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영>  한줄 관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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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화영>  리뷰: 지독하게 괴롭고 외롭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종우 님의 글입니다. 




<박화영>은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영화였다. 특히 영화 안의 부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무언가의 없음은 어떤 것의 홀로 있음을 강조한다. 영화 <박화영>은 제목처럼 박화영이라는 인물 한 명을 겨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화영은 끊임없이 고립되고 배제된다. 영화는 박화영의 관계를 이렇게 소개한다. 엄마는 없지만 있고, 친구는 있는데 없다고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없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영화의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없음은 때로는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박화영은 소위 가출팸이라 불리는 커뮤니티 안에서 엄마를 자처한다. 그는 엄마라 불림을 즐기며 동료들은 박화영을 엄마라 호명하며 집단을 이룬다. 그러던 중 은미정은 질문한다. ‘엄마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냐고 말이다. 박화영은 그저 자신을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가 재현하는 닮은 점은 그저 흡연자라는 사실뿐이다.

 

박화영의 엄마는 어떤 사람인가. 박화영은 왜 가출했는가. 영화는 박화영의 엄마를 의문의 인물로 형상화하면서 가출의 원인을 명시하지 않는다. 이는 박화영이라는 인물에 이입할 수 없도록 만드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청소년의 일탈 혹은 비행의 원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윤리적 선택의 결과다. <박화영>은 폭력과 윤리를 동전의 양면처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 다른 부재의 주인공은 박화영의 동료이자 연예인 지망생 은미정이다. 나는 놀라울 정도의 은미정의 망각이 의심스럽다. 그는 살인 사건의 기억도, 폭력의 기억도, 엄마라 지속해서 호명했던 기억도 모두 잃은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발언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영화는 전자에 기울어져 있다는 점에서 기이하다. 은미정의 떠남으로 박화영은 완전히 고립된다. 은미정의 삶 또한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알고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이 질문을 계속 떠올렸다. 폭력을 재현했다는 이유로 영화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이미 폭력을 재현했다. 영화가 폭력을 재현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의문은 재현의 방식 혹은 서사의 구성 방식에 있다. 인물 박화영과 영화 <박화영>은 폭력의 스펙터클 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폭력의 스펙터클은 문제의 원인의 부재와 동료의 망각에 의해 강력해진다. 지독하게 괴롭고 외롭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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