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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소소대담] 2016.12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

by indiespace_은 2016. 12. 27.

 [2016.12 소소대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 

일시: 2016년 12월 16일(금) @인디스페이스 관객라운지 
참석자: 상효정, 이형주, 최미선, 홍수지, 전세리
('소소대담'은 매달 진행되는 인디즈 정기 모임 중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의 날씨는 어느덧 인디즈 활동도 후반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듯 했다. 이번 만남에서는 삶 그 어딘가의 모습을 포착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 <야근 대신 뜨개질>, <나의 살던 고향은>과 보통의 연애를 그리는 <연애담>, <비치온더비치>, 그리고 실험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혼자>와 <우리 손자 베스트>가 있었다. 우리를 푹 빠지게 한 영화가 있는 반면 조금은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작품들도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는 여섯 편의 영화들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삶 그 어딘가의 다큐멘터리



1. <야근 대신 뜨개질>

리뷰 & 한줄평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이들을 향한 물음표" >> http://indiespace.kr/3188


홍수지: 우선 대화가 있는 기업 문화가 신기했다. 상식적인 일이지만 그런 곳이 많지 않다. 대화가 있어서 고민을 하는 것이 가능한 곳인 것 같다. 


이형주: 이 시대를 그리는 다큐멘터리에서 세월호가 빠질 수 없다는 점이 인상 깊다. 단순히 직원들이 야근을 거부하고 그 대안을 찾아가는 내용인 듯 보이지만, 영화는 개인의 문제도 결국 사회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구조의 중심에 있는 것이 세월호이다. <노후 대책 없다>(2016, 이동우)도 세월호로 귀결되는 지점이 있다. 이 시대에 세월호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비극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총체적인 사회 구조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이다. 영화가 그것을 직시 할 수 있는 용기를 냈다는 점이 좋았다.


상효정: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한 취미활동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처음엔 여행, 뜨개질 이야기가 나오다가 중간부터 노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거기서부터 빠져들었다. 


이형주: 지난번 <걷기왕>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큰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 생각의 연장에서 봤을 때 이 영화는 단순히 누군가의 가치관을 바꾸라는 정도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실제 그 가치관을 바꿨을 때 닥치는 문제를 그려냈다. 그 점이 우리에게 더 와 닿는 것 같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 아니라 야근 하나 안 하는 것뿐인데, 이렇게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2. <나의 살던 고향은>

161124 인디토크 기록 - 역사를 보고 미래를 긍정할 시간 >> http://indiespace.kr/3212

리뷰 & 한줄평 "시간을 초월한 숨결을 따라" >> http://indiespace.kr/3210


상효정: 영화 속에 나오는 풍경이 참 좋았다. 


이형주: 교육적인 목적의 영상과 개인의 감상 사이에서 헷갈리게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고구려의 유적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감탄하는 도올 선생에게 집중한 부분이 그렇다. 카메라가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풍경이 잘 보이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는 도올 선생의 감정과 표정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미선: 수학여행 같다고 한줄평을 썼다. 다들 수학여행을 가봐서 알겠지만, 앞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설명을 해도 정작 놀러 온 것이 더 중요한 우리들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영화를 만든 취지는 참 좋다.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임은 분명하지만 직접적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를 꼭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선 안된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홍수지: 영화 속 도올 선생의 생각이 일반 관객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고 보면 보통의 연애 이야기



3. <연애담>

161120 인디토크 기록 - 누구나 다 하는, 가장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연애담’ >> http://indiespace.kr/3192

리뷰 & 한줄평 "<연애담>이 '보통의 연애'인 이유" >> http://indiespace.kr/3189


전세리: <연애담>과 같은 퀴어물에서는 남녀 성 역할의 구분이 덜하고 경제적 논리가 더해진다. 성별에 구분을 두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구조적 문제가 그만큼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일자리, 경제적으로 궁핍한 젊은이들, 취업과 같은 사회의 문제들이 성 역할의 구분 없이 동등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최미선: 다른 퀴어물보다 퀴어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평범한 연애를 다룬 것 같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시기나 주변에 들키지 않으려는 과정 같은 것들이 없었다. 영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니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이형주: <캐롤>(2016, 토드 헤인즈)이 일종의 시대극처럼 특수한 상황 속인 것에 반해 <연애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낸 점이 좋았다. 


상효정: 감독님이 대단한 것 같다. 감정선을 표현하면서 윤주의 얼굴을 포착하는 것이 놀라웠다. 대사나 배우들의 표정을 담는 섬세한 연출, 윤주와 지수의 밀고 당김을 표현하는 서로의 공간이 인상깊었다. 


이형주: 공간들이 인상깊다. 같은 공간임에도 분위기가 달라지고, 초반과 후반의 벽 색깔이 같은 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홍수지: 영화 속 인물들이 여성이나 성소수자로 대상화가 안 된 느낌이라 좋았다. 영화는 <우리들>(2016, 윤가은)처럼 그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근래 봤던 퀴어 영화 중에 가장 좋았다. 그리고 이상희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깊었다. 감정을 많이 쓰지 않는데도 그 속에서 몰입하는 연기가 대단했다.





4. <비치온더비치>

161212 인디토크 기록 -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가영 >> http://indiespace.kr/3228

리뷰 & 한줄평 "주체이고 싶은 그녀의 도발" >> http://indiespace.kr/3219


최미선: 재미있는 영화이다. 흑백이고 인물도 둘 뿐이고 특별한 사건 없이 대사로만 진행이 되는 영화임에도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대사가 위트 있다.


홍수지: 남자들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볼 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너무 웃으면서 재미있게 봤다.


전세리: 어떻게 그렇게 긴 대사를 소화했는지. 대단하다. 완벽한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상효정: ‘리틀 홍상수’라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느낌이다. 정가영 감독만의 느낌이 있는 영화였다. 신선하고 좋았다.


최미선: 감독의 전작들을 찾아봤다. 술, 키스 등 그 중심에 ‘여자’라는 키워드가 반복된다.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솔직한 여성을 계속해서 만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감독 자체가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형주: 인디토크를 봤는데 생각보다 영화에 명확한 의도가 있지는 않더라. 그런 지점들이 영화에서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메시지를 생각하고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감독의 생각들을 직관적으로 만든 게 아닐까. 머리 속으로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연출한 것 같다.







놀라운 그러나 쉽지 않은 실험적 영화들



5. <혼자>

161127 인디토크 기록 - 의식과 무의식의 출구 없는 미로 >> http://indiespace.kr/3214

리뷰 & 한줄평 "분열된 자아의 실험적 기호들" >> http://indiespace.kr/3205


최미선: 놀라웠다. 혼자 봤는데, 좀 무섭더라. 오프닝이 인상 깊었다. 남자가 피를 닦고 있고 살인을 저지른 것 같은데, 죄책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옷에 뭍은 피에 짜증만 느낀다. 그런 남자의 머리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처음에는 스릴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꿈이 반복되고 꿈에서 깨어나도 현실이 아니다. 이런 한 남자의 혼란스러운 정신 세계를 나열하는 것을 연출로 담아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홍수지: 롱테이크 방식과 계속해서 나오는 골목길이 인상깊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분열하는 캐릭터가 좋았다. 


상효정: 우리의 인생 자체는 하나의 롱테이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인 시도들이 굉장히 좋았다. 이 영화도 공간에 대한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재개발되는 달동네라는 공간적 의미가 인상 깊었다. 그 공간이 남자의 뇌라는 설정도 놀랍다. 주인공에게 처음엔 이입이 안 됐었는데 공간과 연결 지어 생각을 해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 자신의 나쁜 기억 같은 재개발 구역을 없애버리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의 여자친구는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해야 되지 않냐고 말한다. 그 둘 사이의 갈등이 너무나 잘 표현이 됐다.


이형주: 이 영화는 몰입하게 하는 힘이 대단하다. 힘들게 구현한 롱테이크 장면이었다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처음엔 스릴러로 몰아치다가 내면세계로의 전환이 되는데 지루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긴장이 유지된다. 영화 자체가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좋았다.


최미선: 동감한다. 몰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물과 관객이 가지는 정보의 양이 동일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한 쪽이 많이 알면 다른 한 쪽에 대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과 인물이 동일선상에서 출발하여 꿈이 반복될수록 조금씩 정보를 얻어간다. 같이 알아가면서 극의 몰입도가 올라가는 것 같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종종 영화에서 정해진 답을 주는 듯한 장면들이 있었다. 조금씩 정보를 알아가던 흐름에 반하는 느낌이었다.




6. <우리 손자 베스트>

리뷰 & 한줄평 "우리 손자 팩트(fact). 윤리를 고민하는 시간" >> http://indiespace.kr/3232


이형주: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불편했다. 명확한 스탠스 없이 재현의 반복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보통 사회적으로 비판한다던가 동정한다거나 하는 주제가 있는데, 이 영화속에서는 그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재현되는 표상들이 정말로 그들을 꿰뚫고 있는 걸까. 


상효정: 초반엔 그런 생각이었는데, 다 보고 나니 괜찮았다. ‘일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모두가 그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규정해 우리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우리 안에 있는 불편함을 통해서 사회의 문제점을 그 자체로 볼 수 있게 한다. 두 인물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정의 시선이 들려고 할 때마다 용납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 때문에 섣불리 동조를 할 수가 없게 만든다. 


홍수지: 피로했다. 그들이 가지는 일상적인 부분들이 많이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특정 집단으로 규정짓고 있다. 그들 속에는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사회에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에 영화는 굉장히 사실적이다. 


전세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명확한 스탠스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인물들이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나열되는데, 그것에 질문을 던지고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윤리가 부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입장이 담기지 않는 점과 여성에 대한 서사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최미선: 동감한다. 다들 불편함을 가지고 본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대화는 깊이가 있다. 네번째 만남인 오늘도 역시 한층 풍성해진 이야기와 날카로운 시선들이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된 영화 이야기와 웃음이 인디스페이스 관객라운지를 가득 채운 시간이었다. 한 해를 끝맺음 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독립영화와 독립영화가 살아있는 이 공간을 위해 하고싶은 것들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했다. 앞으로의 얼마 남지 않은 인디즈 활동에 벌써부터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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