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게, 사려 깊게 마음을 쓰다듬는

 [필름 투게더] 연필로 명상하기 

<소중한 날의 꿈>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인디토크(GV) 기


일시: 2015년 11월 14일(토) 오후 3

참석: 안재훈 감독

진행: 김상훈 장학사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치유의 힘이 있는 그림, 감동이 있는 빛깔’.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의 대표작 두 편이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났다. 인디스페이스 개관 8주년을 기념하여 마련된 기획전 [필름 투게더: 우리는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의 일환이다. 담백한 위로의 힘을 지닌 ‘연필로 명상하기’의 대표작 <소중한 날의 꿈>이 먼저 상영되고, 한국 근대문학의 결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긴 것으로 평가받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이 이어서 상영됐다. 두 편의 상영이 끝난 후 안재훈 감독이 직접 참석해 영화에 얽힌 후일담을 풀어내는 인디토크 시간이 이어졌다. 이번 인디토크는 안재훈 감독이 직접 가져온 그림과 사진을 보며 제작과정에서 얽힌 추억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돼 더욱 특별했다. 오가는 이야기의 온기로 인디토크가 진행되는 동안 상영관 안은 유달리 따뜻했다.



김상훈 장학사(이하 김): 영화와 관련된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겠습니다. 작년에 교육청 행사 때문에 관내에서 500명을 모시고 대규모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보통 행사가 끝나면 관객 분들이 다 가시는데 다른 영화들과 달리 감독님 영화를 상영했던 행사만 수백 명이 남아서 감독님이 관객들에게 일일이 손 그림을 그려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을 안고 슬라이드를 하나씩 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작업실의 모습이 나와 있네요. 직접 가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창작자의 모습이 묻어나는 곳인 것 같습니다. 다음 슬라이드는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이네요. 참고로 제가 국어를 전공했는데 영화의 시작부분이 원작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첫 장면이 행인들이 시장을 지나가며 왁자지껄하게 시작하는데요. 그걸 보고 왜 그렇게 구성했나 싶었습니다.


안재훈 감독(이하 안): 원작에 보면 ‘콩 볶듯이’라는 표현으로 봉평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을 보면 앞 속의 왁자지껄한 목소리 때문에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기 성우 분들은 연기를 못하지 않아요. 베테랑들이신데도 약간 어색하게 들리는 이유가, 보통 행인의 대사는 주인공을 받쳐주면서 흘려가는 정도로만 나오는데 저는 영화의 처음인 만큼 행인들 느낌조차도 이효석 선생의 작품의 느낌을 그대로 따오고 싶더라고요. 이효석 선생님을 나중에 봬도 ‘이렇게 까지 깊이 있게 연구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관객 분들은 이북사투리가 약간 어색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운수좋은 날>에서는 행인의 대사를 상황에 맞게 넣었습니다.


김: 이효석 선생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네요. 국어 교사들은 특히나 앞부분을 인상적으로 보던 것 같습니다. 다음 장면을 보겠습니다. <봄봄>의 한 장면입니다. 보시면서 느끼셨겠지만 판소리가 등장하죠. 판소리를 접목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 판소리를 도입하자고 생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판소리를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 김유정 선생의 글에서는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이걸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판소리라고 생각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우리 것이 내가 하는 길과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런 걸 억지로 넣으면 어색해지죠. 판소리라는 소재를 아껴두고 있었는데 <봄봄>을 만나니 딱 어울렸습니다. 김유정 선생이 젊을 때 국악 하는 사람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제 추측으로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결을 자기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잖아요. 그래서 작품에 판소리를 넣었을 때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김: 얼마나 많은 자료조사를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저도 김유정 선생의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창작자가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는지 알 수 있는 슬라이드인 것 같습니다. 다음 슬라이드는 <운수 좋은 날>의 한 장면이네요. <운수 좋은 날>을 보면 ‘치통집’이 나옵니다. 거기는 주인공이 술을 한잔하는 곳이고 그 옆에는 ‘깃자집’이라는 설렁탕집이 있습니다. 이름에 어떤 사연이 있나요?


안: 현진건 선생은 술을 엄청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 때 자주 드나든 술집이 ‘깃자집’, ‘치통집’이었다고 해요. 옛날에 동아일보를 다니셨으니까 여기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겠네요. 현진건 선생이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뭘 참아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손기정 선생 일장기 말소사건(현진건 선생은 동아일보 재직시절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1년 동안 실형을 살다가 출옥한 바 있다)을 겪었듯이 조선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술을 많이 드셨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깃자집’, ‘치통집’ 이런 게 없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요즘에는 극장의 이름이 없습니다. 대전에 갔을 때 얘기인데요. 어떤 택시기사가 말하기를 요즘은 극장이 다 같은 멀티플렉스라 이름이 없어서 극장의 위치를 찾기 헷갈린다고 합니다. 저는 극장이 극장 고유의 이름을 가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현진건 선생이 다녔던 술집 이름들을 보면서 여기 함께 하시는 분들이 이름에 대한 기억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김: 가게 이름에도 다 의미가 있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감독님 말씀이었습니다. 다음 슬라이드도 <운수 좋은 날>이네요. 보시면 중앙에 행인이 있는데, 저는 저 분이 굉장히 낯익습니다. 누구시죠.


안: 이효석 선생입니다. 작품을 할 때 동시대에 사신 분들을 등장시켜 재밌게 하려고 합니다. <메밀꽃 필 무렵>과 <봄봄>은 다른 행인이 들어갈 여지가 없어서 <운수 좋은 날>에 다 넣었습니다. 전철이 등장하는 장면을 잘 보시면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분들이 전철에 다 앉아계십니다. 이런 게 애니메이션 하는 묘미 같아요. 앞으로도 우리 스튜디오 작품에서 우연히 그려지는 행인은 없을 겁니다.


김: 쉽게 말하면 현진건 선생 작품에 이효석 선생이 카메오 출연하신 거네요. 지금까지 우리가 본 이 세 편의 애니메이션은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게 꼭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보면서 문학적 감각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슬라이드부터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소중한 날의 꿈>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애니메이션 동호회 회장을 하기도 했죠. 일본에서 VHS 테이프를 받아서 직접 자막을 뜨기도 하고, 기다리던 작품이 상영하면 달려가서 보곤 했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오늘 많은 얘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첫 번째 슬라이드를 보면 비행기처럼 생긴 ‘비차’라는 게 나옵니다. 설명을 직접 들어볼까요.


안: <소중한 날의 꿈>에서는 비행기가 중요한 의미로 쓰입니다. <소중한 날의 꿈>은 성장의 길목에 선 주인공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장치가 ‘존재’에 대한 걸 생각하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고 ‘비행기’가 그런 느낌을 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있으면 ‘나는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렇게 큰 게 하늘에 뜨고, 이걸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인류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을 한 사람들을 통해 주제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첫 번째 비행기를 띄우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었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비행의 역사로 기록되는 거죠. 공교롭게도 비행의 역사에 한국에서의 일이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찾다보니 임진왜란 때 비행선이 있었더라고요. 임진왜란 때 그 물체가 어느 정도 거리를 날았는지 등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왕실에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유산인데 과학 관련 자료 같은 건 그렇지 못합니다. 심지어 거북선도 기록으로 안 남아 있죠. 비차도 그랬습니다. 직접 항공학과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조사했습니다. 아무리해도 해답이 안 나왔지만 연의 형태가 가장 근접했던 것 같아 연 모양에 가깝게 그렸습니다. 작년에 개봉한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 나온 비차도 모양이 비슷해서 이게 실제에 근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비차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뿌듯하고 이것에 대해 공부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등의 작품에서 감독이 담은 여러 가지 의미를 끌어내곤 합니다. <소중한 날의 꿈>은 안재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제작 단계에서 스태프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긴 장면입니다. 잘 보시면 등장인물의 가방 뚜껑이 열려 있죠. 왜 열려있나요.



안: 이 장면을 우리 피디님이 꼽아주셔서 좋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은 단 한 장면도 제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제가 다 관여를 했습니다. 손가락 움직임 하나까지도요. 소품을 그릴 때 한두 개는 제가 그리고 나머지는 스태프에게 넘겼는데 제가 주문한 건 ‘가방만은 빼놓지 말고 그리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린 걸 보니까 가방이 열려있더라고요. 보고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냥 가방만 그리라고 했는데, 똑같이만 그려도 칭찬받을 텐데 다 똑같이 그리면서 하나만 디테일하게 열린 것으로 설정해 놓은 거죠. 실제로 70, 80년대 쓰던 가방들은 딱 저렇게 열려요. 사소한 것 때문에 기분이 좋았고 그래서 너무너무 기억에 남는 일화입니다.


김: 봉준호 감독은 디테일한 설정들 때문에 ‘봉테일’이라고 불리죠. ‘연필로 명상하기’의 스태프들도 디테일에 모두 일가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별의 목소리>(2002), <초속 5센티미터>(2007)를 좋아하는데 안재훈 감독님께 감독 한 명의 역량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작품도 혼자 할 수 없음을 강조하시더라고요. 스태프 전체를 소중히 여기는 감독의 면모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 슬라이드에는 시 한편이 나옵니다. 출처가 어떻게 되나요?



안: 제가 고등학생 때 쓴 시입니다. 어릴 때 애니메이션은 너무 생소했고,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시집을 내려고 시를 많이 썼죠. <소중한 날의 꿈>의 수민이가 그런 독특한 아이입니다. 33살이면 죽고 싶어 하죠. 그 내용은 실제로 제 고등학교 일기장에 쓰여 있던 것입니다. 33살쯤 되면 하고 싶은 거 충분히 다 해서 죽고 싶을 것 같았습니다. 수민이의 독특하면서도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시를 써야 하는데 어른이 되니 쉽지 않더라고요. 시를 써도 영화에 나온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비슷한 느낌으로 갈까봐 걱정이었습니다. 해답이 없어서 어릴 때 쓰던 시를 가져오게 됐습니다. 수민이가 쓴 시로 작품에 넣게 되었죠.


김: 국어교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문단의 인재를 애니메이션에 뺏겼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다음 슬라이드에는 ‘송혜진 작가의 그림’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여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안: 송혜진 작가는 <소중한 날의 꿈> 시나리오를 쓰신 분입니다. 제가 오랜 기간 글을 쓰고 작가에게 맡길 정도가 됐다 싶어서 섭외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에 가서 많은 영화들을 보는데 <안다고 말하지 말라>(2002)라는 작품을 보고 너무 좋더라고요. 그 분을 찾아가서 제가 애니메이션을 하는데 작품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죠. 제 글을 다 읽고 나서 작가님이 쓰시는 글과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게 달라서 못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일기를 보여드리니 진짜 이야기는 일기에 있고, 이전에 보여드린 글은 마치 정치인이 이야기를 각색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 같더라고요. 보시는 사진은 그 분이 어릴 때 고등학교 풍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 그림에서 “지금을 기억하자”라는 <소중한 날의 꿈>의 대사가 떠올라서 작품에 꼭 넣고 싶었습니다. 제가 스캔본을 가지고 있어서 이랑이가 교실 풍경을 스케치 하는 장면에서 넣게 되었습니다.


김: 송혜진 작가는 <인어공주>(2004), <아내가 결혼했다>(2008) 등의 작품을 쓰시며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분입니다. 다음 슬라이드는 주인공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입니다. 보면 ‘남의 탓’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인가요?



안: 오늘은 관객 분들과 만나는 방식을 바꿨는데 예전 기억들을 되돌아볼 수 있어 좋네요. 대사는 제가 먼저 쓰고 스태프한테 여기에 맞춰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스태프 분이 그러는 겁니다. “여기 애들은 왜 다 남의 탓만 해요?”라고요. 제가 쓴 게 다 남의 탓하는 내용이었던 겁니다. 그 말들을 보면서 왜 아이들이 그러나 싶었던 거죠. 그 말 듣고 대사를 다시 봤어요. 제가 남의 탓을 많이 하는 편이 아는데 무의식에 남의 탓을 하는 것들이 쌓여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 스태프의 말이 굉장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김: 감독님은 스태프와 소통을 많이 하고 그 분들에게서 창작 에너지를 얻는 것 같습니다. ‘연필로 명상하기’는 한국의 대표적 애니메이션 제작 집단입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감독님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스튜디오를 가보시면 아늑하고 참 좋아요. ‘자유학기제’라고 해서 학생들과 직업체험을 가고 있는데, 학생들도 스튜디오를 참 좋아하더라고요. 분위기가 따뜻합니다. 다음 슬라이드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박신혜 배우입니다. 이 분이 왜 등장했나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안: <소중한 날의 꿈> 극장용을 만들 때 많은 분들이 성우 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만드는 절차에서 전문 성우들, 혹은 지망생 분 등과 함께 극장에서 보면서 배역에 어울릴만한 사람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 분들이 등장인물이 캐릭터 적이라기보다 연기를 많이 요하기 때문에 배우를 추천해주시더라고요. 유명한 아이돌도 많이 지원해줬습니다. 참여하려는 분이 많았죠. 박신혜 배우와도 극장을 빌려 작품을 둘이 봤습니다. 저는 늘 작품을 할 때 함께 하는 성우나 배우가 꼭 스튜디오에 오길 원합니다. 애니메이터들은 자기가 하는 작품의 목소리 담당을 볼 일이 잘 없지 않습니까. 신혜씨도 스튜디오에 와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는 시간을 가졌죠. 본인이 직접 그려보고 싶다고 해서 그림도 그렸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을 할 때는 박신혜 배우가 지금보다 인지도가 높지는 않았는데 그 때부터 잘되길 바랐습니다. 오연서 배우도 마찬가지고요. 행운처럼 그런 배우들과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스태프들을 존중해주었습니다. 안 그래도 주변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부러움을 많이 삽니다. 어쨌든 더빙을 성우가 하든 배우가 하든 그림들을 그려낸 사람들과 최대한 눈도 맞추고 이야기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다른 나라 애니메이션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이죠. 영화에 나오는 표현을 따르자면 ‘공룡의 발자국’과도 같은 일입니다.


김: 일본 애니메이션은 성우들의 인기가 상당합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목소리 연기에 대한 지적이 필연적으로 따라붙죠. <소중한 날의 꿈>은 목소리 연기가 안정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국내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데 손으로 그리는 애니메이션의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은 따뜻한 손의 느낌이 담긴 그림입니다. 감독님이 흥행을 의도했다면 당시 인지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박신혜 배우가 아니라 좀 더 유명한 분들을 캐스팅했을 것입니다. 유명세 있는 분들과 함께 해보고 싶었지 않았나요?


안: 작품을 만드는 분들은 아마 아무도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못 할 겁니다. 배급과정에서야 어떤 것들이 도움 되겠다는 생각은 할지 몰라도요. 목소리가 어울리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김: 다음 슬라이드는 라디오 애청자들에게 너무 익숙한 이름, 고(故) 정은임 아나운서입니다. 왜 등장하는지요.



안: 오늘이 의미 있는 인디스페이스 개관 8주년 행사라서 공개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미 돌아가신 지가 오래된 분을 제가 하는 행사에서 보여드리는 것은 제 마음의 방향이 아닙니다. 고(故) 정은임 아나운서는 생존해계실 때 사회에서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에 대해 목소리를 내시는 분이셨습니다. 저 분을 그런 분인지도 모르고 우연히 처음 뵀던 게 인디포럼 뒤풀이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때 구석에 앉아있었죠. 정은임 아나운서도 제 테이블에 앉으셨습니다. 그 때 제가 애니메이션을 준비하는 게 있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근사하게 하고 싶다며 그림을 보여드렸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완성이 되면 시사회 때 꼭 사회를 봐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이 주소(방송국 주소)를 써주시더라고요. 이걸 보고서야 그 분이 아나운서라는 걸 알게 되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게 되었죠. <소중한 날의 꿈>은 다들 완성될지 의심하던 작품인데 그 이후 더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저희 집에 저 글씨가 액자에 담겨 있는데 <소중한 날의 꿈>을 보고 또 저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한 분 한 분 다르게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입니다.


김: 여러 가지 인연이 작품에 묻어나는구나 싶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은 오랜 노력과 시간이 투자된 작품입니다. 다음 슬라이드는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장면이죠. 저는 극장에서 이 장면을 놓쳤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느라 엔딩크레딧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보시면 삼촌이 수화를 하는데 자막처리가 안 돼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실수인줄 알았어요.



안: 제가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가장 처음 가르친 분이 청각장애인입니다. 수화는 수화대로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대로 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후 어느 순간부터는 웬만하면 종이로 소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에 소재를 쓰는 게 이해가 없이는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삼촌 캐릭터를 청각장애인으로 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쨌건 제 인생에서 그 스태프분과 지내면서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조금이라도 제 마음을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밖에서 일들을 하고 스튜디오에 돌아오면 저 스태프에게 사람들 욕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차마 글로 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저 분이 수화하는 걸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저 사람의 행동과 모습만으로 관객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습니다. 캐릭터의 모델은 손석희 아나운서인데 얼굴만 봐도 위로가 되죠. 용기 있게 넣었습니다. 수화의 실제 내용은 <소중한 날의 꿈>에 나오는 노래 가사입니다. 어른이 돼서 많은 해답을 요하는 순간에 놓일 텐데 답은 어린 시절에 있다는 내용입니다.


김: 한 장면 속에도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구나 싶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여러 번 봤었습니다. 관객 수를 늘리기 위해서죠. 명품이란 건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품을 처음 봤을 땐 작품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다고나 할까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을 보면서는 감독님이 얘기하려는 감성을 생각해봅니다. 곧 <소나기>와 <무녀도>가 나옵니다. 많은 기대를 가지게 되는데요. 인디스페이스를 찾는 관객들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보면서 많은 걸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께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안: 오늘 인디스페이스 개관 8주년 기념으로 한 번 더 상영하게 됐는데요. 단편 문학은 극장에 대한 저의 ‘운동’이 아니라 ‘참여’에 가깝습니다. 세상의 새로운 이야기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지만 이건 상업 애니메이션의 범주에서 싸워가야 할 것이고, 단편 문학 애니메이션은 다른 의미입니다. 저는 제 방식, 제가 좋아하는 문학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제 작품을 보러 왔다가 이 공간도 알게 된 분들이 많으실 텐데, 이런 것들이 다 연결돼서 10년이 지나면 단편 문학 애니메이션과 이를 통해 알게 된 공간까지 생각하게 될 겁니다. 학교 선생님들, 부모님들도 멀티플렉스에 학생들과 자녀들을 우르르 넣고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해도 이런 공간에 와서 우리 문학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고리들이 건강함을 전하면서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저도 여기 좌석 앞이 아니라 선생님, 부모님들이 앉으신 관객석 쪽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행복을 느끼고 싶습니다.


김: 감독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저도 감독님 덕분에 인디스페이스에 처음 와봤고 ‘인디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여기 있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오늘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감성을 키워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 <소중한 날의 꿈>에 등장하는 달리는 코치님이 차범근 감독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엔딩크레딧 ‘도움을 주신 분’에 이름이 올라가더라고요. 차범근 감독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안: 차범근 감독님과 함께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 욕심 중 하나였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자료를 찾기 위해 옛날 신문을 남산도서관에서 많이 봤습니다. 그 때 차범근 감독 기사를 읽으면서 혼자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지금은 외국에 나가 있는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차 감독은 혈혈단신으로 독일에 가서 소시지와 햄을 입에 욱여넣으며 생활하셨습니다. 우연히 독일에 간 기자들이 한국에 오면 차범근 감독과 관련된 기사를 냈는데 그 기사들이 마음을 뭉클하게 하더라고요. 그런 걸 너무 미화하는데, 저는 순수하게 그걸 봤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그 시대에 그렇게 사신 분의 이야기가 뭉클했습니다. 한 번 더 기억됐으면 좋겠다 싶었고 제 요청에 대해 감독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조건은 감독님과 아드님 차두리 선수의 캐리커처 그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관객 분 한 분이라도 더 궁금해해주고 한 청년이 그렇게 했었다는 걸 기억해주는 데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 문학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경우 수업시간에 문학을 가르치는 전형적인 패턴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식의 생각을 갖고 있으신지요. 두 번째 질문은,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중국 프로덕션에 관한 내용이 나오던데 함께 협력하여 작품을 만드셨는지요.


안: 교과서에 있는 교과목의 변화까지는 감히 생각을 못합니다. 다만 아이들이 ‘연상’을 통해 문학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수업시간에 문학을 밑줄 치면서 배웠는데, 가장 좋은 건 머릿속에 그리면서 보는 것입니다. 연상을 할 수 없는 부분을 그림이 보탰으면 좋겠습니다. 문학이란 건 그 나라의 정서가 녹아있는 것입니다. 우리 문학이 세대 간 연결을 할 수 있음에도 단절돼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제대로 공감이 되면 언어를 비롯해 많은 것들이 교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학을 통해 정서로 소통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어릴 때 ‘뽀로로’ 같은 걸 보면서 정작 지성과 감성이 클 때쯤에는 다른 나라 애니메이션을 보게 됩니다. 물론 다른 나라 애니메이션도 봐야하지만요. 아이들이 <돼지의 왕>(2011)같은 작품들을 바로 볼 수는 없으니까 중간 단계에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 스태프들과 작업을 많이 합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에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의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게 긍정적이었나 부정적이었나 하는 건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미국, 일본과 작업하며 얻었던 상처들이 있는데, 중국 분들과 작업하면서는 OEM 방식이 아니라 그들과 우리가 하는 건 ‘문화’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창작자’로서 다가가야 교류가 되고 기회가 되는 거죠. 단순히 일을 주는 게 아니라요. 지금은 그 분들이 우리 문학을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그들의 문학을 하면서 교류할 수도 있습니다. 장춘에 가서 중국 애니메이터 분들을 두 세 달 만에 보면 붙들고 울기도 합니다. 교류를 더 많이 하고 싶어요. 하지만 오히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미국, 일본과의 OEM에서 중국과의 OEM으로도 많이 넘어가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대로 가면 중국이 훌륭한 시장이 아니라 위험한 부분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본보기와 길이 되고자 차분히 조금씩 가고 있습니다. 영혼까지도 교류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김: 긴 시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의 문학 애니메이션은 국어과 교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추후 학교현장에 많이 보급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감독님을 존경합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온기 때문에 마음에 허전함이 찾아올 때마다 감독님 작품을 찾게 됩니다. 관객 분들이 집에 돌아가시는 길 행복하셨으면 좋겠고, 추후 감독님의 작품이 나올 때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머릿속으로만 그려온 이 풍경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자니 ‘황홀경’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맴돌았다.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는 연필의 힘만으로 관객들에게 이미 익숙한 문학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체험’토록 했다. 인디토크를 통해 그들의 작업과정에 담긴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연필로 명상하기’표 그림이 지닌 힘의 원천을 알 수 있었다. 소품 하나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장인의 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자세 등이 그 바탕에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감동과 치유가 있는, 우연히 건네받은 선물 같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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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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