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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Review] <철원기행> :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

by indiespace_은 2016. 4. 28.




 <철원기행줄 관람평

김은혜 | 쌓인 눈 속에 비친 가족이라는 잔상

박정하 | 눈 때문에, 혹은 눈 덕분에

김민형 | 위기는 기회와 함께 찾아온다

위정연 |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

김수영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가족 사람 속은 모른다




 <철원기행> 리뷰: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


*관객기자단 [인디즈] 위정연 님의 글입니다.


철원 공업고등학교에서 아버지의 퇴임식이 있는 날, 가족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다. 가족사진을 찍는데 며느리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표정이 썩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불행의 전조였을까, 어색과 침묵의 분위기가 감도는 저녁식사 도중 아버지는 돌연 폭탄선언을 한다. “이혼하기로 했다.” 영화는 결국 그 한 마디의 대사가 만들어낸 파장에 관한 이야기다. 마치 합의를 거친 뒤 말한 듯한 뉘앙스의 ‘이혼하기로 했다’는 아버지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방적인 이혼 선언.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퍼붓는 폭설 때문에 가족들은 아버지의 집에 꼼짝없이 묶이게 된다. 그렇게 2박 3일간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영화는 한 명의 시점을 따라간다기보다 5명 모두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어머니와 애처롭게 말리다 지쳐가는 며느리. 시종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버지와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큰아들, 그리고 철딱서니 없는 둘째아들. 이들은 사사건건 본인의 입장만 내세우며 상대방과 갈등을 빚어낸다. 영화의 종지부까지도 아버지의 이혼 이유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이유를 알아내려는 움직임보다 사라져가는 가족 간 소통의 문제를 담아낸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어서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진다.



타인과 관계를 쌓는 일은 쉽다. 몇 번의 노력과 시간이 있으면 누구든 친해지는 것은 가능하다. 중요한건 그 관계를 ‘지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어느 정도 친한 사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부터 타인의 친절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또한 타인에게 본인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 관계가 매일 마주치는 가족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행동 하나하나에 ‘당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이 늘어나게 되면 그 관계는 금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애초에 모든 관계에서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본인의 나태함을 가리기 위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가족도 타인의 위치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버지니까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되고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방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소통을 나눈 적은 없다. 그러다보니 정작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자신의 아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어머니가 되어버렸고, 아버지가 왜 그토록 이혼을 하려는지 이유조차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러 번 등장하는 식사 장면에서는 의미 없는 얄팍한 대화들만 오고간다. 아무리 치우고 치워도 결국 또 쌓이고 마는 눈처럼, 가족 관계도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감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버린 가족은 괜히 애꿎은 눈만 서로에게 던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는다. 기나긴 2박 3일 동안 가족은 서로 질리도록 엉겨 붙지만 결국엔 조금씩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 마치 한바탕의 싸움이 끝난 뒤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는 사이처럼. 단지 그런 이해가 조금이라도 일찍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애초에 아버지의 파격적인 이혼 선언을 최소한 막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동안 사건이 터질 때까지 방관하고 있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지 않았나. 제때 준비하지 않으면, 눈은 금세 꽝꽝 얼어붙고 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곁에 있는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자. 별거 아닐지라도 그 사소한 행동 하나가 결국 많은 것을 바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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