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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컴, 투게더>: [주의] 외면하지 말 것!

by indiespace_은 2017. 5. 20.



 <컴, 투게더한줄 관람평

송희원 | 흩어져 악몽을 꾸던 이들, 함께 모여 꿈을 꾸다

이현재 | 간혹 서늘한, 갑자기 함께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차가운 위로

박영농 | 힘들다

이지윤 | ‘헬조선’에서 해피엔딩을 꿈꾸다

최지원 | 폭력이 파도치는 삶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위안

김은정 | "조금, 조금만 더" 어쩌면 거짓말일지 모를



 <컴, 투게더> 리뷰: [주의] 외면하지 말 것!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왕이면 ‘너’답게 살아봐!

두 번째 입시에도 실패한 ‘한나’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는 ‘유경’을 동경하며 ‘너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도 결코 녹록치 않음을 밝히며 유경은 한나에게 덧붙인다. “이왕이면 너답게 살아봐”. 한나는 감동한다.


아프리카가 날 기다린다!

한나는 집을 나서는 유경에게 두렵지 않느냐고 묻는다. 사실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아프리카가 자신을 기다린다며 택시에 짐을 싣는 유경. 먼 길을 떠나는 자신을 곁에서 배웅하는 한나를 바라보다 유경은 입을 맞춘다. 한나는 결심한다.



<컴, 투게더>는 한 가정 속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한 ‘범구’는 좌절감에 시달리던 중 같은 아파트 주민인 ‘호준’과 우연히 술자리를 함께하게 된다. 범구는 곧 호준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임을 깨닫고 우정을 나누지만 미묘한 여운을 남기던 호준은 이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범구는 비애를 느끼며 안마방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서 신세를 진다. ‘미영’은 카드 회사에서 일한다. 줄곧 실적이 높아 사내 평판이 좋았지만 경쟁자 ‘은정’의 약진에 영업 실적 2위로 전락하고 만다. 그 내막에 은정과 영업소장의 내연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미영은 퇴근 후 그들이 탄 차량을 뒤쫓는다. 미행을 따돌리려다 은정과 소장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미영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마침내 미영은 다시 영업 실적 1위로 올라서게 되지만 그는 사직을 결심한다. 재수생 한나는 이번에도 명문대 입시에 아깝게 실패한다. 예비 번호를 받고 추가 합격을 기다리지만 입학을 포기하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한나는 합격자인 양 거짓말을 하고 다른 합격자 ‘아영’과의 만남을 갖는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한나와 아영은 남자들과 합석하게 되고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영은 나쁜 꿍꿍이가 있던 남자에게 붙잡혀 갈 위기에 처한다. 외면하려던 한나는 다시 찾아가 아영을 구하지만 끝내 바래다주지는 않는다.



각자가 처한 감당하기 힘든 현실 탓에 끝임 없이 삐걱대던 이 가정은 한바탕 사건을 겪고 나서야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범구는 미영에게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는 좀 쉬라며 다독이고 미영은 그런 범구에게 이번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결국 추가 합격이 된 한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겠노라 선언한다. 명문대 진학을 다그치던 범구와 미영은 그런 한나의 결심을 응원하기에 이른다. 정리해고와 실적경쟁, 입시경쟁의 현실에서 그들이 취하는 입장은 유경의 조언처럼 ‘나답게 살기’로 일단락 지어지는 듯하다. 극을 이끌어가는 세 인물의 갈등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들은 문제의식을 분명히 느끼고 있지만 부조리한 현실구조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비교 가능한 다른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구조가 아닌 타인을 향한 시선은 현실에 대한 주체적 개입을 불가능하게 한다. 영화는 부조리한 현실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 내재된 갈등을 사적 복수의 차원에서만 다룬다. 또한 영화 속 인물들은 ‘나답기 살기’의 전략으로 당면한 사회를 외면 혹은 도피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 한들 이전의 부조리를 다시 마주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때도 그들은 ‘나답게 살기’의 전략으로 일관할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 <졸업>(마이크 니콜스, 1967)의 마지막과 대비된다. 범구, 미영, 한나는 가족의 정을 다지며 오랜만에 나선 나들이에서 소나기를 피하려다 진흙탕에 구른다. 그마저도 즐겁게 웃어넘기고, 한데 엉켜 누워버린 이들을 카메라는 버드 아이 뷰로 비춘다. 청년 혹은 미래세대를 대표하는 한나의 미소를 클로즈업하는 마지막 장면을 두고 감독은 인터뷰에서 ‘미래세대에 대한 희망을 담아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작 한나와 같은 세대인 나는 그 장면이 전혀 희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영화 <졸업>의 그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세대인 유경은 영화의 후반부에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런 그를 동경하며 결심을 굳히는 한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나름 세운 계획이 있다며 독립을 선언한다. 한나의 앞날이 아직은 생기 넘치는 세렝게티처럼 설정되어있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것임을 현실의 한나들은 이미 감지하고 있다. 입시경쟁의 과거와는 전혀 상관없는 미래로 향하는 듯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부조리는 그를 실적경쟁(미영)과 정리해고(범구)라는 다음단계로 안내할 뿐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유경의 말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너답게 살아봐!”는 “딴 데 가서 알아봐!”의 다른 표현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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