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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그 많던 여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위로공단> 인디토크(GV)

by indiespace_은 2015. 8. 18.

그 많던 여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위로공단>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8월 16일(일) 오후 2

참석: 임흥순 감독

진행: 김세윤 칼럼니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위로공단>은 올해 5월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그 이후 많은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지난 8월 13일에 개봉하였다.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이미지들과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영화 포스터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인디토크(GV)에서는 미술과 영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는 임흥순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임흥순 감독(이하 임): 안녕하세요. 위로공단을 연출한 임흥순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세윤 칼럼니스트(이하 김): 생각보다 많이 오셨네요. 저는 오늘 <위로공단>을 두 번째로 보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지루한 영화를 두 번 보나?’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어딘가에 계실지도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두 번 보면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저는 또 울었어요. 어떤 인터뷰가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울면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전에 제가 감독님께 어머니와 여동생이 이 영화를 보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못 보셨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그 후에 영화를 보여드렸나요?


임: 여동생은 봤고요, 어머니는 다음 주 즈음에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김: 이 질문을 첫 번째로 드린 이유는, 감독님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출발점이기도 해서입니다. <위로공단>이라는 작품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 부탁 드립니다.


임: 제가 미술 쪽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금천예술공장’ 이라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예술가들의 창작소가 있습니다. 1년 동안 거주하면서 예술창작 활동을 하는 곳인데, 주로 전시장과 옥상 공간에서 여러 가지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이 금천예술공장이 있는 곳은 옛날 구로공단이 있던 곳이고, 그러다 보니 구로공단에 있던 여공들에 대해서 알아보고도 싶었고, 또 ‘그 많던 여공들은 어디 갔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 이 영화의 구성은 처음부터 정해놓으신 건가요? 


임: 극영화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쓰고, 다큐멘터리는 기획이나 구성안을 어느 정도 짜놓고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대략 얼개만 짜놓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맞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아무리 기획안을 만들어놓더라도, 인터뷰를 하면 방향이 좀 바뀌거든요. 그래서 얼개를 만들고 느낌에 따라서 전체를 만드는 형식으로 한 것이죠. 


김: 감독님의 작품을 두 번 보면서 더 많이 공감했던 것이, 저희 집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저희 어머니께서도 미싱 일을 하셨어요. 예전에 어머니가 고생한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잘 안 들었어요. 왜냐하면 어른들이 고생한 이야기를 자꾸 들으면 지겹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어머니께 제대로 여쭈어보았어요. 어머니가 처음 일을 시작한 나이가 열네 살이었고, 평화시장에서 일을 하셨다고 했어요. 이 영화 덕분에 어머니와 그런 대화를 나누게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이기는 하지만 미술 작품으로 평가를 받았지요. 현재 상영 중인 버전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상영된 버전과 같나요?


임: 뒤쪽에 물리치료사가 들어가는 부분 빼고는 거의 같습니다.


김: 그렇다면 외국의 관객들은 이 작품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네요.


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 결정이 되고 나서 여러 가지로 고민을 했죠. 어떤 방식으로 상영하는 것이 좋을지, 내용은 어떤 식으로 할지. 이 영화를 국내 버전과 해외 버전을 따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들이 한국의 내용을 이해할까 싶어서.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하나로 진행하기로 결정했죠. 베니스에 가기 전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베니스에서 진행을 했고 역시나 제가 느꼈던 것들을 똑같이 느끼신 것 같아요.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니까요. 인도의 심사위원님이 보더니, 본인 나라에서도 이런 게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여전히 안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아프리카 쪽에서 오신 분도 “우리 아프리카도 심각하다. 아프리카에 와서 이런 부분을 촬영해주면 좋겠다.” 고 말씀하셨어요. 유럽 같은 경우는 이미 지나간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리스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 문제라던가 노동 현실 문제 등을 다들 비슷하게 느낀 것 같아요. 언어는 통하지 않더라도 표정, 말, 억양 이러한 것들이 충분히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특히 제 친구가 지금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서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많은 직업들이 나오고 마지막에 물리치료사를 보여주는데 이 직업군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던 것 같아서 질문 드립니다.


임: 베니스에서 돌아와 구로동맹파업 30주년을 기념해서 <위로공단> 상영을 하게 됐어요. 구로동에서 상영하고 뒤풀이를 했는데, 병원에서 일하시는 두 분이 일을 하다가 늦게 오셨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찡하기도 하고. 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영화를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영화 구성이 짜여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넣지는 못했고 엔딩에 목소리를 넣었습니다.


관객: 감정이 짙은 다큐멘터리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 감정을 연결하는 것을 퍼포먼스로 많이 보여준 것 같습니다. 퍼포먼스에 어떤 분들이 캐스팅 되었고,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어떤 형식을 사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 퍼포먼스는 인터뷰를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출연을 하셨던 분들은 조카들,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들이고요. (웃음) 가면 쓰고 계신 분은 울산에서 무용을 하시는 분입니다. 울산에서 까마귀 떼를 촬영하다가 거기서 만난 조류 연구자 분을 통해서 소개를 받았습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기억에 남는 것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걸 글로 적어둔 것은 아니었고, 머리·몸·마음으로 기억을 해두었죠.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둘이서 보자기를 쓰고 있는 장면은, 저희 어머니도 그랬고 봉제 공장에서 일하셨던 분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지하에 공장이 많거든요. 통풍시설이 안 되는 곳은 먼지가 잘 빠져나가지 못해요.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눈, 코, 입, 귀에 먼지가 많이 들어가요.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염을 할 때의 모습들이 떠올랐어요. 행복해지기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일하는 공간이면서도 죽음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또 그분들을 보호해주고 싶고, 가려주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가 무시하고, 가려두고, 감추어두고, 알고 싶지 않은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을 덮어버리는 느낌? 이러한 여러 가지 조합들을 생각했습니다. 숲 속에서 둘이 도망치는 장면은 그런 환경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떠오르기도 했고, 여가와 안식이라는 느낌이기도 해요. 시멘트 같은 경우는, 당시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선생님의 꿈으로부터 시작됐어요. 꿈에서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노조원들 이름을 적어둔 수첩을 숨기려고(묻으려고) 하는데 주변에 흙이 없는 거예요. 다 시멘트인 거죠. 그렇게 허둥지둥하다가 깨어나셨다고 해요. 60, 70년대 이분들이 도시로 올라오기 전에는 시골에 흙, 나무, 숲이 있었는데, 도시에 올라오니 완전히 대조적인 거죠. 공기 자체도 다르고. 그러한 느낌들을 주고 싶었습니다. 



관객: 이 영화를 많이 기다렸는데, 오늘 처음 보고 나서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보통 노동에 대한 영화를 보면 감정에 호소하고, 시위 같은 거친 장면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 영화는 방금 베니스비엔날레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술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터뷰에 참여하신 분들은 사실 이런 미술 쪽보다는 현장과 더 밀접하신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합니다.


임: 일단 기대하셨던 것과는 다르다고 말씀해주셨고,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인 것 같아서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여러 직종에 계신 분들이 같이 참여했는데, 그 안에서 (직종이 다른)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셔서 그런 점이 좋았어요. 강명자 선생님(전 구로공단 대우어패럴 노동자) 같은 경우는 인터뷰를 처음 하면서 오랜만에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치유가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김: 말씀하신 이미지 중에서 새 떼를 보면서 혼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노동자, 투쟁이라는 단어가 붙는 어떤 사건들, 그분들의 삶 자체를 저 역시 새 떼를 볼 때처럼 덩어리로 보아왔어요. 새 떼 안의 새들이 각자의 날갯짓을 하고 있는 걸 보지 못하고 자꾸 덩어리만을 보아왔죠. 이 영화는 어쩌면 관습적으로만 보아왔던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그 안의 한 분 한 분의 날갯짓을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먼저, 영화 속의 새 떼와 관련된 것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라는 장르를 선택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영화가 좋기는 했지만 스토리나 전개가 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거든요.


임: 일단은 새 떼, 새들이 끌리더라고요. 날아가는 것을 보면 굉장히 좋아요. 곤충들도 마찬가지고요. 일상에서 사람들이 보통 싫어하는 것이지만 저는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리고 의미를 너무 부여하기는 그렇지만, 철새니까 이동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요. 새를 찾다가 울산 쪽에 가게 되었어요. 까마귀 떼를 촬영하러 갔는데, 새를 연구하시는 분이 이야기해준 것이 있어요. ‘울산이라는 곳이 80년대에 공업 도시였고, 또 공업화되면서 울산의 자연 자체가 많이 파괴되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공장들이 조금 떠나고,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서 도시에 철새들이 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까마귀 떼들이 오는 곳이 태화강인데 거기에 까마귀 떼들이 겨울에 왔다가 3월 달에 떠나면 다시 4월 즈음에 두루미 떼가 온대요. 공간에 철새가 공존하는 경우는 없는데 희귀한 곳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여러 가지로 ‘공존’이 의미가 있었어요. 노사관계나, 공업과 환경에 대한 것도 있고. 그런 의미를 간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저는 미술 작업을 하면서 계속 영상 작업을 했어요. 대학에서는 그림을 공부했는데, 졸업하자마자 비디오카메라를 우연히 만지게 되었고, 그 다음에 여러 가지에 다양하게 접근하게 됐어요. 제가 단순히 찍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찍게 하고 일종의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 방식으로도 할 수 있었고요. 대중적으로 접근하기도 더 쉽고, 배우기도 쉬웠어요. 그리고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비물질적이어서 좋았어요. 저는 작품의 이미지가 계속 생산되고 만들어지는 것이 싫었어요. 영상은 하드웨어에 저장하면 되니까. 그런 비물질적인 예술이라서 좋았어요. 


김: 씨네21 인터뷰에서 ‘색은 칠할수록 탁해지는데, 빛은 더해질수록 밝아져서 이쪽을 선택했다‘ 라고 감독님께서 말씀을 했더니, 박찬경 감독님께서 ‘그건 네가 색을 잘 못 칠해서 그렇지’라고 대답하신 부분이 문득 기억납니다. (웃음) 저는 아티스트가 저널리스트가 되려고 할 때, 또 저널리스트는 아티스트가 되려고 할 때 더 좋은 예술이 나오고, 더 좋은 저널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저널리스트의 자세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또 저널리스트가 아티스트의 이상을 품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때 예술과 저널이 멋있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에 부합하는 감독님을 만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임: 오늘 20대 분들이 많이 와주셔서 좋았습니다. 감사 드리고요. 이 영화가 기존의 영화들처럼 위로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을 완결한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지 않아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스크린 밖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그것이 예술적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임흥순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족(여동생과 어머니)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궁금증처럼 ‘과연 그때 여공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주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낙관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위로공단>이 보여주는 것처럼, 2015년 현재에도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를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야 할까. 아마도 임흥순 감독의 말처럼 스크린 밖으로 나아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그것이 예술의 방식이자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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