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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사람에 대한 믿음, 변화에 대한 믿음으로 작업한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 이마리오 기획전 대담 기록

by indiespace_은 2015. 11. 27.

“사람에 대한 믿음, 변화에 대한 믿음으로 작업한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 이마리오 기획전 대담 기


일시: 2015년 11월 23일(월) 오후 7

참석: 이마리오 감독,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진행: 김수목 감독(신나는 다큐모임 / <니가 필요해>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이마리오 감독은 뚜렷한 문제의식을 창의적 접근방식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과 후반을 장식했던 그의 작품 세 편이 11월 9일과 23일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됐다. 제2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수상한 <주민등록증을 찢어라>(2001)는 주민등록증 제도의 파시즘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미친 시간>(2003)은 베트남 전쟁동안 한국군에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기억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2008)은 한국독립영화협회 10주년을 맞아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독립영화인들의 일상과 고민을 녹여낸 작품이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의 상영이 끝난 뒤 세 편을 아우르는 대담이 진행됐다.





김수목 감독(이하 김): 우선 두 분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본 후 관객 분들과 얘기 나누겠습니다.


이마리오 감독(이하 이): 기획전에서 세 작품을 고르라고 했는데, 이 세 작품 외에는 제가 혼자서 연출한 게 없습니다. 굉장히 많이 작업한 느낌이지만 세 작품밖에 없고요.(웃음) 오늘 <바람이 불어 오는 곳>를 오랜만에 봤는데 새롭네요. 7년밖에 안 지났는데 굉장히 오래지난 거 같아요. 영화에 등장한 인디스페이스, 미디액트를 비롯한 많은 공간에 변화가 있어서 느낌이 남달랐던 것 같고요.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이하 채): 첫 번째 작품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부터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도 주민등록증 문제 관련해서는 아르바이트 격으로 기자회견을 찍으러 다니다가 우연히 알게 돼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영화에서 이 문제가 다이렉트로, 공격적으로 드러날 때 제가 겪었던 충격이 떠오르면서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기분을 받았어요. 주민등록증이라는 게 자기 존재와 같이 가는 것이고 근본적으로 세계를 보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큐를 보고 상당히 세다고 느꼈습니다. 그걸 논리적으로 진행함과 동시에 감독님 개인의 경험담을 엮은 게 치밀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미친 시간> 같은 경우는 앞이 옆을 따르지 않고 그냥 그 분들의 이야기만 듣는 방식이었어요. 전쟁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그 분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바로 ‘학살’과 맞물리는 걸 보고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와는 접근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살 한 부분만을 건드리면서 자기검열없이 강하게 국가를 비판하는 태도를 동시에 읽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은 달랐어요. 감독님이 세게 나갈 거라고 생각했고 또 개인적인 고민과 엮어서 이 영화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전작들과 달리 따뜻한 태도가 드러나서 조금 놀랐어요. 독립영화의 미래에 대해 따뜻한 믿음이 담겨 있고 낙관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2008년이 배경이기 때문에 촛불집회 정국 같은 게 담겨 있지만, 세 가지 작품 접근 방식이 다 다르고 국가가 국민과 결합되어 있다는 환상을 무너뜨리면서 같이 가는 사람들과의 행보에 대해서 감독님이 상당히 따뜻한 태도를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가와 민중을 구별하는 태도가 현재에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2008년 이후 작업을 안하다보니 이런 자리가 낯서네요. 작업을 할 때마다 기저에 담겨있는 것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음에도 시간이 지나니 ‘내가 뭘 고민했었나’, ‘어디까지 고민했었나’ 잊어버리게 돼요. 요즘에 작업준비를 다시하고 있는 건 국정원 대선개입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어이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이지만 언론들에 가려진 사건에 대해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내가 왜 처음에 다큐멘터리를 하려고 했었나’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하구요. 그리고 거창하게 작품 세계 이런 표현 쓰시는데 그런 거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앞뒤 재지 않고 하는 스타일이라 보니 그렇게 작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 하는 작업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오히려 용인하는 범위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기에요.


채: 작품들을 보면서 기가 막힌 우연인가 아님 엄청난 촉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세 작품 다 무척 타이밍이 좋아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가 나올 때는 마침 정보가 한창 전산화되는 시기였고, <미친 시간> 때는 이라크 파병 시기였고,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의 배경인 2008년은 촛불집회라는 새로운 시위문화가 나왔던 시기라 다양한 사람들이 한 거리에 나와 있는 모습이 영화에 담겼습니다. 사회이슈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이: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비슷할 거라고 봐요. 다큐멘터리가 담는 게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이다 보니까 당시의 사회 공론이나 중요했던 순간을 다루게 되죠. 현실에 발을 딛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현실은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에 담기는 것 같아요. 그게 다큐멘터리의 매력 중 하나이고요. 의도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채: 사회 이슈와 맞닿아가는 것과 또 하나 중요한 게 개인의 경험을 작품에 담는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성찰이 영화에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사회문제와 개인의 경험을 섞는데 고민은 없으셨나요?


이: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제가 등장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계획이었는데 촬영 섭외하는 과정에서 그게 안 된 거죠. 그러다가 우연히 제 모습이 영화에 잡힌 적이 있는데 ‘내가 등장해야겠다’ 하고 그 순간에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 1인 시위를 하고 경찰서를 찾아가기도 했는데 사실 그거 때문에 촬영감독과도 많이 싸웠어요. 영화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거죠. 그렇게 만들고 난 후에 결과물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구나’ 싶으면서 말이 된 것 같았어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등장했으면 남의 얘기로만 느껴질 수 있었던 거죠. 상영을 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좋은 접근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느껴졌어요.



채: <미친 시간>은 학살 희생자들을 만나며 기획된 건가요?


이: 1999년 한겨레21에서 베트남 민간 학살 문제를 기사화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그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어요. TV등 여러 매체에서 많이 다뤄졌는데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으면 좋겠다,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게 한국 사람들에게 공유가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기획하게 되었어요. 굉장히 시간을 길게 보고 시작했습니다. 이걸 보는 한국 사람들이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별로 좋지 못한 감정을 갖고 시작했어요. 물론 생존자들이 느끼는 감정에 비하면 몇 천분의 일도 안 되겠지만. 그러면서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감정을 전하고 싶었어요.


채: 이전 작품과 접근방식이 조금 다른데 더 말하고 싶었던 게 있으셨나요?


이: 베트남 가서 촬영현장에 있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으면 말은 못 알아듣지만 얼굴표정이나 눈빛으로 감정상태가 전해지거든요. 촬영이 끝나고도 그게 계속 남아서 힘들었어요.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는 분들의 작업이 정말 힘들다는 걸 느꼈고요. 또 희생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인터뷰로나마 응어리들이 좀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느꼈던 것들이 영화에서도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감정을 느꼈어요.


관객: 저는 베트남에서 왔습니다. 7년 만에 감독님을 보러왔어요. 저는 이 문제와 관련된 사회운동을 계속 하고 있어요. <미친 시간>을 보면 감독님의 촬영이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정부의 허가 같은 걸 얻기도 힘들고 촬영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이렇게 영화 만드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너무 잘 만드신 것 같아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미친 시간>밖에 없어요. 제가 청소년 교육 관련된 일을 하는데 유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미친 시간>이예요. 오늘 <바람이 불어 오는 곳>도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이마리오 감독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아닌가 싶고요.(웃음) 이마리오 감독님 봬서 영광입니다.


이: 저도 촬영하고 나서 4,5년 동안 관련활동을 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고. 한국에게는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숨기고 싶은 역사인데 그런 부분들이 적극적으로 얘기가 돼야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회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죠.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과 역사적인 정리도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관객: <미친 시간>을 보면 참전한 분들 인터뷰도 계속 나오는데 그 분들 반응이 궁금해요. 섭외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그 때 당시 학살 문제를 인정한 유일한 참전 군인들이시죠. 근데 그 분들도 베트남 전우회 소속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사업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해서 쉽지 않았어요. 그 분들이 드러내는 걸 주저하셨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마산에서 10년 동안 주민등록증 날인 거부 운동을 하고 계셨어요. 그걸로 설득이 굉장히 쉽게 된 거죠. 영화제 할 때 모셔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어쨌든 만족하셨던 것 같아요. 그 분들 말고 다른 베트남 참전하셨던 분들이 보시면 좋을 텐데 그런 기회가 없죠. 지금 나이에 <미친 시간>을 만들었으면 참전 전우회에서도 상영을 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시는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을 거 같고요. 나이를 먹은 게 다 나쁜데 이런 좋은 부분도 생기는구나 싶네요.


관객: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을 보면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부드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8년 당시 상황을 꼬집는 식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한국독립영화협회가 10주년이 됐고, 마침 저도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한지 10년이 됐었죠. 협회 10년을 기념할만한 다큐멘터리를 부탁받았는데 제작기간은 6개월이 주어졌어요. ‘6개월 만에 만들어서 10주년 기념하는 날에 상영을 할 거다’해서 만든 거죠. 그 이전에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라는 한국독립영화에 대한 굉장히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가 나와 있는 상태였어요. 저는 그만큼 깊이 있게 다룰만한 실력도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다가 공동프로젝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형태를 가져와 보기로 했죠. 독립영화인 여섯 명을 선정하고 그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촬영을 하면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식으로 기획하고 작업을 했어요.


관객: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여섯 명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조연출: 선정회의를 많이 했습니다. 경순 감독님과 김태일 감독님 같은 경우는 십년 이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신 분들이죠. 이 분들을 투톱으로 선정했어요. 최진성 감독 같은 경우는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독립영화인같은 느낌이었어요. 본인이 다큐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제에서 얼굴이 잘 안보이게 된 이유가 본인이 참여를 덜한 것도 있고 상업영화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변화의 시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종필 감독은 몇 년 전의 최진성 감독처럼 <불을 지펴라>(2007)로 각광받으며 당시 막 시작한 느낌이죠. 활동가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도 함께 하게 된 거고요. 지역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박광수 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도 넣게 됐습니다. 



관객: 새로 하는 작업 때문에 한국 사회가 더 퇴보됐다고 느낀다 하셨는데 7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보는 소회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새로 작업하시는 과정도 듣고 싶네요.


이: 생각보다 더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웃음) 한국독립영화협회 10주년 되는 날 실제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을 했었거든요.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니까 다들 빵빵 터지고 난리가 났죠. 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재미가 굉장히 반감될 수밖에 없는 그런 작품인 거 같아요. 오랜만에 다시 보니까 좋네요. 화면에 등장했던 공간들은 다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늘 그 자리에서 꾸준히 있으니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표현하는 방식이나 그런 공간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다 사라진 게 큰 변화구나 싶어요. 점점 더 위축이 돼가는 것 같아요. 예술영화, 독립영화 극장들에게 ‘선정한 것들만 틀어야 지원해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내놓고 있고. 이렇게 내몰리는 상황들이 불과 7년 만에 더 늘어난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많이 퇴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작업하는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굉장히 민감한 문제잖아요. 정보기관도 관여돼있고. 어려울 거라는 걸 예상은 했는데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굉장히 겁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인 개인이 아니라 회사 이름이 제작지원에 들어가는 순간 문제들이 발생할 거고 그런 거에 대해서 겁먹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들이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김: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품고 시작하셨다가 좌절을 많이 느꼈다고 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몇 년 만에 다큐멘터리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두 작품을 만들고 나니 저의 바닥이 보였어요. 만들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난 이후 다음 작품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공동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직접 작업은 안 해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하나의 작업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같은 고민들을 하고 함께 만드는 과정이 있더라고요. 그걸 보며 힘을 얻은 것 같아요. 그렇게 공동 작업을 하며 얻은 힘으로 작업을 계속 하게 되었어요. 관심 있는 주제가 사람에 대한 거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첫 번째 이유는 아무도 안하니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잘 만들어야겠는데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는 개봉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하지만 실제로 만들다보니까 어려움이 생겨요. 개봉을 안 하면 돈이 안 드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개봉을 하려면 법적, 제도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거기서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왕 시작했는데 개봉을 해야겠다 싶어요. 내년 정도에 크라우드펀딩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당시 상황을 봐야겠지만 지금은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태예요. 공식적인 곳에서 나서줬으면 좋겠는데 과연 어느 곳에서 나서서 하려 할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관객: 감독님은 서울에 사시다가 강릉으로 이사하셨다고 들었는데 삶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어떤 식으로 나아가려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강릉에 미디어센터가 생기면서 그 쪽에서 일을 하겠다는 훌륭한 핑계를 대고 서울에서 내려가게 됐어요. 서울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주변에 늘 보는 사람밖에 없어서 내가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빠지면 미안한 생각이 드는 상황이죠. 강릉에 내려가서는 사람들과 자그마한 커피가게를 하면서 2층에선 영화 상영을 하고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사람들, 지역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협동조합도 계획하고 있어요.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밌죠. 지금 하고 있는 작업 같은 경우엔 PD빼고 다 강릉 출신 스텝들이예요. 제작비가 많았으면 다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텐데.(웃음) 주변에 촬영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 영화를 하고 있는 친구들, 미디액트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과 작업을 하고 있죠. 그렇게 나의 생활과 작업이 섞이는 건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서울에서 살던 것 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있어요. 오늘도 서울에서 사람들 만나려고 일찍 왔는데 다들 정말 바쁘게 살더라고요. 뭔가에 쫓기듯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지방에 가면 안 그래도 돼요. 훨씬 더 마음의 여유, 정신적인 여유를 충분히 누리면서 살 수 있어요. 경제적인 여유를 조금만 포기하면 돼요. 포기라는 게 심각한 정도는 아녜요.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연친화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자연이니까. 생각하는 지점들이 더 넓어지고 여유 있어 지는 것 같아요. 사건이든 사람이든 날카롭게 본다기 보다는 부드럽게 보게 돼요.


김: 강릉에 ‘봉봉방앗간‘이라고 있는데 1층은 까페, 2층은 상영공간이에요. 너무 좋아요. 상영을 생각하시고 계시다면 강추합니다. 커피도 맛있고요.(웃음)


채: 저는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의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배경으로 한 마지막 장면에서 힘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영화에 나왔던 것 같은 그런 여유를 감독님이 품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그런 부분이 있죠. 있으니까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영화를 믿는다기보다는 사람을 믿어요. 그리고 한국 사회가 힘들지만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런 믿음이 없다면 굳이 한국 사회에 발 딛고 작업을 하는 이유가 없죠. 저 말고도 여전히 창작을 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굳건히 살고 있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그런 변화의 지점은 각자에게 다 있다고 생각해요. 꿋꿋이 버티고 작업을 하다보면 7년 전의 <바람이 불어 오는 곳>에서 느껴졌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도 또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등장하는 사람들, 혹은 등장인물들과 잘 아는 사이의 독립영화인들이 영화관을 많이 찾은 듯 했다. 때문에 영화를 상영하는 두 시간동안 상영관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마냥 유쾌하진 않았다. 스크린 속 그들이 말하는 영화와 사회에 대한 고민은 곧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점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작업과 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사회를 향한 변화의 바람은 그들에게서 불어오는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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