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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잊혀진 역사를 기록하다 <레드 툼> 인디토크(GV)

by indiespace_은 2015. 7. 20.

잊혀진 역사를 기록하다 <레드 툼>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7월 15일(수) 오후 8시 10분

참석: 구자환 감독

진행: 이현희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도경 님의 글입니다.


국민보도연맹사건. 교과서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사건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일에 대해 <레드 툼>이라는 영화가 해설 없이 묵직하게 기록했다. 그 기록의 현장의 힘듦에 대해 지난 15일에 들어볼 수 있었다.



구자환 감독(이하 구): 7월은 전국적으로 학살이 많았던 달입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7월에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멀리서 오신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영화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현희 프로그래머(이하 이): 사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오셨을 것 같아요. 워낙 소규모로 개봉을 해서 영화 정보를 접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사실 개봉도 어렵지만 제작부터 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작 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구: 이 영화 제작을 마음먹은 건 2004년이에요. 그 당시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해서 제가 잘 몰랐어요. 그때 제 나이가 삼십 대 중후반 정도였고요. 대학원까지 다녔고, 그렇게 오래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어요. 그 당시에 나왔던 처참한 유품들, 사연들, 더구나 부역을 했다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 밖에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을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 주민 분들도 만나고 피해자 유족 분들도 만났겠지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빨갱이’라는 올가미가 덧씌워진 상태에서 그 말을 꺼내는 것조차 여전히 힘들어하시는 분들인데 어떻게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들어보고 싶네요.


구: 2004년 당시에는 영화에 나왔던 몇 분들 외에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드러나지도 않았고 자신이 유족인 걸 밝히지도 않았었고. 그분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행히 유골이 발굴돼서 언론 보도가 나가니까 몇 분들이 와주시더라고요. 또 잠정적인 매장지로 추정되는 마을에 가서 가장 나이든 분을 찾아내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작비를 준비해 진행한 게 아니고 그냥 뛰어든 거였고 경남 지역 쪽에 지원 신청을 했었지만 여러 번 철회되었어요. 창원시 같은 경우, 영화 제작 지원 시스템을 만들고 나서 제가 선 신청을 했을 때 문화 쪽에 있는 분이 이런 소재를 지원해주기는 곤란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고요. 지역에 있는 시민단체 등에 요청도 했었는데, 그 분들의 말씀은 ‘종북으로 몰릴 수 있다’는 거였어요. 결국 돈 안 들어왔죠. 영화라는 것이 돈이 필요한 작업이고 돈이 들어감에 따라 영화의 실질적 내용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제가 <레드 툼>을 봤을 때 영화 미적으로는 막막한 부분들이 많아요. 있는 그대로,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과 인물,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보도연맹사건에 대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어요. 그렇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고요. 보시는 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그럼에도 보도연맹 자체를 설명하고 끄집어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 굉장히 오래 제작하신 것 같은데, 의미 있고 용기 있게 만드신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존경스럽고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우리나라 좌우익의 아픔인데 왜 굳이 ‘레드 툼’이라는 영어 제목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관객을 먼저 생각한다면, 이 아픈 사람들을 생각 한다면 여기에 적절한 우리말로 하시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구: 원래 제목은 지금 부제로 사용하는 ‘빨갱이 무덤’이었어요. 제가 영화를 만든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을 알리겠다’. 시사회 이후에 내부에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빨갱이 무덤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이 영화를 걸 수 있겠느냐’. 개봉을 못한다는 이야기였죠. 계속 고집을 피우다가 그렇다면 조금 순화시켜보자, 한국뿐 아니라 외국까지 내보내자 해서 조금 머리를 굴려 만든 게 ‘레드 툼’이에요. ‘툼’은 일반적인 무덤보다 더 큰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을 말합니다. 저는 돌아가신 분들이 왕족이나 귀족만큼이나 소중한 분이라고 생각해서 툼이라 설정했어요. 제가 빨갱이 무덤이라고 애초에 제목을 지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레드 툼>(빨갱이 무덤)을 지금 이 시대에 소위 보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이승만을 두둔하는 사람들, 과거의 학살자를 애국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눈여겨봐라, 당신들은 정말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냐, 그것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었고요. 또 역설적으로 빨갱이 무덤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영화의 기본적 골격은 빨갱이로 몰려서 죽은 인간의 무덤이거든요. 그래서 ‘빨갱이 무덤’이라고 이름을 지었던 겁니다.


이: 안타깝게도 감독님께서 정말 보여주고 싶은 분들이 이 영화를 언젠가 볼지 의문이 듭니다. 


관객: 유족들과 관계자 외에 더 많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죄송하지만 좀 더 관객의 입장에서 조그만 친절함을 가지셨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중간에 해설을 좀 넣어주셨다면 관객들이 따라가기에 좋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구: 제작 기획서를 쓸 때부터 내레이션을 넣지 않으려고 생각했어요. 이런 역사물 같은 경우는 내레이션을 넣지 않고 가면 정말 위험하죠. 설명해야 하는 부분들이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전체적으로 뚝뚝 끊길 수 있어요. 내레이션을 넣으면 조금 유연하게, 관심과 흥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애초에 그렇게 기획을 잡은 이유가 역사 기록물 하나를 남겨놓겠다는 생각이어서 에요.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진 않았지만 팩트 하나만큼은 기록으로 남겨놓자’, 자칫 잘못해 감정에 치우친 채로 내레이션을 넣으면 영화 자체를 망칠 수가 있거든요. 어차피 영화 하나로 모든 걸 관객에게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걸 설명하지 않고 내가 눈에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하자는 측면에서 만들었습니다. 


이: 아마 만듦새를 떠나서 이 영화를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아요. 


관객: 한국전쟁의 경우,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다, 좌우 사상의 대립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몇 가지의 폭력이 여과 없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국가를 소재로 삼아서 한 쪽에서는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나오고 다른 편으로 <레드 툼>이 나왔습니다. 같은 시기에 상이한 영화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감독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구: 아직 <연평해전>을 보지 못했고 영화 평을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보수든 진보든 좌든 우든 특정 사실에 대해서 영화나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봐요. 그 부분은 분명히 존중해야 하는 부분인데 단지 왜곡하는 영화는 예술로서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보지를 못해서 말씀을 정확히는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연평해전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배경, 동기가 영화에서 전해졌다면 그 영화는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렇게 그려졌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거든요. 모든 사건은 충돌이 있어서 일어나는 것인데 그 원인과 배경의 동기를 설명하지 않았다면 상업적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레드 툼>의 경우는 전국 12개관에서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로 흥행을 기대하진 않았어요. <연평해전>은 학생들까지 동원해서 대관, 단체관람을 하고 있다던데 홍보와 마케팅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의 수만 보면 <연평해전>은 성공했고 (<레드 툼>은 그런 측면에서) 실패하고 있죠. 하지만 저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보도연맹사건이 영화화됐다는 게 알려지면 분명히 모종의 반응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 어떤 변화들이 있나요?


구: 계속 인터넷에 오르고 지역 방송, 신문들에도 나왔어요. 중앙일보는 상업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사회 때부터 보도를 하더라고요. 이 사건을 아시는 분들은 얼마나 참혹했던 일인지 알고 계신 거고, 이승만 정권 당시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계보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인지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런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 실패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 <레드 툼>으로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유족 분들과 피해자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셨는데, 그 이후 작업을 더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후속이 나올 수 있는 건지요.


구: 유족 분들 중에 가장 안타까운 분들은 1세대에요. 피해자의 배우자인 할머니들은 연세가 많으셔서 정정한 분들을 찾기가 힘들 것 같아요. 1세대의 자녀분들은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연좌제 때문에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1세대의 자식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얼만큼 피해를 받고 있는지 그 삶을 조명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제가 자신이 없거든요. (웃음) 그래서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관객: 주로 경남 지역을 다루셨는데 어떤 이유에서 그 쪽을 다루신 건지요?


구: 경남 지역에서 피해자가 가장 많았어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간단히 말씀 드리면 전국으로 다닐 만큼 제가 돈이 없었어요. 보도연맹사건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지만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경남 지역만 설명을 해도 전체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알리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 제작하고 나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 이후 변한 상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구: 피해자 분들이 국가를 상대로 1차로 손해배상을 받았어요. 그것은 국가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는 거죠. 하지만 배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그분들이 아직도 빨갱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 진상위원회가 만들어져서 국가가 조사하긴 했지만 하다만 거죠. 다 하지 못했어요. 형식적인 보상만이 있을 뿐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어요. 


이: 역사가 그대로 기록해주지 않으니 다큐멘터리 감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소중한 것 같아요. 마지막 인사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구: 아직도 영화는 개봉 중이니 입 소문 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 기록해주지 않은 일을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다수의 기억에 남기기 위해 영화로 남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레드 툼>은 지워진 역사의 한 줄을 채우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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