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SIDOF 발견과 주목 <스페셜 애니>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1월 22일(화) 오후 8 상영 후

참석: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세리 님의 글입니다.


우울한 시기를 보내던 감독이 에이즈를 앓는 애니를 만나 그리는 에세이. 감독은 삶과 화해하는 애니를 보며 자신을 반추한다. 영화 상영 후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의 해설이 있었다.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함께 감상한 <스페셜 애니>에 대한 제 주관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를 다들 보셨으니 나열하는 식으로 해석하지는 않겠습니다. <스페셜 애니>는 고양이 ‘스페셜’과 ‘애니 올랜디’ 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애니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감독님의 의도적인 해석이 덧붙여진 것일 수 있겠네요. 김현경 감독은 맨 끝부분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신촌에 있는 모 대학에서 교직에 몸담았고요, 지금은 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페셜 애니>는 관찰자적인 시선을 통해 유년시절부터 성적, 물리적, 정신적 학대를 받아온 에이즈 환자이자 C형 간염 환자인 애니 올랜디 씨의 전기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애니와의 만남에서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사적인 다큐멘터리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고,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되며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비평적으로 접근하면 사회비판적인 다큐멘터리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비판이라는 워딩이 조금 거슬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애니는 인생의 우여곡절이 참 많은 사람이지요. 은행을 털어 교도소 복역을 했고 알코올, 마약 중독에 에이즈 환자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다루고 소외된 이와 교류하고 연대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이를 세상에 알리고 환기시키고자 한 다분히 사회적인 성격을 지닌 다큐멘터리입니다. 


두 번째, 사적인 다큐멘터리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셀프 카메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은 것입니다. 내가 가진 카메라로 내 주변을 촬영하는 것이죠. 이때 '사적'이라고 하는 것은 연출자가 화면에 얼마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하느냐에 따라 정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김현경 감독이 직접 나레이션을 맡았고 애니와 대화를 주도하고 있어요. 후반부로 가면 고백조의 이야기도 하죠. 이러한 류의 이야기를 보통 사적 다큐멘터리로 정의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적인 다큐멘터리에 반대되는 공적인 다큐멘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개인적인 부분을 조금 더 강조하게 된 것은 서구의 경우 1980년대 들어 굉장히 두드러집니다. 이를 사적 다큐멘터리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가 강조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구는 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다문화주의를 강조하고 소외된 여성들, 장애인, 약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중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특히 강세였습니다. 영화사적으로 사적 다큐멘터리가 영화사 내에서 여성주의 운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 다큐멘터리 또한 사적인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일부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작품의 내용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요한 두 사람이 나옵니다. 애니 올랜디 씨와 그를 만났던 감독. 스페셜이라는 고양이까지 더하면 등장인물은 셋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이 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묘하게 우연히 만나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수식어를 붙이자면 우정의 공동체에 관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힘 때문인가', 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화하면,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인데요, 답은 물론 영화 속에 있죠. 감독이 교회를 갔다가 애니의 간증을 듣고 그를 찾아가 만나게 되었다는 과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데, 시작 부분부터 조금 복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에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장면들이 있는데, 제일 끝부분에 지하철역이 나옵니다. 앞부분에는 지하철역 그림자가 나오고요. 이 장면은 영화에서 몇 번 반복됩니다. 이는 시간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되고요. 모든 사람의 패턴이 같을 수는 없지만, 대중적으로 이용하는 것들은 그 주기와 리듬이 있습니다. 사실상 자연적인 시간에 대한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의 반복에 대해 말하는 것인데, 지하철역을 등장시킨 것은 도시의 반복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의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등장하지요. 준비하려고 했던 작품이 엎어지고 애인이 전 여자친구에게 떠나는 등 감독은 한 번의 실패와 한 번의 좌절을 겪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부상을 겪어 침대에 누워 지내기도 합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우울한 시간을 보낼 무렵, 교회를 방문했다가 애니의 간증을 듣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초반 장면과 내레이션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것을 글로 쓴다면 '우연.'라는 워딩을 더하고 싶습니다. 저는 애니와 김현경 감독의 만남은 필연일 수도 있으나 우연이라는 표현을 넣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지나칠 수 있었는데도 그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의 마음에 닿은 것이니까요. 스쳐 지나가는 많은 순간들 가운데 마주친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이 영화가 시작 되었고 마침 감독이 인생의 좌절과 실패를 겪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벤야민의 친구이자 아도르노의 스승인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라는 독일 영화학자가 ‘영화 이론’이라는 책에서 '길거리라고 하는 것은 우연적이고, 불확정적이고 오만한 의미들이 산재되어 있는 곳인데, 길거리라는 곳은 영화화하기에 최적화 된 장소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는 제가 봤던 책을 요약한 것이고요, 이 작품은 영화의 매체적인 분석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연한 만남에 의해 시작된 것이 다큐멘터리적, 영화적 지점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연의 연쇄에 의해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애니로 집중됩니다. 제가 궁금했었던 것은 애니는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저렇게 자연스럽고 거부감이 없을까였습니다. 다큐멘터리도 엄밀히 말하면 감독의 디렉션 하에 진행되죠. 인터뷰이는 자신의 행동을 고민하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헷갈리게 됩니다.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시를 받으면 전혀 다른 내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고요. 


첫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애니가 카메라에 크게 거부감을 갖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환자의 모습과 다르게 아주 쾌활하고 활달합니다. 또한 주변의 이웃과 동료, 친구들에게 굉장히 관대하고 너그러우며 사랑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애니와의 첫 대면에서도 보았듯 자신에게 찾아온 낯선 동양인, 타인을 큰 거리낌 없이 환대할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애니의 기질과 함께 김현경 감독의 위치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감독의 심리적인 상황과 기질이 있으며 그것이 애니의 우여곡절과 복잡한 인생사와 맞물려 시너지가 발휘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관객은 둘 사이의 은밀한 대화를 보고 있는 것이고 다른 이들이 개입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 애니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애니가 스스로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새 모이를 주기 위해 애니가 외출하는 장면이 있지요. 그곳에서 만난 친구가 무슨 방송을 찍느냐고 묻자 애니는 독립영화라고 대답하죠. 친구는 독립영화냐며 놀라고요. 그 지역의 소외된 몇몇 이들에게 카메라는 대부분 TV방송으로 통합니다. 그리고 영화 중간에 애니의 과거 영상이 삽입됩니다. 애니는 재단이나 구호 프로그램의 요청에 의해 방송에 출연하지요. 매스미디어를 자신을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홍보와 선전에 동원되기도 하죠. 따라서 그 주변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TV방송이라고 여기고 애니가 그러한 시스템에 조금은 익숙해져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몇 가지 요인들에 의해 의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애니는 액팅이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위 ‘영화적’이라고 하는 것은 내러티브가 잘 전달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애니는 스스로의 삶을 이야기화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카메라가 아니더라도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사, 애니의 인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 애니의 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참고 자료들이 삽입되는데, 애니의 사진이나 방송 영상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짧게 애니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회고하는 형식 또한 등장합니다. 


감독이 반복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이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윤리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감독의 것이기도 하면서 애니의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영화에서 비슷한 질문이 두 번 반복 됩니다. 그 중 하나는 함께 애니의 과거 사진을 보는 장면입니다. "몇 살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묻자 애니는 “10살”이라고 대답합니다. 10살 이후부터 나쁜 짓을 많이 했고 예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다고요.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물었을 때 돌아오는 답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였습니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인생에 회의가 많다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는 이야기는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애니의 위치는 교인이었죠. 애니가 실천하고자 했던 것은 사랑과 용서가 아닐까,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를 감독의 첫 질문과 연결했을 때, 애니는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와도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이 영화가 윤리적이라고 말씀 드린 이유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인간적이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니는 그렇지 않은 삶을 다 살아본 사람입니다. 애니는 자신을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고 타인에 대한 용서에 이르기도 하죠. 애니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화도 내고 우울해하지만, 그것을 결국 사랑과 용서로 감싸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을 모두 끌어안으려는 것이 애니에게 드러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질문이 감독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은, 과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감독이 실패를 한 번 겪고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감독 또한 이것이 영화가 될까, 라는 의심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획 단계부터 철저히 준비하는 다큐멘터리도 있지만, 찍어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도 꽤 많습니다. 찍어가며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에이즈, C형 간염, 전과를 가진 여자를 만났을 텐데,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내고 촬영해야 했을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고요. 또한 이것이 올바른 것일지에 대한 윤리적인 고민 또한 컸을 것입니다. 


감독은 애니의 고통을 일부러 철저히 찍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애니가 아픈 날 촬영을 하지 않고 길거리를 배회하지요. 그리고 욕심이 조금 지나쳐서 실수를 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애니가 친구 면회를 간 장면이 되겠죠. 그래서 그 장면이 저로서는 어색하고 튀었던 것 같고 일관성을 조금 어그러뜨리더라도 사실상 아주 솔직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민의 순간들이 그런 부분을 통해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연출자인 나 김현경의 영화적인 고민이나 인간으로서의 윤리적인 고민을 이 영화에 두루 담아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개인적으로 좋았던 이유는 다큐멘터리로서 담아야 할 윤리적인 순간들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윤리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자기 반성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사적 다큐멘터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스페셜 애니>는 인간의 양가적인 모습을 담아낸 솔직하고 윤리적인 다큐멘터리이다. 감독과 애니가 '우연히' 만나 이룬 일상은 각자의 여정 덕분이다. 길이 끝난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되듯 그들은 <스페셜 애니>라는 길목에 이르러 지난 여정을 되살리고 새 우정을 이야기한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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