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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노후 대책은 있다 <노후 대책 없다>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은 2017. 7. 5.


 노후 대책은 있다 <노후 대책 없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6 30일(금)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이동우 감독, 출연자 송찬근(파인더스팟 보컬)

진행 김태용 감독, 변영주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X나게 공부하고 X나게 스펙 쌓고 X나게 취직하고 X나게 뒤져! 노후! 대책! 없다! 노후 대책 없다!” (파인더스팟 - 노후 대책 없다 가사 중) 


<노후 대책 없다>는 과격하게 부수고 시끄럽게 소리치며 분노하는 하드코어펑크 밴드, ‘스컴레이드’와 ‘파인더스팟’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돈이 안 되는 공연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펑크의 저항 정신을 지키기 위해 시위에 나선다. 영화는 노후 대책만큼이나 ‘대책 없는’ 밴드의 일상과 자신들이 초청된 일본 하드코어펑크 음악 페스티벌 공연 모습을 기록한다. 변영주 감독과 김태용 감독이 함께한 이날 인디토크에서 스컴레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영화를 연출한 이동우 감독과 파인더스팟 보컬 송찬근이 참석하여 삶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변영주 감독(이하 변): 근래 본 한국독립다큐멘터리 중 제일 재밌었어요. <노후 대책 없다>가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이유는 아마도 감독 스스로가 바로 자기들의 눈으로 영화를 찍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오늘 개봉 첫 인디토크인데 관객 분들에게 인사해주세요.   



이동우 감독(이하 이):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송찬근 파인더스팟 보컬(이하 송): 개봉까지 하게 될 줄 몰랐어요. 부끄럽네요. 그래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변: 찬근 씨는 이동우 감독님이 카메라로 본인을 계속 찍고 있는 것에 대해 당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송: 영화 찍는다고 얘기는 했는데, 찍어봤자 뭘 찍겠어 생각했어요. 친구들끼리 소소하게 노는 장면 편집해서 SNS에 올려 좋아요나 받는, 처음엔 그런 건줄 알았어요. 진짜 영화로 찍을 줄 몰랐어요. 미화되거나 연출된 게 하나도 없고 원래 우리 모습 그대로 나왔어요.



변: 이동우 감독님이 김태용 감독님의 제자예요. 네, 영화 공부 한 분이에요.(웃음) 선생님 입장에서 영화 어떻게 봤나요?



김태용 감독(이하 김): 선생님이랄 것 까지는... 이동우 감독이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 줄 알고 있었어요.(웃음) 제가 너무 좋아했던 친구인데, 얼마 전에 찾아와 영화 만들었다고 그래서 네가 무슨 영화를 만들었겠니, 그랬어요.(웃음) 사실 제자라고 하기엔 제가 가르쳐준 게 많이 없어요.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그 재능이 뛰어나서 기대하고 있었어요. 음악 한다기에 영화 말고 음악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앞으로 영화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변: 사이사이 일상의 모습이 나올 때 느린 피아노곡이 동일하게 나와요. 그래서 이 모든 게 슬랩스틱 코미디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좀 더 우스꽝스러워지거나 좀 더 다른 생각을 하게 해주는 느낌이 있어요. 그 곡을 반복 삽입한 이유가 있나요?



이: 펑크 음악만 넣으니까 되게 시끄럽고 귀가 아파서 다른 음악을 넣고 싶었어요. 저작권이 걸리니 유튜브에서 무료 음악을 검색했고 그 음악이 나왔어요. 그렇게 하나 걸린 걸 계속 쓴 거예요. 시끄러운 것 사이에서 그 음악이 나오니 되게 착하고, 귀엽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해요. 그런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변: 김태용 감독님의 감상이 궁금합니다.



김: 기본적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대방한테 소개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곤 하잖아요. 이 영화를 보고 이동우 감독이 어떤 사람들을 사랑하는지 느껴졌어요. 영화를 만들 때 제일 행복한 순간은 영화 만드는 사람이 누군가를 소개하고 친구들이 점점 불어나는 순간이에요. 제가 수업할 때 이동우 감독이 만든 영화들이 있는데, 그것부터 그랬거든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했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했어요. 이 영화 안에는 순전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우리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너무 부러웠어요. 이제 나에게는 완전히 없어진 어떤 것을 봤어요. ‘나는 무엇 때문에 영화를 만들고 있을까? 누구랑 나누려고 영화를 만드는 거지?’하며 오히려 배우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너무 고마웠어요. 



변: 음악 다큐멘터리라 하기에는 굉장히 살벌한 청년의 모습이 보여요. 어느 친구는 이런저런 세상과 싸우는 운동을 하면서 벌금을 끊임없이 내야만 하고요. 오늘 오지 못한 그 친구(파인더스팟의 심지훈)는 지금 광화문에서 파업 중이에요.(웃음)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깃발을 든 날, 그 집회 때문에 저도 벌금이 구형됐거든요. 사실 그게 무엇보다 귀찮아요. 경찰서에 가서 다 확인해야 하고 이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 법원에 가라고 또 날라와요. 검찰은 절대 저 편한 대로 재판장을 잡아주지 않아요. 부산으로 재판장을 잡아주기도 해요. 끊임없이 괴롭히는 거죠. 저도 몇 백만 원 나왔는데 어느 순간 귀찮아서 벌금을 내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이상한 죄의식이 들었어요. 나는 그냥 내고 말았지만 이십대 친구들에겐 이게 엄청난 족쇄가 될 수 있고 삶의 환경을 완전히 뒤집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검색해보면 그런 부분들을 돕는 다양한 사이트가 있습니다. 


마이너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의 일상, 분노, 웃음, 계급, 공연, 그리고 지금 숨 쉬고 있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여서 되게 좋았어요. 감독님은 촬영하면서 뭘 찍을 때 가장 좋았나요?



이: 찍으면서 같이 있는 게 즐거웠어요. 우리끼리 추억 영상 만들자 한 게 이렇게 크게 공개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우리끼리 보고 끝낼, 간직할 동영상을 만들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감독님들과 여러분도 보게 되었네요. 



관객: 향후 밴드 이외 소재의 영화를 찍을 계획이 있나요?



이: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진짜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만든 거라서요. 좋아하는 게 생기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어요.



변: 특히 다큐멘터리는 그런 것 같아요. 좋아지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어요. 다큐멘터리는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 감독님이 저한테는 개봉하고 나니 계속 영화하고 싶다고 했어요.(웃음) 





관객: 저는 십 년 전쯤 고등학생 시절에 ‘스컹크 헬’ 같은 데에서 펑크를 소비하고 그 이후로는 약간 멀어졌습니다. 1세대 조선펑크로 대표되는 밴드들과 다른 점이 있고 또 같은 점이 있을 것 같아요. 20년 정도 된 펑크의 역사에서 바뀌지 않는 가치나 시대정신, 혹은 미래에 바뀔 것 같은 가치나 시대정신들은 어떤 게 있을지 펑크를 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변: 시대정신뿐만 아니라 스타일의 변화가 있는지도 덧붙여 이야기해주세요.



송: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머릿속이 새하얘지네요. 스타일 자체는 기본적으로 저희가 하는 게 하드코어펑크고 미국, 유럽, 일본에서 80년대 시작된 70년 펑크록에 대한 안티테제 같은 거예요. 조선펑크로 규정되는 음악은 ‘드럭’이나 ‘문화사기단’에서 많이 했던 음악이죠. 중학생 때 제 삶의 전부였고요. 저희랑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건 항상 어려워요. 90년대 중반에 케이블 TV가 보급되어서 MTV를 보고 자란 세대가 시작한 한국의 펑크가 조선펑크라고 저는 규정짓고 있어요. 모두가 그렇다고 보긴 어려운데, 영국이나 미국이나 유럽의 거리에서 살고 있는 노동계급 청년들이 자연적으로 흡수해서 시작한 문화에 비해 한국 펑크 시작점이 소비 지향적이고 키치적이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그래서 80년대 펑크에 대한 안티테제인 하드코어펑크 장르를 좋아하게 됐어요. 저희가 그런 움직임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게 지금의 하드코어펑크씬이거든요. 만들어지는 데 한 7년 걸렸어요. 왜냐하면 저희 주변에 정말 사람이 없었어요. 시작했을 때는 다들 과격하고 뭔가 많이 달랐거든요. 오프닝만 한 3년 서다가 젊은 친구들 만나면서 씬이 형성되었습니다. 


감독님이 ‘문학동네’에 쓴 글이 ‘화를 냅시다. 하지만 화를 내는 자신을 돌아봅시다.’예요. 저희 <노후 대책 없다> 출연진들 모두 절실하게 반성 중이에요. 저희는 계속 화를 냈어요. 기존의 펑크씬보다 좀 더 날 선 모습을 보이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저희가 다 노동계급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모습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것들, 이런 모든 것들을 가사로 토해내는 작업을 이때까지 해왔어요. 하지만 저희가 그렇게 외쳤던, 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목소리 사이에 여성이 배제되어있던 게 사실이에요. 그걸 이번에 깨닫게 되었고 홍역을 앓는 중이에요. 이걸 계기로 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평등한 하드코어펑크씬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펑크씬은 그런 식으로 변화하는 게 가장 좋은 모습인 것 같아요.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이 계속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만 해요. 



이: 저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펑크문화에서 ‘이런 게 싫고 우린 저렇게 할 수 없다’ 해서 화가 나 등을 돌린 게 우리가 갖고 있는 하드코어펑크 문화거든요. 그런데 그 안에서 멈춰있었던 거죠. 새로운 문제 제기에 대해 눈치만 봤다고 해야 될까요.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생각을 바꿔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될 수는 없는 거죠. 바꿔나가야 해요. 더 예민하게 화를 내고. 



김: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것은 화를 내고 있는 그 자신감뿐만 아니라 본인들이 변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에요. 영화 안에서 ‘그렇게 기성세대가 될 거야’라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어요. 우리가 어차피 보수적으로 변할 거라고 해서 화를 낼 필요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화가 나면 화를 내야 하잖아요. 그 두려움까지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힘을 가지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이야기를 들을수록 제가 이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 가짜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변: 세 분 모두에게 동의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혼날 각오하고 대책 없이 행동하는 무엇을 강제하는 건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고민의 지점도 있어요. 펑크라는 것은 놀랍게도 무브먼트 같아요. 음악의 장르라고 하기엔요. 다른 음악 장르는 음악적 장르지만 펑크는 삶의 태도 혹은 문화의 태도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 폴리스 라인 같은 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반대편의 고민도 함께 해야 되는 것 같아요. 비판과 염려, 함께 고민하면서 계속 경계선에서 넘어질락 말락, 뭐 넘어져도 상관없고. 이런 생각도 들고요. 



관객: 영화에 <파티51>(2013)이 나와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도 자립계열 밴드들이 나오는 영화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때 활동한 밴드의 후일담 같은 영화가 요 몇 년 사이에 쏟아지고 있어요. 다시 생각해보면 한 흐름이 지금 약간 끝나가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혹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활동은 끝날 때 되면 끝내야죠. 계속 질질 끌면 하는 의미도 없는 것 같고. 영화는 뜨겁고 뭔가 열심히 하는 시기를 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출연진이 비슷하지만 각자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생각해요. 저는 자립이 아니라 펑크씬 문화를 담았어요. 가까운 문화라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송: <파티51>과 <노후 대책 없다> 사이에서 한쪽 발씩 걸치고 있는 사람들의 영화가 아마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변: <파티51>은 후일담이 맞을 거예요. 어떤 사회적인 행동과 관련된 행사 운동 후일담이라면 <노후 대책 없다>는 지금 현재진행형인 하드코어펑크씬의 일상을 감독이 일기 쓰듯 가져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는 후일담이라기보다 진행형 일기 같아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아직 개봉 전이지요. 그 영화도 장난 아닙니다. 보다 보면 옆에 국정원 앉아있을 것 같고.(웃음)



송: 이 얘기 나올 때마다 저랑 이동우 감독이랑 정말 달라요. 밴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요. 파인더스팟은 올해 10년차인데 제대로 활동한 게 재작년부터고 스컴레이드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불꽃이 튀어 바로 유럽, 일본에 갔어요 멋있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된다는 생각에 반대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게으를 땐 게으른 대로, 할 말이 생기면 그 말을 하고, 공연이 잘될 때는 열심히 멋있게 하고, 안 될 땐 또 안 되는대로 그냥 그렇게 하는 게 파인더스팟이거든요. 정말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고 영화에도 나와요. 그런데 일본에 가니까 5,60대 아저씨들이 닭머리 세우고 찡 박힌 차림에 이 다 빠진 상태로 펑크를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아서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둘 다 멋있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같이 하는 것도 굉장히 멋있어요. 제가 아까 했던 말은 밴드로서 겉모습이 멋있지 않으면 그만둬야한다는 게 아니라 어렸을 때, 처음 밴드 만들면서 자기가 주장해온 것들을 잃게 되면 밴드를 할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관객: 현실의 무서움을 이기고 계속 음악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사회적으로 화를 내는 사명감이 더 큰지, 아니면 음악에서의 개인의 성취감, 혹은 즐기는 게 더 큰 지 궁금해요.



송: 두 번째가 맞아요. 비장하고 어려운 거 모르고요, 사실 그냥 이렇게 사는 게 즐거워요. 저는 원래 대학원을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못가고 NGO 간사를 두 달하다 그만뒀어요. 주말에 집회 있을 때마다 나가야 하니까 공연을 할 수 없더라고요. 되게 직장이 많이 바뀌었는데 결국 정착한 게 ‘노가다’에요. 음악 하는 삶과 싱크로가 딱 맞아요.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요. 공연 잡히면 일을 뺄 수 있고. 저는 신용불량이고 망한 인생이긴 한데, 그래도 안 망한 거 같아요. 공연하면서 제일 크게 느끼는 행복감은 외국에 자주 나가서 거기 펑크 친구들을 만나는 거예요. 나이가 많든 어리든 펑크라는 씬에 몸담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도와줄 수도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펼쳐져 있어요. 서로 개개인의 존재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저 나라에도 펑크가 있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망한 인생은 아닌 거 같아요.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웃음)



이: 펑크를 안 들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되게 형편없이, 아무 생각 없이 마구 살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펑크를 알게 되면서 우리가 가진 문제들을 하나둘씩 알게 되고, 많이 고치고, 새로운 정의를 찾아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로 되게 좋아요. 아예 사람을 바꿔놨어요. 이런 게 우리가 계속 펑크를 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변: 저는 오늘 인디토크가 웃기고 과격할 거라 예측했는데, 이런 분위기면 어떡하죠?(웃음) 심하게 감동적인 거 아닌가요. 문득 드는 생각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처음 결정한 어떤 순간이 있잖아요. 저도 20대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이 나이로 세상에 딱 나타난 건 아니거든요.(웃음) 영화를 하면 망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굉장히 가난해지고 미래가 없을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어요. 그래도 저는 영화하다 망하는 게 훨씬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고 그 다음부터 그 두려움이 디폴트가 되는 순간, 두려워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가끔 자다가 벌떡벌떡 깨요. 그런데 이게 디폴트가 되면 현실적으로 나를 막는 공포는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무슨 얘기냐면 이들이 어려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고, 이삼십년 뒤라고 해서 창근 씨가 분노하지 않는 세상은 아닐 거니까. 여전히 작은 공간에서 공연을 하고 있겠죠. 



김: 요새 한국 상업영화들 보면서 이런 자극을 많이 못 받은 것 같아요. 대중영화라는 이름으로 구체적인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영화를 만들다 보니 허공에 떠 있는 게 많더라고요. 어떤 의미든 간에 던져놓고 ‘원하는 사람 걸려드시오. 백만이면 좋고, 천만이면 더 좋고’ 식의 막연한 영화를 봐왔죠. 그런데 이 영화는 정확히 누가, 누구를,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대한 태도가 느껴져요. 그게 펑크 문화와도 연결돼있을 것 같아요. 태도고 가치고 의지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그 대사가 너무 좋았어요.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듯이 우리가 마지막도 아닐 거예요.' 어차피 나를 밟고 가면 돼요. 그 밴드를 욕하면서 내가 나타났듯이 누군가가 나를 또 욕하겠지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그 두려움을 벗어날 정도의 용기도 있어보였어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제가 느끼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변: 마지막 질문입니다. 두 분에게 펑크를 하고 싶게 만든 음악이나 밴드가 있나요? 오늘 온 분들에게 선물하듯 소개해주면 좋겠어요. 



이: 중학생 때 펑크를 처음 들었어요. 하드코어가 아니고 스트릿이었어요. ‘럭스’를 들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오랜만에 다시 꺼내 들으니까 가사가 그때와 다른 의미로 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하드코어펑크 처음 들은 건 파인더스팟이었어요. 직설적으로 멋있게 말하는 게 되게 좋았어요. 이후에 상경해서 펑크 공연에 가고, 제가 밴드를 만들면서 찬근이 형과 친해지게 됐죠. 좋아하는 밴드, 보컬이어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만나니까 상상만큼은 아니었지만,(웃음) 여전히 멋있는 밴드고 좋은 친구예요. 



송: 우리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마지막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얘기했던 밴드가 ‘마이너 스렛’이에요. 이동우 감독처럼 럭스 같은 밴드 좋아하다가 하드코어로 처음 듣게 된 밴드에요. 그 밴드는 되게 특수한 펑크 무브먼트를 만들었어요. 70년대 펑크는 되게 염세적이고 약쟁이들이고 성적으로 자유분방한데, 그들은 그게 혁명적이지 않다고 했어요. 모두가 자유분방할 때 자유분방함을 얘기하며 술 마시고 놀자는 게 하나도 혁명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밴드는 술 마시지 마, 담배피우지 마, 원 나잇 스탠드 하지 마 했거든요. 저는 술 담배 다 하지만 그 무브먼트를 얘기하는 방식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음악도 충격적이었고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에요. 



김: 이동우 감독의 다음 영화를 보고 싶어요.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배타적으로 가다가 점점 어떠한 연대의 힘을 느꼈듯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영화가 생각보다 이상한 힘을 낼 때가 있어요. 본인의 목소리를 지키는 것만큼 다른 사람과 같이 영화작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네요.



변: 이 영화 때문에 혹시 이 극장을 처음 와본 분들이 있나요? 이곳은 인디스페이스이고요, 독립영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십시일반으로 운영되는 독립영화전용관입니다. 당연히 어렵죠.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앞으로 자주 와주세요. 이곳에서는 <노후 대책 없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독립영화들, 이렇게 분노의 창을 여러분들의 심장에 꽂는 영화도 있고 해맑게 웃으며 자기 귀엽다고 까부는 영화도 있어요. 또 되게 아프지만 사랑스러운 영화도 있어요. 찾기가 어렵죠. 여기까지 오는 것도 귀찮잖아요. 하지만 와주면 좋겠어요.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이 극장에 와서 바로 지금, 2017년 한국이 어떤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는지 관심 가져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영화가 얼마나 2017년을 상징하는 영화가 될 수 있는지, 주위에 많이 추천해서 보다 많은 관객들이, 이 두 분과 이 영화에 나오는 젊은 펑크씬에 있는 이 친구들이 좌충우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조리에 분노하고 아나키적인 저항의 문화를 가진 펑크씬의 밴드들,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고 독립영화를 만들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지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광화문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 그들의 분노는 나약한 자기 자신과 힘없는 타인이 아닌, 정당하게 분노할 대상을 향해 있다.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외침에도 귀 기울이는 것. 분노의 대상을 분명히 인지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는 것. 때로는 약해지고 부조리한 세상만큼이나 뻔해지는 자신에 대해 자각하고 경계하는 것. 나와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러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 두렵지만 변화할 것을 자신하는 것. 그렇게 한다면 노후 대책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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