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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아버지와 '다훈이들'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난잎으로 칼을 얻다> 대담 기록

by indiespace_은 2017. 5. 31.


아버지와 '다훈이들'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난잎으로 칼을 얻다>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5 20일(토)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임경희 감독,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

진행 강유가람 감독 (<이태원>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아버지의 오랜 역사를 담은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아버지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시력이 점점 떨어져가 내가 끝마칠 수 없을 것 같은 이 책을 네가 완성해 줄 수 있겠냐’고 하면서. 처음에는 단순히 학자로서 아버지의 부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녀는 단순히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마주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상영 후 강유가람 감독의 진행으로 <난잎으로 칼을 얻다>의 임경희 감독과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김영옥 대표와 함께 대담을 이어갔다.



<난잎으로 칼을 얻다> 발제문: 난잎과 칼의 변증법적 동행을 느끼고 사유하다  http://indiespace.kr/3435






강유가람 감독(이하 강유가람):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강유가람입니다. 한 영화를 깊이 있게 읽고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이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임경희 감독과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 김영옥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김영옥 선생님은 여성학자이자 최근에는 나이듦에 대한 연구도 같이 하고 있어요. 임경희 감독님은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첫 장편이죠? 어떻게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나요?



임경희 감독(이하 임경희): 여기 나오는 주인공 ‘정다훈’은 저의 20년 된 친구에요. 그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교수이죠. 사실 교수가 살아가는 이유는 읽거나 쓰는 게 거의 전부인데 눈이 안 보이게 되면 큰 제약이 생기잖아요. 눈이 멀어감으로 인해 삶이 변해가는 모습에 대해서 딸로서 마음 아파하는 것이 공감이 됐어요. 또 저와 친구가 만나면 늘 이야기했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항상 싸우는 거지?’ 의문이 있었어요. 문제들의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시작된 것 같아요. 역사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저희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평생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큰 벽을 마주하는 느낌이었어요. 비단 저희 아버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기성세대 전반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한 벽을 넘어 이야기하고 싶어서 대화의 장을 열어보고자 영화를 찍었습니다.



강유가람: 세대 간 대화의 장을 열고 싶었던 감독님의 열망이 영화에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김영옥 선생님,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김영옥 대표(이하 김영옥): 굉장히 재미있게 봤어요. 재미있다는 것이 단순히 시각적, 내러티브적인 이유가 아니에요. 새로운 여성감독이 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여성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왔는데 3,4년 전 봤던 것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이를 악물고 싸우려고 하는 여성주의 영화와는 다르게 유동적으로, 자신감 있게, 휘둘리지 않을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모습을 보여줘서 기분이 좋았고 향후 어떤 작품을 만들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영화에서 부녀 관계를 빼놓고 말할 수가 없는데 사실 부녀 관계는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아요. 특히 자의식과 역사의식이 강한 딸일수록 분열의 정도가 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딸이 그 손을 잡았다고 볼 수 있죠. 처음엔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만 보다가 두 번째 볼 때에는 매우 정동적으로 봤습니다. 부녀간의 모습이 매우 다정하게 다가왔고 32년 동안 부녀가 함께 살아온 시간들에서 농익은 단어들이 튀어나와 어떤 단어 하나도 놓칠 수 없었어요. 


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성인이 된 딸로서 ‘병약해진’ 아버지와 대화를 할 시간이 없었어요. 얼핏 보면 멘토인 아버지가 질문하고 멘티인 딸이 어떻게든 정답을 말해야하는 것처럼 읽히는 장면이 있지만 사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 아버지가 딸에게 해석권을 넘겨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제는 그러한 정세를 네가 읽어라.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읽어왔는데, 너와 대화하니까 내가 매우 제한적으로 생각해 왔구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아버지가 딸에게 자신의 노력과 인생을 인정 해달라 요구하는 것으로 읽혀서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딸 또한 아버지한테 공격적으로 다가가지 않죠. 아무래도 그래서 더 이 영화가 소중하지 않나 싶어요.


이 영화에 나오는 아버지는 쉽게 동일시가 가능해지는 분입니다. 평생 신념을 누르지 않은 분이죠. 딸에게 자신의 것들을 어떻게든 전승해주고 싶어 하는 가장이자 여행자이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핵심은 이야기꾼인 것 같아요. 본인이 추앙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 마치 눈앞에 있는 듯이 그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오래오래 곁에 머무는 역사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임경희: 이제 아버님의 한 쪽 눈은 거의 안 보이고, 은퇴 후 집에서 지내고 계세요. 중국 공산주의 행정학을 굉장히 많이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공을 가르치지 못해 제자 없이 메아리 같은 말씀을 해왔죠. 그러니까 딸이 유일한 제자인 거예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해주시니 오히려 제가 위로 받는 느낌이에요. 





강유가람: 영화를 보면서 본인의 대화 욕구를 투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은 제3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에 녹아들어있어서 정말 좋았고 이후 작업 또한 기대가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영화의 주인공 정다훈 씨가 와 계신데요,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정다훈: 아버지는 조금 무료하게 지내긴 하지만 나름 인생 3막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의 퇴임과 제 강의 시작이 겹쳐서 마치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답이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끊임없이 고민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를 편집할 때 초점을 역사에 더 두었는지, 부녀 관계에 두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부녀의 대화가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편집하지 않고 길게 남겨둔 이유가 있나요?



임경희: 두 가지를 모두 잘 섞어서 녹여냈다면 좋았을 텐데.(웃음) 역사 안에서 부녀가 캐치해내는 것을 따라가길 원했어요. 이회영은 아버지가 가장 이입한 인물이고 윤동주와 안중근은 딸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대화가 지루할 수 있는데 길게 담은 건 학자들이 이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확인을 하고 노력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예요.



강유가람: ‘평화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던데, 무엇인가요?



임경희: 20년 지기 모임이 있어요. ‘블랙홀’이라는 중학생 때부터 이어져온 농구모임인데 모이면 항상 이러한 화제를 두고 이야기를 해요. 저는 이념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반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평화 여행 루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끝이 북한, 우리나라로 끝나면 그것이 아시아의 평화 루트가 되지 않을까 거대한 꿈을 꿨어요. 항상 우리나라에서는 국내의 사건만이 부각되는데 다른 나라에도 같은 사건들이 되게 많거든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으니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영옥: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아시아를 생각할 때 한·중·일만 생각하고 그 외 국가들은 거칠게 이야기해서 진열된 민족성처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제 세대는 서구 제1세계 백인들의 언어를 경유해서 아시아와 만나왔기 때문에 아시아 역사들을 면대면으로 만나는 것이 어려웠어요. 아시아 각 나라의 역사성과 민족성이 다른데 지리학적으로 같다는 이유로 하나로 여겨지고 또 다른 언어를 빌려와야만 한다는 점이 어려워요. 아시아 사람들이 만났을 때 각각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제3의 언어를 이용하는 것의 정치적 의미를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요.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고, 물론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조심해야하는 문제죠.





관객: 아버지에게 자신감 있게 대화를 청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띕니다. 이런 모습이 부녀만의 특성이지 않나 생각도 드는데 이 관계를 어떻게 확장시켜 바라보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임경희: 사실 이 친구는 과거에 굉장히 저항적으로 살았어요. 아버지와 굉장히 많이 부딪혔어요. 아버지가 공부를 하라고 해서 하긴 했지만 이 친구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 부단히 노력했던 거예요. 저는 이 이러한 고집이 아버지가 이 친구를 돕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이 친구의 의견이 아버지의 의견보다 더 많이 언급되었고 아버지를 납득시키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종국에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학자가 이 일을 부탁했을지라도 기꺼이 완성했을 거라 이야기하더라고요. 단순히 부녀 관계가 아니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간의 화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과연 아버지에게는 글을 완성할 사람이 딸밖에 없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아버지는 딸에게 인정받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이 두 분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경희: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 두 분을 보면서 제가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본 것 같아요.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편에서 굳건히 입장을 지켜주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대 간 화해를 하자는 것은 의견을 같게 맞추자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보자는 거죠. 



김영옥: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아버지가 화가 나서 본인이 딸에게 가르치려고 한 책을 버리려고 했다는 부분이에요. 딸이 좋아하는 책을 버린 게 아니라 본인이 가르치려했던 책을 물에 젖게 내버려둔 거잖아요. 딸이 어렸을 때부터 진지하게 계승의 관계를 가지려고 했던 모습을 볼 수 있죠. 세대 간의 갈등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들이 살아온 환경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자랐던 그 과정을 부인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무조건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과정을 겪어서 저만큼 이르게 되었나 알아보는 게 중요해요. 세대 간 갈등은 필연적이죠. 그 갈등을 풀려는 노력도 필연적이어야 해요. 동상이몽이지만 한배에 있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 될 것 같네요.



강유가람: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릴게요.



김영옥: 말씀드렸다시피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푸는 방법과 의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임경희: 영화 마지막에 부녀가 훈춘이라는 지역에 가요. 그곳에서 아버지가 ‘이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밖에 없잖아’라는 이야기를 해요. 단지 딸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에게 하는 말로 들렸어요. 이제 우리 차례가 된 것이죠. 제목인 ‘난잎으로 칼을 얻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난잎'은 지식이나 생각을 말해요. 그대로 있으면 그냥 생각과 지식에 불과해요. '칼'과 연장도 그것만 있다면 아무렇게나 휘두를 뿐이죠. 이 두 가지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해보고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노력해보자는 거예요. 늦은 시간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단지 한 아버지와 딸의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와 새롭게 시대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딸에게 무엇인가를 전해 주고 싶어 한다.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쩌면 그녀의 생각보다 간절하게 아버지는 자신의 것을 물려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이제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딸의 도약을 바라본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갈 모든 ‘다훈’이들에게 난잎으로 칼을 얻는 사람들의 세상이 되기를 당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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