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치던 방 한줄 관람평


이지윤 | 한 데 모이고 엉키는 실타래. 그것은 관계이자 위로이며, 나를 감싸 안은 시대.

박범수 | 잃어버린 것들을 더듬어 현실의 나를 오롯이 대면하다

조휴연 | 묘사와 배치의 깊은 틈새에 숨겨진 마음

김신 | 찰나의 온기를 기다리는 방식

남선우 | 기억 속 관계와 관계 속 기억이 뒤엉키는 경험






 <누에치던 방 리뷰: 찰나의 온기를 기다리는 방식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미희(이상희 분)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 10년간 고시에 매달렸지만 별다른 소득을 보지 못했다. 남자친구(이선호 분)는 홀가분하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탐색해보라고 권유하지만, 줄곧 고시공부의 길만 걸어온 미희에게는 그것도 온당한 선택지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각자의 앞길을 응시할 힘도 고갈되어 이별의 순간조차 일상적이고 무상하게 흘려 보내는 이들의 초상은 스크린 바깥에서 고시원을 헤매고 있을 누군가의 삶을 되비치고 있을 것이다. 사법고시도 곧 폐지될 것이기에, 지금까지 함께해온 문제집을 폐기 처분하는 일은 미희로 하여금 차라리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 지난 십 년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애도하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은 김익주(임형국 분)과 조성숙(홍승이 분)의 삶이다. 학창시절부터 제도권 교육에 대한 불만을 품어온 이들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민중 미술가로 활동하거나 사회과학 계간지를 읽으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지만, 공동체의 재건과 혁명의 가능성은 어린 날의 생기와 함께 희박해져 버린 걸지도 모른다. 몇 가지 갈래로 분리된 <누에치던 방>의 여러 인물들은 의외의 계기를 통해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 그 예상치 못한 조우의 순간에 25년전 성숙과 고등학교 단짝 친구였지만 죽음을 당했던 유영(김새벽 분)의 현신인 것처럼 보이는 동명의 고등학생(김새벽 분)이 관여하며 이 느슨한 서사를 매개한다.

 






영화는 환상과 현실,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가며 꼬여버린 사연의 조각들을 들여다보는데 몰두하지만, 시종일관 정적인 화면은 정작 복잡하게 꼬인 이야기의 구조에는 무관심하다는 듯이 멈춰있어 정물적인 아름다움을 현현하고 있다. 무심한 고요를 머금고 있는 영상의 아름다움이 갈피를 잡기 힘들게 꼬여버린 서사적 기획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은 <누에치던 방>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다만 그 두 가지 요소가 서로 상보적으로 작동하면서 이야기의 정조를 심화시키는 대신 모호화된 추상성을 향하길 원하는 자의식에 의해 각자 흩어져버리며 상쇄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은 아쉽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야기 속에서 조각난 파편들을 일일이 되돌아보며 끼워 맞추는 작업은 유의미한 결실을 얻지 못할 것이다. <누에치던 방>의 미덕은 한강역을 가로지는 지하철 내부로 스며드는 봄볕 같은 온기, 간혹 가다가 방문해오는 만남의 순간들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말해준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공연을 하는 일,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사회적 독서를 하는 일, 버거운 내일을 향해 있는 힘껏 살아가는 일은 메마른 우리의 삶을 적셔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찰나의 아름다움과 만남의 안식처가 곳곳에 숨어 아슴거리고 있기에 잿빛으로 물든 우리의 삶에는 아직 살아가야 할 이유가 남아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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