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한줄 관람평


권소연 |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미소가 곁에 있다고

이수연 |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박마리솔 | 소중한 것을 끝까지 놓지 않을 용기가 내게는 있을까

임종우 | 평범한 원칙을 지키며 산다는 것의 평범하지 않음에 대하여

김민기 | 닭백숙 값은 누가 냈을까?

윤영지 | 영화로 옮겨낸 '소유냐 존재냐'







 <소공녀 리뷰: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연 님의 글입니다. 




만 원 남짓의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갑과 남자친구. 미소의 세계는 사소한 것들로도 충분히 굴러간다. 바퀴벌레도 기어 다니는 허름하고도 차가운 단칸방이지만 미소에겐 불행이 아니다. 가사도우미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미소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세 가지는 여전하니까. 그럼에도 그 협소한 세계마저 호사라는 듯 세상은 얄팍한 꼼수를 부린다. 불행한 마법처럼 위스키부터 시작해 담배, 월세까지 그 값을 훌쩍 올린다. , 혼자서도, 괜찮다고 미소는 의연하게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영화는 미소의 떠돌이 소공녀 생활을 따라 전개된다. 미소는 달걀 한 판과 함께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과거의 크루들(문영, 현정, 대용, 록이, 정미)을 만난다. 그들은 집을 포기한 미소와 다르게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한 이들이다. 휴게실에 숨어 링거를 맞는 직장인, 결혼 후 집안일과 가정에 시달리는 주부, 아내와 이혼을 앞둔 직장인, 결혼하지 못한 채 부모님과 사는 남자, 과거는 숨긴 채 남편에 맞추는 삶을 사는 여성까지. 미소가 만나는 이들을 통해 영화는 가정과 집이라는 테두리 안의 삶을 드러낸다. 그들은 포기하라고, 삶의 경계 안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단념할 필요도 있다고 미소를 끊임없이 설득한다. 그러나 미소는 답이라도 정해져 있는 것마냥 갈등하지 않는다. 크루들을 만나는 여정은 어찌 보면 타이르는 세상과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신 미소는 이름처럼 열렬히 싸우되 한 줌의 인간됨을 놓지 않는다. 남자친구 한솔과 이별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울지 않는다. 부모도 집도 없이 떠도는 삶이지만 타인을 탓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천연한 얼굴로 웃는다. 미소(微笑). 작기도 작은 (微小) 주인공의 이름이지만 더불어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단 한 순간도 미소는 위축되지 않았다.


미소에게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하길 종용하는 이들 또한 영화가 위로하고자 하는 대상이다. 그들도 미소처럼 지키고자 했던 것들과 선연히 빛나는 삶의 청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활이 빚으로 가득 차 자꾸만 여유를 잃어가는 삶은 포기를 익숙하게 한다. 구석에 몰려 다른 선택지를 택한 이들을 우리가 비난할 수 없다. 아니, 돈에 허덕이며 사는 삶이 우리네 인생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떠돌이 삶을 강행하는 미소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미소를 염치없다며 비난하는 이를 우리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선택을 문책하는 이들에 미소는 설득도 분노도 않고 웃는다. 그 웃음은 연민도 동정도 아니며 그저 그들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소공녀>는 현실을 지독히 해학적이고도 쓰라리게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만 동시에 동화라 해도 무방하다. 현실에서 미소의 삶을 선택할 이는 극히 적을 것이기에. 미소라는 인물은 영화로써 성립되는 존재임을 알기에. 동시에 미소는 우리가 상상하던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을공주님은 아님을 알기에. 사랑하는 것들로 내 세계를 채워나가기조차 사치인 이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미소는 그들을 지켜나가기로 결심한다. 포기한 어떤 이들을 위해 미소는 치열하게 싸운다. 영화는 미소를 포함한 모든 인물이 택한 길에 어떠한 사견도 달지 않는다. 청춘이기에 좇을 수 있는 행복과 어른이라는 위치가 갖는 상징적인 책임들 사이에 <소공녀>는 위치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빼곡한 미소의 흰머리를 보며 행복과 위안을 넘어서서 모종의 씁쓸함이 넘실거린다. 아울러 탁하고 씁쓰레한 웃음과 함께 영화 <소공녀>와 미소에 대한 눈물 어린 고마움이 깃든다. 대신 싸우며 탓하지 않고 울지 않고 지켜내줬다는 그런 고마움. 세상 물정 모른다고 비난해도 좋다. 치기 어린 투정이라 보아도 좋다. 우리가 갈등한 그 길의 끝엔 행복이 있을 거라고 믿을 테니까. 청춘이기에 비로소 품을 수 있을 가치들을 제작사 광화문시네마는 작고도 큰 미소의 존재를 통해 다시 한 번 위무해 낸다. 계속이고 자라나는 미소의 흰머리처럼,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살아갈 것이라고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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