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는 오늘도한줄 관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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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배우는 오늘도> 리뷰: 문소리의 목소리에 대한 영화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1.  

3부작으로 구성된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부각되는 챕터는 ‘최고의 감독’이라고 제목 붙여진 마지막 세 번째 장일 것이다. ‘소리’는 14년째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영면한 한 무명감독의 장례식장에 참석한다. 부조금만 전하고 빠져나오려했던 식장에서 우연히 배우인 동료와 후배를 마주치며 술잔을 기울인다. 대화가 진행되던 와중에 난데없이 예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며 고성이 오고가고, 소리는 잠시 자리를 피해 들어간 방안에서 무명 감독의 아들과 함께 감독이 생전에 촬영했던 영상들을 감상한다. 영상을 보던 소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몇몇 이들에게 이 장면이 당황스럽게 느껴졌다면 소리가 울음을 터뜨리게된 전말이 극중에서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에 1부와 2부를 거쳐오며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사실적인 보고서를 자임했던 영화의 톤은 3부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굴절한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글의 말미에 이르러 별도의 해석을 할당할 수 있을 것 같다. 





2.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수료하며 문소리는 2014년과 2015년에 거쳐 세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그 작품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문소리의 데뷔작이다. 서술어가 생략되어있는 제목의 공란에 기입될 여배우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고고한 아우라와 원색의 드레스로 치장하고 레드카펫을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통념적인 여배우의 이미지일까. <여배우는 오늘도>는 다른 길을 택한다. 여성혐오가 공중의 화두로 부각된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재현물이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시대에 문소리는 소셜미디어와 옴니스코프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절시증을 자극하는 환상담을 제공할 생각이 없다. 대신 여배우라는 환상의 이면에 자리한 인간 문소리의 소탈한 고백이 주를 이룬다. 주인공인 소리는 술자리에서 원치않게 동석한 남성들로부터 발설되는 저속한 농담을 견디고, 여배우이기에 매일 드레스를 입을 것이라는 주변인들의 왜곡된 환상에 둘러싸여 산다. 심지어 친구들과 가족들도 언제나 그에게 여배우라는 호칭을 부과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소리의 일상에는 어딜가나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배우는 오늘도>에는 위와 같은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비단 극중의 상황으로만 인지되지 않고 새삼스럽지 않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여성이기에 영화계에서 모멸감을 당했어야했던 많은 이들의 증언이 도처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영화 외적 상황이 우리의 지각에 은밀하게 스며들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비단 '영화계 내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로 불거진 근래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잘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여배우는 오늘도>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극중 소리의 일상은 여직원, 여선생, 여류작가등 여성이기에 들러붙는 수많은 멸칭을 달고 살아야하는 이들의 일상과도 공명하는 많은 지점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배우는 오늘도>가 비단 여배우에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여성을 특정한 이미지로밖에 상상할 수 없게된 한국사회의 환부를 까발린 투시도라고 생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한 편으로 투시도라는 단어는 양의적이다. 그것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사회의 민낯을 투명하게 내비치고자 하는 영화의 기획을 가리킴과 동시에 그 주제의식을 전하는 영화적 형식미를 요약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특기할 수 있을 법한 장면이 있다. 2부의 어느 순간. 고급스러운 실크 드레스를 길게 늘어뜨리며 부산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거니는 소리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방영된다. 그 모습을 안방에서 감상하며 즐거워하는 소리의 딸앞에서 소리는 입술을 앙다물며 텔레비전으로 다가가 전원을 끈다. 일상적인 톤으로 진행되는 영화에 과한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현명한 길이 아니라고 할 지라도 이 장면에서 텔레비전 속 소리와 안방의 후줄그레한 소리의 모습 사이의 괴리는 의미심장하다. 그 영상의 괴리는 바로 전 장면까지 소리가 여배우이기에 착용해야했던 선글라스, 짙은 화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리를 둘러싸왔던 여배우의 가장된 이미지들과 한데 엮이며 유사한 형상의 계열을 형성하고 있다. 결국 화면을 끈다는 소리의 행위는 항상 여성들이 왜곡된 이미지로 대상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담아낸 이 사회의 투시도를, 그리고 추가적으로는 감독과 관객의 시선에 복속되어 정해진 역할만 연행해야 하는 배우의 존재론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하는 문소리의 감독 데뷔에 대한 메타적인 진술을 전경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장난을 조금 해보자면 <여배우는 오늘도>를 곧 '문소리의 목소리'에 대한 영화라 요약하고 싶다.  





3.  

첫 문단에서 간략하게 말한 영화의 세 번째 장을 상기할 차례다. 장례식장에서 소리는 무명감독이 생전에 촬영한 영상들을 모아보는데 그 영상들은 감독 개인의 영화들도 아닐뿐더러 작가주의적인 자질이 빛나는 특별한 클립들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대신 그것은 감독이 촬영한 가족들의 일상적인 모습들, 그리고 곳곳의 여행지에서 긁어모은 서정적인 이미지들의 콜라주다. 그 화면이 투영되는 벽으로 카메라가 트래블링하더니 어느새 그 영상이 <여배우는 오늘도>의 화면이 된다. 이윽고 그 화면을 바라보는 소리의 붉은 눈시울에서 울음이 터져나온다.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하고 도약하는 이 실험적인 화면도 당황스럽지만 그 당황스러움을 배가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극중에서 장례가 치뤄지고 있는 감독의 정체가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문소리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인물들이 이전까지 극중에서 실제 자신을 연기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어리둥절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영화가 선글라스와 텔레비전과 같은 스크린 이미지를 동원하며 한 인물의 존재론적 괴리를 드러냈다는 사실을 단서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단서에 기반해서 추측하자면, 어쩌면 (배우-문소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제작한 작품으로 스스로가 정체화되곤 하는 한 영화감독이 남긴 희소한 사적 영상에서 우리는 우연히 그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발견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화면을 촬영한 감독이 익명의 예술가의 정체성으로 모호화될 때, 우리는 그들의 고뇌를 기억하려는 문소리의 고별사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 화면이 영화의 스크린으로 확장하면서 문소리의 시점과 포개질 때, 감독 문소리는 감독 데뷔에 대한 스스로의 불안을 자의식적으로 내보인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모호함이 영화의 균질한 톤을 깨트린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말해서 여기에서 우리는 감독 문소리의 작가주의적인 행보를 고대하게 만드는 여지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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