록] <서산개척단>: 진실을 마주하는 어려움에 대하여 (Click!)



이수연: 지난 번 <서산개척단>에 대한 이야기가 충분하지 못해서 조금 더 이어가보려 해요.


최대한:서산개척단이라는 사건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근래 함께 개봉한 <해원>, <5.18 힌츠페터 스토리>와 결이 다른 영화였던 것 같아요.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취재 방식이 차별화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이수연: 다큐멘터리에서 주로 사용하는 내레이션보다는 당사자의 고백이라는 진술의 방식에 집중한 영화인 것 같은데요, 이런 지점에서 <공동정범>도 생각이 났어요. 다큐영화이기에 취할 수 있을 과감함과 입체성이라고 생각했고요. 영화가 지적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내적인 이야기도 물론 충분히 논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서 이 영화가 어떻게 느껴졌는지 여러분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오히려 내레이션 없이 진술을 근간으로 이뤄지는 방식이 가해를 입힌 사람의 입장을 두둔해주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불편한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도 했거든요.

 

최대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인디토크 당시 진행자분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서산개척단의 단원들도 피해자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체제가 만든, 강압이 만든 폭력이라는 점에서 그 분들도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이수연: 영화도 그 분들을 시대의 피해자라고 입장을 취하잖아요. 저는 큰 폭력이 있다고 해서 작은 폭력이 합리화되지는 않는다는 비판점이 존재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어요.

 

박마리솔: 연극 장면이 그래서 불편했어요. 그 장면을 보여주고, 그 장면을 보는 피해자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는 잘 알겠는데 과하게 많았다고 느껴졌거든요. 그걸 보고 괴로워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고요

  

김민기: 그런 폭력적인 부분이 악의 평범성을 논하는 것 같았어요그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상황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하는 게 아닐까요.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라고요.

 


 



 [리뷰] <홈> : 작은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Click!)

[인디토크 기록] <홈>: 인스턴트도 괜찮아, 우리가 이렇게 같이 먹고 있다면 (Click!)



이수연: '아토'라는 제작사가 꺼내 놓은 영화들이랑 연관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우리들>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홈>은 아이의 뒷모습을 담아내는 담백한 시선이나 표정을 건조하게 훑는 카메라도 인상적이었어서 감독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을 듣고 놀랐어요. 다만 한 아이에게 부여되는 불행 서사의 정도가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요, 불행은 누군가의 연민과 감정적 동질감을 이끌어 내는 효과적인 장치라고 생각은 해요. 그렇지만 동생들을 잃어버리는 장면, 편의점에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나타나는 장면, 돈을 가져가는 장면까지, “혹시하면 그 장면들이 그대로 구체화되더라고요. 영화의 주제를 고려한다면 이 장면들이 정말 필요했는가, 또 묵인 가능한 종류의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윤영지: 고통을 다루는 방식, 인물을 궁지로 몰아가는 것 자체는 괜찮다곤 생각해요. 그러나 <홈>에서는 상처에 대한 묘사가 멀리서 보고 관찰하는 느낌이라 아쉬웠어요. 피상적인 생각들로 아이들을 묘사한 점에서요.

 

이수연: 학교 폭력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사용했다고도 생각하고요. 좋았던 점이라면 주인공 이효제 배우의 연기였어요. 영화를 이끌고 가는 힘있는 연기였어요

 





[리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예술이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 (Click!)



이수연: 영지님이 리뷰 마지막에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한다라고 쓰신 걸 봤어요. 너무 공감되는 코멘트였어요. 이 영화가 드러내는 대화와 사람들을 보다 보면 이 영화는 싫어할 수가 없겠다는 느낌이 와요. 평범함의 예술성을 담아낸 영화 같아요. 사람에 대한 존중이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특히 대화가 좋은 영화 같아요. 서로의 경험에 따라 꼽을 수 있을 대화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는 항만 노동자들의 아내를 다루는 장면에서 나탈리라는 인물이 남편의 뒤에서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바르다 감독이 뒤가 아니라 옆에서라고 정정해주는 게 너무 좋았어요.

 

최대한: 바르다 감독만이 찍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바르다가 과거에 봐왔던 세상이 JR이랑 돌아다니면서 마주하는 현재의 경험과 맞물린다는 느낌이었어요. 그 지점이 좋았어요. 기성세대와 젊은세대의 연결점도 잘 보인 것 같아요. 결말 부분이 특히요. 과거와 현재가 결합이 잘 된 것 같아요.

 

박마리솔: 저도 항만 노동자의 아내들을 다루는 장면이 참 인상 깊었어요. 소소한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잘 이끄는 영화 같아요. 따듯하기도 하고요.

 

최대한: 누벨바그 영화를 안 보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재미가 없어서인데, 이 영화는 유쾌했어요. 항만 노동자의 아내들을 다룬 장면을 언급하니 생각나는데 이 영화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이었잖아요. 그 장면을 제외하곤 여성 영화제의 취지에 잘 맞는 영화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이수연: 바르다 감독이라는 상징적 존재에 대한 경이가 아닐까 싶어요. 칸 영화제에서 82명의 여성 영화인들의 행진 선두에 섰던 인물이기도 하고요. 그 의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박마리솔: 텍스트적으로도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야기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그런 부분에서도 영화제의 취지에 부합한다 생각해요. 주인공이 되지 못한 여성들을 위한 자리가 여성 영화제가 아닐까요. 그런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고요.

 

윤영지: 노년의 여성이 주인공이 등장해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내는 것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리뷰] <튼튼이의 모험>: 가족의 탄생 (Click!)

[인디토크 기록] <튼튼이의 모험>: 당신이 있어 가능하다 (Click!)



윤영지: 영화가 너무 슬펐어요. 인디스페이스에서 본 영화 중 손에 꼽을 정도로요. 저는 <튼튼이의 모험>이 앞서 말한 몇몇 영화가 도달하지 못한 지점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해요. 내가 겪어보지 못했지만 알 수도 있을 감정에 대해 너무 잘 묘사했거든요. 인물들이 스스로의 처지와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아요. 그런 표현 방식이 자연스러웠어요. 그것을 포장하지 않으려해서 슬펐고요.

  

박마리솔: 시골에서 스포츠, 그러니까 레슬링을 하기 위해 돈을 모은다라는 서사는 뻔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 과정 안에서 다루는 소소함, 필리핀 다문화 가정, 체육관 재정비 문제들 같은 것들이 잘 얽혀서 인상 깊었어요. 감독이 장난스럽다고 느껴지는 이미지들 속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구나 싶어서요. 영화를 찍는다는 과정이 어렵고 힘든데도 불구하고 식구처럼 지내는 모습이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뜻있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 자체가요.

  

이수연: 찌질한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남성적인 서사가 아닌가하는 의문도 있어요. 평범함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남성 배우들에게 국한되지 않나 싶어요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예측되고요. 남성의 찌질함을 굉장히 판타지화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드네요.

  

김민기: 영화 속의 인물들이 찌질하고 평범한 이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 속의 주인공들이 평범하진 않잖아요. 좋지 않은 가정 환경을 갖고 있잖아요. 가령,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어머니가 필리핀인인 다문화 가정이 존재한다거나 그런 지점들이요. 그들의 삶을 보면 사실 '평범'한 우리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흔히 가시화되지 않으니까. 하층에서 자란 이들이 갖는 환경의 특수성에 대해 논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영화는 매체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장치로서 영화는 재연과 재현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 있는 그대로의 행위를 반복해 드러내는 재연과 창작자의 시선을 반영하는 재현은 엄연히 다른 행위이다. 편집과 의도적인 연출의 과정을 지나는 한 영화는 무언가를 재현하는 매체다. 스크린이라는 하나의 과정을 넘어 영화는 관객들에게 독해된다. 영화가 해석되는 한 영화는 자신이 발화하는 이야기에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가 관찰자의 역할을 취한다고 해서 그가 다루는 소재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깊은 사유과 존중은 필수적일 테다.

 

재연에 멈춰서는 영화들이, 관찰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최근 영화들이 취하는 방식에 아쉬움을 느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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