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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추운 겨울을 찾아온 여름 이야기 <한여름의 판타지아>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6. 2. 26.

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추운 겨울을 찾아온 여름 이야기  <한여름의 판타지아>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2월 20일(토) 오후 8 상영 후

참석: 장건재 감독

진행: 김현수 씨네21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채소라 님의 글입니다.


늦겨울의 찬바람이 매서웠던 지난 20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2015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상영됐다. 영화 상영 후 인디토크의 진행을 맡은 씨네21의 김현수 기자는 객석 뒤쪽에 앉아 있는 관객들을 앞쪽으로 모은 후 본격적으로 인디토크를 시작했다. 



김현수 기자(이하 김): 오랜만에 극장에서 관객들하고 만나는 자리를 갖게 됐는데, 그동안 들었던 소회와 간단한 인사 해주세요.

장건재 감독(이하 장):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작년 6월에 개봉을 했었고 당시 메르스가 돌던 때라 다른 영화들은 개봉을 미루고 그랬어요. 어부지리로 개봉관 확보에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영화는 보시다시피 이런 영화고, 또 여름 시즌의 호쾌한 액션 블록버스터 같은 건 아니라서 여러 걱정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변이 생겼죠. 관객들이 이 영화에 호응을 해주셨어요. 외롭지 않게 잘 지냈어요.
 
김: 영화가 몇 개 나라에서 선보였는지 기억하세요?

장: 세어 보지는 않았는데요, 스무 개 도시에서 상영한 것 같아요.
 
김: 해외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해외의 관객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장: 주로 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어요. 저는 한국감독이잖아요, 어떻게 일본에서 촬영하게 됐는지 궁금해 하셨어요. 프로듀서가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이시거든요. 어떻게 같이 일하게 됐는지 영화 제작 전반에 관한 질문이 많았어요. 그 감독님을 아시는 분들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질문했어요.
 
김: 처음 보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독특했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간단히 알려주세요.

장: 이게 두 파트로 나뉜 영화잖아요. 1부는 제 이야기예요. 제가 일본 가서 ‘태훈’(임형국 분)처럼 사람들 인터뷰하고 조사하고 다녔거든요. 왜냐하면 이 프로젝트가 일본에서 기획이 돼서 제가 참여하는 영화였기 때문이에요. 도시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서 돌아다녔죠. 근데 태훈처럼 저도 그 공간이 주는 느낌 같은 것들은 있었는데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입장이라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어요. 원래 일본의 고조라는 곳과 상관없이 만들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불가능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해서 1부의 이야기가 나온 거고, 2부 이야기는 어떻게 하다보니까 이렇게 만들게 됐습니다.(웃음)
 
김:  처음에 고조시에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했을 때 갖고 있던 방향은 1부 정도였던 것인가요?

장: 저것도 거의 저의 취재 과정에서 나온 트리트먼트 같은 거예요.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만들려고 했던 영화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에요.(웃음) 사실 영화 개봉 했을 때는 열심히 얘기하긴 했는데 할 얘기가 많은 영화는 아니에요. 시간이 부족한 영화였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됐어요. 설명 드리긴 좀 그런데, 부족한 시간 안에 못 찍으면 무산되는 프로젝트였어요. 근데 저는 이 영화를 되게 찍고 싶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고, 제가 살고 있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기사 같은 거 찾아보신 분들도 있으실 테지만 2부는 아이템 정도만 가지고 6일 정도 안에 촬영한 영화거든요. 여배우가 와서 혼자 여행한다는 설정으로 막 찍었어요. 엔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찍은 영화였어요. 스텝들도, 저도 사실 몰랐고.(웃음) 현지 일본 스태프들이 대부분이어서 설득하고 신뢰를 얻는 게 필요했던 과정이었습니다.
 
김: 일본 영화인들과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거고 영화를 만드는 방식의 차이도 있을 텐데, 대본도 잘 짜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설득과정을 거쳤는지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장: 저는 시나리오가 있어도 현장에서 열심히 보는 편이 아니고 배우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그래서 첫째 날, 둘째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통역하시는 분이 두 분 정도 계셨는데 배우하고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 것들은 공식적인 통역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 때 일본 스태프들이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다려야 했어요. 이 영화 찍을 때 제가 유난히 배우들하고 이야기 많이 했거든요. 당시 현장 스태프들은 상업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을 하셨던 분들이었어요. 첫날 촬영 끝나고 일본 조감독이 와서 ‘일본 현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배우가 대사 NG를 냈을 때 말고는 현장에서 지시할 게 많이 없다. 대사대로 못했을 경우 다시 찍으면 되는 거고, 감독이 현장에서 오래 이야기를 하는 게 시간적으로도 그렇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문제 제기가 들어 왔어요. 둘째 날 촬영을 하는데 눈치가 보여서 끝나고 스태프들 모아서 좀 봐달라고 말씀 드렸어요. ‘준비가 많이 안 된 프로젝트라서 배우하고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다. 한국의 스타일도 아니고 제 스타일도 아니고, 이번 프로젝트는 그냥 이렇게 해야 될 것 같다’라고요. 그렇게 얘기하니까 조금 나아졌어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일본 스태프들은 빨라요. 제 조감독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의 조감독이었거든요. 최근에 작업하신 두, 세 편의 어시스트로 일했던 친구예요. 상업과 예술영화에 이해가 있는 친구고 일을 굉장히 잘하는 친구였거든요. 그래서 도움 많이 받았어요. 시간 관리도 분 단위로 체크가 들어오고. 저도 찍다보니 적응을 했던 것 같아요.
 
김: 감독님도 연출뿐만 아니라 제작자인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과 공동제작으로 이름이 올랐는데, 제작과 연출을 같이 겸하게 되신 이유가 궁금해요.

장: 저는 기본적으로 제작자라고 생각을 해요.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비의 사이즈를 정하고 어떤 게 가능한지 아닌지 가늠하고 찍는 게 중요해요. 늘 그렇게 해왔어요. 이번 작업도 준비를 하다보니까 어떤 부분에 있어 주도하지 못하는 어려운 점들이 있을 것 같았어요. 원래 가와세 감독님께서 기획을 하시고 판을 짜주셨는데, 한국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섞였고 후반작업도 대부분 한국에서 했어요. 그렇게 꾸려지면서 제가 ‘공동제작을 하자. 제작비의 반 정도를 내가 갖고 오겠다. 마무리와 마스터링은 한국에서 할 테니 크레딧과 권한을 부여해 달라.’ 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들은 척도 안 하셨어요.(웃음) 왜냐하면 가와세 감독도 저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시는 분이거든요. 감독님의 품에 안겨서 영화를 찍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었어요. 오랫동안 답변을 얻지 못하다가 여러 번 설득을 해서 이렇게 되었어요.
 
김: 어떤 결말로 갈지 모르는 스토리입니다. 이런 제작 방식에 대해서 감독님께 전권을 일임했는지, 아니면 어떤 부분에 가와세 감독님의 의견이 들어갔는지 궁금해요.

장: 결과적으로는 감독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원 없이 다 했어요. 충고, 조언, 간섭, 훼방 등 이런 거 다 하셨는데 도움이 됐고요. 영화의 배경인 나라현이라고 하는 공간은 가와세 감독님께서 태어나 지난 20년 간 영화 작업을 했던 고향이고 너무 잘 아는 곳이에요.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알아볼 정도라 제가 조언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가와세 감독님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특유의 자연적인 것, 그 지역의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죠. 제가 그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런식으로 보이면 어떨까 유도는 많이 하셨어요. ‘저런 그림들 너무 아름답지 않냐’해서 보면 가와세 나오미 영화에 나오는 컷이에요. 그런 풍광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촬영 감독님이 현장에 오시면 또 되게 불안했어요. 인서트 찍으라고 할까봐. 저는 안 쓴다 얘기도 했고요. 제 강박일 수도 있는데, 보면 ‘가와세 쇼트’같은 게 막 있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카메라를 뒤로 빼거나 더 들어가 보자, 다르게 위치를 찾아보자 했던 기억이 나요.
 


김: 고조라는 지역색이라고 해야 될까요? 지역색이 강하게 보이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저도 여러 번 영화를 보면서 볼 때마다 궁금했던 게, 영화 속 인물들의 동선이 실제 지리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지였어요. 그 쪽 지역을 잘 몰라서요.

장: 실제로도 극중의 인물들처럼 그렇게 다닐 수 있어요. 넓은 범위가 압축돼서 나온 것은 아니에요. 대부분 제가 산책을 하거나 하면서 발견한 공간이에요. 지역적 특색이랄까 고유의 어떤 것들을 저는 사실 찾아내지는 못했어요. 비교할만한 다른 지방 도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요. 그런데 신기한 건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시골이나 지방 도시에 가면 이주 여성들이 되게 많잖아요. 고조에는 별로 없어요. 그리고 정말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영화에 사람이 나와야 되는데 너무 없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이 프로젝트가 나라영화제에서 기획한 영화인데, 제가 그 프로젝트의 세 번째 감독이거든요. 앞 선 두 영화들은 지방의 한적함, 아름다움, 텅 빈 공간을 다룬 다큐멘터리였어요. 굉장히 서구적인 시선으로 만들어진 자연다큐멘터리, 오지의 늙은 노인을 다룬 영화들이었어요. 쇼트의 느낌은 가와세 나오미와 같았고요. 그 공간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 부분들은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영화 첫 장면이 카페에 노인들 앉아있는 장면이에요. 헌팅 다니다가 카페에 쉬러 들어갔더니 노인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왜냐면 간판도 없었고, 부근에 영업을 안 하는 곳이 많아서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 단골손님들이시더라고요. 그리고 거리에 사람이 없는데 집 담벼락에 귀를 기울이면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요. 이런 것들이 이 영화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김: 혹시 현지 분들이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나요?

장: 네. 제작비 일부가 고조시에서 나오기도 해서 2014년 나라영화제와 부산영화제 사이에 고조에서 상영한 적이 있대요. 영화 완성했을 때 상영본 파일을 일본으로 보냈어요. 고조에 200석 정도 규모의 회관에서 가와세 감독님의 주관으로 특별 상영회처럼 상영을 했었어요. 저도 초대를 받았는데 못 갔어요. 이 영화를 찍기 전에 마을 분들을 인터뷰 할 때 다들 의아해 하셨어요. 여기에서 왜 영화를 찍느냐고. 그런데 그런 곳에서 스토리텔링이 나온 것에 대해 되게 즐거워 하셨대요. 젊은 애들이 여기 와서 데이트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기뻐하시고, 동네 아는 사람들 나오니까 즐거워하시고. 또 2부에서 ‘러브러브’ 하잖아요. 그때 아주머니들이 상당히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 영화감독 태훈이 만난 현지 노인들이 실제 고조시에 살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분들 캐스팅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장: 사전 인터뷰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촬영 요청 말씀을 드렸던 분들도 있고, 돌아와서 일본 스태프한테 섭외 부탁한 분들도 있어요. 대부분은 다 제가 미리 만났던 분들이에요. 처음 나왔던 카페 노부부도 그렇고, 주리 카페 사장님도 그렇고. 인터뷰 장면은 제가 처음 조사하면서 드린 질문들로 이루어졌어요. 처음 드렸던 질문에 조금씩 첨가해서 만든 장면들이예요. 인터뷰 말미에 두 가지 질문이 있었어요. “‘고조’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영화를 찍으면 좋겠나요?”였어요. 주리 카페에서의 러브스토리는 그분의 실제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드린 디렉션이에요. 원래 “‘고조’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했을 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셨고, “어떤 영화를 찍으면 좋겠나요?” 했더니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셨어요.(웃음) 그리고 촬영 시작할 때 장비들이 도착하니까 다들 되게 놀라셨어요. ‘진짜 찍네’ 하시고. 처음 나온 카페의 부부께서는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싫어하세요. 질문도 싫어하셔서 겨우겨우 대답을 이끌어냈어요. 촬영도 계속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가와세 감독님이 뒤에서 손을 써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김: 영화 시작할 때 나오는 추모 문구는 어떤 분께 쓰신 건가요?

장: 1부에 겐지 씨 어머니로 나오는 할머니, 시노하라에 계신 할머니가 영화 설정으로 2부에 돌아가시는 걸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후반 작업할 때 노환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분의 이름을 앞에 넣고 영화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김: 이 영화가 작년 한 해 사랑받은 이유가, 영화의 독특한 구성과 더불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처음 봤을 땐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는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봤었고, 두세 번째 볼 때는 또 다른 영화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를테면 1부의 주인공들이 죽고 난 이후 그 자식들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1부와 2부의 순서가 뒤바뀌어도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고요. 많은 관객들을 만나셨을 텐데, 독특한, 인상적이었던 해석이 있나요?

장: 이야기 해 주신대로 2부의 이야기가 태훈이 오기 전에 고조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는 감상이 있었어요. 영화 만들면서는 의식을 전혀 못했는데 그 얘기 듣고 나서 영화를 보면서는 그런 느낌이 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1부는 다큐멘터리풍의 이야기, 2부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극영화로 구분하면서 제작을 했어요. 그런데 영화 작업방식은 완전 달랐어요. 2부를 오히려 다큐멘터리처럼 찍고 1부는 짜인 각본대로 찍었거든요. 상반된 작업 방식에서 나온 기이한 영화로 봐주신 것 같아요. 단순하게 재미없다고 이야기 해주신 분들보다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해주시는 분들이 고마워요. 왜냐하면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관객 분들이 이 영화를 봐주실까도 고민했지만, 보셔도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듣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럴 바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보자, 하고 만들었어요. 그래서 다수의 불특정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장면 없이, 감독으로 저의 의도나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관철시키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들이 나오면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죠. 
 
김: 또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음악이에요. 처음에 시내에서 시노하라로 들어가는 과정, 도로를 따라서 갈 때 음악이 사용이 됐는데, 영화 음악에 대한 콘셉트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장: 1부에는 소극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그에 반해 2부는 ‘혜정’(김새벽 분)이라는 인물의 감정에 조력할 수 있는 소리로의 음악이라는 컨셉은 있었어요. 그래서 음악감독님과 그렇게 디자인 했어요. 저도 처음 작업해보는 분이었고,  ‘무키무키만만세’의 만수 씨에요. 영화음악도 하시고 본인 개인 작업도 하는 뮤지션이에요. 그 전에 영화음악 작업한 두 편의 작품을 보고서 소개를 받았어요. 일단 이 감독님의 장점은 본인 음악과 영화음악이 스타일이 달라요. 두 개의 영혼을 갖고 계시고.(웃음) 그래서 새로운 작업을 기대할 수 있었어요. 제가 많이 괴롭혔던 것 같아요.
 
관객: 묘한 영화라서 보고나니까 기분이 이상합니다. 마지막에 남녀 주인공이 결국 키스를 하잖아요. 일관되게 유지했던 정서, 그 나른하면서도 어색한 분위기가 이 영화의 특이한 기조, 분위기라고 느꼈는데, 그게 해소되어 여운이 희석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 그러셨어요?(웃음) 찍을 당시에 감독으로서의 판단을 말씀드리면 대답이 될지 모르겠어요. 작별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키스신은 계획에 없던 장면이었거든요. 보통 그 시점에서 입을 맞추면 숙소 앞이기도 하니까 ‘라면 먹고’ 갈 수 있잖아요.(웃음) 근데 입을 맞춰도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고요. 그래서 그렇게 찍어보자, 하고 찍었습니다.
 


김: 여자는 ‘NO’라는 제스처를 했지만 계속해서 ‘시도’하는 남자의 캐릭터는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장: 이와세 료 배우와 김새벽 배우의 성향들이 반영되었어요. 하지만 이와세 료는 그렇게 적극적인 타입은 아니에요. 아마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제가 주문을 해서 저런 인물이 됐어요. 제가 그런 타입이거든요. 보통의 경우라면 어색하게 헤어졌을텐데, 내가 서울 가면 가이드 해달라는 말이 새벽 다섯 시에 홍대 클럽에서 놀고 나온 후 편의점 앞에서 해장국 먹으러 가자는 느낌이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 같아요.
 
김: 디테일한 묘사들은 감독님이 디렉션을 해주신 건가요?

장: 마지막 장면은 배우들이 채워 넣은 게 굉장히 많아요. 저는 두세 포인트 정도의 미션을 줬어요. 1부에서 태훈과 미정이 맥주 마시면서 오늘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즉흥적인 연기에 기반을 두고 만든 신이예요. 배우들이 한 행동이 되게 많아요. 손등에 연락처 쓰는 장면도 그렇고, 2부에서 둘이 우물 갔다가 같이 점심식사 하는 장면들도 그렇게 만들었어요.

관객: 이 작업을 영화를 찍는다는 마음으로 찍으신 건지, 영화를 찍는 프로젝트를 하는 마음으로 하셨는지가 궁금해요.

장: 어떤 의도로 질문 하셨는지는 알겠는데, 저에게는 그 둘 다 같은 마음이에요. 정반합의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영화를 완성한다는 목표로 만들었어요.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들다가는 안 되겠다, 하는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후반작업에서는 돈도 똑 떨어지고. 그래도 완성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관객: 1부와 2부가 연속적인 측면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아요. ‘유스케’(이와세 료 분)가 똑같은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 그리고 할머니도 그렇고.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1부와 2부가 굉장히 차이나는 게 폐교 장면이에요. 1부에서는 사진을 직접 보여주다가 2부에서는 유스케의 손짓으로만 보이고 완전히 보이지 않는 순간이 그랬어요. 그 연속성에 대해 감독이 스스로 차단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의도가 있었나요?

장: 리스트 업을 해보면 장소가 많지 않아요. 같은 곳에서 촬영했지만 한 번에 찍지 않았고 2부는 두 번 방문해서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단순하게, 그 공간을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상반되거나 대구를 이루지만 좀 다른 조화나 그런 게 생긴 것 같아요. 특히 촬영감독님하고 저하고 되게 좋았거든요. 화학적인 반응이랄까.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김: 1부에서 할머니 인터뷰할 때에는 고조시의 전경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두 사람이 할머니가 살았던 집이라는 대화를 할 때 방 안에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고조시를 보여주는 방식의 차이도 독특했어요.

장: 1부 촬영을 순서대로 끝내고나서 1부가 어떻게 구축이 될지 대강의 감이 있었어요. 현장에서 감독 모니터를 사용하지 않았고 현장 편집 전혀 없이 고전적인 방식으로 찍었어요. 2부 찍을 때는 제가 배우들과 리허설 하고 있으면 촬영감독님이 대충 셋업을 하셨어요. 제가 원하는, 상상했던 그림들이어서 수정을 많이 안했어요. 1부의 시간을 겪으면서 2부의 콘셉트를 짤 때는 둘의 판단이 대립 없이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관객: 고조시의 우물의 전설이 원래 있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영화의 복선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지 궁금해요.

장: 지팡이로 찍은 곳에 우물이 생긴 것은 있는 이야기이고요, 그 뒤의 이야기는 지어낸 거예요. 약간 에로틱하잖아요. 에로틱한 농이 이 여자에 대한 마음의 은유적인 표현라고 생각하고 찍었어요. 그 이야기가 마치 나무꾼과 선녀처럼, 그곳에 왔다가 간 사람이 혜정 같고 남아있는 사람이 유스케 같아요. 
 
관객: 1부와 2부의 데칼코마니 같은 그런 형식적인 특징을 통해 의도하신 바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 사실 그렇게 둘로 쪼개고 비슷한 요소를 배치하고 같은 인물이 다른 역할을 하고, 그렇게 찍으시는 분이 홍상수 감독님이잖아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도 그렇고. 찍을 때는 그런 걸 의식을 못했어요. 원래 2부는 김새벽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일본 배우 캐스팅 진행을 했었어요. 그게 잘 안돼서 새벽 씨한테 체류 일정을 늘려 달라 부탁을 했죠. 1부의 미정과 2부의 혜정 이름 다른 건 그 이유예요. 유스케는 같은 인물로 하려고 했었고요. 1부의 감독 취재기를 바탕으로 어떤 영화가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것은 희미하게 있었어요. 제가 마치 그 감독인 것처럼 찍었거든요. 만약 1부와 2부의 관계를 의식했다면 아마 적극적으로 피했을 거예요. 1,2부 구조라는 것이 근래의 몇몇 작가들이 쓰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 때의 최선의 판단이었어요. 


김: 김새벽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 연기는 감독님이 현장에서 어느 정도 디렉션을 줬는지, 애드리브로 캐릭터를 만들었는지도 궁금해요.

장: 김새벽 배우는 감독이 많이 얘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배우예요. 본인의 말에 의하면 즐기는 배우는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감독의 완전한 종속체로 연기하는 것이 목표라고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배우에요. 하지만 엄청 도움을 받았어요. 새벽 씨가 저의 부족한 부분들, 빈약한 상상력을 많이 채워줬어요. 그리고 혼자 여행을 많이 해요. 그런 감각을 갖고 있었고,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목소리에서 주는 어떤 믿음직스러움, 그리고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미적으로도 훌륭하고 그 아름다움이 주는 신뢰감이 부여되는 인물의 느낌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장점이 있는 배우고 또 일본어를 되게 잘 해줬는데, 원래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대학 다닐 때 졸업하기 위해 필요해서 공부했던 거라 부족한 부분이 있었는데, 단시간 내에 만들어내는 집중력이랄까 그런 것이 있었어요. 그리고 납득이 안 되면 연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게 많이 보였어요. 서로 정직하게 작업을 해나갔던 것 같아요.
 
김: 이와세 료 배우에 대해서도 여쭤볼게요. 두 배우의 연기스타일 차이가 어떤 게 있는지요?

장: 일단 2부에서 조화가 좋잖아요. 둘 다 리시브, 리액션이 좋은 배우들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장면도 굉장히 흥미롭게 잘 만들어 냈어요. 이와세 료 씨는 개인적으로 그 전부터 알고지낸 친구였고, 그래서 작업하며 쿵짝이 잘 맞았어요. 그리고 귀엽고요. 그렇습니다.(웃음)
 
김: 뜬금없는 질문인데, 2부가 하늘, 구름으로 시작하잖아요. 그건 실제 고조시의 하늘이었나요?

장: 촬영 소스 확인 하는데 촬영감독님이 하늘을 엄청 많이 찍어 놓으셨더라고요. 그 중에 되게 좋은 구름이 있었어요. 마치 그림 같은 구름이잖아요. 불꽃놀이와 더불어 2부의 타이틀백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김: 하늘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있나요?

장: 그냥 선택했어요. 편집을 직접 했는데 어두운 밤하늘과 대비되는, 청명한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배치를 했어요.
 
김: 감독님 전작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야기의 소재가 감독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렇게 알려져 있어요. 이런 이야기는 내가 좀 해보고 싶다, 요새 주목하고 있는 혹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장: 네, 있어요. 요즘 ‘왜 우리가 이 지경이 됐을까’ 그런 생각 많이 하지 않으세요? 정말 그 생각이 하루 종일 들어요. 이 지경이 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될까, 현상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고 영화적인 상상을 가미해서 코멘트 해보고 싶어요. <한여름의 판타지아>까지, 약간 영화로 도망 간 느낌이 들거든요.
 
김: 지금까지의 세 작품(<회오리 바람>, <잠 못 드는 밤>, <한여름의 판타지아>)과는 조금 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겠네요?

장: 만들어봐야 알 것 같아요.(웃음) 전작을 보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떤 분이 저한테 ‘연애 이야기를 주로 만드시네요’ 라고 말하며 ‘사랑꾼 감독님’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 영화는 제가 30대에 만든 영화고, 이제 불혹이 됐어요. 40대에 만들 지도, 펼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김: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관객들을 위해 한 마디 해주세요.

장: 오늘 날씨가 갑자기 좀 추워진 것 같아요. 주말인데도 밖에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구정이 지난 2월은 쓸쓸해요. 봄이 오기 직전이라 마음도 좀 그런데, 인디스페이스까지 찾아오셔서 철지난 영화, 계절이 다른 영화를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다른 계절에 봐도 좋으니까 나중에도 봐주세요. 또 홍보 좀 하자면 이 영화가 6월에 일본에서 아주 작게 개봉합니다.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해요. 그때 프로모션 하러 갈 것 같고, 일본 관객들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그곳의 독립영화 시장도 개인적으로 궁금하고, 공부가 될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간 새해 덕담으로 ‘올해 잘 버텨보자’ 식의 말을 주고받은 것 같은데,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실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떻게 더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공감 못하신다면 저는 다른 나라에 사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인디스페이스도 그렇고,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결과로 4월에 총선도 있으니 우리가 잘 해야지, 마냥 더 이상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난데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 겨울은 다른 국면으로 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 인디스페이스가 좌석도 되게 많고 공간 채우기가 많이 어려워요. 옆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도 많이 찾아와주시고 주변 분들한테도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주말 잘 보내시고 잘 돌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반팔을 입고 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덥다고 말하는 등장인물들 덕분에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력하게 뿜어낸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여름에 보아도 좋고 겨울에 보아도 좋은 영화였다. 인디토크 자리에서 장건재 감독은 판타지 같은 영화에서 벗어나 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계획을 밝혔다. 판타지 같기도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만드는, 현실적인 고민을 풀어낸 영화는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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